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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화 〉 156화­Back(2) (156/239)

〈 156화 〉 156화­Bac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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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원망의 눈빛을 한 섀넌의 표정에 뭔가 상황이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다른 것임을 뒤늦게 인지한 정후에게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둔탱이./>

‘뭐?’

“어쩌다가 외로워서 한, 두명 정도 썸을 탈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자만 만난 게 아니라 남자까지 만난 건가요?”

난 그제서야 이 자리가 만남과 화합의 정신을 담은 재회의 공간이 아닌 청문회의 공간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이상하게 말을 했다가 자칫 잘못하면 쓸데없는 오해를 만들 수 있음을 자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니요, 섀넌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말한 이름들은 내가 그곳에서 크로니클 단원들처럼 알게 되거나 악연으로 엮였던 이들까지 모든 사람들 중 일부를 말한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내 모든 걸 걸고서 다짐할 수 있어요.”

진심이 통한 것이었는지 섀넌은 나의 말을 믿어주었다.

“처음부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줄게요.”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가 빙의한 듯 펼쳐놓는 나의 모험담에 섀넌은 여러 가지 다채로운 감정의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아....”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이걸 어쩌죠?”

“왜요? 뭔데요?”

“날이 밝았어요...”

“어?”

나도 모르게 TMT가 되었었나보다 적당히 이야기하다 끊고서 원래 내가 생각했던 꿈같은 밤을 보냈어야 했는데 말을 하는 내가 몰입해서 과몰입을 하는 바람에 동이 트고 있었다.

“이런...”

나의 표정을 오해한 것인지 섀넌은 나에게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어머,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어요. 긴 시간동안 떠나있다 온 사람을 내가 붙잡고서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괜찮은데.”

“괜찮기는요.”

섀넌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이 이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도록 할테니 푹 자라면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어...어? 이게 아닌데...’

내가 눕는 것을 확인하고 따뜻한 눈으로 보던 섀넌은 잘 자고 일어나면 침대 옆에 있는 긴 줄을 당기면 될 것이라고 알려 주고 자리를 비켜줬다.

“하, 왜 또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이런 걸="" 사필귀정(?必??)이라고="" 표현하던가요?=""/>

“넌 그동안 어디 갔다가 이제 와서 찾을 땐 한마디 대답도 없다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거야.”

<항상 당신="" 옆에="" 있었지="" 않았습니까?=""/>

“아니었거든?”

엘리스가 잠시 대답이 없더니 뭔가를 알았는지 나중에 설명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왜 나중이야?”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그동안 쌓여 있던 긴 시간의 정신적 피로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엘리스가 왜 그동안 대답이 없었던 건지 궁금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푹="" 쉬고=""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을="" 그럼.=""/>

엘리스도 섀넌과 다를 바 없이 대화를 차단하는 바람에 멍해진 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잠에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 그렇게 오래 잔 것 같지 않았는데도 자고 일어났을 때 이상하게 엄청 개운하고 밖에선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고 있는 그런 느낌.

보통 그런 느낌이 평일에 들었다면 100% 출근이든, 등교든 지각이었겠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서서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얼마나 잔 거지?”

<정확히 3일하고="" 12시간="" 정도="" 잔="" 것="" 같습니다.=""/>

“하루가 아니라고? 3일? 진짜로?”

<사용자 이정후가="" 일어났는지="" 섀넌이="" 몇="" 번이나="" 간단한="" 식사를="" 들고와서="" 확인했지만="" 그때마다="" 사용자가="" 자고="" 있어="" 대답을="" 못한="" 것을="" 감안하면="" 정확히="" 3일하고="" 12시간="" 7분이="" 지나가고="" 있군요.=""/>

“아니, 말도 안돼!”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축제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예전의 엘븐하임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도 그렇게 자주 볼 수 없다던 축제 구경 좀 하고 싶었는데!”

100년만에 한번 찾아오는 축제의 기회를 이렇게 어이없이 자다가 놓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섀넌이랑 손 꼭 잡고 돌아다니다 사진도 좀 찍고 동생한테 브이로그도 좀 찍어달라고 하려고 했던 계획이 모두 어그러져버렸다.

“망했네.”

그렇게 내가 좌절하고 있을 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디어 일어났군요?”

