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127화-그래도 찍을 거야.
탕수육, 영어로는 sweet and sour pork 한자로는 糖水肉으로 표기되는 음식. 사전적으로는 돼지고기에 녹말을 묻혀 튀긴 것에 식초, 간장, 설탕, 야채 따위를 넣고 끓인 녹말 물을 부어 만드는 음식인 탕수육이 사실은 아편전쟁과 관련이 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 홍콩이 영국의 조차지가 되면서 영국의 상인들은 홍콩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으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현지에서의 익숙하지 않은 중국음식들이었다. 중국음식 특유의 향도 거슬리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영국인들에게 중국음식은 그렇게 매력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간혹 영국인에게 식사대접을 하고자 했던 중국인의 경우 기껏 만찬을 차려줘도 썩 만족해하지 않을뿐더러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집어 먹게 한다는 것에 영국인들은 중국인들이 자기들을 놀리는 거라고 오해한 사례도 있었다.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된 중국인들이 영국인들에게 대접할 음식으로 어떤 음식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육류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식성에 맞게 맞춤으로 탄생시킨 음식이 바로 지금 우리의 눈 앞에 있는 탕수육이었다.
포크로 쿡 찔러서 먹기 좋은 사이즈의 이 음식은 기본적으로 ‘모든 조리가 다 된 상태’로 찍어 먹기만 하면 될뿐 아니라 맛 또한 꽤나 좋았기에 영국인들에겐 좋은 중국음식이 되었다.
이후 화교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알려진 짜장면과 함께 탕수육은 이제 한국인에게도 중국음식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왜 이야기를 하게 되었냐고?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탕수육은 기본적으로 찍먹이 아니라 부먹이라는 거지.”
“아저씨, 그럴 거면 왜 튀겨? 왜 튀기냐고. 소스를 부어버리면 바삭한 맛이 누그러지잖아.”
원래대로면 볶았어야 했는데 짜장면도 준비하느라 바빠서 볶기가 귀찮아서 그냥 부어먹기로 하고 준비를 해놓은 상태에서 식사 시간에 소스를 부으려고 하니까 엘리스가 내 손을 잡았다. 찍먹으로 먹고 싶다고 반대를 외치는 엘리스에게 이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그 배경부터 듣고 나면 볶먹이 최선이고 부먹이 차선임을 엘리스가 이해해주리라고 생각했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엘레네는 내 말을 듣고나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소스를 붓는 것에 찬성해줬다.
“내껀 소스를 부어도 바삭함이 살아 있어. 그러니까 부어도 된단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소스가 담긴 그릇을 기울이려고 하자 엘리스는 벌크업한 근육으로 내게 힘으로 맞섰다.
“그럼 내가 먹을 것만 빼줘. 난 찍어 먹을 거야.”
“하아, 엘리스. 그건 탕수육이 아니야. 그냥 소스에 찍어먹는 고기 튀김일뿐이지. 난 그딴 것이 아니라 너에게 오리지널 탕수육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거라고.”
나의 진정성 있는 자세에도 불구하고 엘리스는 자신의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난 그래도 찍어먹을 거야.”
사실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이같은 말투에 순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들을 둘러 봤지만 모두들 짜장면을 먹느라 딱히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 찍어 먹어라. 찍어 먹어. 넌 짜장면도 찍어 먹어라. 니 논리대로면 면발이 짜장 소스에 불면 안되니까.”
괜히 욱해서 내가 빈정거렸지만 벌크업을 하면서 자신의 주관도 강해진 엘리스는 전혀 흔들림 없이 경건한 자세로 간짜장을 먹기 시작했다.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게 이런 걸까. 찍먹을 먹으면서 만족감을 표하는 엘리스에게서 더는 뭐라고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나는 소스를 붓고 나서 팔이 짧아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 것 같아 소안과 노타에게 따로 덜어줬다.
“맛있나?”
“예, 시꺼먼 게 사람이 먹을 음식의 비쥬얼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는데, 검은 소스와 면이 만나 이루어내는 맛의 조화가 상당히 즐겁군요.”
진지하게 맛칼럼니스트처럼 대답하는 노타의 얼굴에는 그 진지함과 어울리지 않게 짜장면을 먹은 아이처럼 검은 짜장 소스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큭.”
