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6화 〉136화-공으로 과를 덮을 순 없다. (136/239)



〈 136화 〉136화-공으로 과를 덮을 순 없다.

“잠은 잘 잤나?”
 질문에 사지가 묶인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험프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있기만 했다. 하지만 잠잘때와 전혀 다른 생체반응은 마스터에 오른 내 눈에는 어렵지 않게 포착이 됐다.
“일을 저지르고도 넌 잠이 잘 오는가 봐? 속이 참 편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난 그저 새로운 세상을 바란 것 뿐이다!  과정에서 패배한 것이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하아, 이거, 지가 뭘 저질렀는지 하나도 반성을 안했네.”
“만약 내게 잘못이 하나  있다면 내게 힘을 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대가 없이 힘을 주는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무지한 상태로 이용당했을 뿐이란 것이고.”
“니가 어린애야?”

험프티의 답변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고, 모든 것을 남탓으로 돌리기만 하는 녀석의 면상에한방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손발이 묶여 대항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그런 행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여왕들과 대화를 하기보다 폭력을 통해서 일을 진행하려고 했지? 대화를 시도해  수는 있었지 않아?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이었다지?”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여왕이 우리들의 말을 들어줄 리가없을 테니까.”
“그래서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고?”
“넌 시간이 지나면 해가 질 것을 알면서도 해에게 ‘오늘은 계속 떠 있어주세요’하고 바라나?”
“그게 뭔 개소리야.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해와 여왕들이 같을 리가 없잖아.”
“내게는 그들이 그렇게 느껴졌고, 나를 따르는 이들도 거기에 동조했다. 이렇게 계속 흘러가면 세상을 바꿀  없을 테니 충격을 줘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이야.”
“정 여왕들의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떠나 너희들만의 땅에 자리 잡고 살았어도 됐잖아?”
“훗, 이곳에서 나가면 굶어 죽으라는 건가? 이 별에서 사람이 살아갈  있는 터전은 이곳뿐이다.”
“그럼 나가서 살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든가 장비를 만들려고 했어야지.”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찾으러 갈 필요가 있을까? 내가 지도자가 되면 간단하게 얻을 수 있을 것들을 가지고? 니가 말하는 그 기술이나 장비라는 것도 내가 지도자가 돼서 얻는 것이 더욱 빠르고 편한 길인데.”

무지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자식은 자신이 뭘 망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더 이야기 섞기도 짜증났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넌, 니가망친 프로젝트가 무언지 알고 있나?”
“마력을 농축한 것과 관련된 장비라는 건 알고 있다. 뭐지? 무기같은 건가?”
“전혀 짐작하지도 못하는구나.”
“국민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여왕과 외부인이 와서 만들어 봤자 뭐 국민들에겐 하등 필요없는 것이나 만들었겠지. 외세에 현혹된 무리가 가져올 미래라는 건 그렇게 무가치하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녀석에게 난 진실을 이야기해줬다.
“...해서 이 장비가 완성이 되었고, 이제 첫 가동을 준비중이었던 거야. 황무지만 가득한 이 행성에 생명의 비를 내리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였다.”
“뭐라고?”
“그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면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너와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 있는 킹덤을 떠나 새로운 너희들만의 세상을 건설할 수도 있었겠지. 여왕들과 우리가 진행했던 일은 단순히 소수의 권력자들이 향락을 즐기거나 쾌락을 위한 사치에 빠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행성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빨리 번창하기 위함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여왕들은 국민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처음 나를 만들고 내가 그 옆에서 오랫동안 함께 했는데도 그랬지. 매일 보고를 할 때마다 조금씩 지루해하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턴 국민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그저 알아서 하라면서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 그랬던 여왕들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런 일들을 준비했다고? 믿을 수 없다.”