섀넌은 이번에도 자고 있으면 일부러라도 깨우려 했다면서 화장실도 가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고 잠만 자서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어 있긴 했나 봐요.”

“엘프의 비법이 담긴 침실이라서 더욱 그러했을 거에요.”

“비법이요?”

“네, 수면을 하는 동안에 긴장을 풀고 잘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연 방향제가 여기저기 놓여져 있거든요.”

“킁킁.”

섀넌을 안으면 이상하게 이완이 되는 느낌이 좋았는데 그게 이 냄새였나보다.

“배고프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속이 편한 야채 스프랑 기운을 북돋아줄 약차(藥)를 끓여 왔어요.”

섀넌의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치 홀린 것마냥 침대에서 일어나 티테이블에 앉았다.

“섀넌은요?”

“지금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거든요. 벌써 어머니랑 먹었죠.”

“아...그래서.”

섀넌은 차가 따뜻할 때 먼저 마시라면서 찻잔을 들어서 권했다.

“이건?”

내가 선물로 보내준 다기(茶?) 세트 중의 하나였다.

“맞아요. 정후 씨가 보내줬던 거.”

약차는 그렇게 쓰지 않고 입안을 개운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오장육부에 깊게 스며들어 잠든 몸과 정신을 깨워주는 것만 같았다.

“좋네요.”

“그쵸?”

섀넌은 스프도 식기 전에 떠 먹으라고 하면서 스푼을 챙겨 줬다. 마치 오랜만에 어린애로 돌아가 엄마의 도움을 받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 들어 묘했다.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씻고 준비해둔 옷을 입고 나오도록 해요.”

“사람들이요?”

“크로니클 단원들이랑 동생 지후 씨가 정후 씨가 깨어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잠에서 깬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 이 순간이 꼭 현실같지 않고 꿈처럼 느껴지는 느낌이 약간 있었는데 그 말에 내가 돌아왔음을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었다. 어서 빨리 동생하고 크로니클 단원들을 보고 싶어 허겁지걱 스프를 마시듯 들이켜자 섀넌이 그러다 체한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가서 씻으면 되죠?”

“따라와요.”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에 들어가서 우리 회사에서 만들어진 최상급 샤워기를 통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있자니 마치 영화배우가 된 것처럼 잠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며 멋있는 척하면서 온수를 만끽했지만 밖에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게 아니지.”

그렇게 샤워를 하고 샤워 타월로 몸을 닦고 나오자 엘프들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엘프 특유의 복장이 놓여 있었다.

“섀넌이 준비해둔 옷인가?”

옷을 모두 입고 나오자 섀넌이 기다리고 있었다.

“멋있네요.”

“그래요? 좀 어색한데요.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니라서 그런지.”

섀넌이 날 한바퀴 빙 둘러보고 나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저기 옷매무새를 살짝 만져주곤 사람들한테 가자고 했다.

“가요.”

팔짱을 끼는 섀넌을 잠깐 쳐다봤지만 섀넌은 얼굴만 살짝 빨갛게 변했을 뿐 턱을 빳빳이 들고 앞을 쳐다보며 나가자고 했다.

“그래요, 가요.”

문을 열고 섀넌의 에스코트를 받고 이동한 그곳엔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있었다.

“아니, 나만 빼놓고 이렇게 자기들끼리만 먼저 놀면 어떻게 해요?”

“그거야 누가 잠만 쳐 자느라 안 왔으니까 그렇지.”

“와아, 이게 누구야? 우리 형 맞아?”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환영식에 기분이 들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사이로 우리는 움직였다.

“형, 꼭 결혼하는 사람 같다.”

“뭔 소리야.”

뒤늦게 알았지만 알고 보니 섀넌은 환영식을 계기로 주변에 공식적으로 내가 자신의 연인임을 알리려는 의도를 담아서 엘프의 전통복장을 입혀 내보냈던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있자니 내가 돌아왔다는 인식은 점차 강해졌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준비된 음식을 허겁지겁 입으로 넣고 있는데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정후 단원, 잘 갔다 왔습니까?”

“빅터 교관!”

오랜만에 만난 빅터 교관과 악수를 하고 그의 눈빛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빅터와 인사를 나누고 나서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음식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그림우드?’

빅터의 눈매는 내가 가르쳤던 제가 그림우드와 많이 닮아 있었다. 섀넌의 모습은 엘레네와도 닮아 있었고.

