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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화 〉148화-애들 싸움=어른 싸움(4) (148/239)



〈 148화 〉148화-애들 싸움=어른 싸움(4)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떼거지로 찾아온 2기 학생들의 학부모들을  정후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의 잘못된 성장을 막고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기 위한 판단이 이런 식으로 번질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크엘프 아이들을 내쫓으라는 겁니까?”
“흠흠, 굳이 둘러 둘러 표현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제임스의 엄마가 보인 언행을 이미 엘리스를 통해 들은 정후는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아줌마 지금 인지부조화 상태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에서 도출되는 합리적인 결론이 기존에 믿던 바와 대치될 때,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론이 아니라 부조리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쪽에 맞춰 행동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메리를 비롯해 2기 학부모들이 보이는 모습은 종교적, 정치적 신념 등 여러 가지 신념과 사상에 극단적으로 경도되는 경우,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말도 안되는 비합리적인 소리를 떠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요, 여러분이 이렇게 몰려와서 주장한다고 해도 옳지 않은 주장을 수긍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다크엘프 아이들을 내쫓을 수는 없습니다. 더더욱 이번 일은 제임스가 잘못한 게 확실하구요.”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이런 일로 후회할 거라면 제 인생은 후회로 가득  있었겠죠. 오히려 나중에 지금을 떠올렸을 때 누가 더 후회할 것 같습니까?"
바늘도 안 들어갈 정도로 꼿꼿함을 유지하는 정후에게 질린 학부모들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나가죠, 여러분들.”

떼로 몰려온 학부모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나자 레베카와 그림우드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너희들이 지금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걸.”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그림우드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물어봤다.
“저희 때문에 너무 피해를 보시는  아닌가요?”
“맞아요, 제임스가 제게 대련 중에 비겁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실전이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그냥 제임스의 근신처분을 취소하고 제임스의 엄마와 아줌마, 아저씨들이 요구한 걸 받아들이는 건 어떠세요?”
레베카가 평소와 다르게 쭈뼛거리며 미안해하는 것 같아 보였다.
“레베카, 피해자가 가해자의 눈치를 봐줄 필요는 없단다. 무엇보다 내 기준에서 그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어.”
“그래도 실전이었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잖아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문제는 그 일을 내 학생이 저질렀다는 점이란다. 아무렇게나 시정잡배처럼 싸울 것이라면 굳이 내게서 검술을 배울 필요가 뭐 있겠니?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비겁한 짓을 저지를 거라면 차라리 적절한 순간에 침을 뱉고, 모래를 뿌리고, 독을 쓰던가 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지. 실전에서 그런 게 효율적인 비장의 한 수가 될지는 몰라도 아직 검의 길에 제대로 들어섰다고 하기도 어려운 너희들이 편법부터 익혀선 절대 고수가 될 수 없단다. 정도(正道)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한번 그렇게 편한 길에 맛을 들이고 나면 다시는 열심히 노력하면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삶에 돌아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는 거고.”
“그래서 제임스에게 근신 처분을 내리신 건가요?”
“사람이니까 누구나 실수를 할  있어. 나도 그랬고, 엘리스도 실수를 했지. 하지만 실수를 했다면 자신의 잘못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있어야 해. 특히나 무언가를 배우는 이라면 더욱 더 그렇고.  단순히 제임스를 벌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려고 했던 거야. 문제는 제임스의 엄마를 비롯해서 다른 어른들이 그 기회를 박탈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임스가 배울 수 있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틀어막고 있다는 것이지.”
그림우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목소리로 요구하는데도 흔들림 없는 정후 선생님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선생님은 걱정되지 않으세요? 저렇게 많은 사람이 떠드는데... 그냥 받아주면 편해지지 않나요?”
길을 가다가 어른들 혹은 엘프 아이들로부터 듣게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축되던 자신을 떠올리며 그림우드가 물어봤다.
“다수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란다. 한번이야 받아줄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이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상대방 입장에선 그 모습이 일관성이 없는 모습으로 보일뿐만 아니라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단다. ‘어차피  사람은 언제든 말을 바꿀  있는 사람이니까. ’하고 생각하거든. 아무튼 너희들은 이런 일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도  생각이 있으니까.”

2기의 학부모들이  다음날부터 엔폴레오네를 제외한 2기 학생들의 등교 거부 운동이 시작되었다.
“공정함을 잃은 정후 선생의 처사에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성하지 않는 선생에게  자식을 보낼  없다.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의 자세로 다크엘프들을 퇴학조치하라!‘
“퇴학조치하라!”
교육관의 담장 밖에서 2기의 학부모들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모여 단체행동을 보였다.

