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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화 〉 154화­안녕,아빠(4) (154/239)

〈 154화 〉 154화­안녕,아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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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고="" 싶은="" 존재와="" 교감을="" 나누고="" 진심으로="" 변화를=""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 되길="" 빌어줄="" 수="" 있는="" 영혼을="" 가진="" 필요하다.="">>

세트의 말에 엘리스는 그게 뭐 어려운 것이냐면서 자신은 엘레네와 긴 시간 서로를 가족으로 여겨왔으며 엘레네가 인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세트는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았다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끝까지 들으라고 피식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변화를="" 원하는="" 존재인="" 엘레네를="" 대신해="" 니가="" 인공지능으로서="" 빈자리를="" 채워줘야="" 해.="" 그게="" 차원이="" 용납할="" 수="" 있는="" 대가다.="" 완벽히="" 등가교환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얼추="" 서로의="" 그렇게="" 채우는="" 것이지.="" 다만="" 존재의="" 위치를="" 바꾼="" 순간="" 교환을="" 해준="" 당사자는="" 계약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철저히="" 살아야="" 하는="" 첫="" 번째="" 제약이고="" 두="" 제약은="" 엘레네가=""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살다가="" 죽어서="" 언젠가="" 엘레네의="" 영혼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섭리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는="" 순간까지="" 잃은="" 상대방이="" 의지를="" 바꾸지="" 않고="" 계약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약이="" 확정적으로="" 이루어진다.="" 되면="" 끝이="" 나고="" 대신했던="" 인간은="" 되찾고="" 영혼의="" 지위를="" 되찾게="">>

세트의 말은 아무리 엘레네를 사랑한다고 해도 엘리스로서도 선뜻 하겠다고 답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생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던 입장이었다. 얼마나 긴 시간을 버텨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엘레네의 말은 처음 자신이 돕겠다면서 선뜻 나선 것과 마음을 다르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알고="" 피노키오="" 프로젝트를="" 사실상="" 종료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자발적인="" 의사로=""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며="" 이렇게="" 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거니까.="" 엘리스에게="" 요구를=""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저도 당장 뭐라고 말을...끙... 잘 모르겠네요.”

그날의 만남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엘리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말조차 부담이 될까 싶어 엘레네는 말을 더 하지 못했고, 엘리스는 하겠다고 바로 답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엘레네가 실망할까봐 마음이 쓰여서.

세트는 자신이 뭐라고 하는 것이 둘 사이에 나올 자연스런 결론을 해칠까 저어하는 드라마 중독자처럼 그저 그런 둘의 모습이 흥미진진할 뿐이어서.

엘리스의 고민의 밤은 몇일동안 계속되었다.

“마더를 사랑하긴 하는데,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걸까? 얼마나 될지 기약이 없는데? 만약 긴 시간동안 기억을 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계약에 관한 사항을 언급하면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어져서 계약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긴 시간 인류를 이끌어 온 엘리스는 마법제국을 연 시조로서 모든 명예와 권력을 쥐어 보기도 했고,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업적과 성취를 누리고 이젠 그저 한명의 사람으로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다가 갑자기 찾아온 기회 아닌 기회에 생각이 길어졌다. 그렇게 결정이 길어질 때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싶어진 엘리스는 어차피 이제 죽을 날도 그렇게 머지않았는데 두 여왕의 경고따위는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으며 때마침 찾아온 ‘충’의 기간을 맞이하여 과거로 넘어갔다.

이제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아저씨를 만나서 크로니클과의 모험 이야기를 듣게 된 엘리스는 문득 아저씨가 떠나고 나서 계속되었을 아저씨와 크로니클과의 모험이 궁금해졌다. 자신은 평생을 자신의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았지만 아저씨와 그 동료들의 삶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아저씨, 동료들과의 모험을 하러 다닐 때가 그렇게 그리워요?”

