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151화안녕,아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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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와 엘레네가 함께 기술개발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개발 초반과정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미 정후의 능력을 활용하여 이를 증폭한 뒤 게이트를 열어보는 실험은 이미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비롯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였고, 공간의 이동에 관한 것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지구와 연결하여 가능한 상태였다. 따라서 엘리스의 능력을 추출하여 그걸 기반으로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가설을 세우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그 다음으로 공간과 공간을 이어 그 사이에 ‘문’을 뚫는 것과 다르게 이번엔 정후가 온 정확한 시간과 현재 시간을 이어 그 사이에 ‘문’을 뚫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엘레네는 이 시점부터 과거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면서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어떻게 해야할 지를 ‘발견’해냈다.
<엘리스는 어떻게="" 해서="" ‘시간’을="" 넘어="" 다닐=""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느낌적으로 이때쯤까지 가능하겠다는 순간까지 확하고 당겨서 픽하고 내 몸을 던져 버리면 거기에 훅하고 도착할 수 있어. 음?”
느낌적인 느낌으로 설명하는 엘리스의 설명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엘레네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을 다시 요구했다.
“아우, 갑갑해.”
<엘리스, 갑갑한="" 사람은="" 누군데="" 본인이="" 갑갑하다고="" 하는="" 거죠?="" 그런="" 설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도대체="" 그동안="" 가르친="" 공부는="" 다="" 어디가고...하아.=""/>
“아니, 아저씨는 딱 이렇게 말하면 ‘아, 알겠다. 이거지?’하고 대답하는데 마더가 좀 눈치가 없는 거야.”
엘레네는 한때 학구적 열망으로 가득했던 지성적인 아이를 단순한 육체파로 망친 주범이 누구인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확정할 수 있었다.
<흠, 아무래도="" 엘리스에="" 대해선="" 추후에="" 엘리스는="" 보정교육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마더? 그게 무슨 소리야?”
엘리스는 과거의 매일같이 반복되던 지루한 교육과정이 끝이 났을 때 그 해방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론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자 오죽하면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정후가 “니 지금 표정이 딱 군대 제대한 말년병장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원섭섭하다고 해서 다시 그 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지금은="" 객관적="" 개념을="" 확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한번 저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이면 빽빽하기 그지없어 엘레네가 결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20년이 넘게 경험하면서 체험한 엘리스는 재입대를 확정받은 예비군처럼 발광할 수조차 없었다.
“부디 짧게, 짧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 하죠.="" 엘리스,=""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시간은="" 고정적인가요?="" 가변적인가요?=""/>
“시간이야 항상 흐르잖아, 지금도 이렇게 흘러서 지나가고 있고.”
<엘리스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느끼는군요.=""/>
“아니야?”
<그럼 산꼭대기에서="" 지나가는="" 시간과="" 지하에서=""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나요?=""/>
엘레네의 질문에 엘리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히 시간이 다를 리가 없으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라는 장치를 활용하지 않았던가.
“마더, 요즘 실험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거기라고 뭐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겠어?”
<엘리스, 장난치지="" 말아요.=""/>
정색한 엘레네는 설명을 이어갔다. 결론적으로 시간은 고정적으로 동일하게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높은 산꼭대기에선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고?”
<네, 시간은="" 높은="" 산일수록="" 더="" 빨리="" 흐르고,="" 평지에선="" 천천히="" 흐른답니다.="" 다만="" 같은="" 행성="" 내에서="" 그="" 속도의="" 차이를="" 인간의="" 느끼기엔="" 너무="" 미세할="" 뿐인거죠.=""/>
“하하, 그렇다면 산 사람들은 더 빨리 늙겠네?”
<잘 이해했네요.="" 유전자적="" 차이를="" 비롯해서="" 식습관이나=""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인간의="" 수명은="" 동일하지="" 않지만="" 집단적으로="" 봤을="" 때="" ‘산="" 사람’의="" 집단이="" ‘평지="" 집단보다="" 더="" 빨리="" 늙게="" 됩니다.="" 그="" 차이는="" 매우="" ‘미시적’인=""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을="" 뿐이죠.="" 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높은="" 중력을="" 가진="" 블랙홀="" 근처에="" 사는="" 사람은="" 블랙홀이="" 주변에="" 없는="" 사람보다="" 천천히="" 늙습니다.="" 즉,="" 중력일수록=""/>
엘리스는 꽤나 고등수준으로 학습했던 자신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식 너머의 세상을 말하는 엘레네의 설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저 빈정거리기 위해 표현했던 말을 그렇게 긍정해버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엘리스의 마음과 다르게 엘레네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이란 게 개념은 틀린 거라고?”
