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163화지하도시 생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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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렇게 철저하게 방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아직 검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지후는 돌아가는 판세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와 함께 있는 두 분이 나름 해설과 중계(?)를 해주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어느 정도 검이 뭔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지후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으리라.
“지후야, 만약 니가 브라이스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흠, 아무래도 이런 경우엔 속도를 더 높여서 빈틈을 찔러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해. 하지만 나라면 그저 속도를 높이기보단 한가지를 더 추가할 거야”
“어떻게?”
“니가 말한 방법으로 이기고자 할 경우를 설명하자면 지금 자이온 경비대장이 보이는 수는 ‘면’을 형성함으로써 방어를 하고 있어. 반면 브라이스는 찌르기를 통해 ‘점’으로 공격을 하고 있고. 당연히 아무리 경비대장의 몸놀림이 빠르다고 하더라고 쾌검을 주로 쓰는 브라이스의 방향전환보단 빠르기가 어렵겠지. 표면적이 넓어질수록 방향 전환의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풋워크가 중요한 거야. 상대방보다 한 스텝만 빠르게 방향을 순식간에 바꿔서 치고 들어가면.”
내가 설명을 이어가는 순간 브라이스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저렇게 되지.”
“크윽, 이만하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후욱, 후욱. 얼마 전에 깨달음이 있었지. 다행이군.”
“어떤 깨달음이었지?”
브라이스는 긴 검을 통해 자이온의 도를 살짝 밀쳐내면서 스텝을 통해 포지션을 바꾼 뒤 짧은 검을 찔러 들어가 자이온의 턱 밑에 갖다 댔다.
“내려가서 대답해주지.”
자신의 패배를 승복한 자이온을 본 브라이스는 자신의 두 검을 거둬들여 납검(??)한 뒤 도를 거둬들인 자이온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내려갔다.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피어올랐다.
“승부가 결정되는 건 한순간이네.”
형의 예상대로 결정된 한 수를 보면서 조용해진 지후와 다르게 버크와 코엘은 정후의 말을 듣고 정후의 수준이 확실히 많이 올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정후야, 넌 저렇게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겠어?”
“훗.”
정후가 콧방귀를 살짝 뀌면서 머리카락을 뒤로 휙하고 젖히면서 살짝 폼을 잡고 자신을 뭘로 보냐면서 당연한 거 아니냔 눈빛을 보이자 섀넌이 옆에서 물어봤다.
“정후씨라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마침내 돌도 뚫지요[수적천석(????)], 섀넌.”
옆에서 사자성어를 풀어서 답한 정후의 말을 들은 코엘은 솔직히 적지 않게 놀랐다. 정후가 말한 것은 자신도 버크와 함께 생사가 걸린 대결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 중에 하나로 정후가 과거 그때의 자신과 비슷한 수준보다 높은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이 컸다.”
코엘이 칭찬의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정후가 재빨리 복싱의 위빙으로 피하면서 장난스럽게 거만을 떨었다.
“코엘 누나 검에 어떻게 할지 몰라서 팔랑팔랑 중심 못 잡던 과거의 이정후가 아니란 말씀.”
“조만간 정후랑 한따까리 해봐야겠는데?”
둘이 서로 장난칠 때 올라온 아왕은 상대방을 상대로 자이온의 도법이 생각나게 하는듯한 묵직한 창술을 선보이면서 어렵지 않게 상대방을 제압하여 승리했는데 이 모습을 본 드마코는 간만에 겨루고 싶은 창술을 본 것 같다면서 자신의 허벅지에 매여 있는 삼절창을 쓰다듬었다. 이어 올라온 잠파는 양손검을 이용한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순식간에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 모습은 독일의 검술인 ‘리히테나워’를 연상케하는 것만 같아 정후에게도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그림우드가 왜 이리 자세가 중요하냐고 물어보길래 보여주긴 했는데 그게 이렇게 이어진 건가?’
그림우드는 기본기를 중요시하는 정후의 가르침에 의문이 생겼던 적이 있었다. 굳이 자세와 기본기만 익히는 것이 중요해봐야 얼마나 중요하냐면서 자신도 어서 빨리 정후처럼 고급검술을 익혀서 강해지고 싶다고 했었다.
정후는 그림우드에게 기본 자세만 익히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음을 독일검술인 ‘리히테나워’를 통해 시연해보인 뒤 이를 가지고 그림우드와 대련한 적이 몇차례 있었다.