그제서야 난 내가 그냥 떠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인연을 맺고 있었던 사람들과 모두 헤어져서 이 시간대로 넘어왔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보, 멍청이. 어떻게 엘리스까지 모두 잊고서 좋아하기만 한 거야.’

<부르셨습니까?/>

‘아니, 너 말고 다른 엘리스.’

<얼마 전="" 밤새="" 사용자가="" 이야기했던="" 과거의="" 일에="" 나오는="" ‘엘리스’입니까?=""/>

‘그래, 내 딸 엘리스...’

눈을 감으니 울면서 나를 배웅해준 엘리스가 떠올라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형...형!”

“왜?”

“입에 잔뜩 음식 물고서 왜 질질 짜고 있어.”

“어?”

어느새 사람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즐거워하던 사람이 울면서 음식을 꾸역꾸역 씹고 있으니 얼마나 이상해보였을까. 동생은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서 헐레벌떡 뛰어와서 내게 말을 건 것이었다.

“동생아, 내 딸...내 딸 엘리스는 잘 있을까?”

“뭐? 형한테 딸이 생겼다고?”

“정후 씨? 그 이야긴 못 들은 것 같은데요?”

등 뒤가 허전한 것이 매우 시린 느낌이 들어 감히 뒤를 돌아볼 생각을 못했다.

“좀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엄마한텐 뭐라고 말하냐. 형한테 딸이 생겼다고 말하면 기절하실 것 같은데.”

가만히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옆에서 초를 치는 동생의 한마디는 임계점을 맞아 불타기 직전의 기름통에 날린 한 발의 탄환과 같았다.

“아 쫌!”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나서 지후에게 짜증을 내버렸다.

“크크큭.”

“웃어?”

“형 성격에 퍽이나 딸을 낳았겠다. 안 봐도 거기에 있는 어떤 여자애랑 인연이 닿아서 딸처럼 애지중지 키웠겠지.”

“네?”

섀넌이 지후의 말 한마디에 이상기온 상태로부터 해제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형은 옛날부터 길에 버려진 고양이라든가 아줌마들이 겨울에 판촉물같은 거 나눠주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잖아. 형이 섀넌같은 여자친구 두고서 바람을 피웠을 리도 없고 뭐 안 봐도 뻔하지. 맞지? 엘리스라고 말한 사람이 친딸은 아닐 거잖아.”

“어, 친딸은 아닌데 친딸처럼 지냈지.”

화를 낼 타이밍을 놓친 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지후의 질문에 답했다.

“한번 털어놔 봐. 사람들도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게...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크로니클 단원들도 와서 한마디씩 던졌다.

“지후가 먼저 선수를 쳤네. 나도 궁금했는데.”

“정후군, 뭔가 많은 일도 있었고, 성장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좀 해주지 그러나.”

드마코 형도 어디선가 훈제로 구워진 닭다리를 들고 와서 뜯으며 맥주를 주고선 사람들의 궁금증도 좀 풀어주라고 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한참을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다가 보니 잠시 ‘지하도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알라야히마(Alayahima) 산맥 높은 곳에 고대인들이 지하도시를 만들었단 말인가?”

“네, 거기서 한동안 물이 빠져서 나갈 때까지 지냈죠.”

“이건 대륙에서 기념비적인 발견이 될 거야!”

버크 아저씨가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엘프와 드워프가 한때 같이 살던 그 공간이 어딘지 정확히 기억하냐고 물었다.

“크게 지형만 안 바뀌었으면 제가 안내해줄 수도 있을 걸요?”

“그렇단 말이지.”

“야, 가자.”

“어딜요?”

“어디긴? 누구도 찾지 못하고 전설 상의 기록으로만 일부 전해지는 킹덤의 비밀도시 ‘생텀’ 이지. 니가 말한 내용이 틀림없다면 내 기억으론 거기가 ‘생텀’이 맞을 거야.”

“생텀이요?”

“인류의 성스러운 발현지 ‘생텀’에 대해서 그저 막연히 전설로만 내려져오고 있었는데 니 말대로면 그게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란 거잖아.”

“내가 직접 설계에도 참여했던 걸요.”

“그렇단 말이지?”

코엘 누나와 버크 아저씨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더니 다른 크로니클 단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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