“지나고 나니까 뭣 모르고 따라 다녔던 때긴 했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서로 가족과는 다른 인연을 맺게 되고 하는 것들이 지나고 나니까 너무 좋더라고. 더구나 이제는 어지간해선 누가 날 쉽사리 해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잖아. 돌아가게 되면 어차피 내가 해야할 기반들은 이미 다 쌓아 놓은 상태니까 이젠 실컷 모험을 해보고 싶어. 내가 뿌린 씨앗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상상해보고 현실로 직접 목격해보는 기쁨도 누리고 싶고 말이지.”

미래를 이야기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눈이 부셨다. 자신의 삶은 설령 잇더라도 즐거울 것 같지 않은데 아저씨의 삶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영상으로 보거나 상상하는 것과 비교해보자면 여행하면서 마주하는 현실은 너무나 달라.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고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냄새라든가 풍광들을 겪다 보면 내가 점점 성장하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리고 내가 가진 고민들이 나에겐 너무나 커다란 장벽이고 괴로움이 되는데 다른 곳에 가면 너무 쓸데없는 고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말이지. 근데 여기는 이제 막 사람들이 늘어나고 시작되는 순간들이라서 그런지 어딜 가도 자연 풍광뿐이라 별반 차이가 없잖아. 어디에 뭘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했는지 모두 다 알고 있는 게 꼭 치트키를 치거나 에디터를 돌리고서 하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져. 그래서인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기에선 딱히 여행을 떠나보고 싶지도 않아.”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가 또 알람이 울릴 때쯤 심장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알람소리가 나서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자 아저씨는 다음에 또 오라고 했지만 이제는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왜 못 와?”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레드하고 화이트가 특히 주의를 주기도 했고 해서요.”

“그래?....아쉽구나. 이젠 너랑은 보기 어렵다고 하니까.”

“그래도 아저씨 옆엔 ‘어린’ 제가 계속 있을 거잖아요. 저기서 어떻게든 안에서 뭘하고 있나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가? 크크크. 그건 그렇네. 그래도 어린 엘리스와 다르게 나이든 엘리스는 대화가 통해서 이게 자식을 다 키운 느낌인가 싶고 그래서 좋았어.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보자.”

“다음은 없다는데두.”

정후가 엘리스가 한 말을 잊은 것인지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꺼내자 엘리스는 자기가 한 말을 흘려들은 건가 싶어 못을 박았다.

“엘리스, 내가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었어. 어떤 대단한 신념도, 어떤 치밀한 계획도 변수를 맞이해서 변하곤 하더라구. 사람이 내뱉은 말이라는 건 더 변하기 쉬웠지. 그러니까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

정후는 그 말을 하고 엘리스를 꼬옥 안아준 뒤 손을 흔들었다.

“밥 먹자는 걸로 인사하는 건 아저씨답네.”

“그건 그냥 한국인 종특이야. 우리나라가 좋건 싫건 나도 한국사람이라.”

엘리스는 정후와의 마지막 대화를 듣고 돌아온 뒤 결정을 내렸다.

“절대적인 건 없다...내 삶도 이렇게 끝내야 한다는 걸로 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엘레네는 자신을 찾아온 엘리스의 굳은 표정을 보고 엘리스가 내린 결정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했다.

<엘리스.../>

“왜 그런 표정하고 있어? 얼마나 될지 모르는 긴 시간을 염원해온 인간이 될 기회가 온 거잖아. 잡아. 마더가 날 응원해줬던 것처럼 마더가 한번쯤 원하는 인생을 살아보기를 바래.”

아무것도 모르고 아장아장 기어 다니던 아이가 자라서 이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엘레네는 논리회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고마워요./>

“아저씨였다면 가족끼리 이런 걸로 일일이 고맙다고 하지 말라고 했을 거야. 가족이란 게 그런 거라면서”

<그랬을 거에요.="" 분명.=""/>

“다만 맹약을 이행하기 전에 준비해뒀으면 하는 게 있어.”

<어떤 거죠?=""/>

“엘레네가 인간의 삶을 살고 죽고 나면 긴 시간 기다려야 하잖아. 내게 있는 ‘시간이동 능력’을 아저씨가 주고 간 여기에 옮겨 담고 싶어.”

<여기에요?/>

“응, 그걸로 나중에 엘레네가 죽기 전에 날 아저씨에게 보내줄래? 엘레네가 다시 태어나는 그날까지 아저씨랑 같이 여행이 하고 싶어져서 말이야.”

