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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화 〉 159화­지하도시 생텀(3) (159/239)

〈 159화 〉 159화­지하도시 생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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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서 어슴프레하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와가는군.”

“저기가 니가 말한 거기야?”

코엘의 질문에 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소리쳤다.

“지후야, 조금만 더 가면 된대!”

코엘은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자신의 뒤에서 헉헉거리면서 겨우겨우 쫓아오는 지후에게 전달했다.

고산지대인지라 공기가 희박한 것도 힘든데 눈이 쌓여서 자꾸 발걸음을 붙잡아서인지 체력소모가 말도 못하게 빨랐다. 평소와 다르게 두텁게 옷을 껴입기까지 해서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것이 마치 누가 자신의 뒤에 대형타이어를 달아놓은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는데 지후는 저 앞에서 쌓인 눈을 좌우로 헤치고 가는 형과 드마코 싸부의 모습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냥 말들이랑 같이 거기에 있겠다고 할걸 그랬나?’

자신의 페이스를 생각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음에도 자신의 앞에서 눈발과 섞인 바람을 막아주는 이들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한발씩 떼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가던 코엘이 걸음을 멈췄다.

“도착했나?”

“아니.”

코엘은 지후의 뒤에 있던 섀넌을 향해 눈짓을 하고 조심스럽게 오른쪽의 칼을 검집에서 꺼냈다.

정후와 드마코는 눈발 속에서 나타난 한무리의 떼를 만나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지? 형, 아저씨가 말한 다크엘프들 아닐까?”

“모르겠어. 눈 때문에 잘 안보인다. 더구나 다크엘프치고는 너무 실루엣이 커보이는데? 부단장, 다크엘프들 맞아?”

“글쎄. 내 기억에도 다크엘프들이 저렇게 커 보이진 않았던 것 같군.”

뒤에서 들려온 버크의 목소리에 정후와 드마코는 각자 달빛을 닮은 검과 3개로 나눠진 창을 꺼내 들었다.

“별거 아니었으면 싶은데 말이야.”

정후의 인벤토리에 넣어둔 워엑스를 받은 버크는 이런 눈 속에서 싸움을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수련을 쌓은 경험이 있는 자신과 다르게 나머지 단원들과 정후의 동생 지후에겐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으니까.

진형을 만들고 준비를 하고 있는 7명 가까이로 허리춤에 뿔이 난 것처럼 보이는 괴상한 형체들 중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이윽고 정지했다.

“준비해!”

“오랜만의 전투인 것 같군 그래. 정후야, 발전했다는 니 실력 구경 좀 하는 거냐?”

“이전의 나랑은 수준이 달라. 형.”

지후의 옆에서 레이피어를 든 형수(?) 섀넌이 지후의 앞에 서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후를 지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윽고 휘날리는 눈발 사이에서 괴상한 형체가 말을 걸어왔다.

“이런 날씨에 이곳을 찾아온 그대들은 누구인가? 그 목적이 불순하다면 더이상 다가오는 것을 마을의 지킴이로서 허락할 수 없다!”

버크는 들려온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하게 들렸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야, 도끼쟁이, 너, 여기 와봤다며. 빨리 아는 척 좀 해봐.”

“나도 저런 형체는 처음 봐. 내가 있을 땐 저런 형체의 존재들이 돌아다니질 않았다구.”

“알았으니까. 뭐라고 대답을 해줘 봐.”

코엘이 버크에게 타박을 하며 빨리 대답해주라고 목소리를 낮춰서 재촉하고 바로 상대쪽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들은 누구이며,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가! 셋을 세기 전에 대답이 없다면 의도가 불순한 것으로 생각하고 공격하겠다!”

“저거 봐. 공격한다잖아.”

“싸우기 귀찮은데 어떻게 할거야. 영감.”

“잠깐만 기달려봐. 다크엘프들을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하라고 했더라. 아 맞다.”

버크는 목을 가다듬고 오래 전의 기억을 되짚어 한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땅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의지를 철의 형상으로 만드는 자의 후예 버크 샤이어다. 이곳에 온 이유는 평화의 뜻을 추구하여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은둔자로 남은 나의 친우 자이온과 그의 일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함이다!”

