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60화지하도시 생텀(4)
* * *
다크엘프들이 데려간 회관은 가운데에서 계속 불을 피운 덕분에 일정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열기와 섞여 금방 훈훈한 온기로 가득해졌다.
“와, 따뜻하다. 형.”
“더울 정도인데.”
마을 사람들은 뭘 그렇게 준비하는지 바빠 보였다. 가만히 앉아서 멀뚱히 쳐다보는 것이 뭣하긴 했지만 손님은 가만히 기다렸다 대접을 받는 것이 이곳의 예의라고 하니 몸은 편한데 마음은 그렇게 편하진 않았다.
“하아, 오늘은 내가 요리를 안 해도 되는 건가?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게 이게 얼마만인지!”
드마코 형은 자신이 요리 준비를 안해도 된다는 사실에 남이 해주는 밥 먹을 생각하니 너무 좋다고 했다.
“드마코 씨 요리를 못 먹게 된다니 아쉽네요.”
“섀넌, 나도 이렇게 쉬는 날이 있어야지.”
섀넌은 다크엘프들이 준비하는 요리들을 처음 보는지 약간 긴장되어 보였다.
“엘프들이 먹는 요리랑은 많이 다르네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손님이라고 대접해서 주는 음식인데 혹시라도 입에 안 맞아서 잘 못 먹으면 그건 또 예의가 아니니까. 더구나 저나 코엘 언니는 엘프라서 다른 분들하곤 다르잖아요.”
“에이, 이렇게 환대를 해주는 데다 아저씨와 같이 왔는데 별일 없을 거에요.”
“선조들의 기록에는 다크엘프와 엘프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내용들이 많아서...”
“딱히 섀넌이나 코엘 누나를 볼 때 그렇게 적대적인 눈치는 없어 보였어요.”
우리가 그렇게 앉아서 작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지후가 옆에 와서 끼어들었다.
“아주 커플이라고 소곤소곤 대는 게 꿀이 뚝뚝 떨어진다. 형.”
“그런 거 아니야, 인마.”
“뭘 아니야 아니긴. 손이나 놓고 이야기하든가 손에서 땀 나겠다. 이렇게 따뜻한데. 안 더워?”
지후가 장난스럽게 이야기한 말에 섀넌이 나와 잡고있는 손을 빼려고 하자 난 일부러 꼭 잡으면서 지후보고 저리 가서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야, 니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섀넌 씨가 수족냉증이 있어서 그래. 하나도 안 더워!. 형수님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저리 가, 인마! 훠이!”
“내가 무슨 모기야 파리야? 에휴, 누군 여자친구 옆에 없어서 서러워서 버틸 수가 있나. 빨리 돌아가든가 해야지...”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지후의 등을 본 뒤 살짝 볼이 발그레해진 섀넌이 날 향해 살짝 째려봤다.
“왜요?”
“제가 손발이 찬 건 맞지만...굳이 동생 앞에서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혹시라도 지후씨 동생이 저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면...”
“섀넌이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나? 하하. 지후는 그런 걸로 꽁해하고 감정 상할 놈 아니에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혹시라도 정후 씨 부모님께 나쁘게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
“크크크크, 우리 섀넌이 거기까지 생각하셨구나?”
섀넌은 장난기 어린 정후의 질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마을의 촌장이 가운데로 나와 크게 소리쳤다.
“우리 카일라스 마을에 오랜만에 이렇게 손님과 함께 우리의 친구 버크가 찾아오게 된 것은 이번 겨울도 아무 탈 없이 보낼 수 있으리라는 산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오늘 하루 신나게 즐겨 봅시다!”
촌장의 구호에 맞춰 사람들이 각자 구호를 외치고 각자 잔을 돌리기 시작한다.
“술이네?”
“그러게. 꼭 소주처럼 맑아 보인다.”
“한번 마셔보면 알 걸세. 소주처럼 맑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그렇지 않다네. 살짝 살짝 한모금씩들만 마시는 게 좋을 거야.”
“지 아는 곳 왔다고 아주 잘난 척이 심해, 너.”
버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나서 촌장이 다가와 큰 주전자처럼 생긴 것에서 자신의 잔에 담긴 술을 마시고 나서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 살짝 들이킨 다음 다시 돌려줬다.
“크으. 오랜만이군. 이 맛.”
잔을 돌려받은 촌장은 버크 아저씨와 덕담을 나눈 뒤 버크에게 주전자를 넘기고 나서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부단장님, 방금 전의 그것은 뭔가요?”