험프티가 이야기를 마치자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여왕이 들어왔다.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매번 우리가 얼마나 다른 반응을 해주길 기대했는지 모르겠군.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여줄 수 있나? 전 수비대장.>
<험프티 군, 그대가 우리에게 바란 것이 진정으로 그런 거였습니까?>
욱하면서 받아치는 붉은 여왕과 다르게 하얀 여왕은 담담한 눈빛으로 험프티를 쳐다보며 물어봤다.
한동안 답이 없던 험프티에게서 대답을 듣길 기대하는 것은 시간낭비인  같아서 다들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하는데 험프티가 입을 열었다.
“애정, 조금만이라도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봐 주길 원했지. 그대들은 나의 어머니이자 나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에게 단 한톨의 애정도 주지 않더군.”
<그야 우리는 너와 같은 생명의 존재가 아니니까.>
<우리가 당신들을 만든 것은 당신들에게 애정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긴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가족에게서 애정을 기대해. 당연한 거라고.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게 충족되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는가? 우리들이 그랬다. 당신들이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머리론 이해해도 가슴은 항상 애정을 기대했다.”

어느새 험프티는 울음이 터져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가족끼리 싸우고 있는데 끼인 것마냥 어색해졌다.
‘애정결핍이 결국 이런 파국을 일으킨 건가?’

서로 간의 할 말이 이젠 없어졌는지 병실이 조용해졌다. 머쓱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때마침 엘리스가 그림을 데리고 들어왔다.
“험프티...괜찮아?”
험프티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다가 그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그림을 쳐다봤다. 줘 터진 험프티의 눈가가 눈물로 젖어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란 그림은 옆에서 지탱해주고 있는 엘리스에게서 벗어나 험프티를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아저씨, 우리가 나쁜 일을 한 건가?”
그 모습에 이상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나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나쁜 일은 쟤들이 했지. 지들이 먹을 거 걱정 없고 자식 낳고 살 수 있게 좋은 세상 만들어 주려고 여러 사람이 10년 가까이 생고생한 걸 날려 먹게  건 쟤들이니까.”
지 남자친구가 다쳤다고 오열하면서 우리를 향해 분노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림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똑같은 소리  번하기는 싫다. 자세한 이야기는  애인한테 듣고 와라. 그리고 어이 거기 어른애새끼, 혼자라며 외롭다며? 니 옆에도 가족이 있었네. 다 큰 놈이 애정을   있는 상대가 옆에 있는데  그렇게 멀리서 찾냐.”
난 말을 마치고 엘리스에게 그림을 잘 챙겨서 데리고 나오라고 한 뒤 병실을 나왔다.

“누군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데 복에 겨워선 찡찡거리고 있네.”
<정후, 또 2년 2개월을 기다려야겠군.>
“지겹다. 지겨워. 했던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요즘은 군대도 2년도 안되어 전역하는데 재입대를 한번 하는  상상만 해도 열이 받을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 끌려와 계속 이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자니 속이 갑갑했다. 그나마도 이제 성공을 눈앞에 둔 순간 터진 상황에 어이가 없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쳐 맞아서 누워 있는 환자를 때릴  없어 주먹만 쥐고 울분을 참아야 했다.
“나야말로 화가 난다. 화가 나.”
<우리가  더 단속을 했어야 했는데, 별 거 아니겠지 하고 내버려둔 것이 이렇게 일이 커진 것 같아 미안하다.>
“그게 뭐 니들 잘못인가. 이런  그냥 불가항력같은 거지. 살다 보면 이런  한두번 겪는 건 아닌데 이번엔 좀 아프긴 하네.”

나를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울어진 터널에서 이제 겨우 빛이 비치는 것 같아 끝이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툭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어이없이 자빠져서 뒤로 한참을 뒹군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아니구나.”


