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137화-뫼비우스의 띠
“준비는 이제 다 된 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준비는 다 끝낸 것 같군.>
“아저씨, 잘 되겠죠?”
“거, 플래그성 발언은 자제하라니까.”
“나도 떨려서 그러지.”
<시뮬레이션 결과상으론 성공확률이 98.5%였습니다.>
“인공지능 셋이서 몇십 번이나 돌린 결과니까 믿을 수 있겠지. 부디 재수 없는 1.5%에 들지 않길 바라자구.”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프로젝트 최종단계를 실행하고 있는 커맨드 센터에 하얀 여왕이 돌아왔다.
<외부에 나가 있는 모든 인원들이 모두 실내에 들어온 것을 확인했어요. 진행시켜도 좋습니다.>
“휴우. 여기에 지난 내 인생이 다 갈려 들어갔다구.”
험프티 쿠데타 이후 2년 2개월동안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굳이 시험을 할 필요 없이 실행단계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저희가 바라온 숙원도 이어져 있습니다.>
<마더, 드디어 우리가 여태까지 존재해온 두 번째 비원(悲願)을 이룩하는 겁니까?>
<짧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소회를 이야기한 뒤 모두의 시선이 마주치고 가슴이 웅장해질 때쯤 버튼을 누르자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내 디스플레이 상으로 10초부터 시작된 카운트다운이 0에 도달하는 순간 저 먼 하늘에서 게이트가 열렸고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록 고지대로 올라와 땅을 파고 들어가 그곳에 지하도시를 건설했지만 관측장비로도 상황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와와, 아저씨! 성공이야!”
“진짜 되는구나.”
미친 듯이 콸콸콸하고 쏟아지는 바닷물은 이내낮은 지대로 흘러 들어가 채우기 시작했다.
“아저씨...”
“대단하지?”
“아니, 사이즈가 다르긴 한데 꼭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변기...”
“그만, 위대한 위업에 어울리지 않는 상상이다.”
“근데 진짜 꼭 ‘그거’같지 않아?”
동의하고 싶지만 가끔 구멍을 비집고 울컥울컥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엘리스의 말도 딱히 틀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감상은 혼자 간직하도록 해. 난 감동스런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그래도...꼭 저거...배탈나서 설...”
“어허.”
인간이 이룩한 위업을 자꾸만 된장색으로 채색하려는 엘리스의 만행을 도저히 지켜만 볼 수가 없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우리의 잡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거인의 항문...아니 하늘에 열린 구멍은 하염없이 바닷물을 쏟아냈다.
“어우...아직도 내려와?”
“응, 아저씨. 계속 내려와. 그리고 낮은 지대의 많은 지역이 아저씨가 말했던 ‘바다’라는 것으로 바뀌었어.”
디스플레이 상에 나타난 화성은 갈색의 행성에서 점차 푸른빛의 지구를 닮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아저씨,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 어디라고 했지?”
“히말라야(himalaya). 히마(hima)는 눈, 라야(laya)는 집을 의미하지.”
“‘눈의 집’인건가? 아저씨, 그럼 우리가 있는 이곳에도 언젠가 눈이 내리겠지?”
“시간이 흘러서 기화된 바닷물이 이곳에 내리는 날이 오면 그렇겠지. 아마 이곳에 가장 먼저 눈이 내릴 거야.”
“그럼 난 여기를 알라야히마(Alayahima)라고 이름 붙일래. 알라야히마 산맥. 그대로 베끼는 건 양심상 조금 그러니까. 살짝 앞뒤만 바꿔야지. 의미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대륙의 지붕! 눈이 가장 먼저 쌓이는 곳은 이곳이 될테니까.”
우리가 있는 산맥의 이름을 짓고는 눈이 어서 빨리 내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엘리스를 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니가 지은 이름이었구나. 알라야히마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길이길이 남아 전해진 산맥의 이름은 20대의 엘리스가 내 옆에서 지은 이름이었다.
‘버크 아저씨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던 곳이었나?’
엘리스에게서 나온 단어를 통해 난 직감적으로 우리의 프로젝트가 결국은 성공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저씨, 울어?”
“뭐, 내가 울긴 왜 울어?”
“울잖아. 지금.”
엘리스의 말에 눈가에 손을 대보니 눈물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기뻐서 흘리는 거지?”
“그래, 이제 돌아갈 준비만 하면 되겠다.”
“그...그렇구나.”
‘아저씨는 언젠가 우리와 헤어져서 돌아가야 하지...’
내 어깨를 다독거려준 엘리스는 자신도 이 성공이 기쁜 것인지 눈물이 살짝 맺힌 것 같았다.
<정후님이 말씀하신 대로 외부에서 소행성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엘리스를 제대로 지켜볼 수도 없이 엘레네의 말에 모선의 관측 레이더로부터 달에 이끌려 날아오는 소행성이 디스플레이 상에 나타나 그걸 봐야했다.
“마력 증폭의 과정에서 최대한 불필요한 부분은 없이 했는데도 결국 저건 날아오는구나.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걸까?”
이윽고 달을 향해 날아온 소행성은 달을 부수며 큰 충격(deep impact)을 발생시켰다. 그와 함께 달의 일부는 화성을 향해 쏟아져 내렸고, 부딪힌 소행성은 일부는 부서지고 일부는 그 자리에 남았다. 마치 당구공끼리 부딪혔을 때 부딪힌 공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고, 부딪힌 것이 날아가듯.
<인위적인 모든 것은 작용에 의한 반작용을 불러 일으키는군.>
<오래전 과거 관측되었던 화성의 두 개의 달이 데이모스(Deimos)와 포보스(Phobos)라고 했나? 데이모스가 낭패, 포보스가 공포라는 의미를 가졌었지.>
<하지만 포보스는 화성에 추락해서 지금처럼 하나의 달만 남게 되었잖아?.>
“데이모스와 포보스? 예전에도 화성에 달이 두 개였던 때가 있었어?”