“이곳에선 방금 한 것처럼 손님에게 잔을 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맛을 보고 줌으로써 독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손님은 이를 받아 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서로 간에 신뢰를 나누는 일종의 절차라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정후는 꽤나 합리적인 절차라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엘리스가 추측을 해 왔다.
<아무래도 누군가="" 독이="" 든="" 술을="" 마시고="" 문제가="" 생겼고,="" 그="" 뒤에="" 생긴="" 절차인=""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버크는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면서 크로니클의 단원들에게 한잔씩 따라 주었는데 나무 잔 안에 들어 있는 술은 정말 소주처럼 맑아 보였다.
“킁킁, 무슨 이상한 냄새는 안 나네?”
“야, 뭘 냄새를 맡아. 그냥 주는 대로 마시면 될 일이지.”
“하아, 주도를 몰라. 주도를. 원래 술은 눈으로 한번 먼저 이렇게 마시고, 향기를 통해 한번 마시고, 입으로 넣어 혀를 통해 맛 보고 뱃속에 들어간 뒤에 뜨끈해지는 열기를 느끼면서 올라오는 취기를 느끼면서 마시는 건데.”
“지후가 술을 좀 아는가 보군?”
“술하면 이지후, 이지후하면 술이라고도 불릴 정도죠. 제가.”
“오늘 내가 좋은 술친구를 만난 것 같군 그래! 하하하하하.”
정후는 자신과 딱히 술을 자주 마실 기회가 없던 동생이 아저씨와 함께 주도(??)를 논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어색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술을 들이켰는데 마치 불을 삼킨 것만 같았다.
“켁켁. 뭐가 이렇게 독해.”
“크크크, 그럴 줄 알았네. 정후 군.”
“이거 뭐에요? 소주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엄청 독하네. 도수가 얼마나 되는 거지.”
마을 사람들도 우리들이 술을 마시고 보일 반응이 기대되었는지 내심 지켜보다가 내가 켁켁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 그럴 줄 알았다면서 한차례크게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독해요?”
“섀넌도 마셔보면 알 걸요.”
섀넌은 잠시 자신이 들고 있던 잔 안에 차 있는 찰랑거리는 술을 보더니 쭈욱 들이켰다.
“어어? 섀넌. 그렇게 쭈욱 마시면...”
“휴우. 좋은데요?”
엘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대했는지 다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놀라움의 눈빛이 번졌다. 코엘은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자신 또한 섀넌처럼 술잔을 들이켰다.
“워후, 이야. 간만에 술다운 술 좀 마시네.”
“코엘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고.”
“정후가 술이 약하구만. 크큭. 부단장! 한잔 더!”
드마코는 한모금씩만 마시라고 했음에도 원샷을 했는지 소주를 마실 때 가르쳐줬던 머리 위로 잔을 터는 시늉을 하면서 더 따라 달라고 했다.
“형, 그렇게 독해?”
“왜 이제 와서 주도를 아시는 분께서 뭐가 그리 겁을 내십니까.”
“내가 언제 겁을 냈다고. 아니거든? 봐라.”
동생은 호기롭게 드마코 형처럼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다 이내 입 안에 고여 있던 일부를 뿜고 말았다.
“워어어어억, 이게 뭐야. 이거 보드카같은데?”
한 잔의 술로 개그를 한 동생의 모습으로 인해 다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럼 그렇지 하면서 웃음이 번졌다.
“아르히는 이곳에서 키운 양과 함께 키우는 ‘야크’라는 동물의 젖을 짜서 하루동안 발효를 시켜서 만든 음료를 말린 야크의 똥을 연료로 태워 증류를 시켜서 만든 독하지만 귀한 술이지.”
“그래요?”
‘이거 도수가 얼마나 되는 거야?’
<사용자의 체내="" 인체반응="" 정도를="" 통해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략="" 40도="" 정도인="" 것="" 같습니다.=""/>
“40도나 된다고 이게?”
“정후 군이 가져온 술이 도수가 17도 정도라고 했으니 그것보단 많이 독한 편일세.”
정후와 지후의 놀라는 반응을 본 촌장은 혹시라도 술이 너무 독하다면 편하게 차를 마셔도 좋다면서 우윳빛을 한 차를 가져다 줬다.
“감사합니다. 이 차 이름은 뭐죠?”
“수태차라는 겁니다.”
“야크에게서 짠 젖에 찻잎을 넣고 끓인 겁니다.”
‘홍차같은 거구나.’
우유를 넣은 홍차라면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입 마셔보자 별로 거슬리는 것 없이 마실 수가 있었다.
