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171화대결(1)
* * *
“왔냐?”
“드마코 형, 몸은 어때?”
“당장 싸워도 괜찮을 정도지.”
대결을 위해 워밍업을 마친 드마코 형의 몸은 살짝 땀이 나면서 열기가 느껴졌다.
“너무 신난 거 아니야?”
“신이 나지. 우리같은 창잡이들은 창잡이들끼리 대결할만한 기회가 많지 않다구. 너같은 검사(??)들은 절대 몰라.”
“그렇게 신이 날 정도라...”
“그 너희들 세상으로 따지면 덕후? 특정한 종류의 것을 좋아하는 덕후들끼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난다는 그런 기분하고 비슷한 거라면 이해가 될까?”
드마코 형의 설명을 듣고 나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형이 마무리로 스트레칭을 할 수 있게 보조를 해주면서 나도 워밍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누군가와 대결을 나누는 건 오랜만인 것 같네. 흐읍.”
“웃챠, 너도 좀 들뜨지?”
형이 씨익 웃으면서 쳐다보자 나도 이젠 검사가 다 되었는지 솔직하게 기분을 표현했다.
“검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이제는 검의 대화를 기다리게 될 줄이야.”
“하하하하, 너도 이제 이쪽 사람이 다 되었구나.”
내가 허리를 굽혀서 다리를 찢자 형이 뒤에서 눌러주며 처음에 검을 잡기 시작했을 때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검에 휘둘리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기억도 안나는 먼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캬아, 그때만 해도 정후가 마스터에 오를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지.”
“나도.”
둘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빅터가 나타나 워밍업에 동참했다.
“아니요, 전 정후가 언젠가 마스터에 오를 거라고 가르치면서 알았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잡담을 하며 워밍업을 마치고 난 우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기하고 있는 결전의 장에 도착했다.
“와...사람 엄청 많네.”
“형, 이 동네 마을 사람들은 다 튀어나온 듯?”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니까 그렇겠지. 잘 봐라. 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넌 좀 제대로 봐둘 필요가 있어.”
“글쎄올시다. 난 스승님과 마스터 버크의 결전이 더 기대되는데?”
지후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넌 봐도 두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를걸?”
“어허, 아무리 하수여도 얼추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누가 더 대단한지는 아는 법이야!”
“네, 브론즈 아니, 아이언 검사님. 대단하신 하수십니다.”
우리의 만담 아닌 만담을 지켜보며 우리 일행들이 웃고 있을 때 마을 촌장이 다가왔다.
“준비들은 다 되었는가?”
“예.”
“정정당당한 대결 부탁드리겠네.”
촌장은 대결을 하기에 앞서 서로 어떤 예로 시작을 하는지 간단한 규칙을 전해주고 돌아갔다.
촌장의 말을 끝으로 우리쪽에서 선봉과 2위를 맡은 나와 상대편에서 선봉을 맡은 잠파가 경기장 위에서 마주하고 섰다.
잠파는 일전의 대결에서의 사람들처럼 두 무릎을 꿇고 검을 양 손등에 올려놓은 뒤 바닥에 입을 맞춘 뒤 일어났다.
죽고 죽이는 전쟁이었다면 이런 식의 허례허식이 의미가 없었겠지만 대결이라는 수단을 통해 서로의 실력증진을 목표로 하는 경우였기에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기수식으로 시작했다.
‘이전에 보니까 이 남자 내가 예전에 그림우드에게 전수해준 리히테나워의 변형식을 썼었지?’
나는 속도를 통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략으로 나갈 계획을 세운 뒤 먼저 검으로 빠르게 찔러 들어갔다.
리히테나워의 특징은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선제공격을 가해서 선제권을 쟁취할 것을 강조하고, 상대가 공격해와도 막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베기에는 베기, 찌르기에는 찌르기로 서로 동시에 공격해서 충돌시켜 막아내는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겁주며 싸움의 주도권을 다시 뺏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이때 상대 칼과 근접한 상태가 만들어지는데 칼끝은 이미 뒤로 지나갔고, 칼날은 상대 칼에 걸려서 찌르기나 앞날 베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리히테나워와 다르게 다른 평범한 검술들은 이때 물러나거나 옆으로 빠지면서 다시 베기를 시도하거나 레슬링을 걸러서 제압하는데, 근접한 간격에서 리히테나워 검술은 검을 뒤집어 찌르거나 뒷날로 베는 기술을 사용한다. 즉, 상대의 칼을 타고 넘어서 베거나 찌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는 나를 못치는데 나는 상대를 칠 수 있게 되며, 이 기법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이 리히테나워 검술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리히테나워의 요결은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한 뒤 검을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주도권을 내가 쥠으로써 우위에 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먼저 치고 들어오기 전에 내가 치고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정후는 속도로 우위를 점할 생각인가보군.’
한편 빅터는 정후가 빠른 찌르기를 통해 상대방에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방식으로 싸울 것인지 대략적인 전략을 예측했다.
“하압!”
하지만 잠파 역시 정후라는 남자가 검을 다루니만큼 자신보다 가벼운 무기의 이점을 활용하여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찔러 들어오는 곳에 맞춰 자신의 양손검을 움직였다.
한번 가볍게 잽을 날리듯 찔러본 검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반격하며 검을 맞대오는 잠파의 한 수에 정후는 베기를 중간에 섞은 뒤 스텝을 밟아가며 뒤로 빠졌다가 우측으로 돌아가며 회수한 검을 재차 찔러들어갔다.
“후읍”
호흡을 순간적으로 내쉬면서 잠파는 정후의 스텝을 보며 어느 쪽으로 치고 들어올지를 예상해서 막아냄과 동시에 뒷날을 움직이며 공격을 통해 방어를 하며 재반격을 하는 고급스러운 기술을 선보였다.
