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3화 〉133화-어둠의 마법사들 (133/239)



〈 133화 〉133화-어둠의 마법사들

우리가 전열을 휘젓고 다니는 사이 여왕군 측의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이제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패닉에서 벗어나 흔들린 마음을 다잡고 다시 마력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란 존재는 어느 정도 체내에 마력을 축적하기 시작하면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마법체계를 활용하여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험프티의 마법은 자동차로 따지면 순식간에 가솔린을 모두 빼버려 작동을 멈추게 하는것처럼 마력을 빨아들여 진공상태로 만드는 것이었기에 정비할 시간을 얻게 되자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험프티의 마법이 자동차의 엔진과 같은 마법사들의 핵심 마력 기관을 일거에 박살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힘을 차린 마법사들이 후방에서 우리를 도와주자 우리는 가속 마법과 방어 마법같은 서포팅을 받아 이전보다 더 활개를 치며 어둠의 마법사들을 와해시킬 수 있었다.
“게임에서 왜 딜러, 탱커, 힐러가 기본적인 조합인지 뼈저리게 알겠네.”

이제 어느 정도 잔당들을 여왕군측에서 자체적으로 정리할  있게 되자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지켜보면서 뒤로 빠져 체력을 비축하기로 했다.
빅터가 항상 중요하게 여긴 개념으로 전장에 투입되었을 땐 자신의 생각보다 빠르게 체력과 오러가 소모되는데 2차, 3차전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주변 상황을 살피며 대비를 해두는 자세를 익혀두어야 한다고 했다. 마치 검도에서 말하는 상대를 공격하여 유효타가 되었더라도 방심하지 않고 재차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있는 태도 및 정신 자세를 의미하는 잔심殘心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볼  있었다.

엘리스에게도  개념에 대해서 언급을 해줬는데 엘리스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주변을 둘러보고 좌우를 살펴보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서 따끔하게 한마디했다.
“어허, 엘리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상황 변화에 흔들리지 말고 한결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전투 좀 했다고 그렇게 흥분해서 흔들리면 어떻게 해?”
“아저씨, 그게 아니라... 없어!”
“뭐가 없어? 정신 좀 차려.”
“험프티 개자식 말이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족치려고 찾아봤는데. 없다고!”
“뭐?”

엘리스는 어둠의 마법사들을 이끄는 수장인 험프티를 찾느라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거였다.
“아저씨야말로 그 잔심인지 존심인지 그거 유지하라고. 우리가 이 개고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였어.”
“거, 들고 있는  내려놓고 말하자.”

귀엽고 착하던 그 자그마한 아이는 어디로 가버리고 앞엔 한 명의 완벽한 바바리안이 흥분한 상태로 있었다.
“아저씨도 빨리 찾아봐.”

엘리스의 말에 기감을 돋우고 주변을 살펴보자 이내 연구소 안에 스며든 께름칙한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 저기로 갔지?”
“어딘데, 어디 있어? 저기 있구나!  손에 잡히기만 해 봐. 아주 뒤졌으.”
내가 빠르게 연구소 쪽으로 뛰어가자 엘리스도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다친 사람들을 돕던 엘레네도 엘리스가 뛰어가는 걸 보고선 곧장 합류했다.

“도대체 왜 저길 자꾸 기어들어갈라고 하는 거지?”
“그러게, 저기에 뭐가 있는지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어서 모를 건데.”
<<한가지 짐작이 가는 건 있습니다.>>
“어떤 거?”
<<저곳에 거대한 에너지가 있고,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뭔가를 저지르려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엘레네의 말을 듣자마자 우리는 가일층 속도를 높여 달려나갔고, 이내 핵심 시설의 앞에 서 있는 험프티를 만날 수 있었다.

“이거 이거, 귀하신 분들이 몸소 날 찾아와 주셨군.”
“너, 그거 뭔지는 알고 거기서 그러고 있냐?”
일부러 떠보려고 던진 말에 험프티는 덥석 물어줬다.
“정확히 무얼 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한가지는 알지.”
<<꽤나 먹음직스러운 에너지가 모여 있다는 거야.>>
험프티의 뒤에서 등장한 거대한 검은 형체의 등장에 우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거의 종료되어 이제 저 자식만 정리하고 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 마음 놓고 있었는데 미지의 존재의 등장은 그게 아님을 시사했다.

“넌 도대체 누구지?”
<<나? 먼 과거에는 어둠을 지배하는 존재였기도 했지만 이런 저런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한동안 어둠에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 새롭게 부활을 꿈꾸는 존재?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자들을 위한 도우미라고 할까?>>
“하하하, 너희들도 세트는 처음 보는구나. 세트는 어둠의 마법사들에게 힘을 내려준 어둠의 정령이다!”

이상하게 기고만장해진 험프티를 보면서 우리 셋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둠의 정령?”
“그렇다. 모두에게 크거나 작게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에게 존재하는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안식과 같은 존재이지. 어둠의 정령 세트는 우리 모두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우리에게 정신적 안정을 줬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너,  잘못 알고 있는  같은데, 니 뒤에 있는 그거, 정령 아니다.”
“뭐라고?”

우리가 발견한 정령의 존재는 저렇게 인간처럼 대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나눈다기보다는 교감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였고 1대 다(多)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1대 1로만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여태까지 확인된 바였다.