“니가 말한 별것 아닌 기본동작만 이어서 보여줬을 뿐인데 강하지?”
“네, 선생님. 그저 기본동작만 연결했는데도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뤄져서 감히 대응할 수가 없네요.”
“리히테나워의 기본동작은 한번 연습 삼아 익혀보고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해보라고 알려주긴 하겠지만 이걸 꾸준히 익히라는 건 아니야. 너에게 가장 잘 맞는 근본은 내가 보기엔 ‘빅터 소드’니까. 빅터 소드의 기본을 익히는 게 더 중요해. 대신 여러 검술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해볼수록 너의 검술실력은 더욱 풍부해질 거야.”
“알겠습니다.”
정후가 회상에 빠졌다 나오는 사이 마지막으로 올라온 라모는 마치 펜싱의 칼 중 에페와 비슷한 검을 들고 기본자세를 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정후가 떠나오기 전 레베카에게 한동안 가르치던 검술과 비슷했다.
레베카에게 펜싱의 에페와 비슷한 검을 가지고 찌르기를 중심으로 베기를 섞은 검술을 가르쳤던 계기는 레베카의 고민과도 이어져 있었다.
“선생님, 여자인 전 나이를 먹을수록 그림우드보다 육체적인 부분에선 뒤쳐질 거에요. 지금도 슬슬 밀리는 게 느껴지구요. 여자인 제가 좀 더 강해질 수 있는 검술을 가르쳐주실 순 없나요?”
레베카의 경우 처음엔 내가 가르쳐 준 기본 검술을 빠르게 익혀 다른 동기들보다 뛰어난 검의 재능을 보였지만 똑같이 단련을 하면서 점차 성장하는 그림우드의 근력에 밀리기 시작했었다.
“며칠만 기다려줄래? 근력이 안된다면 민첩함으로 승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거든. 발이 가벼운 레베카에게 어울릴 만한 검술이 있단다. 근데 이 검술을 배우려면 여기에 맞는 ‘검’이 필요해. 지금의 검으로는 맞지 않으니까”
그 이후 내가 구해다 준 에페를 통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자 레베카는 가진 바 재능과 끊임없는 반복 숙달 과정을 통해 내 예상보다 빠르게 검술을 익혀 나를 놀랍게 한 적이 있었다.
라모가 보이는 검술도 그때 레베카의 검술처럼 화려하면서도 신속하기가 그지없었다. 찌름과 회수가 거의 동시에 가까울 정도로 순식간에 이뤄지고 빠른 스텝을 통해 상대방의 빈틈을 찾아내는 모습이 당시의 레베카를 떠올리게 했다.
“정후 씨, 정후 씨.”
“네? 어?”
“라모의 검술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아주 빨려 들어갈 것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승리를 거두고 내려가는 라모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정후의 모습은 한눈에 반한 것처럼 보여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하하하, 라모에게 내가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줘야겠어.”
“절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정후가 두 손으로 한사코 아님을 표현하는 걸 본 나머지 인원들은 일부러 장난을 치려고 모른 척했지만 이조차도 오해한 버크는 라모에게 자신이 꼭 전해줄테니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다.
“눈치는 지가 더 없으면서. 이 멍청아!”
버크를 사모해서 항상 옆에 있는 라모가 안타까운 코엘은 버크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소리쳤다.
“또또, 엘프할망구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정후군 걱정하지 말게. 나만 믿으라고. 하하. ”
“아우, 화상아. 빅터, 너도 에디나한테 이러냐?”
어느새 합류했는지 뒤에 서 있던 빅터에게 코엘이 물어보자 빅터는 절도 있게 아니라고 했다.
“저와 부단장님을 엮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부단장님을 존경하긴 하지만 저 정도는 아닙니다.”
연애에 관해선 자신과 버크가 다름을 어필하며 보인 빅터의 빠른 손절에 버크를 뺀 나머지 크로니클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활짝 폈다.
“뭐야, 왜 나만 빼고들 웃는 거야! 빅터! 넌 내 편이지 않느냐.”
“제가 버크 부단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아, 아까 촌장님이 라모의 경기가 끝나고 나면 보자고 했는데 깜빡했군요.”
엉거주춤한 자세로 빅터를 향해 두 팔을 벌려 버크가 다가갔지만 솔로인생=자기나이인 버크의 연애관을 잘 알고 있는 빅터도 그 부분만큼은 버크에게 존경심이 없는 것처럼 용건이 있다면서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버크의 처량함은 한층 배가 되어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퍼져 나갔다.
