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164화지하도시 생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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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된 단원들은 각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생텀을 가는 것에 대해 빅터 교관과 드마코 형 그리고 섀넌은 반대 의견을, 버크 아저씨와 코엘 누나는 찬성을 내놓았다.
“난 찬성이야 형.”
“기각. 넌 정식 단원이 아니라 아직 의결권이 없다고 보는데.”
“정후야, 임시 단원도 단원이야. 니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최소한 자신의 의사진행은 할 수 있게 해줘야지.”
“드마코, 지후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선 난 반대야. 아직 지후를 정식단원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물어본 적도 없었어. 당연히 에디나나 요크의 동의도 없었고. 임시가 왜 임시인데. 지후에겐 단원들의 동의가 있기 전엔 의결권을 줄 수 없다고 봐.”
“흠, 이건 코엘 말이 맞아. 지후 군은 임시 단원이지 정식 단원이 아닐세. 만약 나머지 두 단원이 반대하면 임시 딱지는 사라지고 지후 군은 크로니클과는 그저 ‘지인’으로 남을 걸세.”
“헹? 영감. 본인이 말하면서도 좀 아니지 않아? 에디나나 요크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창쟁이, 지금 뭐하자는 거야. 생텀은 가는 것에 반대하면서 왜 자꾸 지후한테 ‘표’를 주지 못해서 안달인데?”
“만약 우리가 생텀에 가게 되면 지후는 놓고 갈거야?”
드마코 형의 말은 근본적인 부분을 되짚게 만들었다.
“설마 우리가 가더라도 지후는 데려갈 수 없어. 형. 너무 위험하다잖아. 난 동생을 그런 위험한 곳에 데려갈 수 없다고.”
“뭐야? 나, 여기서 버려? 형, 니 동생 버려?”
“드립칠 때 아니니까 다물고 있어.”
낄 데 안 낄데 모르고 나서는 동생을 으르렁거리면서 입을 다물게 하자 뒤에서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리가 살짝 들려왔지만 모른 척하고 단원들을 둘러 봤다.
“지후의 보호자로서 확실하게 말하죠. 생텀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그렇게 위험한 곳이 되었다면 내 동생은 안 데려갑니다. 다시 말합니다. 안 데려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타협할 수 없어요.”
“이럴 거면 이 추운 산맥에 뭐하러 힘들게 데려왔어. 위험하다고 빼놓을 거면 아예 데려오지나 말지.”
정후의 단언에 지후가 살짝 용기를 내서 반항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정후의 정색에 지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지후, 한 번만 더 해. 지금 투 스트라이크야. 안 그래도 내 입장에선 부모님을 봬야 할 때가 한참 지났는데 당장 데려다 놓고 다신 데려오지 않도록 고민하게 만들지 마.”
자신의 형이 진심인 것을 안 지후는 형의 진지한 표정에 방금 전까지 하던 투덜거림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야, 동생을 쥐 잡듯이 잡냐 잡길. 말도 못해? 그리고 이지후! 넌 인마. 사내놈이 다 컸으면서 형이 살짝 윽박지른 걸 가지고 바싹 쫄아 가지고.”
드마코가 지후를 위해 편을 들어줬는데도 정작 본인이 포기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자 드마코가 오히려 머뭇거리는 지후를 북돋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본인도 가지 않기로 했으니 지후가 임시 단원이든 정식 단원이든 생텀에 가는 것에 대해선 표를 줄지 말지 여러분들이 서로 의견대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말을 마친 정후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길 강력하게 원하면서 숙소의 문을 열고 나가자 코엘이 섀넌에게 눈치를 줬다.
“따라가 봐.”
섀넌이 정후의 것과 자신의 겉옷을 챙겨 따라 나가고 나서 드마코는 방으로 들어간 지후를 따라가 물어봤다.
“넌, 니 형이 그렇게 무섭냐?”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형이 반대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죠. 아마도...”
꽤나 의기소침해진 것처럼 축 가라앉은 지후의 등을 크게 두드린 드마코는 성인이 되었으면 자신의 의견은 확실하게 하라고 했지만 지후는 고개를 저으며 됐다고 했다.
“형의 입에서 지후가 아니라 이지후라는 이름 세글자 전부가 나온 것은 형이 엄청 진심 상태라는 거고 투 스트라이크라는 건 형이 주는 마지막 기회에요. 형 지론 중 하나가 “사람인 이상 한, 두 번은 실수이지만 세 번부터는 습관이다.” 였거든요. 한번은 형 친구 중에서 어떤 형이 해선 안될 말을 내뱉었는데 형이 아무리 화가 나도 할 소리가 아니라면서 주워담을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형 친구였던 사람이 거부한 뒤 싸움으로 이어진 적 있는데 그날 형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하루 종일 쫓아가서 싸운 뒤로 형을 아는 사람 중에서 형에게 함부로 싸움을 거는 사람은 없었어요. 어떻게 싸웠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형도 꽤나 다쳐서 왔지만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정후도 다쳤으면 뭐 싸워볼만 한 거 아닌가?”
“형에게 나중에 싸워서 상대방을 이길거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10대 때 물어보니까 형이 그랬어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과 엮이는 것만으로도 지리게 만들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싸워선 안된다고. 그리고 형은 그 말을 지켰던 거죠.”
“그 친구랑은 나중에 화해했어?”
“아뇨, 그 날 이후로 절교했어요. 형한테 물어보면 그 형 이름도 기억 못 할 거에요. 형은 한번 아닌 건 절대 아니니까. 가치 없는 것에 연연해하는 것도 싫어하죠. 그런 형 입에서 내 이름과 함께 두 번째 경고가 나온 겁니다. 가족이니까 최소 절연은 하지 않더라도 이전과 같은 형제 사이는 없어질지도 몰라요. 형이 좋아요. 형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즐겁지만 그게 내 목숨을 담보로 형과 멀어질 각오를 하면서까지 모험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편 들어준 건 고마워요.”
