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162화지하도시 생텀(6)
* * *
애초에 우리는 객(客)이었기에 처음부터 그들의 대결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TOP4를 선발한 뒤 이벤트 형식으로 우리와 1:1 토너먼트 방식으로 붙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괜찮대요?”
“뭐가?”
“어떻게 보면 그들이 자기들끼리 서열 정리를 하고 오면 우리가 받아주는 느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건 내가 설명해줘야 할 것 같군.”
코엘 누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버크 아저씨가 지나가다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이곳의 문화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들이 겨울이 되면 지금처럼 서로의 힘과 기술을 겨루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외부의 침략이 있을 경우 이에 대비하여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되짚어 보고 겨울동안 그걸 가다듬기 위함이라네. 문제는 이들이 익히는 기본검술이 오랜 시간을 거쳐 갈라지면서 어느 정도의 변형은 일어났지만 처음에는 원형을 익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파훼식이라든가 대응책이 완성된 상태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같은 외부의 강자들이 나타난 거라네. 그런데 그런 외부의 강자들이 자신들의 부족에게 딱히 적대의식도 없으니 지금은 저들에게 자신들 집단 이외의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기술을 쌓고 발전시켰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갑을 관계를 따지자면 불편할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현재의 대결방식은 부족의 합리적 판단에 의해 본인들이 수긍하고 납득한 방식임을 알 수 있었다.
“꽤나 합리적이네요.”
“이들은 서로 간의 기술을 숨기려고 하지 않네. 물론 외부집단에 부족의 기술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선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검증된 신뢰를 바탕으로 외부에 자신들의 검술이 공개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하더군. 또,혹여 알려지더라도 이번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검술을 더욱 발전시킨다면 과거의 것으로 자신들을 상대할 수 없을 거란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승낙한 것이지.”
고립된 부족이기에 가지는 폐쇄성으로 이들이 배타적인 성격을 지녔을 수도 있다는 의혹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기하네. 보통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집단은 외부와의 접촉이라든가 자신들 내부의 정보가 알려지는 것에 굉장히 소극적이면서 보호주의적일텐데. 엄청 합리적이야.’
“중간에 서로의 검술을 공개한다고 했는데 자신들의 검술을 공유한단 말씀이십니까?”
빅터도 어느 순간 아저씨의 설명타임을 듣고 있었는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그래, 이들은 자신들의 부족원끼리는 검술을 숨기려고 하지 않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자들은 부족한 부족원들이 배움을 청한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대하고 ‘커맨더’라는 영예로운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은 자신의 검술을 많은 방법을 동원해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수하도록 하고 있네.”
“대단하군요.”
‘더스트’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술에 대해서 도제방식을 취함으로써 비전을 쉽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들은 놀랍게도 학자들이 발견하거나 자신들의 성과를 논문으로 정리하여 세계의 학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발전을 꾀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초대 커맨더인 그림우드님으로부터 시작된 거라네.”
버크 아저씨에게 질문했는데 우리를 부르러 온 촌장이 대답을 해줬다.
‘뭐야, 왜 자꾸 사람이 점점 늘어나.’
“그림우드님 말씀이십니까?”
촌장의 말에 강하게 반응한 것은 우리들 중에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빅터였다. 그리고 빅터를 향해 지그시 쳐다보던 촌장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였다.
“버크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네. 그쪽의 이름이 빅터 그림우드라지? 내 이름은 알렉세이 그림우드라네. 그림우드 가(家)의 당대 가주이기도 하지.”
“그림우드 가(家)의 가주...십니까?”
“그래, 니가 바로 그 마리아의 아들 빅터로구나.”
“제 어머니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촌장의 눈빛이 먼 과거를 되짚는 것처럼 아련한 기색을 보였다. 빅터가 평소와 다르게 머뭇거리면서 입을 벙긋거리자 천천히 다가와 빅터의 오른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포개서 잡고는 자세한 이야기는 자신과 따로 나누자고 했다.
“촌장이 빅터의 어머니와 아는 사이였나?”
