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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화 〉149화-애들 싸움=어른 싸움(5) (149/239)



〈 149화 〉149화-애들 싸움=어른 싸움(5)

149화.애들싸움=어른싸움(5)

“넌, 뭔가 괜찮은 해결법이 있어?”
<<듣자하니 감히 하찮은 것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며 어거지를 쓰는 상황아닌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있지. 강제적으로 해산을 시키고, 다시 똑같은 주장을 떠드는 이가 있다면 간단하게 항명죄로 처형을 하는 방법도 있고.>>
“아, 됐다. 내가 반역 주동자 중의 하나였던 너한테 무슨 아이디어를 얻겠다고. 그렇게 할 거면 진작 했지. 누군 몰라서 못하냐. 그런  안하는 거야.”
엘리스가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마른 세수를 하자 엘리스에게 세트가 스트레스를 주는 것처럼 보여 엘레네의 심기는 불편해졌고, 자연스레 셋 중 가장 낮은 지위의 세트도 덩달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잠깐만!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또 한번만 허튼 소리하면 마더에게 부탁할거야. 입만 열면 개소리를 짖는 누구의 입에서 개소리만 나오게 해달라고.”
영혼을 건드려 통증을 만드는 엘레네의 기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세트는 있지도 않은 등허리로부터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동방의 한 나라에서 내려지는 고사(古事)라는 것에 따르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 엘프와 적대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들을 데려와 편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땅구석 폐인들인 드워프들을 데려다가 도와달라고 해 봐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괜찮은 생각이라고 했지만 엘리스는 굳이 표현하지 않고 말했다.
“널 믿어도 되나 모르겠다. 별로 신뢰가 안 가는데...흐음~”
<<어, 어. 엘레네 여신님이시여,  손! 그 손! 부디 내려놔 주시옵소서. 본인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으아아악>>
“마더...그냥 한 소리였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엘레네가 장갑을 낀 손으로 세트를 쿡쿡 찔러대자 왠지 미안해진 엘리스는 엘레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 뭐 이미 찌른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수!>
자신의 머리를 콩하고 때리는 엘레네를 보면서도 세트는 감히 ‘잘못도 없는데 왜 괴롭혀!’라고 외치지 못했다. 그저 혼자 삯히며 읖조렸을뿐
<<어쩌다 내가 이런 신세가 된 거지? 한때 신과 같은 위세를 누렸던 나인데... 으윽. 어떻게 된 게  통증은 매번 익숙해지지도 않고 똑같이 아플 수 있단 말인가!>>
세트의 칭얼거림을 듣는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떻겠냐고?”
“맞아. 아저씨. 드워프들도 한때 엘프들하고 싸워서 따로 살려고까지 했었잖아. 다크엘프가 사라지고 나면 자칭 ‘하이엘프’들의 심술이 드워프들에게 갈지 누가 알겠어.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교육관이 아니라 집에서 고기를 먹으며 엘리스가 편하게 말하자 정후는 괜찮을까 생각해봤지만 그건 일을 더 키웠으면 키웠지 절대 봉합할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엘프하고 드워프하고까지 사이가 나빠져서 드워프도 떠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것도 그렇네... 질겅질겅. 이번 소는 고기가 맛은 있는데 좀 질기다. 아저씨.”
“그치? 힘줄이 더 씹힌다고 해야 되나. 다음 종자 개량 때는 이 부분은 개선해야겠어.”
화성의 풍토에 맞는 새로운 품종의 식육용 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두 사람은 하루 한번은 소고기를 씹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씹을수록 고소하긴 하니까 좋다.”
“넌 그냥 고기면  좋지? 하아, 다크엘프들로 하퍼 무리한테 대항하게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드워프들까지 불러 들였다가 꼬이면 더 골치아파지는데...”
“아저씨가 저번에 말했던 똘레랑스(tolerance) 정신? 드워프들에게 그런  발휘하라고 하면 안되나? 다크엘프가 이렇게 쫓겨나고 나중에 드워프들이 비슷한 상황이 되면 누가 그들을 위해 소리쳐 외쳐주겠냐는 식으로 설득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되도록이면 드워프들은 빼놓고 해결할 방법을 떠올려 보자.”

