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7화 〉 157화­지하도시 생텀(1) (157/239)

〈 157화 〉 157화­지하도시 생텀(1)

* * *

내가 돌아왔다는 말에 찾아온 빅터를 비롯해서 엘븐하임에 왔던 버크 아저씨, 코엘 누나, 드마코 형, 섀넌 그리고 나와 동생 지후까지 이렇게 7명은 한동안 정비를 한 뒤 지하도시 ‘생텀’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형, 이게 모험이야?”

동생은 내가 처음 이곳에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눈치였다. 우리가 엘븐하임으로 오는 길과 다르게 생텀으로 가는 길은 제대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바이크가 아니라 말을 타고 가게 되었는데 지후는 아직 말을 타는 법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대부분의 시간은 드마코 형의 앞에 앉아서 가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드마코 형의 앞에 앉아서 가는 수치를 떨치고 싶다면 말타는 법부터 익히라고 충고해주자 그때부터 멈춰서 쉬는 동안에는 말 타는 법이나 체력훈련 혹은 모험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숙지하느라 바빴다.

“왜 벌써 지루하냐?”

“아니, 뭐 가도 가도 딱히 변하는 게 없네.”

“뭐, 몬스터라도 나왔으면 싶어?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어요. ”

이렇게 평화롭게 어딘가로 여행할 수 있는 자유와 주변의 풍요로운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동생은 몰랐다. 자꾸만 꼰대처럼 과거의 내 경험을 떠벌이는 모습을 보일까봐 자제해야만 했다.

그런 우리와 다르게 버크 아저씨는 오랜만에 자신이 그랜드 마스터로 올라갈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던 공간에 가게 된다는 것에 감회에 빠진 것 같았다.

“흐음,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그때랑 뭐가 달라졌을라나?”

“뭐가 달라졌겠어. 산꼭대기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게 그거지.”

코엘 누나는 뻔한 소리를 몇 번째하고 있냐면서 육포를 거칠게 뜯으며 버크 아저씨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여전하네.”

그런 둘을 보면서 오랜만에 가는 여행에 나도 묘한 감회에 젖어 들었다.

엘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잘못 나오는 바람에 섀넌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가 내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더니 앞뒤가 맞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은 했지만 자신이 삐졌다는 것을 자각하고 깜짝 놀라 부끄러워했다. 그 때 이후론 선뜻 내 옆에서 말은 안 걸고 조용히 코엘 누나가 건네준 육포를 뜯고만 있었다.

“정후 단원, 제 시조인 그림우드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그림우드요? 그림우드 씨? 흐음.”

막상 빅터의 앞에서 그림우드의 이야기를 하려니 빅터의 입장에선 조상님인 그림우드에 대해 빅터를 배려해서 존칭을 해야 하나 싶어 머뭇거렸는데 빅터는 편하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뭐, 정후 단원 입장에선 제자나 다름없는 존재였을텐데 편하게 말해도 됩니다.”

험프티와 그림의 자식으로 태어난 다크엘프 그림우드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자 주변 사람들도 말을 타고 가는 속도를 천천히 줄이더니 내 곁으로 모여 들었다. 험프티부터 시작된 나의 과거이야기는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도 계속되었고 그림우드를 학생으로 받아들인 뒤 다크엘프와 엘프의 분쟁으로 이어진 부분까지 오게 되었다.

“하아, 그게 다크엘프하고 엘프가 따로 살게 된 이유야?”

“엘프들도 착한 척, 고상한 척 하더니 드워프보다 못하구만.”

코엘은 드워프 세상에서 쫓겨난 왕따 주제에 어딜 함부로 엘프에 대해 떠드냐고 쏴붙일까 하다가 상대방의 약점을 가지고 받아치는 건 친할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는 정후의 조언을 받아들여 참고 넘기기로 했다.

“드워프 선조들은 참으로 옳은 일을 했군. 약자를 위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 다크엘프와 함께 싸웠다니. 아! 그래서 그랬나?”

“왜?”

“저번에 네가 그랬잖아. 다크엘프들이 내게서 드워프임을 느끼고 잘해줬을 거라고.”