“와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공수(??)를 주고받는 둘의 수준 높은 대결을 본 마을 사람들도 환호성을 내질렀다.
“잠파 녀석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정후라는 남자도 꽤나 하는군.”
“아왕, 저 남자의 검 어쩐지 익숙하지 않아?”
정후라는 남자의 검에서 라모는 익숙함을 느꼈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창술을 쓰긴 하지만 그저 대결하는 것 자체에 신나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아왕과는 다르게 라모는 특히나 찌르기라는 방식을 통해 잠파의 양손검술에 대응해가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잠파와 비무(??)를 나눌 때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같은 느낌을 정후와 검을 주고받는 잠파도 느꼈다.
‘이 남자 라모랑 비슷한 방식으로 검을 쓰는군. 근데 찌르기에서 베기로 넘어가는 그 전환점이 훨씬 매끄럽다. 라모는 오히려 내 검을 어떻게 상대할지 굉장히 힘들어하는 편이었는데...흐음.’
분명 자신의 검술을 저번에 마을 대결 과정에서 보긴 했겠지만 한번 보고도 이렇게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나 싶어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대결 중인 과정에서 어떻게 대응을 그렇게 했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저 재차 찌르고 들어오는 검에 맞대며 바인딩(binding)의 방법을 활용하여 자신 쪽으로 흐름을 가져오려고 했다.
‘흠, 검을 맞대게 해줄 순 없지.’
의외로 다른 검술과 다르게 근접전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리히테나워 류 검술이 기피하는 상태는 다름이 아닌 거리를 두는 상태인데 그걸 알고 있는 내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가깝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치고 빠지며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권을 유지하는 정후의 검술을 상대하는 잠파는 이 남자가 구사하는 검술이 라모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발전하면 보일 수 있는 검술이라고 생각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지겠는데.’
검을 맞대줘야 검을 걸고 넘기든 뒷날을 사용해서 공격을 해보든 뭔가 수가 나오겠는데 이 남자는 자신과 검을 맞대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검을 맞대려고 하는 듯하면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힘을 뺀 뒤 자신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틈을 노려 찔러 들어오기까지 하니 잠파는 이 남자를 어찌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잠파의 기세가 죽은 것을 느낀 브라이스와 자이온은 잠파가 정후라는 남자를 이길 수 없음을 인지했다.
“잠파가 오늘 크게 배우는군.”
한편 라모는 정후라는 남자의 검술이 자신의 검이 나아갈 이상적인 방향임을 느꼈다.
‘내가 저대로만 할 수 있으면 잠파는 앞으로 절대 날 이길 수 없겠어.’
주도권을 다시 되찾기 위해 잠파가 부지런히 검을 휘둘러봤지만 자신의 검에 맞대어 주지 않는 상대방의 검이 얄밉기까지 했다.
‘치...치사하군.’
약이 바짝 올라 자신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음을 모르는 잠파의 상태를 읽고 있는 정후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끌면 상대방이 모욕받는 것 같을 수도 있겠는데.’
이제까지보다 기어를 한단계 더 올려 속도를 높인 찌르기로 마무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내 나름의 보법을 밟아 치고 들어갔다.
‘초승달 밟기’
언뜻 언뜻 비치는 초승달처럼 예리한 각으로 치고 들어가자 호흡이 흐트러진 잠파는 상대방이 순간 빨라지며 자신의 목을 치고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막아낼 수조차 없었다.
‘허억’
자신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춘 정후라는 남자의 검을 본 잠파는 여태까지 움직이던 양손검을 아래로 내리며 외칠 수밖에 없었다.
“졌습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잠파가 지다니!”
마을 사람들은 비록 경비대원 중에서 가장 강하다곤 말할 수 없어도 마을에서 강한 5인 중 한명인 잠파가 분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아무런 이득을 챙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졌음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저 남자 보기완 다르게 대단하군.”
시종일관 잠파가 갈 검의 방향을 정확히 읽으며 빠른 발놀림을 통해 잠파를 압도한 정후의 실력을 본 경비대의 4인은 오늘의 대결이 절대 쉽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잠파가 저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질 줄은 몰랐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최소 저 남자랑 비슷하거나 더 강하다는 건가?”
“모르지, 우리들의 기세를 꺾기 위해 저들 중 수위에 꼽히는 자가 먼저 나온 것인지는.”
브라이스와 자이온은 아왕과 라모의 대화를 들은 뒤 한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는 알겠어. 저 남자라는 벽을 넘은 잠파는 더욱 강해질 거야.”
“아무렴, 잠파가 지금까지 성장해온 과정대로라면 분명!”
경비대장과 부대장의 말을 듣지 못했으나 자신의 패배선언을 들은 뒤 자신의 검을 검집에 갈무리하는 정후를 지켜보면서 잠파는 대장이나 부대장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벽을 느꼈다.
그렇게 뒤돌아서서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정후를 지켜보며 멍하니 서 있는 잠파에게 라모가 다가와 어깨를 툭치며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멍한 표정이야. 처음 진 것도 아니면서”
“너도 꼭 저 사람한테 저 검으로 당했으면 좋겠다.”
“뭐, 인마?”
자신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장난을 치려고 라모가 온 것임을 알고 잠파는 서둘러 마음을 추스린 뒤 말했다.
“꼭 엄마가 자기 딸내미한테 넌 꼭 너 닮은 딸 낳으라고 하는 것같은 말은 그런 진지한 표정으로 멀하지마!”
“크크큭.”
잠파에게서 웃음소리를 들은 라모는 잠파가 크게 좌절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