엘리스가 가져온 방법은 당장은 도움이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꼬여버리면 갈등을 발생시켜 왕국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었다.
“히잉, 그럼 어떻게 하지?”
“천천히 풀어 나가보자. 모두가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하아, 모르겠다.”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정후가 며칠간 고민을 하는 사이 무대응을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 것인지 엘프들의 외침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냥 엘프들을 위한 교육관을 새로 여는 건 어때?>
“레드, 그럴 거면 그냥 가라.”
교육관 근처가 시끌해지자 붉은 여왕이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슬쩍 찾아왔다.
<아니,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가 해서.>
“부당한 요구에 한번 숙이고 들어가면 나중엔 계속 들어줘야 하니까 그렇지. 더구나 지금 일이 이렇게  근본적인 시작은 엘프 학생 하나가 비겁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반성하라고 근신 처분을 내린 걸 말도 안되는 선동으로 억지를 부려서 일을 키운 거잖아.”
<그럼 뭐 좋은 방법이 있나?>
레드는 자연스럽게 아무 말 없는 정후를 바라보다 옆에 있는 엘리스를 쳐다 봤다.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엘리스.”
혹시라도 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눴던 대화가 레드의 귀에 들어가면 일이 어떻게 될지 감당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정후가 엘리스에게 눈치를 줬다.
<뭐야, 왜 말도 못하게 해.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건강한 의사소통의 시작이라고 누가 누가 말했나~>
“아무 것도 아니야. 어제 고기가 좀 질겼는데 고기를 먹이면 좀 배불러서 입을 다무는 건 아닐까하고 그냥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봤을뿐이야.”
<흐음>
레드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진짜냐고 엘리스를 봤지만 엘리스는 정후가 그저 레드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대충 둘러댄 것임을 알고 진짜라고 호응해줬다.
<그치, 고기를 먹으면 사람이 행복해지긴 하지.>
오랜만에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가 넘쳤던 레드가 한참을 수다를 떨고 지나가자 두 사람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쟤는 어떻게 된 게 보면 볼수록 말이 많아지냐.”
“우리랑 친해져서 그런가 봐요.”
점점 T.M.T(투머치토커)의 기질을 드러내는 레드를 보며 정후는 누군가를 잠시 떠올렸지만 고개를 흔들면서 오랜시간 살면서 모든 기억을 지닌 레드가 그런 존재가 되어선 절대 안된다는 상상을 하고 의식 저편으로 밀어 넣었다.
“근데 아저씨가 둘러댄  안 믿는 건 아니겠죠?”
“인공지능이라...모르겠다. 쟨 어쩔 땐 드럽게 둔한데 어쩔 땐 또 드럽게 예민해서.”

정후의 걱정대로 레드는 두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관찰해오며 축적된  사람의 신체표현 데이터를 토대로 파악한지 오래였다. 괜히 자신이 눈치챘다는 걸 드러내서 경계의 가시를 세우게 하기보다는 모르는 척 하고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장  알만한 사람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마더~나 왔습니다~>
<왔어요?>
<연구진척은 어때요?>
세 인공지능의 최근 핵심 연구로 떠오른 ‘피노키오’ 프로젝트의 진행은 초유의 관심대상이 되었다.
<세트의 능력을 매개로 드디어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긴 했는데...>
<했는데? 아 현기증 날  같아. 빨리 말해줘요.>
<살아 있는 인간의 동의를 전제로 서로 1대1 교환을 했을 때만 가능해요.>
<대가가 필요한 거군요.>
<우리가 인간의 육체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인공지능들이 바라는 염원을 이룰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어떻게 악용될지 알 수가 없어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진행할 수 없는 거군요.>

인간에게 피해를 입혀선 안된다는 제약이 걸린 인공지능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선택으로 화성의 인류를 위협할 행위를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인간보다 위대해진 당신들이 어째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얽매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또 말이 짧아졌군요.>
<<요! 요!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아, 제발! 제발 그것만은...>>
<자꾸 거슬리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거예요.>

세트의 말을 두 인공지능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금기’였다. 함부로 범하는 순간 자신들이 금기를 어긴 대가가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알 수가 없기에 서로 외면하고 의식하지 않는 금기.
<적격자가 나오기 전까진 이 프로젝트는 중지입니다.>
<휴우, 좋다 말았네. 피노키오는 언제쯤 ‘요정’을 만나 사람이  수 있으려나...>
<그런데  일로 찾아온 건가요?>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 찾아왔죠. 흐흐>
<레드가 그런 웃음을 짓고 나면 꼭 무슨 일이 터지던데.>
<설마요? 아까 정후랑 엘리스를 만나러 교육관에 다녀왔는데...>
그렇게  인공지능과  정령(?)의 밤이 깊어져 갔다.