“모르겠다. 우리 기록엔 그저 다크엘프와 드워프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라는 정도의 서술이 전부라.”

“그건 엘프들 입장에서 선조들의 과거라지만 솔직히 오픈하기엔 쪽팔려서 의도적으로 삭제하거나 줄여서 기술한 거 같네.”

“드마코~”

“왜? 아니야?”

드마코 형은 코엘 누나를 보곤 자신이 만든 캠핑용 꼬치 요리를 뽑아 먹으면서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맞아요.”

드마코 형의 말에 대답한 건 코엘 누나가 아니라 섀넌이었다. 섀넌도 꼬치를 양손에 쥐고선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엘프들이 저지른 과거의 과오(??)라고 이야기했다.

“섀넌?”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우리 선조가 저지른 잘못이라고 해서 무조건 덮어주고 싶진 않아요. 엘프 여왕들을 통해 대대로 내려오는 기록을 보면 그분들도 부끄러웠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긴 한데 모든 엘프들이 ‘차별’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다크엘프와 드워프와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반대를 했지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다수의 엘프들이 결국 두 부족을 추방하기로 결정했을 때를 우회적으로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것에 개탄하는 내용들을 적은 소수자 문건이 있었긴 했거든요. 처음 소수자 문건을 읽었을 땐 여기에 이게 왜 끼어있나 했는데 이제 이해가 가네요.”

섀넌의 발빠른 인정 덕분에 분위기가 크게 나빠지지 않자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빅터는 자신의 선조가 자신이 만든 검술을 배웠다는 부분에선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정후 단원에게 가르쳐 준 검술이 결국 나의 조상에게 전해졌군요. 묘합니다.”

“신기하네. 마치 정해진 역사같지 않아? 엘프인 나와 드워프인 버크의 검술의 장점만을 물려받은 하프 다크엘프가 정리한 검술을 다크엘프의 선조가 이어받았다는 게.”

“어라?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가르쳐줄 땐 스승의 조상에게 내가 검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에 이상한 책임감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그 이유가 이런 것이었다니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뭐야? 전수할 때 거기까지 생각하면서 가르친 거 아니야?”

코엘 누나는 정후가 이제 와서 놀라자 맥주를 흘릴 정도로 뒤집어지게 웃었다.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같은 엘프니까 엘프식 검술을 가르치면 잘 배우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다음날 일정을 위해 불을 끄고 정리를 한 뒤 예전처럼 트레일러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해보니 코엘 누나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떠나기 전에 내가 배웠던 모든 것들이 당시엔 나중에 언제 써먹을까 싶기도 했는데 결국은 잘 써먹었다니. 뭐라도 배우면 언젠가 쓰지 모르니까 허투루 하지 말라던 어머니 말씀이 맞았던 건가?’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나요?=""/>

잠들기 전에 잠깐 멍하니 곱씹고 있는데 엘리스가 말을 걸어 왔다.

‘아니, 잘 모르겠어. 근데 그건 왜?’

<언젠가 사용자가="" 지하도시로="" 가야만="" 했는데="" 제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렇게="" 알아서="" 스스로="" 가고="" 있으니="" 신기해서="" 그래요.=""/>

‘알아서 가게 해야 했다고?’

<네, 사용자가="" 과거에서="" 다시="" 돌아오게="" 된="" 이후로="" 있었던="" 일에="" 관련된="" 기록들이="" 거기에="" 남아="" 있거든요?="" 분명="" 이에="" 대해="" 궁금해할="" 거라는="" 내용이="" 담긴="" 코드가="" 있었습니다.=""/>

‘뭐?’

엘리스의 말은 잠에 들려고 해서 건성건성 대답하던 나의 잠을 확 깨우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사용자="" 이정후가="" 떠나고="" 나서="" 레드는="" 어디로="" 갔는지,="" 엘레네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코드네임에는="" 이름이="" 그렇게="" 적혀져="" 있습니다만.="" 제가="" 잘못="" 말한="" 건가요?=""/>

‘아니, 맞아. 그곳엔 레드도 있었고 엘레네도 있었지.