라모 이후로 올라온 전사들은 수준이 낮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앞서 치열하면서도 날카로운 한수를 보인 5명의 경비대원의 수준에 비해선 떨어졌기 때문에 버크를 제외하고 마을 사람들을 잘 모르는 크로니클 단원들에겐 경기시간만 늘어나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시간이 되었다.
겨우겨우 터져 나오려는 하품을 정후가 참다 참다가 고개를 돌려 살짝 했을 땐 해가 지고 있었다. 정후는 내일 또 이 경기를 지루하게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면서 지켜봐야 되나 싶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이래서야 언제 생텀에 가지?”
“생텀? 지하도시 생텀?”
버크와 이야기를 나누던 촌장은 ‘생텀’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뒤로 돌아 보았다.
“네?”
“자네들 생텀에 가려고 여기에 왔던 거였나?”
버크는 놀라는 촌장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지 어색해하면서 겸사겸사 친구들 얼굴도 보고 선물도 주고 생텀을 찾아가볼까 해서 왔다고 대답했다.
“여기 정후 군이 생텀이 어디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거든.”
버크가 간략하게 정후로부터 들은 길을 들려주자 촌장은 이들이 어디로 가야되는지 정확히 알고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두게.”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촌장의 얼굴에 서릿발처럼 서늘한 표정이 내려앉았다.
“그곳은 죽지 않는 붉은 마녀의 미궁이 된지 오래야.”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정후는 지하도시가 붉은 마녀의 미궁이 되었다는 촌장의 말이 흥미롭게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생텀을 찾아 헤맸다는 것을 간간히 외부에 나간 다크엘프들을 통해 들었지만 우린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았지. 어차피 사람들은 어디에 그게 있는지 잘 몰랐으니까. 당장 이 말라야히마 산맥에 생텀이 있다는 걸 아는 이들도 여태까지 없었네. 자네들이 알고 찾아온 것이 신기할 정도군.”
“촌장, 왜 이러나? 너무 정색하지 말게.”
“모두 자네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예전엔 자네들도 분명 생텀을 찾고 싶어했지 않았나? 돌아가야할 다크엘프들의 고향이라면서.”
“버크, 자네가 이곳에 머물 적만 해도 우리들 사이에서 생텀은 전설로만 내려져 오던 조상들의 터전이었다네. 실제로 거길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긴 했었지.”
“그런데?”
“자네가 산을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선 지금의 경비대장과 경비대원들의 아버지들을 중심으로 수색대가 창설되었고, 마침내 생텀으로 추측된다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라모의 아버지가 전해왔지.”
촌장은 전령으로 온 라모의 아버지와 함께 마을 사람들 몇몇이 발굴을 돕기 위해 수색대가 쳐 둔 베이스캠프로 함께 찾아갔을 땐 처참하게 죽어가는 자이온과 브라이스의 아버지만이 겨우 숨을 붙이고 헐떡이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숨을 쉬고 있던 자이온의 아버지 나소가 내 팔뚝을 움켜쥐고 말했네. 자신들은 절대 찾아선 안 될 장소를 찾았다고. 그리고 그 옆에서 죽어가던 브라이스의 아버지 나슨은 ”자신들보다 두배 이상 강한 인원들 10인 이상이 모이기 전에는 시도할 생각도 해선 안된다.“면서 숨을 거뒀네. 나소도 그 모습을 본 뒤 ”‘죽지 않는 붉은 마녀의 미궁’에 들어갈 생각을 해선 안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사망했네.”
“두 사람의 말만 듣고 포기했던 건가?”
“그랬다면 지금처럼 자네들을 말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걸세.”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거야?”
“마을 사람들 중 수색대에 속한 이들의 일부가 다시 제 2수색대를 꾸렸지. 누군가는 복수심에, 누군가는 슬픔을 달래고자, 누군가는 분노에 불타서.”
“어떻게 됐지?”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먼곳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비명소리만이 산을 채웠을 뿐. 두려움을 참고 내가 가봤을 땐 남은 핏자국만이 그곳에서 누군가 죽어갔음을 대신 설명해줬을 뿐이었네. 그 뒤로 그곳은 마을 사람들에겐 금지(??)가 되었네.”
촌장의 말을 마치고 눈을 감으며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을 하자 크로니클 단원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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