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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화 〉 155화­Back(1) (155/239)

〈 155화 〉 155화­Ba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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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불빛과 함께 방금 전에 떠났던 정후가 불과 몇초 만에 돌아왔다. 떠날 때와 다른 옷을 입고서.

“형?”

“돌, 돌아온 건가?”

방금 전까지 눈물의 상봉을 하고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정후씨!”

“뭐 두고 간 거 있어? 옷은 왜 바꿔 입었어?”

“정후 군?”

“정후야!”

섀넌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 다시금 나타난 정후의 모습에 이젠 떠나지 않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가지며 정후의 품에 안겼다.

정후도 섀넌이 품에 안겨 섀넌에게서 나는 체취를 맡으며 떠날 때 자신을 배웅해줬던 사람들과 만나자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돌아왔구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섀넌을 꼬옥 끌어안은 정후는 눈을 감고 복귀의 순간을 음미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정후의 기세라든가 분위기가 바뀐 것을 보고 섣불리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눈치만 보면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데 정후가 눈을 뜨고 품에 안은 섀넌을 놔주면서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모두들. 다녀왔습니다.”

“방금 전에 갔잖아?”

자신의 옆에 서서 어벙한 표정을 짓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나한텐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거든?”

“에이, 형이 사라진 지 고작 몇초도 안 지났어, 저기요? 기계 고장난 거 아닌가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지후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정후의 말이 사실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했다.

“얼마나 되는 시간이었지?”

“네, 아저씨. 정확히는 한 아이가 어른이 될 정도였다고 할까요?”

자신도 모르게 어릴 적에 만나 훌륭히 잘 자란 엘리스를 떠올리며 대답하자 뇌파를 통해 엘리스가 대답해왔다.

<인공지능 엘리스가="" 사용자="" 이정후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어?”

과거로 떠난 동안 몇 번이나 말을 걸어봤지만 엘리스로부턴 아무런 반응도 얻을 수 없었다.

“환청인가?”

<환청이 아닙니다.="" 현재="" 이정후의="" 바이탈="" 반응은="" 정상입니다.="" 환청="" 혹은="" 환시를="" 경험할="" 정도의="" 심리적="" 상태="" 육체="" 상태가=""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맞구나!’

반가웠다. 항상 자신의 옆에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해준 덕분에 지식검색보다도 더 자신을 잘 도와주는 엘리스의 부존재는 넘어간 뒤로 한동안 적응을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넌 나중에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안 그래도="" 사용자의="" 복귀="" 이후="" 드릴=""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눈물의 환송식이 엉겹결에 동시에 복귀식이 되어 버렸다. 당황하는 모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으로 나오니 축제가 한창이었다.

“와, 엘프들 정말 많네.”

정후는 과거 엘븐하임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진 현재의 모습에 자꾸만 과거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어릴 적에 살던 아파트에 다시 돌아갔을 때 느꼈던 기분이 지금 정후가 느끼는 느낌과 비슷했다.

과거에 반짝거리며 새것들로 가득 찼던 거리가 빛이 바래고 나무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들을 보며 감회에 젖어 있으니 섀넌이 말을 걸어 왔다.

“정후 씨, 많이 힘들었죠?”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고 조큼 힘들었어요.”

그립고 그리워하다 어느 순간부터 꿈에서조차 보기 힘들 때면 찍어뒀던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던 섀넌이 눈앞에 있자 정후는 자신도 모르게 섀넌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섀넌은 어제와 다르게 무척이나 적극적인 정후의 스킨십에 내심 좋으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보고 싶었어요, 섀넌. 무척이나.”

낮고 감미롭게 사랑을 고백하는 정후가 눈을 감으며 점점 가까이 오자 섀넌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그렇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한참을 키스를 나누었다.

<사용자님, 예약된="" 대화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였는지 엘리스가 재촉을 해왔다. 일부러 한동안 자신이 수십번도 더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던 엘리스를 향한 심통을 드러내며 못 들은 척하고 키스를 계속하고 있는데 엘리스가 알람음을 내면서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아, 왜! 오랜만에 여자친구랑 키스 좀 하겠다는데.’

<연인과의 애정행각을="" 방해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서요.=""/>

그 말에 입을 떼고 주변을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오후였는데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 있었다.

“어우, 형씨. 언제 끝나나 하고 지켜보고 있었네. 이봐들,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은데? 각자 10실버씩 가져오라고.”

“에이 10분만 더 하면 내가 이기는 거였는데!”

“아니 1시간만 하고 말지 알았지. 대단한데, 인간이 그렇게 길게 키스하는 건 처음 봤어.”

“자기도 좀 보고 배워라. 키스를 할 거면 저렇게 길게 하라고. 엘프답지 않게 맨날 짧게 10분, 20분만 찔끔찔끔.”

“에이, 장모님 따님이랑 어떻게 그럴 수가 있.. 자기?”

“집에 가서 봐.”

“여보, 왜 그래? 화났어? 화난 거 아니지? 왜 갑자기 화가 났어?”

“내가 왜 화가 난지 몰라?”

“어? 음...”

한쪽에서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엘프가 자리를 떠나가자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엘프가 황급히 쫓아갔다. 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축제의 분위기에 맞게 내기까지 진행했는지 여기저기서 돈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정후 씨, 우리 가요.”

정후의 손을 꼭 붙잡은 섀넌이 평소와 다르게 홍조로 가득한 얼굴로 어서 이 자리를 비키자고 했다.

“어? 어? 그래요.”

