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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화 〉 172화­대결(2) (172/239)

〈 172화 〉 172화­대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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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결에서 잠파가 압도적으로 패하고 내려오자 충격을 받았던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가 싸해질까 걱정했던 정후, 지후 형제의 걱정과 다르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잠파를 놀려댔다.

“우리가 생각한 거랑 조금 다르네.”

“그러게.”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 버크가 둘의 의문스런 표정을 보고 크게 웃더니 다가와서 설명을 해줬다.

“뭐가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는 건가?”

“그게...형이 이 마을 사람들을 확 눌러버린 거잖아요. 실제로 이긴 순간엔 크게 놀라면서 조용해지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들을 적대적으로 보거나 분위기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거군. 하하하하.”

“왜 아닌 거죠?”

“그건 이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겨루기의 패배는 전투나 전쟁에서의 패배가 아니기 때문이지.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계기의 발견이기에 즐거워하며 축하를 해준다네. 부족한 부분을 알았으니 더 성장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야.”

“네?”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었다. 한국에서 자란 나나 동생의 경우, 누군가에게 진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수능 시험에서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매년 나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시험에서 혹은 대결에서 실패한다는 것은 기회의 박탈이고 기회의 박탈이란 인생을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실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이 아저씨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정후군, 죽지 않는 한 실패는 큰 의미가 없네. 그저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지. 이들에게 있어 실패란 그런 거야. 길거리에서 돌부리에 넘어진다고 한들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야.”

“말처럼 그게 쉽나요...저희 형제가 살아온 세상은 그렇지 않아요. 한번의 실패로 많은 걸 잃게 된다구요. 더구나 그 실패가 계속되면 인생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럴까? 난 자네들이 있는 세상도 별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아저씨는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난 대장장이로서 한때 실패했네. 그리고 도망쳤지. 그러나 내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어. 오히려 군인으로서는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실패했던 대장장이로서의 과거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지금엔 모두가 날 좋은 대장장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마스터는 능력이 있으니 그런 거 아닌가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어느 정도 운도 작용을 했겠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았으니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네. 오히려 도전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 있었으니 난 배울 기회를 얻은 것이지. 도전하지 않는 자에겐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분명 자네들 세상에서도 무언가로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 거야. 그게 무엇이든 간에. 시도하고 노력하는 한 새로운 문을 열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난 과거에서도 봤지만 정후를 만나고 나서도 많이 봤지.”

“맞습니다. 정후 씨를 만나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뀌었죠.”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섀넌이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정후의 옆에 서서 정후의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줬다.

“당장 우리가 만든 세븐시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봐요. 농부였던 이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도망쳐 와 세븐시티에선 기술자가 되기도 하고 대장장이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음식점 사장이 되기도 했죠. 동네의 골칫거리였던 사람이 경비대원의 일원이 되어 도시를 수호하고 있기도 하구요. 우리가 기회를 제공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섀넌의 찬사 아닌 찬사에 머쓱해져 있을 때 다음 대결을 위해 상대편에선 창술가 아왕이 올라오고 우리 쪽에선 드마코 형이 올라가 서로 인사를 나누자 다시 한번 경기장 주변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오, 이제 창술가들끼리 대결을 시작하는가 보구만.”

버크 아저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왕과 드마코가 격돌했다.

“형들에게서 창을 배울 때 이후로 이렇게 제대로 된 상대와 창으로 마주해보긴 참 오랜만이군.”

“나도 누군가와 이렇게 창으로 싸워보는 것은 아버지께 창을 배울 때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두 사람은 창으로 서로 치열하게 공방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아왕이 빠른 속도를 활용하여 찌르기를 통해 공격하고 있었고, 반대로 드마코는 묵직한 창술을 통해 아왕의 창두를 쳐내며 허와 실을 구분하여 방어하고 있었다.

찌르기를 반복하던 아왕은 이대로 가다간 상대방의 견고한 성벽같은 방어를 뚫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찔러서 안되면 쳐야지.’

찌르기를 반복하던 아왕의 창술이 순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심력을 활용하여 창으로 마치 해머를 날리려는 선수처럼 크게 원을 그리며 드마코의 창을 내려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수를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드마코의 창 또한 방금 전처럼 찌르는 방향을 읽고 창날로 단순하게 쳐내던 것이 아니라 창자루를 회전시키며 힘을 흘려 빗겨낸 것이었다.

정후는 이와 같은 드마코의 대응을 그동안 해온 드마코와의 대련을 통해 숱하게 겪어봤었다.

“란하고 나네”

“그게 뭐야?”

사극에서 나오는 창이란 그저 단체로 모여 찌르는 것이라든가 영화 ‘300’에서처럼 집단전으로 진을 짜고 방패로 막으며 방패 사이의 틈으로 찌르는 것 혹은 창을 날려 상대방을 낮추는 것만 봐왔던 지후에게 둘의 창술대결은 신기한 것이었다.

“나도 드마코 형한테 당하면서 창술에 대해 공부하다 알게 된 것인데. 란은 상대방의 창을 바깥쪽으로 돌려 밀어내는 것이고 나는 상대방의 창을 안쪽으로 돌려 누르는 것, 찰을 찌르는 것. 이렇게 세가지가 창을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근데 방금 전 아왕이란 남자가 보여준 건 그게 아니었잖아. 마치 해머를 던지는 선수처럼 창을 잡고서 이렇게 돌려서 찍어버리던데?”

