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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화 〉 170화­악몽 (170/239)

〈 170화 〉 170화­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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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악몽

“흐음, 여긴 어디지?”

정신을 차리고 본 주변은 전쟁이라도 난 것인지 폐허같았다. 몸을 일으켜는데 왠지 몸이 평소와 다르게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일어나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를 외쳐봤지만 목소리가 부딪혀서 반향(反?)을 일으킬만한 장애물이 없어서인지 메아리처럼 소리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퍼져 나가 허공에 먹혀 버린다.

“아무도 없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간거야? 보아하니 이렇게 된 지 꽤나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화재가 발생한 것도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탄 흔적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로 보였고 길거리 여기저기에 가득했다. 공기는 먼지같은 것이 잔뜩 끼어 있어서 황사와 미세먼지가 섞여서 외출주의보가 뜬 서울의 길거리처럼 뿌연 느낌으로 숨쉬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많은 것이 부서진 잔해들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줄만한 표지판같은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가다보니 체력만 낭비되는 것 같아 더이상 걸어가길 멈추고 앉을만한 공간을 찾았다.

“헉헉....슬슬 목도 마른데...흠, 물이나 꺼내서 마실까? 어디보자...”

습관처럼 아공간에서 생수병을 꺼내려고 능력을 발동시키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능력이 발동하지 않았다.

“어어?”

뭔가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흐음, 집중을 안해서 그런 건가? 다시!”

이번엔 초창기 때처럼 심혈을 기울여 능력을 발동하려고 집중했는데도 아공간은 열리지 않았다.

“뭐야! 왜 이래?”

당황스러워졌다. 먼지바람이 이리저리 날리는 여기에서 아공간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빠른 시간 안에 물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생존의 위협으로 느껴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몇 번이나 능력을 발동해보려고 노력해봤지만 허사였다. 아공간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패닉이 올 것 같아 이번엔 다리에 힘을 주고 뛰어올라 주변을 살펴보고 판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마음과 다르게 내 몸은 중력을 거부하지 못하고 살짝 뛰어오르다 주저앉아버렸다.

“몸은 또...”

이곳에서 정신을 차린 뒤 뒤늦게 내 몸을 보자 수십년을 단련해온 내 육체는 어디로 가버리고 배는 축 늘어져 있는 아저씨 몸이 되어 있었다.

“뭐지? 내 몸이 아닌 건가?”

다른 사람의 육체에 들어온 것만 같은 불편한 감각이 뒤늦게 인지되고 난 나는 내 몸을 이리저리 만져봤지만 손이라든가 얼굴은 분명 이전보다 살이 올라 있지만 내 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거울이 없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 혼자 외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도 무서웠지만 능력과 그동안 쌓아올린 힘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 또한 굉장히 공포스럽게 느겨졌다.

“꿈일 거야...”

패닉상태에 가까워진 나는 최대한 힘을 줘서 팔을 움직여 뺨을 세게 후려쳤다. 그 순간 눈이 번쩍함과 동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헉헉헉.....”

정신을 차리고 난 나는 방금 전까지 외딴 곳에 동 떨어져 폐허를 걷다 지쳐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푹신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정후 씨, 왜 그래요?”

“섀넌?”

내 옆에선 식은 땀을 줄줄 흘리는 나를 섀넌이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꿈이었구나....꿈이었어...다행이다.”

“악몽이라도 꿨어요?”

“아니...그게...”

섀넌은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둔 물컵을 뒤집은 뒤 물을 따라주며 일단 한잔 마시고 진정하라고 했다.

“정후 씨 정도 수준에 오를 정도면 어지간히 컨디션이 나쁘지 않으면 악몽같은 건 안 꾸는데...”

“그러게요. 굉장히 오랜만인데...”

“어떤 악몽이었는데요?”

내가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느꼈던 꿈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자 섀넌은 그냥 개꿈 아니냐고 했지만 엘리스가 자신의 형태를 드러내면서 이상하다고 하며 말을 꺼냈다.

<아저씨, 좀="" 더="" 자세히="" 주변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설명해주겠어?=""/>

“왜?”

