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139화-아이는 어른을 보고 자란다.
지하도시에서 전면적으로 나가기 전에 우리는 환경을 조성하느라 바빴다. 식물들의 씨앗을 드론에 띄워 여기저기로 날려 보내고 식물들이 꽃을 피울 때쯤 지하도시 안의 연구소에서 키워왔던 꿀벌과 같은 각종 유익충들을 방생했다.
몇해가 흘러 뿌려놨던 씨앗들이 발아하고 성장해서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했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대형드론을 통해 피라미드 계층에서 하위계층에 속하는 초식동물이나 작은 동물들을 방생했고 우리가 나가기 얼마 전이 되어서 최상위에 속하는 육식동물들을 방생했다.
“아저씨, 굳이 육식동물들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인류의 번성을 위해서라면 육식동물의 존재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었다. 엘리스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육식동물이 널리 퍼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아니, 인간이 오랫동안 이 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필요해.”
“어째서?”
<생의 순환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늘어나면 이들이 각종 식물들을 모두 먹어치우면서 생태계의 환경이 사막화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줄어든 식물만큼 사막이 넓어지면 인류의 장기적 번영에는 방해가 되겠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초식동물이 늘어나지 않기 위해서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자연적으로 조절해줄 육식동물은 필요합니다. 엘리스.>
“그런 거야?, 아저씨도 알고 있었어?”
“아니, 저렇게 구체적인 건 아니었지만 대충은알고 있었지.”
나는 이전에 뉴스로 접했던 멧돼지 이야기들을 해줬다. 산에서 표범이라든가 호랑이같은 맹수가 사라지자 멧돼지가 산의 최상위 포식자 층이 되었고, 이 멧돼지들이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산에서 내려와 인간이 키우던 농작물을 먹어치우면서 주변 환경을 망가뜨린 사례들에 대해서.
“어느 것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하나도 허투루 존재하지 않는 거구나. 신기하네.”
“그게 자연이지. 알아서 돌고 도는 것. 앞으로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순환의 고리를 함부로 깨지 않는 거야. 설령 깨더라도 다시 복원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안돼. 모기따위는 빼도 되지만 말이야.”
환경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점차 오염되는 환경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위협해 나가는지 나는 자라나면서 체험해야 했다. 이전에는 의식하지 않았던 공기의 오염은 봄이 되면 뿌연 황사와 함께 섞인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게 만들었다. 여기 저기 세워진 공단에서 흘러 나오는 오폐수들은 때때로 강물을 오염시키기도 해서 악취가 나게 하기도 하고, 우사(牛舍)와 다르게 악취가 심한 돈사(豚舍)를 지날 때면 차문을 닫아야 했던 경험들을 자연스럽게 했던 기억이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개발은 필요하지만 그래도 ‘적당히’가 중요해.”
“그게 제일 어려운 듯?”
엘리스는 내 말을 듣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나는 굳이 옆에서 조잘거리지 않고 가만히 옆에 있어주곤 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준비를 끝낸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처음 나올 때 사람들은 지하도시에서의 삶이 끝났다는 사실에 환호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물건을 짊어지고 끌고서 나오는 모습은 어찌 보면 전쟁통에 도망치는 피난민의 모습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주지역을 미리 선정해서 필요한 기반시설은 만들어 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짐이 참 많네요.>
“어느 곳이든 삶의 터전을 잡고 나면 필요한 물건들이 생기잖아. 그걸 오랫동안 쓰다 보면 사람은 애착을 갖게 되거든. 설령, 당장 필요하진 않더라도 언젠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논리로 쉽게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거지.”
나의 어머니를 봐도 어머니의 삶은 미니멀리스트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 어떻게 필요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집 안의 창고는 쉽게 비워지질 않았다. 실제로 언젠가 쓰일 때도 있긴 했으니 어머니의 준비가 항상 틀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TV에 나오는 맥시멀리스트들의 집을 보면 꽉 채워진 공간에 사람들이 살 공간이 밀려나 사람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있어야 하는 곳에 사람이 낑겨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하면 부족함만 못한데 말이야. 어차피 이주하고 나면 다 새로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꽤나 많기도 하고.”
