〈 178화 〉 178화On my side(2)
* * *
나의 말에 동생의 반발이 터져 나왔고 우리 둘은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구로 돌아가.”
“형, 이제 와서 나만 빼놓고 가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느낌이 안 좋아. 생텀에 가서 혹시라도 모두에게 위험한 상황이 닥치게 돼서 너를 챙기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과연 니가 우릴 따라서 같이 가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까?”
“레드란 인공지능은 형 친구라며? 아니야? 친구 만나러 가는 거잖아.”
지후의 말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후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살던 세상에서 하는 말이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여긴 지구가 아니라 ‘더스트’고 내가 알던 친구가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닐 수도 있기에 난 지후에게 널 데리곤 절대 갈 수 없다고 했다.
“한번 친구가 뭐 영원한 친구냐? 그런 건 아무런 보장이 될 수 없어.”
내 말에 멈칫하던 지후는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과거 나의 사례를 가지고 공격해왔다.
“형은 크로니클 사람들하고 던전도 탐험하러 갔다며? 그땐 위험하지 않았어? 그때 형은 지금 나랑 비슷한 수준이었는데도 따라갔잖아.”
“지후야, 니가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근데 다음에 안전이 확보되고 생텀에 가도 늦지 않아. 꼭 이번만 기회가 아닌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내가 지금 너 미워서 안 데려가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잖아. 진짜 아주 재수없게 레드랑 싸우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가 널 챙기지 못해서...그런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우리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엘리스가 나타나 진정시키려고 했다.
<두 분="" 이렇게="" 감정적으로="" 하지="" 마시고="" 조금만="" 가라앉혀요.="" 왜="" 목소리를="" 높여요.="" 정후="" 아저씨,=""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만큼만="" 부드럽게="" 대해요.="" 그리고="" 지후="" 삼촌도="" 너무="" 화내지="" 말아요.="" 아저씨가="" 걱정하는="" 게=""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에요.="" 코엘="" 단장이나="" 버크="" 부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랜드="" 마스터도="" 감히="" 대항할="" 엄두가="" 안난다고="" 했어요.="" 이전에="" 갔던="" 던전="" 탐험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에요.=""/>
차분하게 엘리스가 정후와 지후를 설득하자 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둘 사이에서 1분이 1시간같은 시간이 흘러갔고 지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이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건 알겠어. 하지만 내가 걱정될 정도로 위험하다면 형도 가면 안되는 거 아니야?”
“어?”
동생의 말은 논리적으로 합당했다. 동생을 책임질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닥쳤다는 것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그 말은 나도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맞는 말을 한 지후의 말에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를 고민하던 찰나 옆에서 우릴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엘리스가 말을 꺼냈다.
<그래도 레드는="" ‘우리’는="" 해치지="" 못할="" 거예요.="" 예전에="" 엘레네="" 님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나중에라도="" 어느="" 정도의="" 제어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레드와="" 화이트에게="" 작업을="" 해둘까="" 한다고="" 했거든요.="" 인공지능이라고="" 할지라도="" 언젠가="" 자기처럼="" 인간의="" 마음을="" 느끼고="" 다른=""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면서="" 해둔="" ‘준비’에="" 지후="" 삼촌은="" 포함되어="" 있진="" 않겠죠.="" 그러니="" 최악의="" 벌어지더라도="" 우리="" 둘만큼은="" 목숨을="" 위협받진="" 않을="" 거라고="" 봐요.="" 무엇보다....=""/>
엘리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에겐 한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비상상황에서 지구로 대피할 수 있는 차원이동능력이 있지. 1명을 더 데리고 대피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를 지구에 돌려 보내놓고 누군가 한명을 더 살리는 게 현명한 방법 아니겠냐?”
둘의 합공 아닌 합공 덕에 지후는 한발 물러섰다.
“대신 안전이 확보되면 나도 구경시켜주는 거야.”
“안전하기만 하면 니가 생텀에서 똥을 싸든 라면을 끓여 먹든 신경 안 써.”
“형은 꼭 말을 해도 그따위로...”