궁금했다. 내가 알던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게 되었을 때 현대사회에선 SNS를 통해 간혹 올라오는 사진들이라든가 영상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어떻게 지내는지 알거나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눠서 알 수 있었는데 이곳에 오고 나선 완벽히 단절에 가까웠으니까.

무엇보다 딸처럼 아끼던 엘리스가 잘 크긴 했지만 내가 이곳으로 온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무책임하게 도망친 것만 같아 죄책감같은 것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사용자가="" 궁금해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뭔가 알면 그냥 편하게 니가 말해주면 안돼?’

<안타깝게도 제겐="" 그="" 부분에="" 대한="" 메모리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거 참 간편하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께서 그런 건 복원이 안되나?’

정후가 비아냥거리면서 툴툴거렸지만 엘리스는 얄짤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복구를="" 시도하려고="" 몇="" 번="" 노력해봤지만="" 그="" 부분은="" 락이="" 걸려="" 있어서="" 아예=""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사용자를="" 생텀으로="" 인도하라는="" 지시와="" 함께="" 간략한="" 내용들="" 몇개가="" 담긴="" 것이="" 전부였습니다.=""/>

인공지능인 엘리스를 만난 순간부터 궁금하지만 선뜻 물어볼 엄두가 안 나던 것이 있었다.

‘도대체 널 나에게 보낸 사람은 누구야? 이젠 레벨도 상관없어졌고, 말해줄 수도 있지 않나?’

엘리스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해줄 내용이 딱히 없었다. 사용자 이정후의 레벨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부분에 대한 락이 풀렸을 때 자신에게 떠오른 메모리라곤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슬픈 눈을 한 노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제 얼마 뒤에 오는 ‘충’의 기간이 오게 되면 당신이 원하던 순간으로 당신을 보내줄 겁니다.”

<제가 원하던="" 순간입니까?="" 그런="" 기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제가 원하는 것으로 하기로 하죠.”

이 말을 할 때 나이든 노파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자신의 분석에 따르면 동시에 굉장히 프다고 해석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가야하는지를="" 알려줄="" 수="" 없습니까?=""/>

“엘리스가 원하던 순간으로 가게 되면 엘리스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남자를 만나 그 남자가 하고자 하는 바를 도우면 됩니다. 그게 당신의 할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했던 일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확실한 건 엘리스가 행복해졌으면 해요. 아, 당신이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당신이 만날 남자가 일정 레벨에 오르기 전까진 비밀입니다.”

<일정 레벨에="" 도달하는지는="" 어떻게="" 알게="" 됩니까?=""/>

“접촉하는 순간 관련된 정보가 포함된 부분의 정보가 떠오를 거에요. 스읍, 나이가 들어선지 이렇게 길게 말하려면 이젠 벅차네요. 첫 번째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언젠가 다시 만날 때가 오겠죠?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안녕이에요. 보고 싶을 거에요.”

알 수 없는 말을 듣고 인간들의 기준으로 먹먹하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을 때 자신은 암흑에 빠지고 눈을 떴을 땐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주우려고 하는 남자의 뒷통수를 향해서.

그리고 그 남자에게 들어가게 되었을 때 자신을 날려 보낸 노파가 말한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세세하게 떠올랐다.]

그 날 이후로 자신은 남자의 레벨이 오르게 되었을 때마다 지시 아닌 지시를 받았다. 지시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는 외부발설이 금지된 조건이 담긴 어느 소녀의 일기장에 남아 있었다.

‘왜 말이 없어?’

<그 부분은="" 외부발설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인 자신이 말하기엔 이상했지만 굳이 금지조건이 없어도 사용자 이정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칫, 뭐야 그게.’

엘리스에게 이래저래 물어봐도 그 부분에 대해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거나 발설이 금지된 부분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대답만 이어지자 정후는 이곳에 돌아오게 된 이후로 묻고 싶었던 또 하나의 질문을 묻기도 전에 스스로 단념했다.

인공지능 엘리스가 과연 자신이 알고 있던 소녀 엘리스와 이름이 같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