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32화-딥 입팩트
두 집단의 충돌이 시작되었을 때 기존의 질서를 지지하는 이들의 수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승기를 쉽사리 잡을 수 없었다.
군중심리에 의해 우발적으로 촉발된 충돌이라기엔 군중의 움직임은 의외로 집단적으로상명복창을 따르는 듯 절도 있게 움직였고, 대항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의외로 지닌 바 무력도 처음 느끼는 마력이었지만 상당히 강력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거 봐, 내가 말했잖아. 분명히 저들 사이에 군중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단체가 있는 것이 분명해.”
여왕군의 핵심세력인 마탑은 연구소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일들을 진행하느라 반군의 주동자는 누구인지, 집단의 구성원이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꽤나 늦어진 상태였다.
사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수비대장인 험프티는 백의종군을 하는 신세라 정보와 전략을 다루는 권력의 핵심에서 살짝 빗겨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반군을 이끄는 험프티가 굳이 자신들의 조직에 대한 내부정보를 흘릴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은근슬쩍 중간중간 넣어놓은 역정보로 인해 마탑에선 정보의 혼선이 일어나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반군이 일어나서 드워프를 밀어내고 연구를 움직이는 핵심인물들이 대피하게 만든 이후까지도 정확히 파악할 여력이 현재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모인 대책위원회에는 없었다.
정보기관의 부재와 이를 보조할 기관의 부재 그리고 여태까지처럼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람들이 딱히 문제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안일함이 불러낸 대참사였다.
그런 과정에서 연구소에 남아 있는 설비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켜놓은 상태인걸 어찌 알았는지 반란을 일으키는 주동세력이 설비를 획책하기 위해 연구소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쫓겨났던 드워프 세력과 겨우 접선하여 구원군을 부탁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수비 자원을 모두 가동하여 연구소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미리 빠져나갔던 험프티가 자신을 따르는 어둠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험프티, 니 놈이었구나! 그래, 이젠 납득이 된다. 하지만 니 놈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여왕님들의 총애를 받아왔음에도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고, 그 쿠데타를 알고서도 너를 아끼신 덕분에 용서를 내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살려두셨는데!”
“아, 시끄럽군.”
“배신자!”
“진짜 내가 배신자라고 생각하나?”
“충성스러운 존재로 남아야 할 네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반역이고 불충이고 배신이다!”
“누구에 대한 충성이지?”
“당연히 여왕님들에 대한 충성이 아니더냐!”
“두 여왕이 과연 충성받을 존재던가?”
“저, 저, 무도한 자의 망발을 일삼는 입을 가만히 두고 봐야 한단 말이냐, 마탑의 마법사들은 뭣들 하는가!”
“너희들보다 먼저 태어나 수비대장으로 오랜 시간 일해온 나다. 너희들은 충성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여왕을 향한 충성의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 엘프들의 번성과 미래를 위해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
“험프티, 여왕님들의 지도 아래 우리들은 끊임없이 번성해왔다. 여왕님들을 향한 충성이 곧 엘프들의 번영이다.”
“아니야, 나도 그랬지만 우리들은 사실 벌레같이 사육당했을 뿐이다. 여왕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나 다름없이.”
험프티의 매끄러운 혀는 마탑의 일원들의 일부지만 현혹할 만한 논리가 있었다.
“무슨 소리냐! 여왕님들이 우리들을 만들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는 것은 옆에서 지켜 봐온 네가 더 잘 알텐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난 끊임없이 회의감에 빠져야 했다.”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어머니가 아니었고, 엘프들의 번영을 위해 애를 쓴다고는 하는데 거기에 애정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바란 것은 그저 단 한줄기의 칭찬과 애정 어린 눈빛이었을 뿐이었으나, 주어진 것은 왕국을 위해 돌아가는 기계장치들을 향한 눈빛과 별반 다를 바없는 무심한 눈빛뿐.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마탑의 어린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마음 깊이 품어 왔던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험프티의 말에 의해 명확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원군의 도착에 맞춰 총공세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수뇌부는 사특한 소리로 사람들은 현혹시키지 말라고 떠들기만 했다.
