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177화On my side(1)
* * *
“선조들이 남긴 기록대로였어.”
“아니, 그것보다 더 위대한 존재들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지.”
그랜드 마스터란 경지에 오른 둘은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드워프들의 신 ‘레드’가 가진 마력에 대해 더 깊고 자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둘이 협공을 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싶더군.”
“이겨? 이겨?”
코엘은 감히 자신의 신과 싸워볼 생각을 해봤다는 것에 대해 버크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거냐?아니면 드워프들은 하도 맥주를 쳐먹어서 간이 망가질까봐 아예 내장에 있어야할 간이라는 건 밖에다 빼놓고 다시 안 집어 넣어서 그러는 거냐?”
“하하하, 엘프 입에서 나오는 ‘베르주프와 토크 샤이어’ 이야기라니.”
교활한 엘프가 순박한 드워프를 속여 끌고 가 자신의 원하는 무기를 만들려고 하자 나중에 이를 순박했지만 똑똑한 드워프가 눈치챘다.
순간의 꼬득임에 넘어가 엘프와 함께 크리스탈 궁으로 가던 드워프는 꾀를 냈다. 교활한 엘프에게 드워프들은 맥주를 하도 많이 마셔 간이 망가져서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면서 선조들의 가르침으로 드워프들은 이제 술을 마실 땐 아예 간을 미리 간을 빼놓고 마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속인 엘프에게 저번에 빼놓은 간을 아직 돌려 끼워놓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일을 할 땐 간이 없으면 너무 피로해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데 간을 가지러 갔다 오겠다고 한 뒤 순박하지만 현명한 드워프는 도망칠 수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교활한 엘프의 이름이 베르주프였고 기발한 꾀로 엘프에게 착취당할 뻔했던 순간을 모면해낸 위대한 드워프가 토크 샤이어였는데 베르주프와 토크 샤이어 이야기는 어린 드워프들에게 엘프의 교활하고 이중적인 면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필독도서였다.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대는 버크를 코엘이 한심하게 쳐다봤다.
“지금 그게 그렇게 웃기냐?”
“아니 어떻게 웃지 않을 수가 있겠어. 크크크크크. 드워프 입도 아니고 엘프 입에서 한심한 베르주프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소리냐. 우리들의 위대하고 선량하셨던 하이엘프 베르주프님이 한심하다고? 말 좀 조심하지. 신의를 저버리고 뒷통수 때리고 교활한 수로 계약을 지키지 않은 토크 샤이어야말로 드워프의 수치 아닌가?”
“어? 선 넘네.”
버크 샤이어는 다른 드워프도 아니고 자신의 선대조인 토크 샤이어를 드워프의 수치라며 코엘이 어떤 종족도 상대방의 종족에게 있어 반드시 지켜야할 ‘타루라’를 어기자 참지 않았다.
코엘은 조금 전까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웃던 버크가 갑자기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선빵을 날리고서 니가 먼저 선을 넘었다고 하자 열을 받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이에 참지 않고 뒤돌려차기로 버크의 배를 후려쳐버렸다.
“니가 먼저 쳤다?”
“선은 니가 먼저 넘었지. 감히 타루라를 어겨?”
“내가? 타루라를 어겼다고? 이 고매하신 엘프 코엘이?”
“어겼잖아. 샤이어 가문의 후손으로서 감히 조상을 욕보이는 발언을 듣고서 참으면 드워프가 아니지.”
“어? 토크 샤이어가 너네...음....샤이어 가문 조상님이었냐?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좀 잘못한 게 맞긴 한데...”
그제야 눈 앞의 엘프 코엘이 자신의 선조임을 알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어지간하면 먼저 사과하지 않는 코엘이 사과를 하자 버크도 욱해서 선빵을 친 것에 미안해했다.
“나도 때려서 미안했다.”
“그래. 없던 걸로 하자.”
심각해졌던 둘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또 한방씩 주고 받고선 머쓱해져서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꼬라지를 맥주를 들이키며 드마코가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 인간들은 지치지도 않나 봐.”
때마침 자리를 비우고 있던 셋을 찾으러 다니던 빅터가 드마코의 혼잣말을 들었다.
“무슨 일인가?”
“아? 별거라면 별거고 별게 아니라면 별게 아닌데...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더니 조상님 욕은 못 참는다고 하고서 싸우더니 화해하더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자초지종을 드마코로부터 들은 빅터는 자신도 베르주프와 토크 샤이어 이야기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맞는 거야?”
“제 3자인 입장에서 보자면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인간들에게 전설로 내려져 오는 명재상 ‘황히’도 아니고 이게 무슨 개뼉다같은 소리인가 싶어 드마코가 빅터를 향해 고개를 틀어 봤다.
“그런 게 어디있어?”
“그렇게 보지 마라. 정확히 말하자면 엘프 베르주프가 수를 써서 드워프 토크 샤이어에게 무기를 얻어내려고 했던 것도 맞고 토크 샤이어가 이전에 약속을 하고 만들어 주기로 했던 무기를 만들기 싫어서 내뺀 것도 맞다. 두 인간 다 자기 편할 대로 자신의 입장만 후손들에게 말해서 퍼뜨렸단 이야기지.”
“아,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던 드마코는 그래도 베르주프가 더 나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니 말대로면 약속한 걸 지키지 않은 토크 샤이어가 잘못한 거 아니야? 둘 다 맞고 둘 다 틀린 게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 베르주프가 한 계약은 부당계약이었으니까요.”
오전 산책을 마치고 정후와 돌아오던 섀넌이 드마코의 말은 틀렸다고 했다.