여느 때의 형제 사이로 돌아온 우리는 한마디씩 티키타카를 날려대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형, 조심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도망쳐.”
“하룻강아지가 범을 걱정하고 있네.”
지후를 돌려보내기 전 지후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와 크로니클 단원들을 한번씩 둘러보곤 무운(??)을 빌테니 부디 모두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걱정하지 말게. 그랜드 마스터인 나와 코엘이 있는데 뭘 그리 걱정하나! 자네 형은 우리가 안전하게 생텀까지 모셔다드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하하하”
“정후 동생이라 걱정도 많다. 모험을 떠나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인마! 다시 돌아오면 그땐 내가 혹독하게 훈련시켜 주마. 크크”
드마코 형은 그러면서 저번에 훈제 닭다리를 맛있게 먹는 걸 봤다면서 언제 준비했는지 훈제 닭다리를 용기에 담아서 지후에게 건네줬다.
“정후 임시 단원이 그동안 노력하긴 했지만 모험을 함께 떠날 자격은 다소 부족했습니다. 다음에 함께할 모험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도록 제가 훈련 계획을 짜 보겠습니다. 힘이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정의도 얻을 수 있고 모험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빅터는 그러면서 검자루를 주면서 다음에 볼 때까지 매일 찌르기와 베기를 방위별로 천번씩하는 미션을 부여했다.
“처....천번이나요?”
“흠, 역시 너무 적은 것 같...?”
“하하하하, 교관님, 제 말은 천번이란 숫자가 딱 채웠을 때 성취감이 들고 좋을 것 같다는 소리였습니다.”
진지하게 진담처럼 건넨 농담 한마디에 지후가 얼어붙자 크로니클 단원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폈다. 웃음소리가 줄어들 때쯤 내 옆에 서 있던 섀넌은 빅터가 만들어준 검을 찰 수 있도록 벨트를 언제 만들었는지 허리에 매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지후 님, 다음에 볼 때는 이제 섀넌 님이 아니라 형수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섀넌의 조용한 목소리를 들은 지후는 나와 섀넌을 번갈아 가며 벙찌더니 섀넌을 향해 깊은 인사와 함께 부탁의 말을 전했다.
“부족한 형이지만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많이 모자란 형입니다.”
“이 자식이! 너 빨리 가!”
내가 동생을 걷어찰 것처럼 쫓아가자 지후는 도망치는 척 하더니 한쪽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코엘 누나 앞으로 갔다.
지후가 코엘 누나의 앞에 가자 누나는 머쓱했는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배웅이 너무 길다. 빨리 가라.”
“마스터...”
“그러게 가르쳐 줄 때 부지런히 더 좀 할 것이지. 쯧.”
틱틱거리며 말하는 코엘 누나의 말에 진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후도 알았는지 코엘 누나에게 큰절을 올렸다 일어나며 살짝 훌쩍거렸다.
“야, 왜 울어? 정후야, 니 동생 좀 말려 봐. 사내 자식이 누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훌쩍거려 훌쩍거리길 재수없게...다음에 돌아오면 눈에서 눈물따위는 흘리지 않게 바짝 말려놔야겠어.”
어느새 지후를 가르치며 코엘 누나가 정이 들었는지 일부러 더 거칠게 말하곤 등을 돌렸다.
지후는 그런 코엘 누나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미소를 짓고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고 지구로 떠났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지후가 떠나고 나자 눈이 살짝 빨개진 코엘 누나는 먼저 앞으로 나아가면서 툴툴거렸다.
“누가 허락했다고 스승이래 스승은. 아직 제대로 가르친 것도 없구만.”
누나가 그렇게 걸음을 옮기자 나머지 사람들끼리 서로 마주보며 웃고는 우리는 생텀으로의 여행을 마무리짓기 위해 코엘 누나를 따라 한걸음씩 따라 걸어갔다.
“경비대장. 항상 마을 어른들이 매사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자연재해 앞에선 거스르려고 하지 말게. 구체적인 적이라고 할 수도 없던 눈보라와 싸운 ‘도느 키호데’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자이온은 촌장의 말을 새기곤 노력해보겠다고 답했다.