“왜 그러십니까? 제 표현이 조금 웃겼나요?”
“큼큼. 아니야.”
얼굴로 자신이 짜장면을 먹었음을 증명하는 노타에게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진지하게 답변하는 자세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굳이 얼굴에 뭐가 묻었다고 하지 않고 조용히 냅킨을 집어 건네줬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희 드워프들은 먹는 도중에 얌생이같은 엘프들마냥 입을 닦고 그러질 않죠.”
당당한 상남자의 자세로 노타는 다시 짜장면 그릇에 고개를 들이박고 먹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곱빼기를 다 먹은 소안이 만족하면서 탕수육으로 포크를 꽂고 있었다.
‘이것들은 짜장면으로 세수를 하면서 먹나.’
탕수육은 워낙 넉넉히 해놓은 상태였기에 몇 번이나 더 리필을 해줘야 했지만 테이블에 앉은 5명의 식사는 어느덧 끝이 났다.
“휴우, 잘 먹었다~.”
점점 아재화가 되는지 엘리스는 너무 많이 먹어 볼록해진 배를 퉁퉁 두들기더니 커피는 자신이 준비하겠다면서 일어났다.
“아저씨가 요리 준비했으니까 커피는 내가 준비해줄게.”
이제는 일상화된 우리의 식사 루틴이 그렇게 마무리되어가자 손님으로 온 소안과 노타는 엉거주춤 일어나 뭘 도와야 되나 했지만 알아서 해줄테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엘레네도 금방 식기세척기에 식사하면서 사용한 식기들을 넣고 돌아왔다.
“자자, 앉아 있어. 둘은 달달한 걸 좋아하나?”
“없어서 못 먹습니다.”
“너무 단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
“풉, 웃기네. 저번에 학장님이 만드셨다는 초콜릿 케이크를 혼자 반판을 먹어놓고선.”
“딱 적당한 달달함이었지.”
‘한 조각 먹으면 달아서 나도 못 먹을 정도인데 그걸 혼자 반을 먹어? 건강에 문제없으려나...’
둘의 취향을 듣고 나서 엘리스에겐 둘 다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로 달라고 하고 난 느끼해진 입 안을 개운하게 하려고평소에 즐겨 먹던 아메리카노 헤이즐넛. 그리고 깊은 맛을 즐기는 엘레네의 것은 콜롬비아 에스프레소로 달라고 부탁했다.
내 말을 들은 엘리스가 캡슐머신을 작동시켰는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테이블은 한적해졌다.
“그래, 이제 내일이면 전투인가?”
“예, 습격시간은 일부러 새벽으로 잡았습니다.”
“다행인 건 하얀 여왕님도 저희들의 움직임에 동참해주셨다는 거죠.”
두 여왕을 만든 창조자 마더 엘레네는 말은 저렇게 해도 두 인공지능의 존중하고자 자리에 맞게 품위를 지킬 것을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두 인공지능도 엘레네의 의사를 십분 이해해서 자신들의 다툼이 필요 이상으로 번져 우리들이 그동안 준비해온 일을 망가뜨린 부분에 대해선 사죄의 말을 전했다.
“문제는 이것들이 장치를 가동시키려고 한다는 거지.”
“이를 위해서 반 험프티-덤프티 군이 정면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시선이 쏠려 있는 틈을 타서 저희는 뒤에서 후면을 덮치기로 했습니다.”
“그거 말인데 한가지를 더 추가하는 건 어때?”
“어떤 말씀이신지?”
“그건 내가 설명해줄게. 마셔.”
엘리스는 타온 커피를 각자의 자리에 내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앞과 뒤에서 모루와 망치처럼 찍어내리면서 너와 학장님 그리고 엘레네 님은 별동대로 연구소로 치고 들어가서 장치의 가동을 막겠다는 거지?”
“그래, 잘 이해했네. 아저씨가 가르쳐준 병법인 성동격서(城東檄書)를 섞은 거지.”
“우리의 목적은 섣부르게 장치를 가동해서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는 거고.”