“왔군요. 안 그래도 세 사람에게 말하고 부르러 가려고 했는데.”
“잠깐만. 아니라니? 부당 계약?”
쓰게 웃은 섀넌이 베르주프가 어떤 수를 썼는지 말하자 드마코도 더 이상 긴 말하지 않았다.
“드워프를 취하게 만들고선 원하는 대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해서 100년간 일을 시켜 먹으려고 자백제와 마취제를 맥주에 섞어서 먹였다고?”
“그럼 베르주프가 잘못한 게 맞네.”
베르주프의 약물 사용 이야기까지 들은 정후는 토크 샤이어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섀넌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렇다고 해서 꼭 베르주프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쌍방과실입니다. 토크 샤이어는 매번 자신을 도와달라면서 베르주프가 자신을 도와주면 원하는 대로 무기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면서 100년간 질질 끌면서 결국 만들어 주지 않았거든요.”
“섀넌은 그걸 어떻게 알았나?”
“엘프 여왕의 후손이 여왕 후보일 때 공통적으로 배우는 제왕학 ‘매키어베리’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니까요. 군주라고 함은 양쪽의 말을 모두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배우고 있죠.”
“그럼 왜 일반 드워프들과 엘프들은 그걸 잘 모르고 있지?”
“드워프 수뇌부와의 합의 결과였습니다. 진실을 알려줘도,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차피 개와 원숭이 사이같은 드워프와 엘프 사이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을 테니 그냥 양측이 편한 대로 후손들에게 전해도 좋다는 것이.”
어느새 정후들 옆에 다가온 버크와 코엘은 각자 한가지씩 질문을 했다.
마을 촌장과의 미팅으로 인해 마을 회관으로 가야 한다는 빅터의 말에 두 사람은 머쓱해진 채로 빅터를 따라 다른 단원들과 함께 마을 회관으로 향해 움직였다.
마을 회관에서 단원들을 기다리고 있던 지후는 버크와 코엘 사이가 어색해진 것을 보고 왜 그런지를 물어봤다.
“아, 그거? 크크크. 들어 봐봐.”
정후가 설명을 다하고 나서 자리를 떠나자 생각에 빠져있던 지후는 한가지 의문을 표했다.
“근데 어느 쪽이 개고 어느 쪽이 원숭이라는 거지?”
멀찍이서 서 있으며 회관으로 들어오지 않던 지후가 중얼거린 이야기를 들은 빅터가 지후를 챙기며 대답해줬다.
“굳이 분란이 일어날 법한 질문은 당신의 마음속에만 담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견습 단원 지후.”
“넵.”
마을 회관으로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마을 회관 중심에 놓인 화로 앞에 있던 경비대장 자이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붉은 마녀’를 봤으면서도 보러 갈 생각인가?”
“보러 가겠다고 했으니 보러 가야죠.”
버크가 대답할 줄 알았는데 검은 머리의 인간 청년이 대답하자 자이온은 버크에게 자신이 들은 것이 맞냐고 눈짓으로 물어봤다.
“정후 군의 말이 맞네. 우린 생텀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고 스스로 그곳의 주인이라고 하는 드워프의 신 ‘레드’의 초대를 받았으니 가야 한다고 생각하네.”
“하아, 마녀가 드워프의 신이라고?”
마른 세수를 한 자이온이 분노와 의문으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하는 ‘레드’ 님이 우리의 아버지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붉은 마녀’와 같은 존재라는 말인겐가?”
“그렇네.”
진중해진 표정으로 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는 붉은 마녀든 드워프의 신 레드든 만나서 묻고 싶네. 어째서 우리의 아버지들을 죽여야 했는지. 그 답을 들어야겠어.”
“자네도 함께 가겠다는 건가?”
유지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선대 경비대를 이어받은 자이온과 경비대원들은 슬픔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자신들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쪽이 합류하여 생텀으로 가는 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모르겠어. 우리는 일단 싸우러 가는 게 아니거든. 그쪽이 합류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아.”
코엘이 우려를 표하며 크로니클 단원들만 가고 싶음을 넌지시 비췄다.
“엘프여, 그대와 우리 다크엘프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 이미 수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을 알고는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한 핏줄에서 흘러나온 존재일진대 어찌하여 그렇게 야박하게 거부하는 것인가? 하물며 우리에겐 아버지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이유를 들을 자격이 있는데!”
기어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비통함에 젖은 채로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자이온이 물었다.
“유족인 우리에겐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 유가족의 권리인 것이지. 그대들이 우리와 함께 가길 원하건 원하지 않는 것은 상관없다. 내가 질문한 것은 그대들과 함께 갈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질문일 뿐.”
“맞소”
다른 경비대원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회관 바닥에 꽂으며 동의의 의미를 담아 의지를 표현했다.
“그런 건가? 근데 나도 그냥 우려를 표현한 거야. 단장인 나는 우리 단원들이 다치지 않고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으니까. 딱히 다크엘프들이라는 이유로 그쪽을 거부하거나 유족의 의무를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는 없었어.”
어떤 감정도 없이 담담하게 코엘이 자이온의 말에 답하자 이야기를 들은 자이온도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곤 코엘의 말을 이해했다고 했다.
“자, 그럼. 여기 있는 경비대원들이랑 우리 크로니클 단원들은 다 가기로 한 것 같은데. 이제 갈 사람들은 출발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드마코가 손을 마주치며 분위기를 환기하며 출발의 의지를 표하자 모두 동의의 표현을 했다. 하지만 으쌰으쌰하는 분위기 속에서 드마코의 말에 스톱을 거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에 분위기는 다시 싸해졌다.
“아니오, 내 동생은 못 갑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