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169화지하도시 생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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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클의 단원들을 모아놓고 생텀에 가기로 결정하기 전 엘리스와 상의를 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역시 말해야겠지?”
<그럼요. 레드가="" 우리의="" 말을="" 듣고="" 원래="" 계획한="" 것을="" 바꿀="" 수도="" 있어서="" 누구도="" 다치지="" 않을="" 있긴="" 하지만="" 반대로="" 누구라도="" 다칠="" 있는="" 거니까요.="" 사실대로="" 말하고서="" 선택의="" 기회를="" 줘야죠.=""/>
엘리스의 말이 맞기에 나는 크로니클의 단원들을 모아놓고 사실대로 털어 놨다.
“...해서 저랑 엘리스는 생텀에 꼭 가야 될 것 같아요.”
지후를 비롯해서 버크 아저씨, 코엘 누나, 빅터 교관, 드마코 형 그리고 섀넌은 이야기를 듣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정후 군, 자네 말 대로면 자네는 우리가 가든 안 가든 가겠다는 거군.”
“네, 처음엔 반대하던 사람이 의견을 뒤집어서 가야겠다고 이야기하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난 갈래.”
“드마코, 진지하게 생각해. 이 마을 사람들을 통해 접한 정보에 따르면 ‘죽지 않은 붉은 마녀’는 꽤나 위험한 존재인 것 같으니까.”
“빅터, 넌 그래서 안 갈거야? 난 위험할수록 심장이 뜨거워지는 남자잖아.”
“피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는 건 다 나았나?”
“정후 말대로 그렇게 오래 산 존재라면 이미 피같은 건 진작에 다 썩어서 사라졌지 않겠어?”
“위험하다고 도망칠 거라면 칼을 잡지도 않았어.”
두 사람이 그렇게 참가를 결정하고 나자 버크와 코엘도 자연스럽게 합류 의사를 밝혔다.
“단원들이 가는 곳에 단장이 가지 않을 수 없지. 약해빠진 너희들만 보내선 안심이 안되네.”
“오랜만에 코엘이 맞는 소릴 했군. 이곳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빼놓고 어떻게 그대들만 보낼 수 있겠나?”
“뭐? 가장 강한 사람은 날 말하는 거겠지, 꺽다리 드워프?”
“당연히 이 몸이지. 저번에 나한테 패배한 건 누구였더라.”
“이익, 오늘 한판 할까?”
“굳이 붙어 봐야 알 일도 아닌 것을. 마지막에 이긴 건 나야.”
“나와! 따라 나오라고! 이거 이거 그동안 칼 맛을 못 보더니 노망이 났나본데.”
“자기 이야긴가?”
버크 아저씨는 귀를 후비적 거리고선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노발대발하는 코엘을 빅터와 드마코가 말리고 나자 정후의 시선은 지후와 섀넌에게 향했다.
“음, 두 사람만큼은 안 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저번에 당신만 보내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갈 수 없던 그때랑 다르게 이번엔 함께 갈 수 있잖아요. 모두 근거리에서 싸울 사람들만 있으면 원거리에선 누가 지원하죠?”
섀넌의 굳은 눈빛과 쥐어진 주먹에서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잘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면서요. 인류의 발원지라고 하는 ‘생텀’을 최초로 발견하는 모험가 집단 ‘크로니클’에 제 이름이 빠지게 둘 순 없어요.”
“대신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는 조건이에요.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요.”
“정후도요.”
두 사람이 그렇게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자 이를 지켜보던 엘리스와 지후는 한 마음이 되어 말했다.
“아주 영화를 찍네. 찍어.”
<아주 영화를="" 찍네.="" 찍어.=""/>
지후는 그동안 음성으로만 접하던 엘리스의 정령체 형태를 접하고 많이 어색해졌다. 그동안은 자신이 존댓말로 대화를 나눴으나 엘리스는 사실상 형의 숨겨진(?) 딸이나 마찬가지였고, 삼촌이 조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음, 뭐라고 불러야...”
