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0화 〉140화-빅터의 조상님들(1) (140/239)



〈 140화 〉140화-빅터의 조상님들(1)

다크엘프들의 자식들에 대해 비난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행위를 금해 봤지만 인종차별의 뿌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뽑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처럼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를 써 봤지만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이미 싫어하게 된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바꾸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어서 다크엘프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찾아왔다가 ‘그림’의 자식인 ‘그림우드’를 만났다.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가 불러서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림은 노역(奴役)을 마치고서도 한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그림우드는 길거리에서 혼자 외롭게 놀고 있었다.
“맛있는 거 사주는 아저씨는 쫓아가지 말라.”는 말이 아직 없는 이곳에서 엘프가 아닌 내가 혼자 놀고 있던 다크엘프 아이와 대화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그림우드와 놀아주자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가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우드는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앉게 되었다.

“아저씨, 저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엘프들인가요?”
“아니, 그렇지 않아.”
“저희들의 피부색이 바로 죄업의 증거래요.”
“그림우드, 너희들의 부모님들이 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본인들이 치렀거나 치르고 있어. 너희는 어떤 죄를 짓지도 않았고 다른 엘프나 드워프들과 다를 바가 없는 동등한 존재란다.”
“하지만...다른 엘프 애들이 저희들이 태어난  자체가 잘못이라면서 그러는 걸요.”

빅터가 어렸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빅터는 다크엘프의 피가 섞인 혼혈로 태어나 부모 어느쪽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사랑 없이 커야만 했다. 이 아이는 비록 어머니는 있었지만 그 외의 많은 부분들에서 빅터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었다.
‘빅터에게 버크가 있었던 것처럼...이 아이에게도 보호막이 필요한 걸까?’

내가 대답하지 않고 잠시 쳐다보고 있자 그림우드는 내 무릎 위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다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을 비비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훌쩍훌쩍....거봐요. 아저씨도 대답 못하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야. 너무 말도 안되는 소릴 들어서 그래. 태어나는 것이 죄악이라니. 그런 건 어떤 존재에게도 해선 안되는 말이거든.”
“진짜요?”
“그럼~,내가 어느 다크엘프의 이야기를 해줄까?”
“무슨 이야긴데요?”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똘망똘망해진 눈빛의 그림우드의 모습은 여느  아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들려주기에 적당하게 빅터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한참을 이야기해줬다.

“와와, 빅터라는 사람 정말 멋있어요. 상처입은 자들을 위해 스스로 그들을 지키는 방패가 되기로 결심했다니...”
“너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될 수 있을까요?”

시무룩해진 그림우드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려울 것 같아요.”
“아니, 너에겐 아직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단다. 죽기 전까진 아무도 몰라.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도전해봐야 해.”

 이야기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림우드의 표정엔 내가 어릴 적 빨간 망토를 두르고 히어로였던 슈퍼맨을 동경했던 것처럼 빅터라는 ‘영웅’을 상상하는 것처럼 생기가 담겨 있었다.

“그림우드! 한참 찾았잖아.”
“엄마! 아저씨가 멋있는 다크엘프 이야기를 해줬어.”
“그래? 재밌었겠다.”
“이따가 내가 엄마한테 이야기해줄게.”
“진짜? 와와, 이따가 이야기해줘야 돼.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얼른 집에 가서 손 씻고 세수하고 있어.”
“알았어. 엄마.”

내 무릎 위에서 내려 온 그림우드가 뒤도 안 보고 뛰어가려고 하자 그림이 아들을 불러 세웠다.
“아저씨한테 인사 안하고 그냥 갈 거야?”
“아, 아저씨. 저 가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배꼽인사를 하고 가는 그림우드의 발걸음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 모습을 엄마 미소를 짓고 지켜보던 그림은 나를 향해 차가운 표정으로 변한 채 말했다.
“아이를 돌봐준 것은 고마운데 쓸데없는 호의는 사절이야. 그림우드에게 상처 주기 싫으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너무 경계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내 입장에서 그건 어렵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대응해주는 것도 꽤나 심력을 기울이는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그건 그렇군. 불편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이만 떠나도록 하지.”