“그래도 거기에 담긴 추억은 새로 구할 수가 없잖아.”
엘리스는 내 말에 다른 의견을 표현했다. 나는 그게 반가웠다. 엘리스가 너무 나와 오래 붙어 있어 나의 색에 물들어버리지 않기를 원했다. 그것이 정치든, 종교든, 삶에 대한 자세든. 오히려 나보다 나은 존재가 되길 진심으로 원했다.
대형 버스에 짐을 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뒤 우리는 우리의 차를 타고 이주지역으로 선발대로 이동했다.
엘레네는 차 뒤에 앉아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정후와 엘리스를 번갈아 봤다. 둘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생각의 방향은 때때로 달랐지만. 말버릇도 비슷했고, 저렇게 양쪽 유리창에 각자 한쪽팔을 얹고서 똑같은 표정으로 하품을 쩍쩍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유전자는 다르지만 부녀의 모습이 저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차를 타고서 우리는 때때로 중간 기착지를 미리 답사하고 우리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파놓기도 했다.
“아저씨, 저기 하늘 봐봐.”
“별이 쏟아질 것 같네.”
구름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별의 모습을 캠핑 체어에 늘어지듯 앉아 바라보는 것은 예전 크로니클 단원들과 떠돌아다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말했던 크로니클 단원들 생각해?”
“아니?”
“에이, 거짓말하긴 아저씨는 거짓말하면 티 나거든?”
“그런 말 처음 듣네. 어디 가도 사람들이내 표정을 알아보고 그런 적은 없었는데.”
“피이, 얼굴에 다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뭐. 크로니클 단원들 이야기 좀 해줘.”
“거의 다 해주지 않았나?”
“드마코 아저씨가 왜 용병이 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어. 나중에 말해준다고 하고 까먹었잖아.”
“아, 그랬나?”
“아, 그랬나? 저번에도 그러다가 까먹었거든. 지금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 이야기해줘.”
엘리스는 내게서 크로니클 단원들과 있었던 일들이나 크로니클 단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자기도 언젠가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드마코 형을 떠올리며 드마코 형이 왜 용병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는 펠릿난로를 피워놓고 이주지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5일이 지났을 때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에 올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기지개를 참 뻑적지근하게도 한다.”
엘리스는 차에서 내려 차를 타고 오면서 굳었던 온몸을 활짝 펴면서 소리를 한껏 질렀다.
“어우, 시원하다.”
“노인네같은 소리하네.”
“왜 이래 다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아쭈?”
우리가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는데 엘리스의 다섯 친구들이 우리를 마중나왔다.
“오셨습니까? 학장님.”
“학장 그만둔 지가 언제인제 아직까지 학장이래.”
“한번 학장님은 영원한 학장님이시죠.”
“학장님 덕분에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영상으로만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 어떠십니까?”
“꽤 많이 복구했네.”
“저희들이 살아온 터전이니까요. 앞으로도 살아갈 터전이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가 온 이주지역은 엘븐하임이었다. 해일에 이리저리 쓸려나가 외벽은 무너지고 가운데에 있던 피라미드가 있던 자리는 지하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모두 사용되어 텅 비어 있었다.
“피라미드가 있던 곳엔 잘 심어놨지?”
“예, 생각보다 빨리 잘 자랍니다.”
내가 기억했던 모습에 맞춰 엘븐하임의 한 가운데엔 엘븐하임의 상징인 ‘세계수’를 심어놨다.
외벽은 드워프들이 모두 달라붙어 만약 해일이 다시 발생한다 해도 쓸려나가지 않을 벽을 건설하겠다고 한창이었다.
“다들 고생이 많네.”
“고생은요. 저희들이 집이 될 곳인데요. 말씀하셨던 대로 ‘엘븐하임’ 주변으로 거대한 숲을 건설 중입니다.”
“아쉽네요. 숲이 건설되고 나면 저 멀리 존재하는 ‘바다’에 가기가 쉽지 않아질텐데.”