자연스럽게 섀넌의 손에 이끌려 가자 다시금 주변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엘프가 아주 적극적이시구만 그래! 아주 보기 좋아!”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손을 꼭 잡고 자리를 떠나는 연인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던 남자의 뒤에 한기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고개를 돌려봤다.

“좋긴 뭐가 좋아?”

“여보?”

“왜 안 오나 한참을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내기나 하고 있었구만? 그 손에 든 거 그거 뭐야?”

내기에서 이긴 쪽이었는지 손에 실버가 잔뜩 든 주머니를 들고 있던 남자가 황급히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선을 피해 등 뒤로 숨겨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뭘 몰라? 오른 쪽에 있는 거 내놔 봐.”

강제로 오른쪽 손을 잡아 빼서 쥐고 있던 주머니를 열어본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와아 이게 얼마야? 이거면 우리 집에도 LED 등이랑 이번에 새로 나온 샤시라는 창호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보태면 좋겠다, 그렇지, 여보?”

“여보? 여보?”

텅 비어버린 손을 허우적거리며 묵직했던 순간을 기억하는 남자가 미리 따로 챙기지 않은 자신의 멍청함을 후회하며 돈을 세며 행복해하는 부인을 보며 허망해하고 있는데 돈을 다 셌는지 모두 주머니에 담고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으며 꺼낸 부인이 소리를 낮춰 남자만 들을 수 있게 귓속말을 해왔다.

“오늘 밤은 기대해도 좋아. 자기~”

“여보? 뭘 기대해? 어?”

“에이, 모르는 척은~”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상냥함이 담긴 부인의 귓속말을 오랜만에 들어본 남자도 부인의 손에 이끌려 끌려가자 내기에 참여한 많은 유부남이 오늘 한 가장이 느꼈을 허망함과 밤늦도록 계속될 남편의 고됨을 애도하며 끌려가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 들고 있던 술잔을 들이켰다.

‘비상금까지 털리고, 추가 서비스 타임이라니. 그대를 위해 한잔을 바치리라.’

끌려가는 남자의 빈손을 본 유부남들 중 돈을 딴 이들은 끌려가는 남자를 보며 타산지석(?山之?)으로 삼아 황급히 어디에 숨길지를 떠올리며 고뇌에 빠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슬픈 가장의 눈빛을 보고서 오늘 딴 돈은 모두 다 써버리고 돌아가겠다면서 술을 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들이 떠난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는 정후는 자연스럽게 섀넌의 손에 이끌려 둘이 함께 밤을 보낸 섀넌의 방으로 돌아왔다.

‘오오, 드디어 역사가 이루어지는 건가?’

갑작스레 기절하는 바람에 잠만 자버린 과거의 자신을 욕하던 나날이 며칠이었던가. 꿈 속에서조차 매번 운명의 순간에 다음 순간을 느끼지 못하고 깨버리는 날이면 그날 하루는 아쉬움에 몸부림치곤 했었는데 10년을 넘게 독수공방의 세월로 보낸 자신의 노력이 보답받는 건가 싶은 정후가 기대에 차 있었다.

섀넌은 무의식적으로 당황해서 정후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없을 법한 공간을 찾다가 자신의 방으로 찾아오면서 이 손을 언제 놓아야 할지 타이밍을 잡기가 애매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볼은 이미 식어버렸고, 오는 동안 정후의 거칠어진 손에서 느껴지는 켜켜이 쌓아진 세월의 징후에 묻고 싶은 내용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10여년이 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전부 듣고 싶은 호기심을 꾹꾹 참아 방에 도착하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섀넌이 방으로 들어와 손을 놓자, 정후는 아까의 분위기와 자신이 떠나기 전날 나누었던 로맨스를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에 그윽한 눈빛으로 섀넌을 바라보았다.

“섀넌...”

오는 동안 섀넌과 애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망상에까지 빠졌던 정후의 환상은 섀넌의 한마디에 깨져 버렸다.

“정후 씨,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구요?”

“그래요, 그 시간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자신을 손을 다시 잡고 거칠어진 손을 주물럭거리는 섀넌의 모습에 정후는 마음속으로 ‘tonight is the night'을 외쳤지만 신은 정후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섀넌은 다른 의미로 이해한 것 같았다.

“흐읍.”

무언가 각오를 한 눈빛으로 심호흡을 마친 섀넌은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시간은 많아요, 섀넌. 우리 좀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아 대화를 하는 것이 차후의 포석을 위해서 좋을 거라고 짧은 시간에 계산해낸 정후가 자신의 대답을 속으로 자화자찬하는 것과 다르게 섀넌은 고개를 끄덕이고 티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맞아요, 시간은 길죠. 궁금한 것이 있어요.”

섀넌은 혹시라도 지금 자신이 하는 질문들이 정후로 하여금 너무 집착하는 여자로 비춰 보이진 않을까 싶었는데 정후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것 같자 자신이 너무 깊게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해할 수 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홀로 있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맞아요, 섀넌!”

정후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듯한 섀넌의 말에 고마워하며 섀넌의 차분해진 눈빛을 오늘 밤을 각오한 것으로 착각하고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요. 그곳에 있는 동안 누굴 만나거나 했나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 몰라요. 엘레네부터 시작해서 레드, 화이트, 험프티, 덤프티, 그림, 멜키오르, 발타사르, 카스파르...”

각오는 했지만 정후의 입에서 쉼없이 터져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에 섀넌이 정후가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자만 만난 게 아니야?’

“섀넌, 왜, 왜 그래요?”

섀넌이 갑자기 우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한 정후는 지금 상황이 무척 난감했다. 그저 이름만 듣고서 울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직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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