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145화-애들 싸움=어른 싸움(1) (145/239)



〈 145화 〉145화-애들 싸움=어른 싸움(1)

“그림우드 형, 형은 왜 그렇게 매일 열심히 하는 거야? 누가 열심히 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잖아.”

매일 열심히 훈련을 함께하는 엔폴레오네는 그림우드와 친해져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자신이야 남에게 뒤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이 이유였지만 1기 중에서도 1,2 등을 오가는 우등생인 그림우드는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흠...처음엔 엄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컸지. 그런데...”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선생님이 하체운동에 좋다면서 가르쳐 주신 스쿼트를 10분이 넘게 했는데도 정자세로 하는 그림우드는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위 아래로 수직이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어?”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땀을 흘리며 보내고 나니까 내가 좋아지더라.”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
“예전에 난 항상 내가 남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졌어. 나한텐 아빠도 없고 엄마도 나도 다크엘프니까.”

커맨더 님이 강력하게 주장한 덕분에 생긴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다크엘프를 향한 공식적 차별은 차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엘프의 아이들을 향한 엘프들의 시선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그림우드 형이나 레베카 누나의 옆에서 함께 다니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시선의 집중과 차가움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학생이 되어서 사고의 폭이 커지고 깊이가 깊어지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매일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릴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아. 매일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내가 직접 느낄 수가 있거든. 오늘 한번 더 움직이면 내일은 조금 나아지고 그게 매일 매일 되니까 이전에 나는 내 자신이 비루하게만 느껴져서 사랑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무슨 느낌인지  것 같아.”
“그치?”

몸풀기가 끝이 나자 이제는 바벨을 어깨에 짊어지고 바벨 스쿼트를 시작하려는 그림우드를 따라 엔폴레오네도 바벨 스쿼트로 무게를 늘렸다.
“그런데 가끔 빼먹고 싶지 않아? 누가 형한테 지금 하는  매일 하라고 한 적도 없잖아. 선생님이나 조교님도 딱히 우리가 하는 훈련에 대해서 너무 과하게 하는 걸 막으실 뿐 하는지, 안하는지는 딱히 체크하거나 강요하지도 않으시고.”
엔폴레오네의 질문에 그림우드를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초에 선생님이나 조교님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가끔 쉬고 싶고, 더 하기 싫을 때면 살짝 늦게 오기도 하고 먼저 가기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도 형이나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훈련을 반복했다.
“내가 안다?”
“결국은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누군가와 싸워도 이기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잖아. 자신을 굴복시키면 어느 것을 해도 자신감 있게  수 있다고.”
“그랬나?”
“선생님께선 밥 먹을 때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해주실 때가 있는데 그게 의외로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누나랑 형이 선생님이랑  먹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선생님이랑 같이  먹는  좋으니까.”

자신은 아직 선생님과 함께 밥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부담스러워서 같은 테이블에 앉더라도 끝에 앉고선 먹기만 해서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계신지 잘 몰랐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살짝 닦은 레베카 누나는 하체를 했으니 이제 숨고르기를 하면서 스트레칭을 할 차례라고 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눌러주고 근육운동을 하면서 뭉쳐진 근육들을 풀어주고 있는 동안 엔폴레오네의 머리에는 ‘훈련을 빼먹으면 자신은 안다.’는 말이  박혀서 계속 떠올랐다.

셋이 그렇게 아침훈련을 마치고 있을  교육관에 도착해서 그 모습을 보는 무리가 있었다.
2기생들은 전원 엘프들로 구성되어 있는 와중에 가장 뒤떨어지는 엔폴레오네만이 근성도 없고, 자존심도 없이 다크엘프들 옆에 착 달라붙어 애완동물마냥 쫄레쫄레 쫓아다니는 것에 대해 2기의 기장인 제임스를 비롯한 7명의 엘프들의 눈에는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저새끼, 또 저기 가서 저러고 있네.”
“다.거들이랑 어울리면  떨어진다고 분명 이야기 했는데.”
“다.거?”
“다크엘프 거지들이라고 얼마 전에 아줌마들이 말하는 거 들었는데 딱 어울리더라고.”
“맞네, 다거들.”
“제임스, 내가 가서 끌고 올까?”
“내버려 둬. 우리는 엘프 중에서도 고귀한 존재인 하이엘프가 될 거야.”