<너에 대한 형벌은 삭제형과 사형이다.>
“사형인가? 뭐, 살아남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포생성을 통한 월등히 높은 수준의 치유 마법 덕분에 이제는 멀쩡해진 얼굴이 된 험프티는 죄수복을 입고 담담한 표정으로 법정에 앉아 있었다.
“근데 삭제형은 뭐지?”
<왕국에 높은 고위직을 차지했던 자가 죄를 저질렀다. 이를 국민들이 알게 되었을 때 느낄 배신감과 향후 생길 수 있는 불신을 없애기 위해 너에 대한 모든 기록을 지우기로 결정했다. 역사 어디에도 너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남을 수 없으며, 너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집단 ‘다크엘프’는 생존권이 확보된 이후에 광야(廣野)로 추방당할 때까지 영구적으로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자신이 받게 될 형벌이 무엇인지 알게 된 험프티는 담담했던 표정은 어디로 날려 버리고 벌떡 일어나 발악을 했다.
“이럴 순 없다. 이럴  없어. 내가 그동안 이 왕국을 위해 세운 공로를 모두 무시하고 이런 취급이라니!”
<공으로 과를 덮을  없다. 더구나 너로 인해 터진 사건이 수많은 왕국민의 삶과 미래를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이 별의 번영을 위해  시간 준비해온 것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이는 우리 킹덤뿐 아니라  별의 가능성을 빼앗은 것과 다름없다. 공은 오로지 과가 공을 덮지 않는 순간까지만 인정된다. 너의 공은 너의 과로 인해 사라졌다.>
“말도 안된다. 말도 안돼!”
“험프티!”

공범으로서 끌려와 이곳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그림은 악에 받혀 소리 지르는 험프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왕님, 봐주세요. 저희는 일이 이렇게 될지 잘 몰랐습니다.”
<무지는 용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저희가 왕궁에서 일한 지난 시간을 생각해 주세요.”
<그렇기에 오히려 너희들에게 부과된 책임의 무게가 더욱 무겁다. 너희가 누린 권한과 혜택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져야할 책임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다.>
<사람이 귀하기에 그댈 죽이지는 않는 것이지. 만약 사람의 가치가 지금처럼 귀하지 않은 세상이었다면 그대 또한 죽음으로 죗값을 치렀어야 할 것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저도 죽여주십시오!”
“안돼!”
끌려가는 과정에서 이를 듣고 있던 험프티가 소리쳤다.
“안돼, 그림. 그대는 살아.”
“어째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잃는 거야. 미래에 대한 꿈도, 당신도 없는 세상에서 내가 뭘 꿈꾸고 살아가야 하지.”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들은 우리만이 기억하고 있다. 나에 대한 기록이 모두 말소되고 나면 당신만이 곧 내가 세상에 존재했던 증거가  거야.”
“험프티...난 자신이 없어. 그대 없이 살아남을 자신이.”
“미안해. 그리고 기억해줘.”
“알았어. 나중에 다시 만나자.”
그 말을 끝으로 그림이 무릎을 꿇자 험프티가 자신의  옆을 꼭 붙잡고 있는 사형집행인의 인도에 더이상 반항하지 않고 한 번  뒤를 돌아보곤 법정을 떠나갔다.


  없는 곳에서  수 없는 방식으로 험프티가 죽고  뒤 왕국의 파괴행위의 주도세력인 어둠의 마법사들은 특유의 마력을 잃은 것을 확인하고 혹여나  존재에 대해  수 없도록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분리된 뒤 노동교화형에 처해졌다.

“형은 죽었나?”
“어.”
“젠장,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건가...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단순가담자와 다르게 왕궁의 집사장이었던 넌 그 책임을 물어 ‘격리 및 노동교화형’에 처해질 거야.”
“거사를 치르기 전날 형의 웃음이 이상하게 꺼림칙했는데 그날  블루문이 일종의 상징이었나보군.”
“뭐, 죽지는 않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단순가담자들에 대해선 자신들이 망가뜨린 물건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교육을 하고 다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단순노동에 동원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휴우, 이제 끝이 난 건가?”
“아저씨,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이제부터 또 시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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