“모르면  물어보고  하든가!”
나의 타박에 험프티가 크게 배신당한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럴 리가 없다를 연신 외치며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덕분에 야금야금 영향력을 키울 필요 없이 한번에 많은 시간을 앞당길  있었다.>>
“세트,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기보단 모두가 각자 자신의 모든 것을 서로 터놓지 않듯 나도 약간의 비밀이있었던 것뿐이야. 정확히 말하면 굳이 내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인거지. 니가 동생에게 칼을 꼽고 싶어했지만 굳이 그걸 동생에게 말한 적이 없던 것과 같은 거랄까? 으하하하하하>>
“정령이 아니라면  뭐야!”

자신이 여태까지 정령이라고 알고 있던 존재가 정령이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험프티같았다.
<<난 한때 신이었다. 이제는 영락해서 찬란했던 그때는 이제 시간에 묻혀 사람들 속에서도 제대로 기억되는 바가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신이라고?”
<<'혼란을 부추기는 자'라든가 '황폐하게 하는 자'라면서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가장 위대하며 강력한 신이었다. 빌어먹을 호루스가  고자로 만들면서 지금은 추락해버리긴 했지만.>>

자꾸만 커져가는 세트가 신경 쓰여 더이상 대화를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수년간 내가 헌신해온 과거의 산물을 내 손으로 부숴버리든가 아니면 자칭 신을 외치는 저 긴 주둥이와 귀를 달고 있는 개처럼 생긴 존재와 전투를 하고 지켜내든가.
“그나저나 신이 하는 짓치고는 꽤나 비열하고 고약하군 그래.”
<<호루스의 창에 맞아 머리가 박살나서 의식을 잃기 전까진 나도 나름 고상한 신이었다는  말해주고 싶군, 인간. 그래, 원하는 시간은 모두 끌었나?>>

일부러 시간을 벌려고 하는 속셈이 간파당하자 나는 더이상 시간을 끌려고 하는 것이 개수작 밖에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결단을 내렸다.
“그거 아나?”
<<뭘 말하는 거지, 인간?>>
“우리 쪽 세상에는 말이야. 이런 말이 있어.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려라.”

말을 마치고 날린 오러붐이 에너지 응집체와 부딪히려는 순간, 세트는 자신의 검은 형체를 크게 키워 그걸 받아 내며 살짝 휘청거리긴 했지만 막아냈다.
<<누구보고 비열하다고 하기에는 그쪽도 만만치 않군.>>
“맞아, 오래  건 아닌데 살다보니까 별의  잡것들이 다 튀어 나와서 자꾸 내 인생을 방해하더라고. 그때 깨달았지. 모두에게 호의를 베풀 필요가 없구나. 그러니 비열한 쓰레기들에겐 나도 비열해져야겠다고. 엘레네, 지금이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엘레네가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긴급 셧다운 장치를 발동시켰다. 에너지를 응집시켜줄  있는 핵심 부품이 부서지자 자연스럽게 뭉쳐 있던 에너지가 대기 중으로 풀려나가기 시작했고, 이를 급속히 퍼뜨려서 안정화시키는 기능이 담긴 보조 장치는 그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인생의 단맛, 쓴맛, 매운 맛을보고 나면 말이야.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되지. 혹시나 하는 순간들이 역시나 하는 지금같은 순간들이 찾아오면 그때 안전장치를 만든다고 며칠 밤을 새던  그래도 헛짓은 아니었구나 싶어.”

세트는 눈앞에 있는 정후가 꼭 자신을 속였던 호루스처럼 느껴졌다. 몇천년의 거사를 한번에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의 열쇠가 사라지자 그동안 인내하면서 쌓아왔던 분노가 모두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이이익, 너, 너는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죽여주마!>>

자신의 등 뒤에서 한없이 커져서 이전과 다른 불길함을 내뿜는 세트에게서 험프티가 떨어지고 싶어했지만 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왜, 험프티. 이번에는 날 배신하고 싶은가? 하지만 우리 계약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거든.>>

그 말을 마치자 검은 형체의 세트가 험프티를 덮쳤다.
“준비해,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가 정신을 잃고 난동을 피우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까.”

한번 찔러나 보잔 식으로 가지고 있던 소총을 꺼내 난사를 해봤지만 택도 없는 소리였다. 마치 알처럼 험프티를 둥글게 감싼 검은 구체는 서서히 줄어들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자리엔 검은 잿빛의 색을 띠는 피부를 가진 엘프만이 서 있었다.

<<이렇게 현신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인  같군.>>
러시안처럼 하얗게 빛나던 피부가 검은 색이 강한 잿빛으로 바뀐 험프티에게선 세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 쉰 험프티가 아닌 무언가가 말을 하자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큰 방이 웅웅거렸다.

“넌 누구지?”
<<험프티의 육체는 내게 귀속되었다. 그동안 고객님께서 미납한 대금을 일시불로 받기로 결정한 본사 측의 결정이랄까?>>
말도 안되는 계약이었다.
“불공정 계약을 했군. 험프티는.”
<<서로 공정한 계약이었다. 대가 없는 이득이 어디있겠나?>>
“우리 세계에선 그런 계약은 합법으로 안 치는데 말이지.”
<<뭐, 각자 사는 세계가 다르니. 개인 간의 계약에는 관여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세트라고 불러야 할 다크엘프는 목을 좌우로 풀면서 두어번 주먹을 쥐었다 펴더니 검게 가득찬 눈동자로 날 쳐다 보며 말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이치라더라. 내가 그러했듯 너도 나에게 지은 죄를 벌로 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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