“수태차는 입에 맞는 모양이군. 촌장.”
“그런 가 보군.”
우리를 신경 써준 촌장은 그 다음부턴 자리에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우리를 이곳에 안내해준 경비대원 중의 한명인 라모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버크 아저씨의 옆에서 앉아 세심하게 챙겨줬다.
빵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따로 나온 바구니에도 단단한 빵처럼 생긴 것이 있어서 잘못 왔나하고 단원들이 두리번거리자 라모가 설명해줬다.
“한쪽에 있는 것은 빵이고, 한쪽에 있는 것은 오스치펙이라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입니다.”
“오스치펙이요? 이건 빵 아닌가요?”
지후가 빵의 옆에 놓인 단단한 것을 들어 보이며 물어봤다.
“오스치펙은 빵과 함께 먹는 거에요. 우리에겐 재산이자 가족인 산양의 젖으로 만든 거랍니다.”
“이게요?”
그 말에 살짝 일부를 뜯어 입 안으로 넣어보자 훈연된 향기와 함께 치즈의 향이 느껴졌다.
“치즈네? 고소한 데다 맛이 깊다. 냄새도 별로 안 나고.”
“치즈라고? 빵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한번 먹어 봐.”
정후가 떼어서 입에 물려준 빵처럼 생긴 치즈는 생긴 것과 다르게 치즈가 맞았다. 깊은 맛과 향이 느껴지지만 일반 치즈보다는 짭잘했다.
“조금 짭짤하지?”
버크가 와서 물어보자 정후와 지후 그리고 나머지 단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치펙이 짠 이유는 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고산지대와 관련이 있네.”
<혈압때문인 것="" 같군요.=""/>
‘혈압?’
의문점은 이어지는 버크 아저씨의 설명과 이를 보충해주는 엘리스를 통해 해결되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살다보면 오랫동안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가 일어났을 때 가볍게 느껴지는 현기증이 자주 들게 되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먹는 오스치펙처럼 소금기가 느껴지는 음식을 먹어주면 신기하게도 그런 증상이 사라지게 되거든.”
<고산지대에선 인체의="" 혈압이="" 낮게="" 형성이="" 됩니다.고혈압의="" 반대인="" 저혈압="" 상태가="" 되죠.="" 방금="" 버크가="" 말한="" 증상이="" 바로="" 저혈압의="" 증상들="" 중="" 하나입니다.="" 염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체내="" 나트륨="" 농도를="" 높여="" 의도적으로="" 혈압을="" 높여서="" 정상상태의=""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수태차와 함께 먹는 오스치펙 그리고 빵의 어울림을 느끼며 어느 정도 요기를 했을 때 경비대의 남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의 남성들이 고기로 보이는 것들을 잔뜩 들고 들어왔다.
“고기다!”
“저것도 정말 오랜만에 먹는데?”
“무슨 고기죠? 술을 만들 때 사용한 젖을 만드는 야크?”
“저건 야크가 아니라 아까 마을 경비대 친구들이 타고 온 산양과는 조금 다른 양의 고기라네. 양고기가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다르게 다 자란 양에선 특유의 향취가 나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게 어쩌다 생각나는 별미이기도 하지.”
마을 남자들이 들고 온 고기는 꼬챙이에 꽂혀 있는 꼬치구이의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러시아의 ‘샤슬릭’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익은 것으로 보이는데 또 구워요?”
남자들이 나서서 회관의 중심에서 불기가 잦아든 장작을 화로처럼 생긴 것에 모아 놓고 그 위에 세로로 길게 늘어놓자 그 모습이 또 장관이었다.
“초벌한 것을 저렇게 숯불에 한 번 더 굽게 되면 말이지.”
아저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글지글 익어가면서 양꼬치에서 기름이 떨어지며 회관 안은 뿌옇게 연기로 순간 가득차게 되었다.
“이렇게 된다니까. 하하하하.”
“계속 이 상태로 먹는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조금 기다리면 되네.”
누군가 뭔가를 만졌는지 회관의 가운데에 있는 천장이 열리고 거길 통해 꼬치를 구우면서 나오는 연기가 계속 빨려 나갔다.
“와아. 꽤나 체계적이네.”
“버크 친구들이 뭘 좀 아는군! 이 꼬치들 한번 맛 좀 보시게나.”
우리를 데려다 준 브라이스와 잠파, 아왕이 익은 양꼬치를 잔뜩 들고 왔다. 양꼬치와 보드카, 그리고 수태차, 오스치펙을 비롯하여 이곳만의 독특한 풍미가 담긴 음식들로 가득 찬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