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158화지하도시 생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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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둥 살둥 뛰어다니고 지쳐 잠드는 동생과 다르게 나에게 생텀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평화로워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섀넌과의 알콩달콩한 연애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지후가 말을 타는 법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선 누군가 말을 양보해줄 필요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섀넌이 지후에게 자신의 말을 양보하면서 말타기를 익히게 해줬고, 섀넌은 내 앞으로 오게 되었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표정이 바뀌었는지 드마코 형이 와서 시비 아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고 있냐?”
“아니 뭐, 내가 웃긴 뭘 웃었다고 그래.”
“야, 드마코, 커플 처음 봐? 왜 그러냐. 방해하지 말고 이리 와.”
“단장, 누군 맨날 시커먼 남자들만 앞에 태우고 가고 그랬는데 누군 아니니까 그렇지.”
“그것도 그렇네.”
한 형제가 거쳐간(?) 남자인 드마코 형의 불만이 내심 이해는 갔지만 지금 나의 행복을 다르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근데 너, 1절만 하는 게 좋을걸?”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우리 비서실장님 표정이 슬슬 나빠지고 있거든. 우리 업계에는 여자랑 아이와는 원한을 남기지 말라는 말도 있잖아.”
“크흠...아, 생각해보니 정리할 게 있었지...흐음”
드마코 형은 섀넌과 눈이 살짝 마주치더니 헛기침을 하곤 괜히 열심히 승마술을 익히고 있는 지후에게로 자리를 비켰다.
“정후 씨가 떠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이런 시간이 오려면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섀넌이 잡은 고삐를 같이 잡느라 자연스럽게 백허그를 하고 가게 되어 행복해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우릴 위해(?) 자리를 비켜주자 섀넌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섀넌은 긴 시간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난 정말 긴 시간이었어요.”
“그런가요?”
복사꽃같은 미소를 지은 섀넌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이끌려서 얼굴이 가까워지려고 하자 뒤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죽겠는 건 알겠는데 여기 있는 우리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골렘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
“그래, 형. 동생은 힘들게 승마술을 익히고 있는데 말이야.”
“나중에 따로 둘만 있을 때 분위기 잡는 걸로 하자~ 솔로인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
“정후 님, 매너 부탁드립니다.”
버크 아저씨와 빅터를 뺀 나머지가 한마디씩 던지자 난 얼굴이 당근처럼 익어버리고 고개를 푹 숙인 섀넌을 대신해서 고개를 꾸벅이며 미안하다고 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미안.”
“연애하는 건 좋은데 애정표현만 주의하자 이거지.”
덕분에 어색해진 우리들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온기만 느끼며 조용히 말의 투레질 소리를 듣고 가야했다.
“정후 군, 지하도시 생텀은 얼마나 큰가?”
버크 아저씨가 빅터와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버크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밥을 먹기 위해 멈추기 전까지 조용해야 할 뻔했는데 고맙게도 타이밍 좋게 질문을 해주셨다.
“지금의 엘븐하임하고 비슷한 크기였어요. 아무래도 드워프도 엘프도 함께 살아야 했으니까.”
“휘유, 그 정도면 엄청 컸는데?”
“당시 인구수로 따지면 인구대비론 그렇게 큰 곳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빅터의 말이 맞았다. 당지 화성에 있는 모든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이었으니 넓었을 리가 있었겠나. 그러나 사람들이 살기에 비좁다는 인상을 주거나 밀폐된 느낌을 줄 정도로 삭막한 공간은 아니었다.
여유공간을 중간중간 둬서 설계를 한 덕분에 커맨드 센터를 중심으로 하여 방사형으로 건설된 지하도시는 천장에 설치된 자연광 조명들이 시간에 맞춰서 조도를 달리하여 빛을 제공했고, 거기에서 나오는 자연광을 받아 광합성을 일으킨 식물들이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어 초록의 도시였다. 영화 속에 나오는 미래의 우주도시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쉬울 것이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드워프들은 두 여왕과 엘레네가 제공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지금의 엘븐하임보다도 발전된 물건들을 만들어냈고, 엘프들은 동,식물을 키워 나가면서 다양한 생물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들었지? 우리 드워프 선조들은 그때부터 남달랐구만.”
“이야기 못 들었어? 엘프 선조들이 생물을 다루는 기술이 저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거.”
코엘 누나와 버크 아저씨가 국뽕(?)에 빠진 것과 다르게 빅터는 다른 것이 더 궁금했던 것 같았다.