내 말을 들은 그림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림우드! 손 다 씻었어?”
“아니, 아직!”
“엄마가 뭐라고 했지?”

집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옮기려고 하자 따로 있던 엘레네가 찾아왔다.
<그림은 이제 누가 봐도 어머니같네요. 굳이 정후에게 그렇게까지 쌀쌀맞게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지만.>
“혼자서 아이를 키우려면 강해져야 했을 거야. 그러니까 다른 다크엘프 집보다 이렇게 한참 늦게 돌아오는 거겠지.”
<정해진 일과 이후에 추가로 일을 하는 것은 잔업수당을 챙겨주니까 말이죠.>
“응, 다른  아이들은 이미 집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혼자 남아서 흙장난을 치고 있더라고. 좀 안쓰럽기도 해서...놀아주려고 했는데 아이도 엘프들에게서 들었던 말이 상처가 되었는지 힘들었나 봐.”
<인간은 부모의 죄와 자식의 죄를 쉽사리 따로 놓고 생각하지 못하니까요. ‘연좌(緣坐)제’가 괜히 과거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겠죠. 위정자 입장에선 연좌제를 도입하는 것은 자신에게 반하는 이들이 함부로 일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의식통제였죠.>
“왕을 바꾸려고 하다 실패한 이들을 역모죄로 몰아서 삼족을 멸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의 하나였지.”

어떻게 하면 엘프들로부터 어린 다크엘프들을 향한 혐오의식을 제거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둘이 대화를 나누며 옮기고 있는데 어느새 우리들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저씨, 뭐하러 그렇게 다크엘프들을 신경 쓰는 거야? 잊었어? 아저씨의 10년 넘는 세월을 날려먹을 뻔하게 만들었다고.”
“듣고 있었냐? 뭐, 어찌 되었건 일은 잘 진행되어서 이렇게 여기에 오게 되었잖아. 죄를 지은 사람들은 대가를 치르고 있고,  그 점에 대해서 딱히 더 큰 대가를 치르길 원하지도 않고 아무  없는 어린 아이들은 되도록이면 상처 받는 일이 없었으면 해.”
“그거야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직 죄를 지은 적도 없는 어린 다크엘프들에게 ‘낙인’을 찍게 되면 이 다크엘프들은 결국은 엘프들이 찍은 낙인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단 말이지. 죄에 대한 징벌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달까.”
“아저씨 말은 엘프들이 다크엘프들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단 이야기야?”

재일교포의 사례가 그러했다. 강제로 끌려간 재일교포들이 일본 내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길을 막아놓은 상황에서 재일교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더럽고 힘든 일을 하거나 암흑가의 존재로 탈선하는 경우 외에는 많은 선택권이 없었다. 재일교포 야쿠자라든가 재일교포 중에 빠찡코 사업을 하는 이들이 많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비슷해. 가능성을 막아두고 다른 길을 열어주지 않게 되면 막다른 길로 갈 수 밖에 없잖아. 설령 나중에 그 아이들이 커서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 몰라도 어릴 때부터 잠재적 범죄자로 대해선 안된다는  내 생각이야.”
<범죄를 저지른 적 없는 범죄자의 자식들도 어떻게 보면 범죄자에게 피해를 입은 간접적 피해자입니다. 엘리스.>
“그런가?”
엘리스는 나와 엘레네의 말에 상념에 빠지는  같았다.