“잘 알지. 마리아는 어릴 적부터 외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거든. 빅터에게 이야기를 해줄테니 혹여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빅터를 통해서 듣도록 하게. 아, 내가 여기 온 이유를 깜빡 잊을뻔 했군. 이제 마을의 전사들이 대결을 나눌 준비가 되었으니 마을의 전사들의 대결을 지켜보고 최대한 있는 힘껏 부러뜨려들 주시게나.”
“그래도 돼?”
버크 아저씨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어보자 촌장은 껄껄 웃으면서 오래 전부터 자신들 부족에서 내려져 오는 격언 중의 하나를 인용해서 대답했다.
“죽지 않고 몸만 성하면 지금의 눈물이 미래의 힘이 되어주겠지. 깨끗하게 부러질수록 더 튼튼해질테니 기대하겠네. 빅터는 나와 함께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궁금한 게 많네. 마리아가 숲을 떠나고 나서 그 이후의 삶이 어땠는지...”
둘이 조손(??)사이처럼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나자 우리들도 대결 관전이 끝나고 대결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했다.
그러나 난 촌장이 남긴 말이 신경 쓰였다.
“저거 내가 그림우드한테 해줬던 말이었는데...”
“뭐?”
코엘 누나가 지나가다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멈춰서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란 대답과 다르게 난 과거 그림우드를 가르치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림우드, 넌 지는 게 겁이 나니?”
“네, 자꾸 질 때마다 작아지는 것만 같아요. 과거의 무기력했던 저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깎여 나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건 그저 대련이잖니. 실전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대련에선 얼마든지 져도 상관없어. 니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니까.”
“그래도 지는 건 싫어요. 발전하지 못한 것만 같고 그래서.”
“그림우드, 얼마 전에 엔폴레오네가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지?”
“네, 그래도 지금은 잘만 뛰어다지만요.”
“그렇지?”
그림우드가 생각할 수 있게 내가 잠시 시간을 주면서 입을 다물자 그림우드는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패배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건가요? 어차피 치유가 되면 이전보다 튼튼해져 있을테니까?”
“맞아. 한가지 더 말하자면 지금 니가 흘린 땀방울과 눈물의 무게가 미래의 널 성장시킬 거라는 거란다. 대신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 말이야. 엔폴레오네의 다리가 이전보다 튼튼해진 건 이전에 다칠 때 깨끗하게 반으로 또각하고 뿌러졌기 때문이지. 지금 엔폴레오네가 뛰어다닐 때 혹시 다리를 또 다칠까봐서 겁이 나는 것처럼 보이니?”
“아니요.”
“길을 가다 넘어지거나 다쳤을 때 사람은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을 간단다. 물론 잠깐은 아파서 눈물이 날 수도 있고 잠시 주저앉아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릴 때 그렇게 넘어졌다고 평생을 그렇게 주저앉아서 아파하고 우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지. 지금 네가 경험할 패배도 그런 거야. 시간이 흘러서 네가 성장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 올 거야.”
“그런 날이 올까요?”
“포기하지 않는 한 분명. 시작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포기하지 않는 것에 있단다. 그럼 언젠가 니가 꿈꾸면서 노력한 것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날이 올거야.”
그날의 대화 이후 그림우드는 지는 것에 두려움을 떨쳐 버렸는지 레베카를 비롯해서 다른 동기들과의 대련에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형, 형.”
“어?”
“지금 나온 자이온이라는 사람이 강력한 차기 대전사 중 한명이래.”
TOP4에서도 가장 첫 번째에 가까운 남자가 사람들이 크게 둥근 원을 만든 무대 아닌 무대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사이로 거센 환호와 박수소리가 퍼져 나갔다.
“자이온이 벌써 저렇게 성장했나?”
버크 아저씨가 등장하는 기도만으로도 뭔가 놀라워했다.
“왜 부단장이 있을 때보다 많이 발전했어?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드마코 너랑 비슷해보이긴 한데 예전만해도 내가 이곳에 있었을 때는 저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이후로 많은 노력을 했나보군.”
“그래?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자이온이란 남자가 무대 위에 올라 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무기인 검을 두 손등에 올려놓은 뒤 바닥에 입을 맞추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일종의 의식같은 건가?”
