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1화 〉141화-빅터의 조상님들(2) (141/239)



〈 141화 〉141화-빅터의 조상님들(2)

하고 싶은 것을 막연히 꿈꿀 때 우리는 그 꿈을 이루기가 매우 쉬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직접 본인이 해봤을 때 상상과 다른현실을 맞이하고 나면 상상 속의 나와 현실 속의 나와의 갭차이에 좌절하는 경우도 발생할  있다.

“허어어어...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으으...전 포기할게요.”
“교..교관님, 저도 포기할래요.”

빅터처럼 검사가 되어 영웅이 되고 싶었던 다크엘프 아이들은 많고 많았지만 단순히 달리기를 시키는 것만으로도 많은 아이들이 낙오했다.

“현재까지 몇 명 남았지?”
“어디 보자. 시작할  8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0명 정도 남았어요.”
“25%면 꽤 많이 남았네.”
“남은 20명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애들이  섞여 있어서 아마 더 줄어들 것 같은데...”

엘리스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 정후가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하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키자 처음엔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절박하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아이들이 포기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가볍게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만 달리게 하는 거 어때요?”
“안돼. 처음부터 정해진 대로 5km를 달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뽑지 않을 거야.”
“지금 멈추면 나름 괜찮은 자질을 가진 걸로 보이는 애들 몇 명은 더 건질 수 있어요.”
“엘리스, 니가 생각하는 검사의 자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자질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야. 정신적 뒷받침 없이 어설프게 뛰어난 재능은 오히려 독일 수도 있어.”

내가 그랬다. 반에서, 전교에서  상위권의 위치에 있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전국으로 봤을 때 학교에서 차지하는 전교 10등이란 순위는 어느 학교를 가도 존재하는 것이었고, 전체 수험생의 숫자에서 따지고 보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명문대에 그것도 좋은 과를 골라 가기엔 다소 부족할 수도 있는 애매한 등수이기도 했다.
애매한 재능에 자만했던 나를 뒤돌아봐도 압도적인 자질이 아니라면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라리 매일 똑같이 같은 것을 반복해도 쉬이 지치지 않는 인내심과 끈기가 인생에 있어 더 좋은 삶을  수 있는 자질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영웅이 되고 싶은 아이들의 치기에 뭘 그리 진지하게 구냐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교사의 역할과는 다른 것이었다.

둥글게 만들어진 원형의 트랙을 달리는 아이들이 기진맥진해서 너덜너덜해졌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이 12명이 남았을 때 내 외침을 끝으로 테스트는 막이 내렸다.
“그만! 그만 달려도 좋다!”
엘리스와 엘레네가 아이들에게 다가가 물을 나눠주자 갈증이 심했는지 아이들은 쉬지도 않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다 마시고선 이내 퍼져 버렸다.
먼저 포기한 아이들은 자신이 놓친 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분해하는 아이들도있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완주를 하고서도 물을 마신 뒤 지쳐 보였을지언정 쉽게 눕지 않는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하나가 그림우드였고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였다.
“쟤 이름이 뭐였지?”
“레베카요.”

그림의 아들임에도 정이 많은 그림우드와 다르게 오히려 그림의 아이처럼 보이는 것은 무표정한 채로 헉헉거리는 레베카였다. 나는 둘을 눈여겨 본  테스트를 통과한 아이들에게 합격의 목걸이가 아니라 합격했다는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고생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겪었던 시련에 비하면 아주 가볍디가벼운 첫발을 디딘 너희들에게 축하의 말보단 이제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12명의 합격자들 중에서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기 걸려 있는 종을 치고 그만둬도 좋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되는 아이들에겐 너무나 가혹할  있을지 모르지만 이 아이들이 살 세상은 내가 살던 평화로운 대한민국의 세상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나 다크엘프의 아이들이 마주할 현실은 더더욱.
그러나 일부러 겁을 주려는 목적이 있었음에도 합격한 아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차렷 자세로 내가 하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저씨, 제가 한가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네요. 아이들이라고 해서 쉽게 포기할 거라는 건 착각이었어요.”
“아이들이 한가지에 집착하면 어른들보다 더 빨리 익히긴 해. 애들 눈빛 봐라. 괜찮은 애들만 남았어.”

그 날의 테스트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은 매일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나이에 맞게 오버 트레이닝이 되지않도록 설계된 체력훈련과 기초자세를 익히는 반복훈련 그리고 오전동안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나면 내가 준비해둔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선생님, 선생님이랑 훈련하는 건 정말 힘든데 선생님이 해주시는 음식은 너무 맛있어요.”
“그러냐?”

몇 년 전부터 이곳 주변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자 각종 야채와 채소를 비롯하여 과일들을 수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졌고 최근에는 동물들을 사육하면서 소와 돼지, 닭 등의 가축들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재료를 수급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게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조미료의 존재였다.
아무튼 그렇게 아이들에게 균형잡힌 식사를 시키고 나선 약간의 가벼운 스트레칭 이후 잠깐의 낮잠시간이 주어졌는데 오전  지친 몸을 회복시키는데 좋은 루틴이 되었다.
“잘 때는 정말 천사같이 귀엽네요.”
“너도 그랬어.”
“진짜루?”
“흐흐흐, 너도 저기 그림우드처럼  흘리고 자고 그랬거든. 그게 얼마나 귀엽든지.”
“에이 내가 무슨 침을 흘렸다고!”
“어어, 애들 깨. 목소리 좀 낮춰.”
“(내가 언제 그랬어요!)”