“‘바다’를 본 감상은 어땠어?”
“자연의 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산과는 또 다르더군요”
“진짜? 바다가 그렇게 커?”
“엘리스, 넌 모를거야. 직접 봐야 알지. 한없이 커다란 공간에 물과는 다른 짠 맛이 나는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황무지를 지켜보는 것과는 완전 느낌이 달라.”
“생명이 가득 찬 느낌이랄까.”
엘리스는 이때의 대화때문인지 가끔 바다 보러 가자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나중에 가자. 나중에.”
“피이, 맨날 나중이래.”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될 왕국민들은 가설건물에서 살며 자신들이 살 집을 새로이 구축하게 될 것이었다. 얼마 지나고 왕국민들이 모두 도착해서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엘븐하임의 성벽 안쪽으로 길게 버스에 타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문제없이 도착했나?”
“별 일은 없었습니다.”
내 질문에 이주를 맡은 관리는 환자발생이나 큰 문제없이 순조롭게 잘 도착했다고 보고 했다. 하지만 관리들의 별 일 없다는 대답이 항상 정답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아야 했다.
“회색분자 자식들아. 지하도시로 꺼져! 뭐하러 따라왔어!”
“우리 엄마가 너희들은 죄지은 자들의 자식이랬어.”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어.”
“어른들이 말하길 너희들의 피부가 그렇게 회색빛이 된 건 너희들이 타락했다는 증거랬어.”
“더러운 ‘다크엘프’따위 엘븐하임에 돌아오지 않는 게 나았을텐데.”
“여왕님들은 뭐하러 저 다크엘프들을 데려오신 걸까?”
나는 거리를 몰래 돌아보면서 뛰어다니는 애들의 모습에 흐뭇해하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충격을 받고 멈춰서야 했다.
계속되는 엘프 아이들의 험악한 말에 난 빠르게 도착했고 아이들은 엘프와 다크엘프들 모두 구분없이 나의 등장에 잠깐 놀라는 듯 하더니 내가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던 로브의 모자를 벗어버리자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고개를 조아리며 손등을 이마에 대며 나에 대한 존경의 예를 표했다.
“킹덤을 번영으로 이끄는 커맨더를 뵙습니다.”
“예는 됐다. 너희들은 내가 이곳에 왜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인 ‘혐오’의 태도가 딱히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엘프들은 당당했고 다크엘프 아이들은 위축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여기에 나타난 것은 너희들이 저 아이들을 향해 해서는 안될 말들을 내뱉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커맨더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크엘프들은 자신의 죄업을 피부로 나타낸다고 들었습니다. 죄지은 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아이들을 이끄는 엘프는 지켜야 할 예를 다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이야기했다.
“저 아이들은 죄가 없다. 너희들과 똑같이 아무런 죄가 없는 순수한 왕국민이다.”
“똑같다구요?”
내 말에 아이들은 내가 아무리 커맨더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저희들끼리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다크엘프들과 저희 엘프들은 엄연히 피부색이 다릅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너희들과 다르고 드워프들은 엘프와 완전히 다르다.”
“그건 다르지 않습니까? 커맨더 님은 인간이시고, 드워프는 드워프지요. 인간이나 드워프들과 다르게 우리 엘프가 어떻게 저런 ‘변절자’들의 자식이 같은 존재일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다크엘프들의 자식들을 지상으로 데려와 이들과 어울려 살게 했을 때부터 이걸 예상했어야 했다. 더 이야기를 나눠봤자 한두마디로 아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만 같았고, 이 대화를 듣고 있는 다크엘프 아이들의 표정이 점차 울상이 되어가는 것을 보니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다크엘프 아이들에겐 상처가 될 것 같아. 대화를 마친 뒤, 다크엘프 아이들을 따로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일반분양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근처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쉽게 혐오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을 가지듯 엘프들의 아이들도 부모 엘프들을 통해 다크엘프를 향한 차별과 배타적 의식을 빨리도 배운 것 같았다.
“하아, 아이들은 빨리 배우지. 어른들이 보이는 잘못된 습관이나 언행과 사고방식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