지후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드마코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드마코가 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오자 코엘과 버크가 드마코에게 물어봤다.
“뭐래?”
“모르겠다. 형제 사이가 돈독한 건지, 아니면 지후가 너무 형을 무서워하는 건지.”
“지후 군은 정후 군을 형으로서 존경하기 때문일거야. 위계관계가 형성되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가끔 있는 경우지.”
“나도 우리 형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저 정도로 경외하다시피 한 건 아니어서. 쟤들이 저러는 거 보니까 오랜만에 형들이 갑자기 보고 싶네.”
드마코가 죽은 자신의 형들을 떠올리는 것을 눈치 챈 코엘과 버크는 더 이상 드마코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정후 씨, 그렇게 동생이 말도 못 꺼내게 하면 어떻게 해요.”
“섀넌, 섀넌은 지후가 혹시라도 우리랑 같이 가서 다치거나...하면 어떨 것 같아요.”
정후가 말하지 않은 침묵이 무슨 단어를 의미하는지 이해한 섀넌은 잡은 정후의 손을 잡으며 걸음을 멈춰섰다.
“그렇게 놔둬선 안되겠죠. 하지만 저를 제외하고서라도 현재 우리들 중에선 정후 씨까지 마스터가 세명에 그랜드 마스터가 두명이잖아요. 그런 전력을 그렇게 위험하게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도망치려고 마음만 먹으면야 얼마든지 몸만 빼서 전장에서 이탈하는 건 어렵지 않은 사람들인데?”
“혹시가 현실이 되면 난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땐 누굴 원망해야 하죠?”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어요. 저도 그래서 반대했던 거기도 하고.”
“근데 왜 이렇게 지후 편을 들어주는 거죠?”
섀넌의 앞에 마주 선 정후의 눈을 바라보며 섀넌은 대답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과 잘 지냈으면 해요.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그런 거겠지만 동생이잖아요. 가족이고. 최대한 대화로 풀어 나가야지. 동생이 의견도 못 꺼내게 틀어막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다 서로 멀어지면 그땐 동생이랑 안 보고 살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섀넌이 정후의 양쪽 턱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풀꽃같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동생한테 사과할 거죠?”
“알았어요.”
정후가 섀넌에겐 못 이기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입술을 가져가 서로의 입을 맞췄다.
“아침인데 마을이 전체적으로 조용하네?”
전날의 일로 서로 특별한 대화를 나누거나 술자리를 가지는 일 없이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잠에 들었다. 섀넌과 함께 늦게 숙소로 돌아온 정후도 이미 잠이 든 동생의 등을 잠시 지켜보다가 건너편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어제 같았으면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마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왔을텐데도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을이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정후가 문을 열고 나오자 버크와 코엘 그리고 섀넌은 이미 일어났는지 차를 마시며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일어났구나.”
“네, 잘들 잤어요?”
어제 보인 자신의 언행 때문에 머쓱해져서 정후가 뻘쭘해하자 섀넌이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라며 테이블 옆의 의자를 당기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찻잔 하나에 차를 옮겨 담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마을이 조용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오늘 새벽에 촌장의 할아버지가 운명(??)했다고 하더구나.”
“아, 그래서...”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너희 형제랑 드마코도 다 깨우려고 했어. 마을에 있는 사람들 모두 참여해서 잘 가라고 인사를 해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요?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엘프의 차를 마시면서 몸이 이완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찬공기와 함께 빅터 교관이 돌아왔다.
“오늘도 운동 갔다 온 겁니까?”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마을 주변을 뛰니까 상쾌하고 좋군요. 이곳은 기압이 낮아서인지 공기도 희박해서 호흡능력을 발전시키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촌장님이 30분 정도 뒤에 나오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알았네. 드마코와 정후 군을 깨워야겠군.”
버크 아저씨의 말에 평소 같았으면 자신이 깨우겠다고 하겠지만 살짝 언쟁이 있던 드마코 형과 동생의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웠다.
빅터는 씨익 웃으면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는 드마코와 지후는 자신이 깨우겠다고 했다.
“고마워요.”
“이 정도 가지고 뭘요.”
마을에서 한차례 예식을 거친 후 사람들은 천으로 감싼 죽은 이의 육체를 6명의 장정들이 나눠 들고 올라가는 길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죠?”
“천장터라고 해서 이곳에서 죽은 이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곳이지.”
검은 정장을 입은 일곱 명의 무리는 이곳에서 꽤나 이질적이었지만 우리가 입은 정장이 이들을 배웅하는 최대한의 예의임을 알아봐줬는지 촌장은 우리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함께 배웅을 해주는 것에 감사를 표했다.
이곳의 장례는 우리의 세상에서 조장(??)이나 풍장(風?) 혹은 천장(??)이라고 부르는 형태였다.
천장터는 쉽게 사람들이 오지 않을 법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뒤를 따라오는 지후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장례식은 관을 묻고 매립하거나 화장을 하는 우리네의 장례식과는 매우 거리가 있어 보였다. 천장터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꽤나 많은 독수리들이 모여 울음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날고 있어 가뜩이나 사람의 숨소리만 들리는 이곳을 가득 채워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독수리가 많네요.”
“이곳의 사람들은 저 독수리가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로 되돌려 보내준다고 믿는다네. 그렇게 올라간 영혼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육체를 입고 세상에 내려온다고 하지.”
“그래요?”
버크 아저씨가 말한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되었다.
“사부, 저 사람들이 뭐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