“우리의 목적은 험프티-덤프티에 동조한 이들을 몰아내는 거지.”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온 덕분에 죽이 맞는지 노타와 엘리스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안은 카라멜 마끼아토의 달달함에 취해 커피잔을 샅샅이 핥고 있었다.
“한...한잔 더 줘?”
그 기세가 너무 맹렬해서 나도 모르게 물었는데 정작 대답은 고개를 아래 위로 끄덕이는 소안이 아니라 노타에게서 나왔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차마 자신도 친구처럼 핥는 모습을 보고서 따라 하고 싶진 않았는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커피잔을 두 손으로 잡아 내려놓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짝이고 있었다.
다 큰 드워프 둘이 턱수염이 덥수룩한 채로 그러고 있으니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한잔씩 더 주기 위해 이번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엘레네에게 메시지 마법을 활용하여 물어봤다.
“(엘레네, 드워프들 처음 탄생시킬 때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단 거만 보면 왜 이리 사족을 못 쓰지?)”
“(그건 부럽네.)”
아편 전쟁 당시 영국의 전쟁 선포를 들었을 때 청나라 관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정답은 코웃음을 쳤다는 것이었다. 대국을 함부로 치려고 든다며 기고만장한 자세로 영국 의회의 전쟁 선포에 대해 조질 준비를 해야겠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우리가 아는 역사가 그렇듯 조져진 것은 청나라였다.
우리가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사이 험프티-덤프티 형제가 보여준 자세가 딱 그러했다.
“슬슬 마무리에 들어가야겠어. 어지간해선 같은 동족이라 죽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무 버티는군.”
“형, 굳이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을까?”
발달한 마도문명과 섞여 만들어진 엘프들의 주 무기는 ‘기절총’으로 마력을 가공하여 높은 전압을 뭉쳐 발사시키는 무기를 사용하는데 기절총은 상대방을 맞히는 것만으로 스턴건보다 강력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도구였다.
기본적으로 인명에 대한 존중 의식이 세뇌되어 있는 상태라 어지간해선 기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상자가 양측에서 나오곤 있었지만 아직까지 사망자는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하얀 여왕이 저들에게 있는 것이 문제야. 이대로 오래가면 우리들이 일으킨 쿠데타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거야. 뭐, 일이 다 정리되고 나면 하얀 여왕이 전면에 나타나도 딱히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일을 길게 늘여가면서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그러니까 어서 빨리 저들을 제압해서 하얀 여왕을 우리가 구금시켜야만 우리들의 쿠데타가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어.”
험프티는 현대의 일왕이 그러하듯 실질적 권력은 모두 자신들이 틀어쥐고 하얀 여왕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겨놓고 가둬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군과의 내전으로 이어지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이를 눈치채고 있던 멜키오르와 발타사르가 하얀 여왕의 본체와 함께 도망쳤고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하얀여왕에겐 본체에 문제가 발생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반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때 형이 스턴건으로 본체를 맞춘 덕분에 여왕의 아바타에 문제가 발생했고, 반군 내에 여왕이 합류했다는 소문이 우리 측에 돌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여왕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아직까진 괜찮았는데 말이야.”
“언제 하얀 여왕이 깨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키울 필요는 없으니 빨리 마무리하는 쪽으로 움직이자.”
하얀 여왕이 이미 깨어나서 엘레네와 붉은 여왕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험프티의 입장에선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지지부진 늘어지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둘은 스턴건이 아니라 상대방의 몸을 관통시킴으로써 살상력을 높인 마력에너지 건을 준비해놓았다.
“이제 곧 엘프들의 지도자로 우리들이 우뚝 서는 건가?”
“그래, 동생아. 오랜 시간 참아온 우리들의 시간이 드디어 보답 받는 순간이 곧 찾아오는 거야.”
“두 여왕의 협잡에 의해 우리들의 체면을 땅바닥에 떨어지고 우리들을 무시와 멸시의 눈으로 쳐다봤던 이들에게 보복할 수 있겠네. 크큭.”
신이 나서 발광을 하는 덤프티를 보고 있는 험프티의 두 눈은 어딘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권력은 둘이 나누어선 안되는 거란다. 동생아. 권력을 나눠가진 두 여왕이 싸워서 우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우(愚)를 내가 또 범할 필요가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