“와, 정말 많다.”
“엔폴레오네, 너도 빠져야 하는 거 아니야?”
“레베카 누나, 우리 엄마 말이 옳은 일이라면 옳은 방식으로 해야 된다고 했어. 저렇게 떼쓰는 건 잘 모르는 애들이나 할 법한 거라던데? 제임스가 비겁했잖아. 난 거기에 동의할 수 없어.”
아침연습 중인 그림우드와 레베카가 평소와 다르게 집중하지 못하고 데드리프트를 하다가 멈추고 말을 걸자 엔폴레오네가 대답했다.
“너  다르게 보인다?”
“난 나파르테 가문을 빛낼 남자인걸. 그런 거야 당연하지.”
칭찬 한마디에 으쓱하는 엔폴레오네가 얄미울 법도 하지만 다크엘프들의 편을 들어주는 엔폴레오네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근데 선생님은 진짜 괜찮으신가?”
“난 선생님을 믿어. 선생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으면 그걸로 된거야.”
어제만 해도 울먹거리던 그림우드가 굳건한 표정으로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보이자 레베카가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도 선생님 믿거든? 꼭 지만 믿는 것처럼 그래.”
“누나, 형. 연습 안해?”
엔폴레오네가 예전에 레베카로부터 듣고서 언제고 한번 돌려주고 싶었던 말을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며  사람을 향해 말했다.
“요게?”
“우리 엔폴레오네 후배가 많이 컸구나. 그래도 나보다 작지만.”
“형, 우리 인간적으로 키 이야기는 하지 말자.”
들고 있던 바벨을 내려놓고 정색하는 엔폴레오네의 모습에 셋이서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걱정했는데 애들이 흔들리지 않는  같아 다행이네요.”
“기둥이 될 내가 흔들리면 아이들은 저렇게 안심하지 못했을 거야.”
“또 시작했다. 자기 자랑.”
정후가 하는 말이 맞지만솔직히 엘리스도 걱정되는 마음을 숨기려고 일부러 장난치듯 대답했다.
“어허, 어디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저대로 냅둬도 괜찮겠죠?”
“애들을 안 보내면 자기들만 손해지. 주도권은 저들에게 있는 게 아니야. 나한테 있지. 시소게임같은 거야.”
“시소?”
엘리스는 교육관 운동장 한편에 놓인 놀이기구 중에 시소를 쳐다 봤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엘리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  정후는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는 척하면서 눈을 감고 말했다.
“언뜻 보기엔 시소에서 올라간 쪽이 게임을 즐기고 있기에 올라간 쪽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소의 올라간 쪽에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올라갈 수 있게 받쳐주는 쪽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처럼 지금 교육관에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독점적인 주체는 나야. 저들이 아무리 등교거부를 하고 아이들을 내쫓으란 요구를 해봤자 나한테는 한치의 피해도 없어. 오히려 자신들의 자식들만 피해를 입고 있지.”

그러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엘프들의 학부모들이 다른 엘프들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커맨더는 답하라. 언제까지 다크엘프들을 추방하지 않을 것인가! 그들의 죄의 대가는 추방으로 결정되었고, 이제는 굳이 엘븐하임이 아닌 곳에 있어서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언제까지 온정적으로 그들을 대할 것인가!”
“다크엘프를 추방하라! 추방하라!”

그저 다크엘프 아이들을 퇴학시키라는 요구에서 한발  나아가 이제는 다크엘프를 추방하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이건 생각 못했는데?”
“다크엘프의 추방 건은 언제고 나올 가능성이 높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네요.”
엘븐하임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다크엘프들의 노역시간은 발전하는 드워프들의 기술력으로 인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에 대해 다크엘프의 추방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간혹 전체회의 시간에 나오기도 했으나 커맨더인 정후의 묵살 아래 매번 기각되곤 하는 상황이었디. 특히 전체회의 시간에 유독 다크엘프의 추방을 이행해야 된다고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은 덤프티의 밑에서 가장 고통받았던 시종 출신의 ‘하퍼’였다.
“하퍼 주변에서 같이 소리치는 사람들은 누구지?”
“시종장 덤프티 밑에 있던 시종들같아요.”
“하, 이럼 나가린데...”

원론적으로 처음 약속했던 것처럼 때를 봐서 다크엘프는 추방하는 것이 맞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추방해선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최대한 불만을 없앤 뒤 본인들이 스스로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고 싶어지고 최대한 엘프들을 향해 적대적인 감정이 없이 나갈 수 있도록 일을 진행하기 위해 고민 중이었으니까.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다크엘프의 추방을 말하는 이들이 집단화되었다.
“이쯤 되면 좀 질리는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퍼의 옆에서 더욱 크게 소리 지르는 메리를 보고 있자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은데...어떻게 하죠?”

엘프 세력 내에서 본인들을 기존의 엘프와는 다른 하이엘프라고 부르는 집단이 등장하고 나서 생기는 분위기 중 하나가 스스로 계급을 가르는 의식의 태동이었다.
“나는 하이엘프, 너는 그냥 엘프.”

듣는 그냥 엘프 입장에선 좋을 리가 없었다. 조선 초만 해도 평민의 의미를 갖고 있던 ‘백정’들이 화척 혹은 양수척이라 불리는 천민들도 조선 땅에 오래 자리 잡고 살았으니 이제는 ‘백정’이라고 부르게 하자는 임금의 결정에 의해 본인들과 천민들이 모두 ‘백정’이라고 불리게 되자 어떻게 했었던가. 평민들의 ‘백정’ 호칭 거부로 이어졌고, 그 결과 백정은 도축업을 하는 천민을 부르는 호칭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이 같은 행동의 배경에는 양반문화로 대변되는 조선에서 양반보다 못한 신분의 평민들이 천민들과 구분을 지음으로써 본인들의 계급을 지키려고 한 일종의 계급구분 의식이 컸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었다.
그런 행태가 엘프들 사이에서도 보이고 있었다. 우리 시대에는 ‘은수저’라는 단어에 반대되는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흙수저’가 있었던 것처럼 일부 엘프들은 하이엘프는 되지 못해도 다크엘프보단 나은 존재라는 의미를 지킴으로써 명문화된  없는 계급을 만들어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 받을 수가 없었다. 매일 모여드는 엘프들의 집회는 이제 확실히 처음과 다르게 ‘다크엘프 추방운동’으로 목적이 바뀌어 버렸다.
<다크엘프를 언제고 이주시키긴 해야 했는데...>
“마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저씨가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곤란해 해.”
엘리스가 와서 발을 동동 구르자 엘레네도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지 않을  없었다. 정론상 다크엘프가 이주하는 것이 맞긴 했으니까.
<<뭐가 그리 고민이지?>>
‘구체’에 갇혀 있는 세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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