<아저씨가 말하는="" 풍경이="" 내가="" 아는="" 어딘가랑="" 매우="" 닮아="" 있는="" 것="" 같아서...=""/>

좀 더 자세히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봤지만 대부분의 기억은 사라져버리고 어설픈 이미지만이 남아 있었다.

“이젠 잘 기억이 안나는데?”

<혹시 아저씨가="" 말한="" 것하고="" 비슷한="" 이미지의="" 공간을="" 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어?=""/>

“영화나 만화같은 곳에서 봤을 수도 있는데...왜 그래 무섭게. 섀넌 말처럼 그냥 개꿈 아니야?”

<아저씨 정도="" 수준에="" 오르면="" 악몽은="" 그저="" 악몽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섀넌도 엘리스의 말을 듣더니 그건 맞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마스터의 수준에 오른 사람이 꾸는 악몽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그래요?”

<꿈이라는 게="" 기억에="" 남아="" 있는="" 이미지들="" 혹은="" 기억들의="" 재조합을="" 통해서도="" 그려지기도="" 하지만="" 아저씨처럼=""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사람들은="" 악몽을="" 꿀="" 가능성이="" 매우="" 낮아.="" 무엇보다="" 무의식의="" 영역이="" 세상의="" 근원에="" 접촉하면서="" 그="" 잔상이="" 남아서="" 꿈으로="" 재현되는="" 경우도="" 있거든.=""/>

“데쟈뷔같은 거 말하는 거 아니야?”

<데쟈뷔?/>

엘리스는 공중에 뜬 상태로 손을 턱에 괴고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그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했다.

<데쟈뷔는 경험한="" 적="" 없는="" 것들에="" 대해서=""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거라="" 아저씨가="" 꿨다는="" 악몽과는="" 조금="" 달라.="" 그리고="" 미래에서="" 발견된="" 데쟈뷔는="" 알고="" 있는="" 기시감(??)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

“기시감이 아니라면 뭔데?”

<다중우주라는 건="" 알지?=""/>

마X의 영화들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멀티 유니버스에 대해선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요소인지라 알고 있다고 했다.

<다중우주에는 각각의="" 다른="" 판단을="" 한="" 개인들이="" 존재하고="" 있을="" 때="" 세상의="" 근원에는="" 다중우주에="" 동일하게="" 존재하는="" 참된="" 모든="" 자신의="" 유일한="" 자아="" ‘이데아’가="" 존재해.="" 아저씨가="" 꿈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들은="" 사실="" ‘이데아’를="" 시간,="" 공간에="" 존재하던="" 내가="" 기억하는="" 것을="" 전달받는="" 경우일="" 때가="" 있어.="" 각="" 동일한="" 존재들이="" 자신이="" 경험한="" 기억들을="" 업로드하고="" 다운로드받으면서="" 공유하는데="" 다중우주="" 속에="" 속한="" 이곳의="" ‘아저씨’에겐=""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한번에="" 전달되기="" 때문에=""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이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통상적으론="" 잔상만="" 남는="" 거지.="" 그게="" 처음="" 가는="" 것="" 같은="" 갔을="" 왠지="" 와본="" 같다고="" 느껴지거나=""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할지="" 봤던=""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야.=""/>

“데쟈뷔가 다중우주를 설명하는 거라고?”

<맞아./>

엘리스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억들의 재조합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나’가 경험한 기억들을 공유한 흔적이라고 했다.

<뭐, 아저씨="" 수준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대부분의="" 기억들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꿈이="" 기억의="" 재현="" 혹은="" 재조립이라는="" 설명이="" 틀린="" 건="" 아니야.="" 근데...=""/>

“근데?”

<아저씨처럼 경지에="" 올라서="" 정신을="" 비롯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게="" 된="" 경우엔="" 일종의="" 정신장벽이="" 생겨서="" 불필요한="" 정보들은="" 걸러내고="" 좀="" 더="" 핵심적인="" 소스들만="" 남길="" 있게="" 돼.=""/>

겨우 악몽 하나 꿨을 뿐인데 되도 않는 설명에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게 된 나는 엘리스에게 짧은 설명을 요구했다.

“좀, 간단하게 설명은 안되냐?”