“하하하하하하하”

버크의 멋드러진 목소리를 들은 반대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수염쟁이. 그 이상한 대사. 저쪽에선 그냥 비웃는 거 같은데?”

“이게 아닌가? 맞는 것 같은데. 하, 워낙 오래 돼서 잘 기억이 안 나네.”

웃음소리와 함께 허리에 뿔이 난 존재 하나가 거세진 눈발을 가르며 정후의 앞에 나타났다.

“산양이네?”

“산양이야.”

“그럼 그렇지. 허리에 뿔난 존재가 세상에 있을 리가.”

산양에 타고 있던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은 산양에서 내려 무기를 들고 있는 정후네 근처로 오더니 버크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입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내렸다.

“버크! 내가 나중에 다시 올 거면 이전에 줬던 피리를 미리 부르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나! 내가 준 피리는 잃어버렸나?”

“어? 피리? 자이온!”

“오랜만이군. 사람 참.”

“부단장님, 목에 걸고 계신 그 피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

버크는 빅터의 말에 그제서야 오래 전에 친구의 증표라면서 다시 찾아올 때 크게 부르라고 했던 피리 목걸이가 생각났다.

“이거?”

“잘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진작 피리를 불었으면 우리도 이렇게 긴장해서 나올 필요가 없었지. 이봐! 이리들 와봐. 우리 친구인 자이언트 드워프 버크랑 버크의 친구들이 왔어!”

“뭐? 버크가 왔어?”

“버크라고?”

빅터의 말에 나타난 4명의 사람들은 다크엘프라기엔 다소 갈색에 가까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버크! 이게 얼마만이야!”

“잘 살아 있었군 그래.”

“버크, 다시 와줬군요.”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4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지자 정후와 드마코 그리고 코엘과 섀넌은 각자 들고 있던 무기를 자연스럽게 접어서 넣었다.

“아저씨, 인싸였네.”

“그러게. 그나저나 저기 저 여자 눈빛 보니 버크랑 뭐가 있었나보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쯔쯔, 그러니까 섀넌이 고생을 하지.”

“냅둬, 정후 눈치 없는 거 하루이틀이야.”

“누나? 내가 눈치가 없다고? 눈치하면 이정후, 이정후하면 눈치야. 내가 눈치 빼면 시체인데. 이 사람들이.”

“형이 좀 예민한데 둔하고 둔한데 예민하고 그렇지.”

“좀 그런 부분이 있긴 하죠.”

“섀넌까지?”

“하하하하”

그렇게 한바탕 웃음꽃이 피고 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뒤에서 서서 멀뚱히 서 있는 정후네는 자연스럽게 자신들 근처로 온 다크엘프들의 채근에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산양을 타고 다니네요.”

“여기에선 산양이 곧 재산이며 운반도구이자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죠.”

산양을 타고 가던 한 남자가 정후의 말에 대답해줬다.

“브라이스, 잡담은 적당히 하고 먼저 마을로 가서 버크랑 그 친구들이 찾아왔다고 알려.”

“네!”

앞서 가던 자이온의 명을 따라 브라이스라는 남자는 대답하자마자 산양을 타고 거침없이 눈발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와, 빠르네.”

“산양 타는 거 처음 보나?”

버크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자이온이란 남자의 질문에 버크를 제외한 정후네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이곳에선 산양이 없이는 생활이 안돼. 생활이. 마실 것, 먹을 것, 입을 것 등등 생활 전반에서 산양의 존재가 이들을 뒷받침하지.”

버크가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설명을 해주자 옆에서 코엘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산양을 타고 오는지도 기억을 못하셨어 그래?”

“하하하, 너무 오래 돼서 그렇지. 자네도 잘 알잖나. 우리같이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이 잘 안나고 그런 거.”

“버크, 옆에 계신 엘프 분이랑 친구인 것 같은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지?”

“이런! 내 정신 좀 봐. 서로 소개도 안 시켜줬군. 이쪽은 순서대로 코엘, 드마코, 빅터, 섀넌, 정후, 그리고 정후의 동생 지후라고 하네. 이쪽은 고산지대에 사는 다크엘프 일족에서 경비를 책임지는 경비대장 자이온과 그의 부하들이자 동료인 잠파, 라모, 아왕이라고 하지. 아까 먼저 간 남자는 브라이스고.”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하면서 통성명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후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버크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라모’라는 홍일점 다크엘프에게 잠시 향했다.

