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147화-애들 싸움=어른 싸움(3)
팔뚝과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서 돌아온 제임스가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자 제임스의 엄마는 교육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제임스, 왜 그러니?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엄마, 나 일주일간 근신 처분 받았어.”
“니가 왜 근신 처분을 받아! 뭐때문에!”
2기 중에서도 우등생으로 소문난 자신의 아들이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제임스의 엄마 메리는 제임스에게 자초지종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래 가지고 내가 반격을 했거든. 내가 이겼단 말야. 근데 선생님이 나보고 승부욕보다 인성을 먼저 가져야 한다면서 배지는 일주일간 근신 처분 뒤에 나 하는 거 보고 돌려주겠다고 그러잖아.”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 열심히 잘 하는 아이를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다거 새끼가 뭐라고 그렇게 편을 들어주는 거야! 내가 가서 따져야겠어.”
제임스의 말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대련 과정에서 확연히 실력차가 있음에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승부를 봐줘야 할 선생님이 일방적 편애를 보이며 오히려 당당하게 이긴 자신의 자식을 무안주고 쫓겨낸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들은 메리는 어이가 없어 혈압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계세요?”
“..아후우, 열받아 죽겠는데 도대체 이 시간에 누구야?”
주변 어머니들과는 오전에 수다를 이미 한참 나눈 상황이라 딱히 자신의 집에 올 사람이 없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 댁 맞나요?”
집 안에 있던 메리는 일그러진 표정을 가다듬고선 문을 열고 밖에 온 사람을 위 아래로 훑어봤다.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이 배우는 조교임을 안 메리는 엘리스에게 하이톤의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니, 저희 집에는 무슨 일로...조교님 맞으시죠?”
“네, 교육관에서 제임스를 가르치고 있는 조교 엘리스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잘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제임스한테 들으니까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러기에 들었더니 아주 큰 잘못이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아, 들으셨군요. 예, 맞아요. 큰 잘못이 있었죠.”
메리는 정후라는 선생님과 다르게 엘리스 조교님은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죠.”
“그쵸.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일이니까 이해해야 할 부분도 있고, 누구나 다 실수를 할 수는 있는 거니까요.”
“실수야 누구나 한다지만 이건 실수가 아니죠. 확실히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엘리스는 되바라진 성격의 제임스와 다르게 메리의 교육관이 확고하구나 하고 순간 생각하면서 엄한 어머니의 밑에서 그런 아들이 나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예, 맞아요. 그래서 오늘 제임스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의사교환을 하기 위해 어머님을 만나서 상담일정을 잡으려고 찾아온 겁니다.”
“네?”
메리는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오늘 제임스랑 대련한 아이는 레베카라고 들었는데.’
“제임스가 저지른 잘못이라구요? 레베카가 아니라요? 조교님이 뭘 잘못 말하신 것 같은데...”
“이야기는 제임스에게 들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오늘 제임스가 대련 중에 비겁하게 대련 규칙을 어기는 바람에 정후 선생님이 근신 처분을 내린 거거든요.”
“무슨 소리세요? 제임스가 이야기한 걸 들어보니까 누가 봐도 정후 선생님이 잘못 생각하신 게 맞는데.”
“예?”
엘리스의 앞에 있던 상냥하던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 여자는 하이톤은 귀를 찌르는 고음이 되어 엘리스를 향해 제임스의 무고함과 정후 아저씨에 대해서 다크엘프들을 향한 지극한 편애적 교육관이 잘못되었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엘리스는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아저씨에 대해서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어머님이 제임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들으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확히 제임스는 수련생으로서 대련 중에 해선 안 되는 비겁한 짓을 저질렀고, 그 부분에서 제임스에게 인격적 부분에 고쳐야 할 점이 있다고 판단하신 정후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라고 근신 처분을 내리신 겁니다. 제가 오늘 찾아와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은 정후 선생님이 제임스 학생에 대해서 학부모님을 모셔서 상담을 나누고자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담내용은 앞으로 제임스를 교육해 나가는 데 있어 가정에서 좀 더 신경 써주셨으면 하는 부분들과 제임스를 교육하는데 있어 댁에서 저희 측에 바라는 부분들이나 신경 써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는지 정보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삭막한 분위기로 급변하고, 사근사근해 보이던 엘리스가 낮지만 묵직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하자 메리는 순간 압도되어 말을 잇질 못했다.
“늦은 시간에 댁에 찾아온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제임스의 근신 기간동안 방과 후에 찾아오신다면 언제든 상담해드릴 겁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마더 보고 싶다...이럴 게 아니라 마더나 보러 가자.’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메리를 잠시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엘리스는 더 이상 있어봐야 감정적 대응만 있을 것 같아 자리를 정리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직 식지도 않은 차를 벌컥 들이켠 엘리스가 절도 있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나갔다.
메리는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고 자신이 한마디도 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났다는 사실에 노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이...이...뭐 저런 게 다 있어! 제임스! 당장 이리 나와!”