지후가 뒷말을 흐리면서 엘리스에게 물어보자 엘리스는 자신을 조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난 지후="" 삼촌이라고="" 할게.=""/>
갑작스럽게 다 큰 조카가 생긴 지후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아빠처럼 생각하는="" 정후="" 아저씨="" 동생이면="" 나랑은="" 가족인데="" 서로="" 존댓말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나이는="" 내가="" 더="" 많으니까="" 많이="" 양보한="" 거야.=""/>
“그래, 그럼 그렇게 할까? 엘리스 조카님?”
<발음이 이상하니까.="" 님은="" 빼자.="" 그냥="" 조카라고="" 불러줘.=""/>
“알았어. 조카.”
<삼촌도 갈="" 거야?=""/>
“가고야 싶지. 근데 이전에도 못 따라 오게 했는데 이젠 형이 허락할 리가 없어.”
<그건 맞아.="" 삼촌은="" 확실히="" 예전의="" 나보다="" 많이="" 약하니까.=""/>
“팩트긴 하지만 뼈가 많이 아프네. 어디 부러진 거 아닌가.”
지후가 능청을 떨자 어색한 분위기는 급속도로 사라지고 이후 서로가 정후의 과거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궁금한 것을 교환하는 정보 교환의 장이 펼쳐졌다.
“그러니까 그때 형이 얼마나 열이 받았냐면 아침부터 하교할 때까지 자신을 건드린 학교 일진을 상대로 쉬는 시간마다 줘 팼어. 형한테 그때 붙은 별명 중 하나가 ‘불타는 해머링’이었나? 그랬을 거야.”
<아저씨가 그랬다고?=""/>
“형은 선 넘는 거 엄청 싫어하거든.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보다 온화한대 일정 선을 넘기면 가차 없어. 그때도 원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하면서 카운트를 세길래 형 친구들은 처음에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고 하더라고. 아무리 그만하라고 해도 그 사람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쓰리 스트라이크라고 카운트함과 동시에 주먹을 뻗었는데 그냥 덩치만 큰 순둥이인줄 알았던 일진은 그 날 이후로 감히 형이랑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고 들었어. 오죽하면 그 일진이 교실에서 공차고 놀다가 공이 형 몸에 살짝 부딪치고 지나갔는데 자신이 찬 공에 스친 사람이 형이란 걸 알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했을 정도였다니까 말 다했지.”
<못 믿겠는데.="" 지금도="" 어지간하면="" 누구랑="" 싸우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그랬다니.=""/>
“나도 그때 그걸 못 본 건 마찬가지이긴 한데. 형 친구들은 형이 카운트를 중얼거리면 심하게 장난치다가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멈추는 거 보면 아마 맞을 거야. 뭐, 실제로 나도 비슷한 경험이 없는 건 아니고.”
<삼촌도 아저씨한테="" 많이="" 맞고="" 그랬나봐?=""/>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뭔 이야기를 그렇게 속닥거리면서 하냐.”
“히익”
화들짝 놀라는 지후의 옆에서 엘리스는 입모양으로 ‘방금 건 비밀로 해줄게, 삼촌’이라고 하고선 지후도 따라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건 안 된다고 했을텐데, 이지후?”
“아니, 누가 간다고 했어. 그냥 가 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다. 생각만. 뭐 생각도 못하게 해.”
동생의 반응에 자신이 너무 쥐잡듯이 잡았나 싶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함께 갔다가 동생이 크게 다치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기에 이 부분에선 타협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넌 지구로 넘어가 있어. 여기다 두고 가는 것도 이상하고, 오랜만에 어머니랑 아버지도 뵈야겠다.”
“난 헤어진지도 그렇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씁.”
“아! 알았어. 갈게. 간다고. 가면 될 거 아니야.”
섀넌과 엘리스는 형제의 우애(?) 넘치는 광경을 지켜보곤 서로 눈을 마주친 뒤 웃었다.
생텀 행 참가 인원이 그렇게 결정되는가 싶었지만 떠나려고 준비를 시작하는 크로니클 단원들을 본 마을 사람들과 촌장으로 인해 출발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도 가겠어.”
“네?”