버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오랜만에 만난 자이온과 흥겨운 대화를 계속 했다.

“영감, 자긴 죽을 때까지 혼자일 것 같다며 외롭다고 하더니 여기에 짝이 있었구만?”

“그런 거 같죠?”

“부단장님께서 이전에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는데 흠.”

“재주도 좋아. 이런 곳에서 썸도 타고.”

“아저씨, 현역이셨네.”

소곤거리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나머지 엘프들의 귀에 정후네끼리 나누는 대화가 안 들릴 리도 없었다.

“라모, 적당히 해라.”

“이렇게 옆에서 내가 티를 내지 않으면 마을에 가면 어떤 것들이 또 우리 버크 옆에서 또 꼬리칠지 몰라. 이전에 버크가 이곳을 떠난 것도 분명히 그 기지배들때문이라니까.”

“오랜만에 꿈에 그리던 정인(?人)이 나타나셨다고 눈에서 꿀이 아주 뚝뚝 떨어지시네.”

“쓰읍, 버크는 딱히 너랑 그런 느낌 아닌 것 같은데?”

“(아왕, 니들이 요즘 맞을 일이 없었지? 이따가 따로 푸닥거리 한번 할까?)”

라모가 빙긋 웃으면서 복화술을 전개하자 나머지 3명은 더 건드리면 안되겠다 싶어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11명의 인원이 마을에 도착할 때쯤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눈이 걷혔고, 마을 앞에는 100명은 되어 보이는 엘프들이 나와 있었다.

“와아, 많다.”

“고산지대에 사는 엘프들 중 가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엘프들을 보긴 했는데 이렇게 많은 건 나도 처음 본다.”

정후는 양털로 짠 옷을 입은 엘프들을 보고 있으니 신기해졌다. 다크엘프의 후예들이라는데 자신이 알고 있던 그림우드라든가 빅터와 다르게 오히려 자신이나 동생의 피부색과 비슷한 갈색빛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일부에게서 털모자 옆으로 드러나 있는 뾰족하니 서 있는 귀만 아니라면 아시아의 어느 외국에 온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것 같았다.

“버크 아저씨 왔다고 저 사람들이 다 나온 거야?”

“에이, 설마. 간만에 외부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런 거 아닐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니었다. 모두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이들과 아저씨의 인연이 결코 얕은 인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버크는 정후의 옆에 다가와 여기 오기 전에 따로 챙겨뒀던 물건들을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요?”

“괜찮네. 이들이 세상에 나갈 리도 없지만 이들은 남의 것이라고 탐하고 그런 사람들이 아니야. 좋은 게 있으면 같이 나누고, 노인과 어린이들을 먼저 챙기는 순박한 이들이지.”

버크의 말에 원래대로면 지하도시를 방문했다가 내려가는 길에 들러 이들과 만나려고 준비해둔 선물들을 한가득 쏟아내자 모인 엘프들이 크게 놀라워했다.

"오오오오!"

"대단해!"

“친구들! 그대들을 위해 내가 준비해온 선물일세! 하하하하하하."

크게 신이 난 아저씨의 옆에서 꺼낸 선물들을 보던 자이온은 똑같이 큰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물건들을 따로 챙겨 마을 공동창고에 옮기라고 지시를 내렸다.

“우리의 친구 버크가 큰 선물을 준비해왔군. 이럴 게 아니라 오랜만에 온 친구와 손님들을 위해 축제를 벌이도록 하지. 산의 신도 손님이 올 걸 알았는지 이토록 맑은 날을 준비해두셨군!”

“축제다!”

“야호!”

과연 자이온의 말처럼 방금 전까지 언제 눈발이 날렸나 싶을 정도로 화창해진 산의 맑은 날씨에 산 사람들은 크게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여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후와 나머지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그들과 함께 준비를 하려고 하자 앞서 뛰어나갔던 브라이스가 언제 왔는지 아왕, 잠파와 함께 막아서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이곳에선 손님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준비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돼. 그게 예의니까. 날 따라들 오라고.

버크가 이곳의 예의에 대해 설명을 해주곤 웃으면서 자이온, 라모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할 때면 쓰는 마을회관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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