일이 해결되지 않아도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모르는 척하면 해결되길 바라고 있었지만 하퍼가 합류한 뒤 그럴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도 교육관 앞에 진을 치겠지?”
“매일 떠드는 소리 들었더니 이젠 꿈에도 나오는 것 같아, 아저씨.”
“근데 어제 엘레네는  안 들어온 건가?”
“모르겠어. 레드의 수다에 지쳐가지고 비몽사몽하면서 잠 들어가지고.”
“요즘 뭘 그렇게 연구하느라 바쁜거지.”
“설마 아저씨랑 나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하겠어? 뭔가에 또 팍하고 꽂혀서 연구하고 있겠지.”
엘리스는 저번에 얼핏 봤던 엘레네의 연구가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굳이 엘레네가 말하지 않는데 자신이 먼저 말하는 건 매너가 아닌 것 같아 오늘 아침은 토스트에 커피로 차려주겠다며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오, 오랜만에 엘리스가 차려주는 아침인가?”
“누가 들으면 내가 아저씨한테 밥 한번 안 차려주고 맨날 얻어먹기만 하는 줄 알겠네.”
“아닌가?”
“밥,차,려,주,지,마?”
엘리스가 차려주는 아침밥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정후는 식탁에 앉아 창으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고민에 잠겼다.
“탁탁탁탁”
계란을 깨고 휘젓는 엘리스의 손놀림으로 인한 소리와 계란물이 고소한 빵에 스며들어 후라이팬 위에서 구워지는 향기가 부엌을 가득 채우는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하나! 드워프들은 소수자의 권리를 지켜줄 것을 요구하는 바다!”
“하나! 잘못된 이의 죄를 드러내고 상대 집단에 대한 혐오의식을 철폐해라!”
“하나! 다크엘프의 자손들은 엄연히 이 왕국의 국민임으로 그들의추방을 요구하는 엘프들의 차별적 행태를 규탄한다!”
“하나! 우리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순간까지 모든 드워프는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다.”

간만에 평화로운 아침식사의 여운을 감동적으로 맞이한 정후의 앞에는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드워프들이 하퍼가 이끄는 엘프 무리의 반대편에서 대립구도를 짜고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레? 드워프들이 여긴  왔지?”
엘리스는 아저씨의 뒤를 따라오며 자신이 한 프렌치토스트가 정말 맛있었음을 정후에게 어필하면서 자랑하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했다.
“니가 레드한테 이야기했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자신은 결백하다는 엘리스의 표정은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레드한테 이야기할 시간이 어딨어. 아저씨랑 같이 배웅했는데.”
“그럼 도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오늘이 무슨 운수 좋은 날도 아니고! 간만에 평화롭고 따뜻한 아침이었는데!”

설렁탕도  먹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서 중얼거리고 당황하는 정후의 뒤로 길게 그림자가 생겼다.
<고맙단 소리는 안 받는다. 가족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랬지?>
“레드?”
“어?”
당당하게 허리에 양손을 얹은 레드는 의기양양한  고개를 치켜세우고 자신의 명을 받아 나온 드워프 무리를 보고 있었다.
<진작 나한테 말을 했으면 도와줬을 거 아니야. 우리가 어떤 사인데~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정후는 여자에겐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선 안된다는 주의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인격적인 존재이자 대등한 존재로서 존중을 하고 처음으로 명치를 세게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늙는다. 늙어.”

이미 벌어진 상황을 단념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정후의 모습은 좀전까지만 해도 힘찬 발걸음은 온데간데 없고 며칠 야근을 심하게 한 직장인마냥 피폐해져 있었다.
“레드, 고마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딱딱 움직여주는 레드에게 엘리스가 고마움을 표하는 소리에 이어 레드가 크게 웃으며 쑥스러워하는 소리가 정후의 귓가에 들어오며 이 혼돈의 아침을 더욱 피로하게 만들고 있었다.

두 집단의 대립은 결국 분쟁으로 이어졌고, 평온한 왕국의 평화로운 시기는 이제 막을 내렸다.
“낄 데  낄 데 구분해. 이건 엘프들의 일이야!”
“귀쟁이들, 다크엘프는 엘프가 아니라고 하면서 무슨 이게 엘프들의 일이야? 왕국 전체의 일이지.”
“말로 해선 알아듣질 못하는군.”
“너희들 엘프들이야말로 쓸데없이 귀만 커선 남의 말을 도통  듣는구나!”
“엘프 반토막도 안되는 종자들이 엘프들의 높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서로 간의 인신공격으로 이어진 분쟁이 몸싸움으로 번지기까지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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