자는 아이들을 방해할까 싶어 자리를옮기려고 하는데 엘리스는 증거가 있냐면서 끊임없이  뒤를 졸졸 따라오며 종알거렸다.
엘리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몰래 담은 엘리스의 귀여운 모습들은 엘리스의 성장을 기록한 포토앨범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아직 보여주기엔 너무 이르지.’
 미소가 약간 빙충맞아 보였는지 엘리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폭풍같은 아이들의 낮잠시간이 끝나고 오후 3시부터 우리는 이론수업을 시작했다. 검술을 익히는데 무슨 이론수업이냐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기대하는 높은 수준의 검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사고력이었다. 그걸 위한 가장 좋은 수업이 철학이었다.
“자, 그래서 이렇게 너희들의 선택에 의해서 한명을 희생시키고 다섯 명을 구할  있거나 한명을 구하고 나머지 다섯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래?”
“선생님, 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요?”
“둘 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너의 선택이긴 하지.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는 것과 차이가 없단다. 결국 니가 선택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테니까.  때문에 누군가 상처입을 것이 두려워 선택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비겁한 선택일 수도 있고 말이지. 해도 후회할 것이고 안해도 후회할 것이라면 어떤것을 선택하고 싶니?”

차가운 표정과 다르게 세심하게 주변 아이들을 챙기는 레베카는 자신의 선택으로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몸으로 하는 것은 잘했지만 유독 머리를 써야 하거나 깊은 사색을 해야 하는 오후 수업 시간이 되면 힘들어 하는 것이 그림우드와는 다소 대비되었다. 그림우드의 경우 오전 체력 훈련을 악바리같이  버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이 뛰어나서 그렇다기보다는 근성으로 버티는 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주변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고 오후 수업시간이 되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선생님, 제 선택은 한명을 희생해서 다섯명을 구하는 것이에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살려야겠어요.”
“그래?”
그림우드의 선택과 답변은 어린 아이에서 나올  있는 답변치곤 나쁜 대답은 아니었다. 그림우드의 대답을 들은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질문의 난도를 한단계 높였다.
“그런데 말이야. 희생시켜야 하는  명이 너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래?”
“가, 가족이요?”
“그래, 니가 선택해서 희생시켜야 하는 쪽이 너의 엄마여도 한명인 쪽을 희생시키고 다섯 명을 구한다는 선택을 할 수 있겠어?”
“그....그건.”

엄마밖에 없는 그림우드에겐 가혹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선생님, 질문이 너무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이런 질문에 정답이 있긴 해요?”
그림우드가 당황해서 울먹거리며 답을 못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베카는 그림우드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나를 향해 차가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정답은없단다. 그저 상상을 해보는 거야.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자신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미리 생각해보고 혹시 다가올지 모르는 어두운 미래를 단단히 해 나가는 것이지. 그리고 그림우드가 선택을 할 때 단순히 숫자에집중해서 다섯명을 구하겠다는 선택을 한다고 했지만 그게 과연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동료를 희생시키면서도 똑같이 할  있는 선택일  있을지를 물어본 거야.”

이 이야기는 선택에 관해서 유명한 문제로 H대의 마이클 교수의 강의에 나왔던 내용이기도 했다.
“너희들이 언젠가 검을 써야 할 때 그런 상황이 올지 몰라.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 미리 고민을 해보는 거지. 막상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쪽보단 미리 고민을 해보고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이 고민했던 바에 따라 선택을 하는 쪽이  나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이건... 그림우드에겐 너무 힘든 질문인  같아요.”
“맞아.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해. 힘들다고 해서 피하기만 하면 언젠가 도저히 피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단다. 차라리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은 거야”

눈물이 맺힌 그림우드도, 그림우드를 안고서 다독거려주는 레베카도 그리고 나머지 애들도 나의 대답에 많은 생각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하루 수업을 마치고 나자 엘리스가 아까 했던 철학수업 시간의 질문을 떠올렸다.
“굳이 아이들에게 이런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물론 고수가 되려면 필요한 것 같기도 한데.”
“고수가 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혹시라도 저 아이들이 나중에 검사의 길을 포기한다고 할지라도 대신에 뭔가를 할 수 있게 생각의 힘을 키워주고 싶어서 그래. 혼자 스스로 궁리하고 배우는 법을 터득하면 그 다음부턴 어느 쪽을 새로 배우더라도 금방 익힐  있는 힘이 될테니까.”

아이들과의 수업이 어느 정도 시작되고 나서 내가 우려했던 사건이 터져 버렸다.
“커맨더님, 커맨더님이 가르친 ‘그쪽’ 엘프 아이가 우리 아이를 다치게 했어요. 이걸 어떻게 책임지실 거죠?”
“제 학생들 중에서요?”

이곳에서 배운 기술을 함부로 주변인들에게 휘두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음에도 터진 사단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으나 난 내가 가르친 아이들의 심성을 믿었다.
“흠,  아이들이 그랬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니! 커맨더 님이라도 해도 이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여기 제 아이 얼굴을 봐요. 이게 뭐에요!”

아이의 엄마의 말대로 엘프 아이의 얼굴엔 주먹으로 맞은 듯 생채기가 나 있었다. 나는 아이를 쳐다보며 물어봤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아이는 손을 들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한명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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