자신들고 가겠다고 합류 의사를 밝힌 5명의 경비대원은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자신들을 떼놓고 갈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언젠가 올 복수의 그 날을 위해 지금까지 검술을 닦아 왔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는군.”
“이번엔 버크가 날 버리고 가게 만들지 않을 거에요.”
“애정표현은 많지 않으셨지만 아들인 나에게만큼은 자상하던 아버지셨다. 아버지의 복수를 할 기회를 막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우리들이 마을에 들어올 때 안내해준 브라이스, 잠파, 아왕, 자이온, 라모의 합류 의사에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요.”
“내가 할 소리인 것 같군.”
경비대장 자이온은 그렇다면 나와 검을 겨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원래대로면 마을의 손님들로 온 우리들도 전사들과 검을 나누기로 했는데 이런 저런 사건들로 미뤄진 것이기도 하고 자신보다 약한 자의 말은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이 자이온을 비롯한 4명의 경비대의 주장이기도 했다.
“이야기가 왜 거기로...”
“흠, 듣고 보니 자이온 말이 맞군.”
“아저씨까지?”
“서로 검을 나눠보고 같이 갈 만한 자질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가는 거고 없다 싶으면 내가 허락하지 않겠네.”
“역시 버크는 말이 통하네.”
“버크 님의 말대로 하겠어요. 정당하게 대결하고 버크 님이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더 이상 같이 가겠다고 하지 않겠어요.”
“뭐, 버크라면 심판으론 충분한 사람이지.”
“공정한 판정을 위해 우리 쪽에선 촌장님이 심판으로 나서는 걸로 하지. 해줄 거죠, 촌장님?”
“못 가게 말린다고 가지 않을 사람들도 아니지 않나? 심판으로서 칼같이 판정을 내릴 걸세.”
“하하하하하, 좋아. 좋아. 그럼, 이제 된 건가? 크로니클 단원들과 붙고 싶어서 근질근질 했는데 이렇게 자리가 마련되는군.”
양측의 합의(?)로 인해 자연스럽게 우리 크로니클 단원들 중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를 제외한 나머지 4인과 마을 경비대 5인의 대결이 성사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근데 우리가 한명이 부족하네.”
지후는 자신이 대련에 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힘이 부족하기에 형을 따라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분했지만 이제 검을 잡은 지 얼마 안된 자신이 나설 분위기가 아니었다.
“코엘, 니가 끼라구.”
“어허, 어디 감히 단장님 보고 부단장 주제에 참가 하라 마라야. 나같은 분이 끼면 급이 맞아? 낄 거면 니가 끼어야지.”
“나는 심판이잖은가. 심판이 참가를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또 다시 투닥거리는 둘을 지켜보던 빅터는 정후, 드마코, 그리고 섀넌을 모아놓고 각자 원하는 상대를 골라보라고 했다.
“우리가 한명 적은 대신 대진표를 짤 수 있는 권한은 우리에게 있으니까 각자 원하는 상대를 말해보세요.”
“저쪽 창잡이랑은 창잡이인 내가 창의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지.”
“버크 부단장님 옆에 있는 라모 님과는 같은 여자인 제가 붙어 보겠습니다.”
“정후 단원은 누구랑 붙어보고 싶습니까?”
“마음 같아선 저쪽 대장이랑 한번 붙어보고 싶긴 한데, 대장은 빅터 교관에게 양보하는 걸로 하죠. 대신 자이온과 비등비등한 브라이스와 한판 해보고 싶네요.”
“그렇습니까?”
자이온과 붙기로 결정을 한 빅터는 정후의 검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최대치를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이온을 양보하는 대신 잠파와 브라이스를 정후에게 맡겼다.
“그래도 되나요?”
“대장을 양보해 줬는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이곳에 온 뒤로 근질근질하긴 했는데 고마워요.”
그렇게 대진표가 결정되고 나서 빅터가 촌장과 버크 그리고 코엘에게 누가 누구와 붙을 것인지를 이야기해주며 생텀으로의 갈 수 있는 인원을 결정지을 4:5 대결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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