반대로 험프티 입장에선 결국 반란이 성공하고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 피로 가득한 왕좌보다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 아래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이 컸기에 공격을 먼저 하기보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세트의 도움 아래 발전한 자신의 선동가적 기질로 사람들을 포섭하려고 했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바로 전투로 이어지지 않고 이런 설전이 이어질 수 있었다.
“너희들은 본인들이 무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요즘 태어나는 엘프들과 다르게 대부분의 엘프들은 만들어졌고, 태어남과 동시에 지식을 주입 받은 뒤에 임무를 할당받았지. 내가 수비대장이란 직책을 부여받고 내 동생이 시종장의 직책을 부여받았던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정확히 생각해 봐. 그게 너희들 본인들이 처음부터 원한 일이었나?”
험프티의 한발짝 뒤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림이 모자를 젖히며 동조했다.
“난 궁에서 강력한 차기 시녀장 후보였던 그림이지. 그쪽에 카스파르가 보이네. 잘 있었어?”
반대쪽에 발타사르와 함께 서 있는 카스파르를 향해 그림이 윙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간절히 차기 시녀장이 되길 원했던 것은 나였는데 무슨 기준이 있는지 원하지도, 원한 적도 없는 카스파르에게 그 자리를 던져 주더라고. 안 그래, 카스파르?”
“내가 너보다 뛰어났다고는 생각 못하나 봐? 인격과 품성에서 특히. 발타사르 님과 멜키오르 님이 잘 보신 것 같네. 니가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걸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응해오는 카스파르의 발언에 잠시 이를 빠득 갈던 그림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바랐던 것을 잃고 절망하고 좌절했을 때, 험프티 대장 님이 내 앞에 나타나셨지. 이 분은 나에게 한가지를 말씀하셨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고 하셨지, 안 그런가, 동지들!”
그림의 말에 뒤에서 검은 로브를 벗어 던지며 어둠의 마법사들이 환호와 마법을 이용해 검은 마력을 담아 하늘로 축포를 날리며 정체를 드러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여왕의 아래 모두 숨죽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사는 삶이 아니라 우리들이 선택한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여왕이 정해준 대로의 직업을 갖고 그렇게 살다 죽는 도구로서의 삶이 아니라! 우리는 도구가 아니다! 자유 의지를 지닌 엘프다!”
여왕군 내부에서도 점차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선동 당하지 말라. 이제 곧 원군이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이대로 있다간 안되겠다 싶은 마탑의 수뇌부는 공격을 결정했다.
“애꿎게 선동된 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최대한 살상은 자제하되 신속하게 제압하라. 전군 발사!”
머뭇거리던 여왕군의 발포가 마침내 터져 나왔다. 강력한 전압에 의한 기절 마법이 담긴 마탄이 수백발이 날아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날아가는 도중에 어둠의 마법사들이 내뿜은 마력과 상쇄되어 허공에서 폭발음을 일으키곤 사라졌다.
“마탑의 일원도 아닌데 마력을 쓰다니.”
“말도 안돼!”
정령과의 계약을 통해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정설인 마탑원들로서는 소문으론 들었으나 실제로 맞닦들인 현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마탑 밖에서 정령과 계약이 가능한 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훈련된 마법사들은 연습해온 대로 마탄을 장전하여 발사해봤지만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승기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마법이 궁금하지 않은가!”
“저것이 마법일 리 없다! 사술이다. 사술!”
“크하하하하하, 오만하구나. 너희들이 모든 것을 다 알 리도 없건만. 자, 보아라. 어둠이 뭉쳐지면 어떤 힘을 보이는지.”
험프티는 말을 하면서 몰래 준비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어둠의 힘, [ Gravitational field ]!”