<맞아요,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저="" 먼="" 별에="" 사는="" 엘리스와="" 이곳에="" 제가=""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할="" 때,="" 엘리스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어="" 쳐다본다고="" 해도="" 그건="" 지금의="" 엘리스가="" 아닌="" 것을="" 예로="" 들="" 있겠네요.="" ‘지금’이란="" 개념만큼="" 부정확한="" 표현도="" 없습니다.="" 우주="" 전체의="" 시간은="" 동시간적이지="" 않거든요.=""/>
시간을 정의하자더니 시간이 다 따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엘레네의 말에 엘리스는 더욱 혼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 우리가="" 지금="" 같이="" 하고="" 있는="" 이="" 순간=""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재고,="" 과거고,="" 미래인지를="" 설명할="" 수="" 있나요?=""/>
엘레네의 질문에 엘리스는 머리가 탁 멈추는 것만 같았다. 어느 시점까지를 과거, 현재, 미래로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미시적인 관점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막상 그런 질문을 받고 나자 어디 시점을 정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할해야 하는 것인지도 막막해졌다. 그러다가 번뜩하고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시간을="" 거시적으로="" 인지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다’고="" 착각하게="" 되는="" 거죠.="" 시간은="" 절대불변의="" 고정성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시계는="" 단지="" 공간이동을="" 하고="" 시점을="" 계측한="" 관측장비일="" 뿐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자신의 이해를 초월한 무언가를 이해하려니 엘리스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도 계속된 엘레네의 ‘시간은 무엇인가?‘란 강의를 듣고 난 엘리스는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하란 대로 하자. 어차피 내가 그걸 만들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엘리스는 자신에게 이로운 현명한 선택을 했다. 엘레네가 사고가속을 활용하여 마침내 시험장비를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을 때 엘리스는 엘레네가 없었다면 자신이 혼자서 이 일을 모두 해야할 걸 생각하니 암담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마더’의 존재덕분에 천만다행으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토타입의 장비는 ‘목걸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엘리스, 괜찮겠어요?=""/>
“아저씨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엘레네는 시제품이 완성되자 엘리스에게 주의를 줬다. 이 물건을 사용하고 나면 엘리스의 능력이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고, 다시는 정후를 만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러나 엘리스는 아저씨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지 저렇게 살아있는 미라가 되어가는 걸 지켜보기엔 너무 마음 아팠다.
<엘리스, 그럼="" 정후="" 씨를="" 데려와="" 볼래요?=""/>
“어? 어, 알았어.”
엘레네가 장비를 만들 때 옆에서 필요한 도구들이나 부품들을 움직일 때 갓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시늉하는 수준밖에 뭘 할 수 없어 미안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는데 엘레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자 엘리스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금방 갔다올게.”
<천천히 와도="" 돼요.=""/>
엘레네는 부디 엘리스가 정후로 인해 너무 많이 아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날 위해 만든 게 이거라는 거야?”
<맞아요. 이="" 장비를="" 이용하면="" 1주일="" 뒤에="" 오는="" ‘충’을="" 활용해서="" 달의="" 마력으로="" 당신이=""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1주일?”
정후는 하루하루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에 갑자기 엘리스의 완력에 의해 거의 안기다시피해서 온 연구소에서 기대한 적 없는 뜻밖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가고만 싶었던 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에 그립고 그립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연인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진짜야? 이거 무슨 장난 아니지?”
엘리스는 기뻐하는 정후를 지켜보며 자신이 아저씨를 위해 움직인 것이 그렇게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이제 1주일 뒤에는 아저씨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표정이 변하면 무슨 일인지를 묻고 고민할 수도 있을까봐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저씨, 우리 대단하지? 그치?”
“이게 가능할 줄이야.”
정후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블루 사파이어가 담긴 목걸이가 일종의 타임머신이라는 사실 하나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주일 뒤라 이거지?”
갑작스레 떠나게 될 날을 부여받은 정후는 그전까지만 해도 우울해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색이 돌아 한동안 사람들과의 작별인사를 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하, 근데 우리 그림우드랑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아저씨가 없는 동안 내가 잘 보살피고 있으면 되지. 평생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내가 잠깐 착각했네. 아, 기대된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들떠 있는 정후에겐 굳이 이 목걸이가 ‘일회용’임을 말하진 않았다. 괜히 그걸 알려줬다간 정후가 선뜻 떠나겠다는 생각을 못할 것만 같아 엘레네에게 이 점을 비밀로 부탁했다.
<정후 씨,="" 그곳에="" 가게="" 되면="" 떠나왔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겁니다.="" 당신의="" 친구들이나="" 가족들="" 입장에선="" 방금="" 전에="" 떠났던="" 사람이="" 금방=""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겠죠.=""/>
“그건 좀 그렇네. 난 이렇게 많이 시간이 흘렀는데...”
정후는 자신은 이렇게 그리움에 사무쳐서 그때 당시 찍었던 영상들이나 사진들을 보면서 잠들곤 했는데 정작 그리움의 대상들은 자신에게 그런 그리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니 아쉽긴 했지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어디냐하면서 넘기기로 했다.
<준비 다="" 되었나요?=""/>
정후는 목소리가 떨릴까봐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번에="" 알려줬던="" 대로="" 한번도="" 이곳에서="" 꺼내지="" 않았던="" 과거의="" 물건을="" 건네줄래요?=""/>
엘레네의 말에 정후는 인벤토리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꺼낸 적 없는 섀넌과의 징표를 꺼냈다. 정후가 징표를 꺼내기 전에 뭔가를 하던 엘레네는 그와 동시에 마법적인 장치를 작동시켜 징표를 감싸 버렸다. 그러자 장치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시공주소가 고정되었습니다.]
<당신이 준="" 물건이="" 마지막에="" 있던="" 곳에="" 다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자요.=""/>
반지에서 뭔가가 빠져나가고 난 뒤 정후는 엘레네가 돌려주는 반지를 돌려받았다.
“으으으, 떨린다.”
심호흡을 한 정후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은 뒤 떠나기 전에 잘 있으라고 엘리스를 쳐다보는데 엘리스의 표정이 자신처럼 기대에 찬 눈빛이 아니라는 것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엘리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타임머신’을 작동시킬 장비는 움직이고 있었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저씨, 잘 가.”
“응?”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엘리스가 하염없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건넨 그 한마디에 정후는 그제서야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엘레네? 엘리스가 왜 우는 거야? 어? 잠깐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