<이제 다="" 왔어.="" 핵심소스라는="" 건="" 다른="" 다중공간에="" 있던="" 자신이="" 경험한="" ‘위험="" 정보’들을="" 전달받는="" 걸="" 말해.="" 그러니까="" 아저씨가="" 꾼="" 악몽은="" 공간에="" 또="" 위험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경고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작업인="" 거지.=""/>

“예지몽?”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긴="" 한데="" 100%="" 실현되는="" 건=""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엔="" 해당="" 기억을="" 공유한="" 다중우주와="" 똑같이="" 인과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악몽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지.="" 위험정보를="" 전달받는="" 문제는="" 똑같은="" 실현이="" 되더라도="" 중간과정이="" 생략되고="" 결론만="" 전달된다는="" 거고.=""/>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꾸는 악몽은 시간이 흘러서 현실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섀넌이 엘리스의 설명을 모두 듣고나자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어서 걱정하고 있었다.

“에이, 그냥 오랜만에 악몽 한번 꿈꾼 걸 가지고 다들 너무 심각한 것 같은데?”

“그래도...”

“엘리스,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마스터가 악몽을 꾼다는 게 꼭 예지몽이야?”

내 질문의 의도가 뭔지 알아챈 엘리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마스터가 꾸는="" 악몽이="" 예지몽일="" 수도="" 있는데="" 꼭="" 예지몽은="" 아니야.="" 컨디션="" 조절이="" 잘="" 안되었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있는="" 경우엔="" 정신장벽이="" 무너져기도="" 하니까.=""/>

“들었죠? 요즘 좀 피곤했잖아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도 있었고, 지후 일로 정신도 사나웠고.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집에 돌아간 지도 꽤나 긴 시간이 흘렀고 말이죠.”

“그러니까 피곤했다는 거죠?”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나봐요.”

섀넌이 어느 정도 안심하는 기색으로 걱정하는 눈빛이 가시자 나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만 지금같은 상황이 해결된 것 같아 악몽을 꿨던 기억은 기억 저편으로 벌써 날려버리고 한숨 더 잘까 했다. 하지만 한번 깬 잠을 다시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섀넌이 넌지시 한마디를 꺼내자 엘리스는 눈치를 보더니 사라져 버렸다.

“근데 뭐가 그렇게 피곤했을까요? 분명 어제 기분 좋게 잠든 분이?”

<하하하...궁금한 건="" 모두="" 해결된="" 것="" 같네.="" 난="" 이만.=""/>

“엘리스, 엘리스? 어디가?”

사라진 엘리스가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두 사람만이 있는 침대엔 적막함이 가득했다.

“마사지를 해주니까 간만에 좋은 기회도 놓치고서 편하게 잠든 분께서. 피로가 남아 있었군요?”

“앗?”

사실 어젯밤 지후와의 건으로 내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는지 섀넌은 엘프들이 피로를 풀 때 하는 마사지를 해주겠다면서 나보고 침대 위에 엎드리라고 했고 나는 자세를 잡고 엎드렸는데 어느 순간 노곤노곤해져서 긴장이 풀려 잠들었던 것이었다.

“미안해요.”

“간만에 분위기 좀 잡아 보려고 했는데...”

섀넌이 한 혼잣말을 들은 난 고개를 번쩍 들면서 섀넌을 바라보며 물어봤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우리끼리 따로 트레일러에서 자게 되어서 좀 기대를 했는데 정후 씨는 금방 잠들어 버리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말은? 흐흐”

섀넌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난 섀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섀넌은 내 손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창가를 쳐다봤다.

“창가는 왜?”

“왜긴요.”

엘리스와의 대화가 길었는지 어느새 햇살이 창밖을 비추는 아침이 되어 있었고 산골마을 특성상 일찍 일어나는 분위기 때문인지 바깥에선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서로 주고 받는 대화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날이...밝았어?”

“오늘 시합하기로 했잖아요. 이따가 시합하려면 씻고서 아침도 챙겨 먹고 몸도 풀어야죠.”

“그래도, 난 괜찮은데...”

내가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다 섀넌이 있던 자리를 돌아봤을 땐 섀넌은 이미 침대에서 빠져나가 씻어야겠다면서 침대칸의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운도 드럽게 없지. 잠도 설쳐. 좋은 기회도 날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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