엘프들 중에서 마법을 익힌 특출난 존재들은 자신들을 높이는 의미로 ‘하이엘프’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2기에 합격한 아이들은 커맨더 정후처럼 강력한 무력을 익힐 수 있다면 자신들도 ‘하이엘프’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하이엘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도태되려고 용을 쓰는 놈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어. 가자.”
“알았어. 기장.”

7명의 무리는 잠시 세명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지켜보다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갔다. 물론  모습을 그림우드와 레베카 그리고 엔폴레오네도 봤다.

“엔폴레오네, 넌 우리보다 쟤들하고 친하게 지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림우드는 자신들하고 어울림으로 인해서 엔폴레오네가 2기 후배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밥도 자신들이랑 같이 먹고 수업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들과 함께 하는 엔폴레오네는 확실히 2기 후배들하고 친해보이지 않았다.
“됐어요. 쓸데없이 선민의식에 가득 차서 지들이 ‘하이엘프’니 뭐니 하고 떠드는 애들하고는 엮이고 싶지도 않아요.”
“하이엘프?”
다크엘프라서 따로 지내는 덕분에 엘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화라든가 말들을 간혹 모르는 두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엔폴레오네가 둘에게 설명해줬다.
“있어요. 나 잘났다 싶은 엘프들이 지들은 다른 엘프와 다르다고 해서 만든 말인데 선생님이 모든 사람의 지위는 평등하다. 능력의 차이만이 있을뿐이라고 하신 가르침에는 정반대되는 짓거리죠.”
“그으래? 흐응”
레베카 누나는 하이엘프라는 단어가 꽤나 마음에 안 드는지 2기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콧소리를 냈다.
‘예전엔 몰랐지. 저게 기분이 나빠졌다는 신호였는지...’

셋이서 가끔 대련을 하곤 했는데 보호장구를 차고서 해도 레베카 누나의 빠른 ‘찌르기’를 맞고 나면 팔뚝에 멍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 친해지기 전에 했을 땐 여자라서 가볍게 보고 무시하며 덤벼들었다가 혼쭐이 날 때 들었던 저 콧소리는 지금 들어도 등에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1기와 2기의 선후배 대련이 있는 날이었다. 어느 정도 기초가 쌓여서 대련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본 정후는 화창한 가을 오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야외에서 대련을 하는 것도 좋은 수업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애들은  준비 됐어?”
“네, 점심 먹고 한숨 자서 내려간 텐션 좀 올리면서 살짝 땀 좀 나게 워밍업만 해줬죠.”
“PT체조 시켰구나.”
“그게 아주 좋더라구요.”

아저씨는 자신이 잘못해도 크게 벌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나 자신을 향해 때리거나 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는데 대신 빨간 모자를 쓰고 PT체조라는 것을 시킬 때면 차라리 때리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 조교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시킨 대로만 하면 오늘 훈련 빨리 끝날 것입니다. 어때요?”
“지금 나 따라한 거야? 별로  똑같은데.”
엘리스가 정후가 PT체조를 시킬 때면 하곤 했던 말버릇을 따라하니 정후가 정색했다.
“똑같거든요?”
“아닌데...애들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
“말 돌리기는.”

밖으로 나가자 몸에 열기가 올랐는지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게 살짝?”
“살짝~”
“적당히 하라니까.”
“대련을 하려면 어느 정도 열이 올라야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 정후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학생들 앞에 섰다.