<그랬습니다. 엘리스. 인류가 화성에 직접 발을 닿기 전, 그 당시의 사람들은 화성의 달이 두 개였다고 생각했죠.>
“헤에, 이상하다. 달이 두 개라니. 달은 원래 하나인데.”
“그렇지. 달은 원래 하나였지.”
먼지만이 가득한 땅 더스트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였지. 지구에서 내가 보고 자라온 달은 엘리스처럼 하나였다. 그러나 꽤 긴 시간 머문 덕분인지 난 달은 두 개라는 인식 자체가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엘리스에겐 다른 감흥을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저 두 개의 달에 이름을 지어줄래. 음...”
엘리스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는데 나에겐 떠오르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스포보(sphobo)'와 '모스다(mosda)'?’
“정했어. 스포보와 모스다로 할래. 그동안 달은 그냥 ‘달’이라는 이름이 이상하긴 했어. 마더도 엘레네라는 이름이 있잖아.”
‘너였구나... 근데 너무 성의없는 거 아니냐...’
“스포보가 공포, 모스다가 낭패라는 의미로. 예전의 지구인들처럼 우리도 똑같은 의미를 떠올리되 조금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억해주자. 똑같이는 싫어.”
엘리스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더스트 행성의 어원도 짐작할 수 없는 오래된 이름들을 하나 하나 말할 때마다 내 마음엔 확신이 차오른다.
‘집에 갈 때가 그렇게 멀지는 않은가보다. 섀넌...나, 성공했어.’
이제는 빛이 바랜 단 둘이 찍은 사진을 살짝 꺼내서 보고 있자니 너무 먼 과거같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선 먼 미래이기도 했다.
엘리스는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사진을 쳐다보며 쓰다듬고 있는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그립겠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먼 미래에 있으니까. 아저씨, 내가 보내줄게.’
그 날 이후로 엘리스가 잘 안보였다.
“얘는 또 어딜 간거야?”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생겼다더군요.>
“어차피 가 봐야 지하도시 어딘가일테니 걱정은 안되지만.”
행성으로 쏟아져 내린 달과 소행성의 파편 조각이 바닷물과 맞닿은 순간 화성에는 엄청난 양의 해일이 발생했고 우리는 대기가 안정이 되고 행성의 지각이 안정될 때까지 안전이 보장된 지하도시 밖으로 딱히 나갈 일이 없었다. 태양이 없는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는지 연구결과를 통해 잘 알고 있던 우리는 지하도시의 천장에 태양을 닮은 거대한 인공조명을 설치해놨다. 모두의 생활리듬을 지키기 위해 인공조명은 기존의 바이오리듬을 깨지 않게 아침 시간이 되면 밝아지고 저녁이 되면 달빛처럼 은은하게 바뀌었다.
“저게 있으니까 딱히 지하같지가 않아.”
<생각보다 비용이 저기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덕분에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것만 같잖아.”
왕국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농업플랜트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생활하는데 있어 필요한 물건들을 생산하는 일을 맡아야 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각자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잡지를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영화를 감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며 각자 평화로운 삶을 지킬 수 있었다.
“기술이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군.”
<그건 누군가 희생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살짝 가라앉은 느낌으로 붉은 여왕이 말을 꺼냈다.
“드워프들이라면 요즘 맥주 마시느라 즐거워 할텐데?”
<드워프들 이야기가 아니다. 지하도시에서도 지하에서 필요한 광물자원을 채취해내는 ‘다크엘프’들에 대해서 말하는 거지.>
“아...”
붉은 여왕 레드의 말대로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인도적으로 잠도 재우지 않고 밤낮없이 일만 시키지도 않았다. 내가 다크 엘프들을 떠올리며 살짝 표정이 굳자 레드가 말을 이어갔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들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중일뿐이니까. 다만 미리 고민해둘 부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말이야.>
“뭐지?”
<그림이 험프티의 애를 낳아서 몰래 키우고 있었더군.>
“어?”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레드의 말에 따르면 순찰을 하느라 가면 항상 그림이 곧잘 사라지곤 해서 혹시라도 또 무슨 범죄를 저지르거나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사람을 붙여 놨는데 다른 공간에 숨겨두고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나이가 어떻게 돼?”
<태어난지 1년 정도 지난 것 같더군.>
“완전 갓난 아이잖아?”
죄를 지은 사람이 죗값을 치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범죄자의 자식까지 부모의 죗값을 치르길 바란 적은 없었다.
“다크엘프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또 있어?”
<확인된 바로는 몇 명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이고, 골치야. 산 넘어 산이라더니.”
킹덤의 법은 기본적으로 연좌제(連(緣)坐制)를 금지하고 있다. 죄를 지은 자가 죗값을 치르면 될뿐 그 후손들에게까지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왜 숨긴 거지?”
<두려웠다고 하더군. 혹시라도 들키면 아기들을 자신들로부터 빼앗아 갈까봐.>
“그래도 그건 아니야. 애들을 어떻게 그런 공간에서 키워. 진폐증(塵肺症)에 걸릴 수도 있다고.”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의 죗값을 치르길 바라지. 병에 걸려서 죽거나 하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선 먼지를 포섭하는 마법을 발동해서 상시 공기 정화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라고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 좋지 않아.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키우게 할 순 없어.”
다크엘프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에 대해 토론을 나눌 필요가 있어 커맨드 센터로 수뇌부를 긴급 소집하도록 했다.
“이제 천천히 돌아갈 준비만 하면 되나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