방에서 이런 대화를 모두 듣고 긴장하고 있던 제임스에겐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조졌다.”
방에서 나온 제임스의 앞에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엄마.”
“너, 엄마한테 다 말하지 않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자신의 입장에서만 서술된 이야기를 들었던 메리는 제임스가 옳고 정후 선생님과 레베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엘리스 조교님이 찾아와 이야기해준 내용을 말하며 ‘비겁한 짓거리’가 도대체 뭐였는지 물었다.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봐. 선생님이 평소에 그러셨단 말이야. 연습을 하더라도 실전처럼 해라. 그래야 실전에 들어가서 떨지 않고 연습에 하던 것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난 내가 위기에 몰렸는데도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있다가 그 ‘다거’ 새끼가 집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거라고. 굳이 그쪽 편에 서서 보면 약간 비겁한 부분이 있었을지 몰라도 정당한 대결이었어.”
“그렇단 말이지.”
메리는 제임스가 저지른 것이 비겁한 행동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머리로는 인정을 했지만 마음으론 제임스가 말한 ‘정당한 대결’이란 단어에 더 끌렸다.
“알았어, 넌 들어가서 반성하고 있어. 어디 다거 따위한테 밀려서 위기에 몰려! 애들하고 어울릴 시간에 연습 한번 더 하랬지. 니가 압도적으로 강하면 그런 패거리 따위 나중에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다는 거 몰라?”
“칫, 엄마는...”
왕국이 새롭게 부활하면서 이루어진 것들 중 하나가 능력 있는 자들의 약진이었다. 그저 정해준 대로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것을 거부하고 3회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직업 선택에 대한 자유의지는 하층노동을 하던 이들 중 일부가 전문기술을 가진 능력자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나 ‘마법사’는 어딜 가든 명예로운 존재로서 존중받았으며 국정 운영을 하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하이엘프’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마법사들이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지 너도 봤잖아. 그런 마법사들도 존경하는 게 커맨더야! 그러니 커맨더에게 검술을 제대로 배워서 ‘하이엘프’가 되렴. 이 엄마는 너에게 바라는 게 그것밖에 없다. 언제까지 구질구질하게 이런 변두리에서 다크엘프들을 쳐다보고 살아야 하는 거니?”
평소처럼 메리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절대 아빠처럼 쓰레기나 수거하고 다니는 직업을 갖는 패배자 인생이 되어선 안된다는 레파토리로 들어가자 제임스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혼나진 않겠다.’
메리는 그날부터 며칠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제임스의 말과 엘리스의 말을 곱씹고 곱씹던 메리는 자신의 아들의 말대로 ‘비겁한 짓’이라는 단어보다 ‘실전같은 정당한 대결’이란 키워드에 쏠렸고, 점차 거기에 맞춰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안되겠어. 내 아들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건 다른 2기 아이들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 아니겠어?
날이 밝아오자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메리는 빵을 굽고 차를 준비한 뒤 오후가 되자 2기 아이들의 학부모들을 불러 모았다. 엘리스가 다녀간 지 3일 만의 일이었다.
학부모들에게 어떤 부당한 일이 있었는지를 말하면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선 언제고 당신의 자식들도 그 부당한 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다크엘프 아이들을 내쫓아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논리적으론 말도 안되는 비약을 펼쳐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향한 애정이 앞선 학부모들에겐 논리적 비약보다도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그 한마디가 더 무섭게 다가왔다.
“우리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가서 선생님께 따집시다.”
“맞아요! 어디 다크엘프들 무서워서 우리 애들 교육관에 보내겠어요? 아무리 대단한 무력이라도 그렇지 부당한 건 부당한 거죠.”
“다크엘프 아이들을 내쫓읍시다!”
그러나 급격한 선동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기...”
한 학부모가 손을 들며 말을 하려고 하자 메리가 물었다.
“엔폴레오네의 어머니 레테샤 씨죠? 말씀하세요.”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겠는데요. 이렇게 감정적으로 몰려가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학부모들이 교육관에 몰려가서 선생님과 조교님을 압박하는 일이 반복되면 설령 우리의 주장이 올바르다고 할지라도 교육과정의 독립성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요. 더구나 엔폴레오네를 통해서 듣기로 이번 일은 제임스의 잘못이 작지 않았다고 하던대요?”
“그...그런가?”
학부모들 중 일부가 살짝 흔들리는 것 같은 기색을 보이자 메리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엔폴레오네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은 다크엘프의 모범생과 친하다 이건가요?”
“그게 무슨?”
레티샤는 자신의 아들을 마치 앞잡이처럼 묘사하는 메리의 언행에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다크엘프 아이들이랑 친한 자신의 아들은 피해를 볼 일이 없으니 엔폴레오네의 어머니는 걱정이 적을지 몰라도 저희는 아니랍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었지만 기가 차서 말을 못하는 레티샤를 본 학부모들은 다크엘프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의 엄마의 말이라는 것에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뭐,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소? 우리 이렇게 모인 김에 당장 교육관에 찾아 갑시다!”
“그럽시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