“엘레네는 누구입니까? 두 여왕에 대해선 짐작이 가는데.”
“엘레네요?”
마더 컴퓨터로서 두 여왕을 만들어 지금은 더스트라고 불리는 화성에 엘리스와 함께 인류의 씨앗을 퍼뜨린 존재라고 설명을 해주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신적인 존재군요.”
“보통 마더나 마더 엘레네라고 사람들이 불렀죠.”
엘레네의 이름은 내가 별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담아 지어줬는데 사람들은 엘레네에 대한 존경을 담아 앞에 마더라는 존칭을 붙여 부르곤 했다.
“정후 씨, 엘레네라는 이름이 정확히 맞나요?”
“네, 내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엘레네라고 불렀는 걸요.”
섀넌이 내 말에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이상해요?”
“네, 엘프 여왕들이 남긴 기록들에 따르면 마더라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긴 한데, 그 이름이 엘레네가 아니라 엘리스거든요. 엘레네라는 존재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엘레네가 아니라 엘리스요?”
“마더 엘리스는 하얀 여왕과 함께 엘프들의 죄를 징치하기도 하고, 엘프들이 엇나가거나 할 때면 등장해서 바른 길로 이끈 일종의 심판자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어요. 그나마도 그녀에 대한 기록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존재하질 않았죠.”
섀넌의 말에 사람들이 먼 과거의 신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신기해했다.
“왜 갑자기 사라진 거지? 엘프들을 징치할 정도면 꽤나 강력한 존재였을 것 같은데.”
“하얀 여왕님께 그 부분에 대해서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아서 저도 잘 몰라요.”
아바타를 잃어버리고 구체로만 남아 있는 하얀 여왕과는 제대로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을 아쉬워하면서 나중에 엘븐하임으로 돌아가면 내가 떠나고 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도대체 붉은 여왕 레드는 어디로 갔고, 엘리스는 어떻게 되었는지.
천천히 주변풍광을 구경하면서 말라야히마 산맥에 점차 우리는 가까워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말라야히마 산맥의 이름을 붙인 것이 엘리스라는 소녀였음을 이야기해줬다.
“그래서 이름 붙은 것이 말라야히마랍니다.”
“형이 딸처럼 여겼다는 애가 히말라야 산맥의 이야기를 듣고서 지었다고?”
“어, 엘리스랑 여기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그땐 이렇게까지 정상에 눈이 많이 쌓여 있지는 않았어.”
“만년설일세. 저기서 다크엘프들을 만났지.”
“예전에 말씀하셨던 다크엘프들이군요.”
빅터가 묘한 감상에 젖어 말라야히마 산맥을 쳐다봤다.
“빅터의 어머니인 마리아 그림우드가 속한 그림우드 일족은 산 아래에서 나타나 북부의 침엽수림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지.”
드마코 형이 감상에 젖은 빅터를 대신해 설명을 해줬다.
“빅터, 어머니의 친족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볼 생각은 안 해봤어요?”
빅터는 내 질문에 말없이 입을 닫고선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왜요? 다크엘프도 엘프하고 수명은 똑같다면 어머니의 친족들은 지금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요?”
“찾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약 찾으려면 얼마든지 진작에 우리들을 찾아올 수 있었을 겁니다. 굳이 우리들을 찾아오지 않는 이들을 친척이라면서 내가 먼저 찾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나직하게 내뱉는 빅터는 무표정한 얼굴과 다르게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와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왔었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들은 단 한번도 나를 찾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빅터에겐 미쳐서 굶어 죽은 어머니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실수했네요.”
“아닙니다. 예전에 정후 단원이 한동안 드마코가 연락이 안될 때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이야기는 와처를 통해서도, 그 이후의 세븐시티의 직원들을 통해서도 따로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그래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어머니의 가족들을 한번쯤 찾아보고 어머니의 가족들을 만나보고 싶었을 것이 분명할텐데도 빅터는 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상처가 얼마나 깊길래 그런 것인가 의문을 품고 있는데 엘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이미 찾아본="" 것="" 같습니다.=""/>
‘응?’
<방금 말했지="" 않습니까?="" 와처와="" 세븐시티의="" 직원들을="" 통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직접적으로="" 가볼="" 생각은="" 못했어도,="" 주변으로="" 흘러나오는="" 소식이나="" 자료들은="" 이미="" 찾아봤던="" 거겠죠.=""/>
‘찾아봤었던 건가?...’
가보지 않았을 뿐이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하지 못한 빅터의 진심을 살짝 엿본 기분이었다.