“...1기와 2기가 한명씩 짝을 맞추고 남는 1기 4명은 각자 짝을 맞춰서 하는 동시대련이다. 상대방이 승복을 하거나 더 이상 속행을 할  없다고 나와 조교가 돌아다니면서 ‘그만’이라고 외치는 순간 검을 거둬들여야 한다. 질문 있나?”
기본적인 대련이야 각 기수들끼리 한 적은 있었으니 지켜야 하는 수칙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후는 한번 더 안전을 강조했다.
설명을 듣고나서 질문이 없는지 물어보면서도 누가 딱히 손을 들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정후는 대련을 시작하라고 하려는데 2기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2기 제임스, 질문 있습니다.”
“뭐지?”
“저랑 대련을 하려는 사람은 레베카 선배인데 남자인 저랑은 상대가 안될 것 같습니다. 엔폴레오네의 대련 상대인 그림우드 선배와 바꿔주셨으면 합니다.”
기세에서 느껴지는 자세가 묘하게 건방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엘리스를 쳐다보니 메시지를 보내왔다.
“(2기에서 기장 역할을 맡고 있는데, 배우는 것은 다른 애들보다 빠른데 은근히 자신보다 못하다 싶으면 무시를 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그걸 가만 놔뒀어?)”
“(따끔하게 혼을 내서 한동안 제 앞에선 안 그랬는데 저러네요. 으득)”

엘리스의 설명을 들어보니 과연 내가 느낀 느낌이 틀린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저걸 어떻게 고쳐줘야 하나 싶은데 레베카가 손을 들었다.
“왜 그러지, 레베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렇게 비리비리한 녀석한테 제가   같지 않거든요. 선생님.”

1기의 기장은 그림우드였지만 1기가 선을 넘나들며 흐트러질 것 같을 때 동기들을 휘어 잡는 ‘군기반장’ 역할을 하는 것은 레베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저렇게 입꼬리가 올라갈 땐 나중에 확인해 봤을 때 대련상대가 잘못한 경우가 많았다.
“뭐, 레베카가 그렇게 말한다면 맞는 거겠지.”
“저는 분명히 그림우드 선배로 바꿔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엘리스에겐 제임스가 똑똑하긴 한데 멍청한 타입으로 보였다.
‘레베카 정도면 남녀의 차이는 이미 상관이 없는 수준이지.’
자신감을 보이는 두 명의 동의를 받고 진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2명씩 일정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원안에 들어가 대련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자 정후가 외쳤다.
“진행시켜!”
그 말고 함께 아이들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아저씨, 근데 왜 시작구호가 진행시켜에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어.”
보나마나 무슨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리라 생각한 엘리스는 정후와 떨어져 원과 원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대련하는 것을 관찰했다. 1기는 1기인지라 2기 중에서 유독 뛰어난 2명을 제외하면 6명의 아이들은 1기와의 대련에서 크게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너 은근슬쩍 나랑 그림우드를 부를  ‘선배’라는 단어는 작게 말하더라. 선배대접 받을 생각은 없는데 그렇게 나오니 또 기분이 나쁘네.”
“하하하, 오해인 것 같은데요”
자신의 감으로 느껴졌던 심증이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골수까지 뽑아 뼈까지 잘근잘근 씹어먹어주리라고 다짐한 레베카는 견제를 하면서 일부러 살짝 허점을 드러냈다.
제임스는 역시나 자신의 상대론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줘서 목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레베카는 일부러 연기를 하면서 뒤로 밀리는 척을 하자 제임스는 여지없이 한발짝 더 깊게 들어오며 재차 휘둘렀다.
‘별거 아니네, 1기, 1기, 선배로 대접하라고 한 것에 비해서 별거 없었어. 다거들이 그럼 그렇지.’
가볍게 이기고 나서 그림우드와의 대련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이었다.
레베카가 뒤로 넘어질  같은 순간 스텝을 밟아서 방향을 바꾸더니 옆쪽에서 자신의 팔을 찔러 들어왔다.
‘뭐, 뭐지?’
힘을 너무 세게 주어서 휘두르다보니 이제 와서 방향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찌르기라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레베카의 찌르기는 보호구를 뚫고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조...조금 하는군.”
“이젠 존댓말도 안하네?”

 이후로 계속 연달아 치고 들어오는 무호흡 찌르기에 이어 3연 찌르기를 당한 제임스는 정신차릴 수 없었다.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상대에게 2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신이 당해낼 수 없다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여유를 잃은 제임스가 허둥거리면서 스텝이 꼬였고 그로 인해 뒤로 자빠지자 레베카는 검을 거두며 뒤로 살짝 빠졌다.
“생각대로 잘 안되나 봐?”
“이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