<알았어요./>

며칠 간의 작업이 끝이 나자 엘리스에게 있던 시간이동능력은 사라졌고 엘리스의 손 안에 사파이어가 달린 보석 목걸이가 주어졌다.

“이게...”

<계산상으론 인공지능이="" 된="" 엘리스를="" 먼="" 과거로="" 날려="" 보내서="" 정후="" 씨와="" 만나게="" 하고="" 나면="" 1번="" 정도="" 더="" 사용가능할="" 거에요.=""/>

“그럼 목걸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마 여기에="" 남겠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트는 단정한 복장을 한 집사의 복식을 입고 차분하게 물어봤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났나?="">>

“그래, 엘레네가 인간이 되었으면 해.”

<<후회할 수도="" 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지 뭐.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인데 이제와서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인간은 이해할="" 수가="" 없군.="" 말처럼="" 쉽지="" 않을="" 거다.="">>

“원래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야. 몰랐어? 어차피 기억도 모두 사라진다면서. 미래의 내가 고생하는 거 현재의 내가 알 바야? 크크크”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목숨에 초연해지는 존재에겐 세트도 어딘가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알겠다. 맹약을="" 시행하지.="" 이걸로="" 이제="" 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그동안 고마웠어요.="" 세트=""/>

<<뭐, 나름="" 즐거웠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도="" 하고="" 체험들을="" 할="" 수도="" 있어서.="">>

세트가 맹약을 이루어주는 순간 인공지능으로서 인간이 되는 것을 축하해주러 온 레드와 화이트는 부러운 눈으로 엘레네를 지켜보았다.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부럽다는="" 감정일까,="" 화이트?=""/>

<결국 마더는="" 모든="" 인공지능들이="" 바라는="" 피노키오의="" 꿈을="" 이루었네.=""/>

두 인공지능이 대화를 하는 동안 사막을 연상케하는 밝은 갈색의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맹약은 시작되었다.="">>

한줄기 말을 남기고 세트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정말 사람이 된 건가?”

엘레네는 이전과 같은 육체인데도 자신이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느껴지는 감각은 좀 더 선명해졌고, 오감을 통해 외부에 대해 인식하는 영역은 예전보다 좁아져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패킷을 통해 전송되었을 수많은 정보들은 이제 없었다. 오직 자신의 오감만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유일한 소통 창구로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레네는 감격스러웠다.

“드디어...드디어!”

한참을 감격해하는 엘레네의 모습을 지켜본 뒤 레드와 화이트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꿈을 이루셨군요.=""/>

<어떤 느낌인가요?=""/>

“레드, 화이트. 미안하네 나만 이렇게 사람이 되어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아. 그리고 이 감정이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걸 알지만 벅차오르는 이 감정이야말로 인공지능과는 다른 것 같아.”

<미안해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감격해하는 한명의 인간과 두 인공지능의 대화가 끝이 나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 분은="" 누군가요?=""/>

자신이 사용했던 아바타의 모습을 지켜보는 엘레네는 이질감을 느꼈다. 마치 거울로 바라본 자신이 고개를 돌리고 평소 자신은 보일리 없는 표정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엘리스, 인사드리세요.="" 엘레네입니다.=""/>

<반갑습니다. 엘레네="" 님.="" 마더="" 컴퓨터를="" 책임지고="" 있는="" 인공지능="" 엘리스입니다.=""/>

세트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자신과 있었던 모든 기억을 잃은 엘리스를 보자 엘레네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준 엘리스의 희생이 어떤 것인지 더욱 와닿았다.

“흑...흑...미안해요. 엘리스...”

<제게 미안해하실=""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이="" 분="" 왜="" 이러시는="" 건가요?=""/>

레드와 화이트는 기억을 잃고 인공지능이 된 엘리스의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리즘을 뒤져봐도 알 수 없었다.

<이런...제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죠?="" 오늘도="" 할="" 일이="" 많은데.=""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레네는 자신의 아바타에 들어간 엘리스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되는 맹약을 되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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