“자신이 전사로서 성장하여 지금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해준 세상 만물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전사의 의식이지.”
“우리도 해야 되는 건 아니지?”
“그럴 필요는 없네.”
촌장이 빅터와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어느새 우리의 옆에 서 있었다.
“그저 자신이 예의를 갖추기만 하면 되네. 우리 부족도 아닌 사람에게 부족의 예를 강요하지 않으니까 방식은 중요치 않네. 그저 진심으로 예의를 다한다면 우리도 개의치 않으니까.”
“빅터는 어디 갔지?”
“대화를 마친 뒤 마리아를 그린 그림들이 있어 그 중 일부를 추려 줬더니 혼자 어머니를 그릴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냐고 하더군. 대전에 늦지만 않게 오라고 했지.”
“그런가.”
버크와 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순간 무대 위에는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
“브라이스인가?”
묵직한 도를 들고 있는 자이온과 다르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사이즈의 검을 든 브라이스는 일견 봐도 서로 가는 길이 대척점에 가까운 것이 명확해 보였다.
“중(?)의 자이온과 변(?)의 브라이스는 옛날에도 서로 라이벌 관계였는데 지금도 박빙이긴 한가보군.”
“기억하나보군. 저번의 대결에선 자이온이 이겼기 때문에 경비대장을 맡고 있지만 그 전에는 브라이스가 경비대장이었어. 서로 여태까지 전적은 자이온이 25전 11승 10패 4무로 1승을 앞서고 있지.”
캐스터와 전문해설위원처럼 상세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덕분에 정후는 간단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도를 들고서 진중하게 자세를 유지하는 자이온에게 선공을 시작한 것은 두 개의 크고 작은 검을 들고 있는 브라이스였다.
“정(?)과 동(?)의 대결이구나.”
“형은 어느 쪽이 이길 거 같아?”
“자이온이란 사람이 끝까지 변(?)에 넘어가지 않고 빈틈을 잘 노린다면 자이온이 우세를 잡을 것이고 브라이스란 사람이 자이온이란 남자를 흔들어 낸다면 브라이스가 승기를 잡겠지.”
“정후군이 보는 눈이 많이 성장했군.”
“아저씨도 참.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허허허, 오늘 정후 군이 보여줄 검이 기대되는군. 기대는 기대고 일단 두 사람의 대결에 집중하도록 하지. 내가 보기엔 오늘은 자이온이 우세할 것 같네.”
과연 아저씨의 말대로 브라이스의 선공은 번번이 자이온의 방어에 막혀 뚫고 들어가질 못했다.
“형, 저렇게 빠른데 왜 뚫고 들어가질 못하는 거지? 보통 선빵을 먹이고 시작하면 좋은 거 아니야?”
“선빵이 먹히는 건 하수들 사이에서 일종의 암수로서 상대방의 심리를 흔들고 충격을 주니까 먹히는 거고. 지금은 자이온이 브라이스가 어느 방향으로 들어올지를 모두 읽고 있잖아. 저렇게 되면 먼저 이리저리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브라이스의 체력이 먼저 떨어질텐데.”
정후의 말대로 위험한 한수를 하나하나 막아가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는 자이온의 도를 빠른 블라이스의 검으로는 뚫고 들어가질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브라이스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휘유, 자이온. 너의 그 방어는 더욱 더 두터워진 것 같다.”
“지쳤나?”
“지치긴 누가 지쳐. 여태까진 탐색전이었는데.”
“우리가 한 두 번 대결한 것도 아닌데 탐색전이라니. 웃기네.”
“이익.”
겉으로 흥분해보이는 것과 다르게 브라이스의 눈은 흔들림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브라이스는 이번 대결을 위해 그동안 준비해온 자신의 비장의 한수를 펼치기로 마음 먹었다.
‘역시 이전의 방법으론 안되는 건가? 어쩔 수 없네. 마지막까지 최대한 안 보여주고 싶었는데.’
브라이스가 기운을 끌어올려 검에 오러를 싣는 것을 본 자이온은 드디어 브라이스가 준비해온 한수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오러를 끌어 올렸다.
'이제 오는 건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