“말 그대로 란나찰은 기본이야. 그렇게 힘으로 찍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드마코형은 회전을 통해 힘을 흘리면서 빗겨낸 거고.”

둘이 이처럼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공방은 점차 가속하기 시작했다. 서로 찌르기와 회수를 반복하면서 마치 펜싱선수처럼 일정거리를 유지하던 둘의 간격은 드마코의 돌진과 함께 무너졌다.

‘슬슬 새로운 걸 보여줘야겠군.’

기본적으로 창이란 일정 거리를 두고 싸우는 무기로서 근접무기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칼에 비해 공격을 하기도 방어를 하기도 애매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삼절창’이었다.

“그....그게 뭡니까?”

아왕은 갑작스럽게 드마코의 창자루가 또각또각 부러지는 것처럼 나눠짐과 동시에 단창(??) 세 개가 연결된 것처럼 바뀌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기하지? 방금 전에 이긴 저 친구에게 부탁해서 얻은 거라네.”

드마코가 턱으로 정후를 가리키면서 삼절창으로 아왕의 창을 감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왕은 크게 놀라 뒤로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마치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것처럼 드마코가 쫓아갔다. 몇 번이나 뒤로 거리를 두고 찌르기를 시전하려고 하는 아왕의 심리를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아왕이 창을 돌리는 순간에 맞춰 대응하여 계속 아왕의 창을 감고 놓아주지 않는 드마코의 끈질김에 아왕은 침음(??)을 내뱉었다.

‘어떻게 떼내지?’

“드디어 삼절창으로 싸우네.”

“형이 구해다 준 거라고?”

“어, 예전에 드마코 형이 텐트의 폴대를 보더니 자기도 그렇게 분할도 되고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는 창을 구해줄 수 있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특별히 의뢰를 하여 만들어서 가져다 줬지.”

“근데 좀 치사한 건 아닌가? 창잡이로서의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고 해놓고 저렇게 기이함으로 승부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드마코의 창의 변화를 본 아왕은 신묘하게 변화하는 드마코의 창을 보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창이 가지는 장점이자 단점인 거리감의 조절이 가능해진 창이라니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변화였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창이군요. 놀랍습니다.”

“그치?”

‘신기하군. 창인데 창이 아니고 창이 아닌데 창처럼 쓸 수 있다. 심지어 채찍처럼 상대방의 무기를 이렇게 감아서 전투력을 봉쇄할 수 있다니.’

아왕은 상대방이 가진 창의 변화에 놀라워하면서도 당장 어떻게 이 무기를 상대해야 할지를 떠올려야만 했다. 잠시 고민하다 창과는 다르게 분할되어 있으니만큼 창이 나눠진 부분이 취약할 거라고 생각한 아왕은 마나를 끌어올려 창을 강력하게 회전시키면서 회수하여 분절된 부위를 잘라내버리려고 했다.

‘어찌되었든 단창으로 만들어 버리면 장창(??)과 단창(??)의 대결이 되어버리는 셈이니까 말이지.’

“후읍”

상대방이 힘을 줘 뭔가를 할 거라고 생각한 드마코는 아왕이 창을 강력하게 회전시켜 자신의 삼절창을 잘라버리려고 하자 자신도 그에 맞춰 삼절창에 기운을 불어넣어 채찍처럼 휘돌려서 아왕의 창을 묶고 있던 걸 풀고 뒤로 빠져나왔다.

“좀 치는군 그래.”

“그쪽이야말로 신기한 무기를 들고 와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근데 말이지. 앞에 나온 우리 단원이 이긴 상황이라 내가 가르친 녀석이 이겼는데 정작 내가 지면 좀 쪽팔린 상황이라 난 이겨야 할 것 같네.”

“그렇게 따지면 이쪽도 이미 동료가 졌는데 저까지 지면 안될 것 같습니다만.”

“그런가?”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왕과 드마코는 서로 어떤 식으로 공격하고 방어를 하여 상대방으로부터 승리를 가져오면 좋을지 머릿속으로는 치열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보여줄 창술이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파악한 드마코와 다르게 아왕은 저 분할되는 창을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가닥이 서지 않았다.

“그쪽한테는 미안한데 말이야.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어. 이 창의 신묘한 점.”

“그게 무슨?”

드마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드마코는 처음의 형태로 되돌렸던 창을 회전시키며 아왕을 향해 찌르고 들어갔다.

‘찌르기?’

드마코가 했던 것처럼 회전을 통해 아왕이 드마코의 창을 밖으로 쳐내려고 했으나 드마코의 창은 방금 전에 세 개로 나눠졌을 때처럼 변화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아왕이 쳐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마코의 창이 아왕의 창을 휘감고 아왕의 목을 향해 끈이 달린 추처럼 창두가 날아오는 것이었다.

마나를 불어넣어 또 한번 빼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 수가 통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창은 끈끈한 나무줄기처럼 착 달라붙어 오히려 더 빠르게 감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아왕이 날아오는 창두를 피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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