“평생 붉은 마녀를 제 발로 짓밟고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날만 기다려왔습니다.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돌아오기 전까진 그동안 훈련시켜놨던 예비 경비대원들이 저희를 대신해 마을을 지킬 것입니다.”
“아직은 미덥지 않으니 그대들이 하루 빨리 돌아와 마을을 지켜줬으면 좋겠군.”
촌장도 자신의 이웃이었고 친구였던 이를 잃었기에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떠날 채비를 마친 마을의 경비대원들의 출정을 지켜보았다.
크로니클 단원 옆으로 조용히 분노를 곱씹으며 마을의 5인이 합류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 해소 차원에서 어느 정도 떠들썩하던 우리는 분위기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정후야, 생텀까지 얼마나 걸어야 되냐?”
“지금 속도대로만 걸어가면 한 4일? 5일?”
나와 드마코 형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 자이온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5일 내론 어려울 거란 전망을 내놓았다.
“말라야 히마께선 워낙 변화무쌍한 분이시라 지금처럼 눈보라가 휘날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 더 길게 잡아야 할 거야.”
“아!”
자이온의 말대로 말라야 히마 산맥의 꼭대기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생텀의 입구로 가는 길은 휘날리는 눈보라로 인해 가시거리가 극도로 제한되고 내뱉는 숨결이 응결되어 입가를 가리고 있는 헤비다운에 달라붙을 정도로 온도가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멈추지 않고 천천히 나아갔다. 산악을 수시로 오르는 등반가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꽤나 놀랄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군. 더 눈보라가 심해질 수도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눈을 파고 자리를 잡은 뒤 휴식을 취하고 날이 밝아지길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준비해! ”
눈보라가 치는 소리에 묻히지 않도록 자이온 경비대장이 크게 소리를 치자 다른 경비대원들도 가타부타 반발하지 않고 일제히 짐을 한군데 모으더니 조그마한 삽처럼 생긴 것을 배낭에서 불러 숙련된 건설노동자마냥 눈을 파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부는 반대방향으로 낸 입구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우후우”””””
“고생들 했군.”
5명이 순식간에 파고 들어가 모양을 만든 설동 안에는 11명이 충분히 자리를 잡고 누울만한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도 파낸 눈을 밖으로 내 보내며 돕기는 했지만 안락한 공간을 만들어낸 공은 엄연히 5인의 경비대원에게 있었다.
“와, 재주들 좋군, 우리끼리 왔으면 이렇게 빨리 쉴만한 공간을 만들긴 어려웠을 것 같은데 덕분에 오늘 안전하게 잘 수 있겠군.”
버크 아저씨가 잘 다져져 튼튼하게 모양을 잡은 설동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을 표현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줬으니 우리도 실력발휘를 해야지.”
드마코 형이 나에게 눈짓을 하자 난 알았다는 듯이 얼지 않은 미지근한 물을 코펠에 담아 버너와 함께 줬다.
급히 움직이느라 체력을 회복 중인 경비대원들과 우리 크로니클 단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드마코 형은 라면과 햇반을 3군데에 나워서 버너 위에 올리고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설동 안이 버너 위에서 솟아오른 김으로 가득 차 마치 사우나처럼 변해버렸다.
“괜찮으려나?”
정후가 수증기 때문에 눈이 녹아내려 설동이 무너지진 않을까 천장과 벽쪽을 둘러 보자 이를 눈치챘는지 드마코 형와 창으로 대결했던 아왕이란 남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눈이 녹으면서 바로 얼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근데 드마코가 지금 만드는 건 뭐지? 냄새가 좋은데.”
드마코가 재주 좋게 마나를 이용해서 고산지대의 낮은 온도에서 원래대로라면 쉽게 끓지 않을 버너를 빠르게 끓게 만든 뒤 두 개의 코펠 안으로 라면을 몇 개씩 넣고 수프를 넣자마자 다시 마나로 가열을 돕자 설동 안에 끓인 라면 냄새가 가득해졌다.
“이렇게 추울 때 뜨뜻한 라면국물만큼 좋은 게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