다크엘프들의 자식들에게 되도록 다른 엘프들과 차이 없는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돕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가능성의 크기가 곧 미래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작은 인구를 가진 킹덤에선 한 사람도 허투루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상념에 빠진 엘리스를 두고서 나와 엘레네는 빠져나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그림우드가 신경 쓰여 다크엘프 마을로 또 찾아가게 되었는데 다크엘프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격인 그림우드가 어떻게 설명을 한 것인지 내 정체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준 적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내게서 빅터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나는 다시 한번 이야기해줬다.
“아저씨, 아저씨도 검을 차고 있는 걸 보면 검사인데, 영웅 빅터처럼 검술 쓸 수 있어요?”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다크엘프 아이 중 하나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모르겠네. 영웅 빅터는 내게도 검술을 가르쳐 준 스승님이거든.”
“와와, 아저씨가 영웅 빅터의 제자에요?”

 아이의 말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시끄러워졌다. 그러자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그림우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물어봤다.
“아저씨, 저희들한테도 영웅 빅터의 검술을 가르쳐주시면 안돼요?”
“뭐?”

생각해본  없는 이야기였다. 다크엘프들의 검술에 대해서 기초적인 것들은 빅터를 통해 상대법을 익히느라 배우기도 했지만 엘리스 말고도 가르쳐도 괜찮을지는 몰랐다. 아니 어쩌면 미래를 생각해서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아저씨, 저희들한테도 가르쳐주세요. 네에?”
“흠.”

내가 고민하느라 대답이 없는  가르쳐주기 싫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 나를 감싸고 달려들었다.
“가르쳐 주세요. 네에?”
“저희들도 영웅 빅터처럼 되고 싶어요.”
“전 빅터랑 함께 엘프들을 구했다는 ‘백발마녀’의 검술을 배우고 싶어요!”
조르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잠시 혼이 빠져 나도 모르게 그냥 허락할 뻔했지만 그렇게 감정에 취해 즉흥적으록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이건 고민 좀 해봐야겠는걸? 영웅의 길을 가는 건 그렇게 쉬운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요. 네?”

내가 당황하고 있으니 엘리스가 그걸 지켜보고 있다가 찾아왔다.
“너희들, 영웅 빅터처럼 되고 싶다면서 하고 있는 행동은 영락없는 떼쓰는 애들인걸? 영웅 빅터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함부로 울면서 징징거리지 않았어.”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의외로 순순히 넘어가선 눈물을 닦고 얌전한 척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제자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아무나 받아줄 순 없어.”

엘리스의 말에 아이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였지만 그림우드와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치켜세우며 강력하게 눈빛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찾아왔을  아저씨랑 내가 심사를 볼 거야. 누가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만이 최소한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어.”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앞으로 스승님이 되실지도 모르는 아저씨는 그만 놔 줘.”
“알았어요.”
“자, 너희들끼리 가서 놀아.”
“알겠어요.”

멋대로 아이들이  뛰어가서 놀려고 하자 그림우드가 붙잡았다.
“너희들! 가기 전에 아저씨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림우드의 통제 아래 단체로 인사를 한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의 모습이 되어 마을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너, 함부로 그런 약속을 하면 어떻게 해?”
“괜찮아요. 괜찮아. 아저씨가 처음에 가장 중요시하는 체력 훈련을 위한 기초 체력 테스트한다고 동네 몇바퀴만 돌리면 지들이 먼저 스스로 나가떨어질걸?”

엘리스의 말을 들어보니 일견 일리가 있었다. 무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검사가 되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끝없는 체력 훈련을 반복하고자 하는 인내심이기도 했으니까.

“뭐, 그거야 그렇긴 하지. 근데 이 동네 둘레 한바퀴만 해도 2km는 될텐데? 그걸 몇바퀴나 돌리겠다고? 너도 참.”
“아저씨가 나한테 검술 가르칠  그거보다 더 했거든요?”
“내가 그랬나? 하하.”

떠올려 보자면 엘리스는 토할 때까지 운동하고 그러고 나서도 때론 더  때도 많았다.
“다  위해서  일이었지. 너도 원했잖아.”
“그 정도까지 해야 되는 일인지 알았으면 애초에 발도 안 들이밀었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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