우리의 평화로운 여행도 점차 고지대가 가까워지면서 추워지고 있었다. 말들은 따로 물이 흘러 내려오는 강가 옆에 결계를 설치해서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게끔 해주고 먹을 걱정 하지 않게 건초더미를 산더미처럼 쌓아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우리는 산악인들처럼 정상을 향해 직접 걸어 올라가고 있단 말이었다.
“으으, 추워.”
“야, 롱패딩까지 입어놓고 춥긴 뭐가 추워.”
지후는 롱패딩 안에다 발열내의를 받쳐 입고, 그 위에는 산악인들이나 입을 법한 방한용품을 받쳐 입고 있었는데도 달달 떨었다.
“서러워서 마스터에 나도 오르던가 해야지. 지가 마스터라고 다 마스터인줄 아나.”
“뭐, 인마?”
생각해보니 빅터, 버크 아저씨, 코엘 누나, 드마코 형과 나는 마스터라 추위를 크게 타지 않다보니 가벼운 경량패딩과 거기에 맞춰 겨울옷으로 입은 상태였고, 섀넌은 살짝 추워하는 것 같아서 핫팩을 따로 챙겨주긴 했다.
“미안하다. 그건 생각못했네. 근데 지하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안 추워. 거긴 사람 살기에 최적화 된 온도로 세팅되어 있는 곳이라.”
“그래? 근데 거기가 만들어진 게 언젠데 아직까지 제대로 환기 시설이나 난방시설이 작동하고 있을까? 아닐 것 같은데”
달달 떨면서도 지후는 빨리 따뜻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아, 지후 말을 들어보니 지하도시를 가도 안 따뜻할 수도 있겠는데?”
나의 혼잣말을 들은 것인지 뒤에서 따라오던 버크 아저씨가 한 가지 의견을 냈다.
“정후 군, 여기서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동쪽으로 1시간 정도만 가면 다크엘프들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 있네. 잠시 거기를 거쳐 가는 건 어떻겠나? 예전에 내가 잠시 은혜를 입었던 다크엘프들을 만나서 주고 싶은 것도 있네.”
좋은 의견이었다. 나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림우드나 다크엘프들이라면 충분히 지하도시에 들어가서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들의 후예인 다크엘프들이 지금 뭐하러 이렇게 추운 곳에 마을을 짓고 사는지 사연이 궁금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지후야! 여기서 한시간만 동쪽으로 가면 마을이 있대!”
“가자! 빨리 가자!”
여태까지 바들바들 떠는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후가 위로 올라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뛰기 시작했다.
“야, 그쪽 아니야!”
“여기가 동쪽 아니야?”
혹한의 바람과 갑작스런 기상 변화로 인해 흩날리는 눈 때문에 코가 벌겋게 돼서 콧물을 훌쩍이던 지후는 엉뚱한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가려고 하길래 소리를 질러 붙잡아야 했다.
“왜 반대로 뛰고 있냐. 반대로 가야지. 반대!”
“오키, 알았으.”
“젊은 게 좋긴 좋네.”
“늙은이 같은 소리하긴. 형이 그런 소리할 나인가?”
“야, 너도 내 나이 되어 봐, 하루하루 아침이 다르거든?”
“마스터에 오른 인간이 시답잖은 소리는.”
“드마코~ 너보다 한참 나이 먹은 나나 버크는 이미 관짝에 들어가야 했겠다?”
“듣고 보니 그렇구만.”
“에헤이, 단장은 엘프잖아. 부단장은 드워프고, 알만한 사람끼리 왜 그래.”
드마코 형은 머쓱했는지 지후를 따라 움직였다. 코엘 누나는 도망치려는 드마코 형을 따라가며 계속해보라고 시비를 걸었다.
“가실 거면 빨리 가시죠. 날이 이상하군요.”
“원래 고지대에선 방금 전까지 날이 좋다가도 산의 여신께서 마음이 바뀌신 탓인지 이렇게 눈이 날리곤 한다네. 내가 깨달음을 얻었던 날도 이런 날이었지.”
투머치 토커 기질을 발동하려는 아저씨와 그 말을 이 추운 곳에서 서서 또 경청하려는 빠돌이(?) 빅터를 채근해서 드마코 형과 지후를 따라 가도록 빨리 움직이게 했다.
"우리도 가죠. 섀넌."
"그래요."
난 자연스럽게 앞서가는 단원들의 뒤에서 섀넌에게 추위를 해소시킨다는 목적으로 기운을 불어 넣어주겠다면서 섀넌의 손을 잡고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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