멀리서 보기에도 적지 않은 마력이 뭉쳐진 거대한 검은 구체가 험프티의 손에서 출발하여 여왕군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본 마탑의 수뇌부가 분주히 검은 구체를 향해 마법들을 난사해봤지만 바람의 힘도, 불의 힘도, 대지의 힘도, 물의 힘이 담긴 마법들로는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날아온 거대한 검은 구체는 여왕군 가까이 오자 순식간에 점처럼 작아져 버렸다.
“아니, 저게 무슨!”
처음 보는 현상에 놀란 마탑원들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응축된 검은 구체에선 흡입력이 발생해서 일순간에 마탑원들 체내에 있는 마력을 빨아들여 버렸다.
“어? 어?”
“마력이 사라졌어!”
일부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마력으로 인한 탈력감에 혼절하기도 하고, 납득할 수 없는 지금의 순간에 당황스러워하며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보았는가? 이게 바로 어둠의 힘이다.”
험프티 입장에서도 무리한 마법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쌓아온 마력과 얼마 전 6서클에 올라서며 어둠의 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가까스로 가능해진 마법이었다.
어둠의 마법사들이 이후에 날린 어둠의 마법들은 적중한 마탑원들을 기절시키거나 마비시키기도 하고 잠에 빠뜨리기도 했는데 마력을 일시에 빼앗긴 마탑원들은 이를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며 자신들을 향해 뭉쳐오는 어둠의 마법사들을 본 마탑원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나면 따라올 미래에 두려움에 떨며 눈을 감고 포기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의 마법사 뒤편에서 환한 빛이 떠올랐다.
“뭐, 뭐지?”
“으, 눈부셔.”
자신들의 등 뒤에서 날아오는 커다란 빛때문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본 어둠의 마법사들은자신들의 마력이 증발하는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등 뒤로 고개를 일제히 돌렸다. 그리고 이내 날아온 빛의 구체는 모여 있던 어둠의 마법사들을 산발적으로 흩트리며 날려 버렸다.
“아, 너희들이 뭐라고 떠드는지는 잘 들었다.”
정후는 험프티가 날린 구체가 엘프들을 해칠 것 같지 않다는 엘레네의 판단을 믿고 어떤 힘인지 파악을 한 뒤에 개입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기다리다 힘을 밀집해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힘을 분산시키면서 다수를 향해 작용하도록 오러 붐을 날린 것이었다.
“세상이란 게 다 지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가 없어요. 이거 봐. 나도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되잖아. 누구 때문에?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달라는 너희 어린이들 때문에 말이야!”
1년도, 2년도 아닌 긴 시간을 공들여 진행한 프로젝트를 망칠 뻔한 정후 입장에서 이들이 내뱉은 말은 제대로 말도 안해보고 폭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면서 그저 떼쓰는 소리에 불과했다.
“왜, 아저씨, 난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거대한 망치를 어깨에 둘러 멘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험프티의 말에 일견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니가 아직 나한테 애 취급을 받는 거야.”
“이, 익”
대화를 티격태격 나무녀서 둘은 이내 어둠의 마법사들이 있는 공간에 뛰어들었다. 양들의 사이로 뛰어들어 간 사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일까.
종횡무진, 어둠의 마법사들 사이를 헤집으며 어둠의 마법사들을 이리저리 뻥뻥 날려대는 엘리스와 정후의 모습은 근접을 전문으로 하는 기사가 어째서 마법사들과의 상성에서 가까운 거리일 때 압도적인 우위를 갖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자신들이 가진 어둠의 마력으로 어둠의 마법을 날리려고 준비하는 것은 어찌 그렇게 잘 캐치하는지 등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고개를 뒤로 돌리지도 않고 망치를 휘두르는 엘리스와 날이 서지 않은 가검을 휘두르는 정후는 가차 없이 등 뒤를 노리는 비겁한 자의 대가리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움직였다.
“너도 뚝배기, 너도 뚝배기. 나는 차별 없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그동안 쌓인 분노를 숨기지 않고 내뿜는 정후의 흑화한 모습은 여왕군 입장에선 구원군이었음에도 가히 공포스러웠다.
“뭐야, 저거,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