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5화 〉125화-덕중의 덕은 드워프덕. (125/239)



〈 125화 〉125화-덕중의 덕은 드워프덕.

<험프티-덤프티 형제가 정후님과 우리들을 엘프들이 가져가야할 자원을 낭비하는 악의 축으로 지목했어요.>
“그냥 죽여버릴까?”
발을 동동거리던 발타사르가 옆에서 깜짝 놀랐다.
“안됩니다. 그건 그저 분노한 군중의 불씨를 더욱 키우는 일이 될 거에요. 만약 정후 님이 두 형제를 죽인다면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희생한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사이 멀리서 덤프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아라. 정후란 작자와 엘리스 그리고 엘레네를 잡아 두 여왕을 현혹하여 우리들의 것을 사사로이  자들을 처벌하자!”
“저 새끼를 그냥.”
뚫린 입이라고 마구잡이로 떠드는 덤프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화가 솟구쳤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연고도 없는 곳에 남아 왜 이러고 있었는데 저런 개소리를 들으며 푸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응축하여 덤프티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오러 붐을 날릴 뻔했다. 하지만 덤프티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기척이 너무 많았다.  순간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엘리스의 엘프 친구들이 나타났다.
“아직도  도망치고 뭐하고 있습니까? 학장님.”
“누손, 지난, 레우스!”
“여긴 저희들이 막고 있겠습니다. 어서 떠나세요.”
“너희들은 저  믿지 않는 거지?”
“학장님이랑 니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지만 그럴 사람들이 아니란 건  알지.”
“험프티-덤프티 그 개자식들이 하는 말에 휘둘릴 필요가 있나?”

모두가 우리를 배신한 것은 아니란 사실에 분노한 마음이 살짝 가라앉는다.
“이 주변은 현재 우리를 따르는 엘프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쉽사리 이곳으로 바로 들어오진 못할 거야.”
“괜찮겠어?”
“혹여 걸리더라도 두 형제는 우리들을 어쩌지 못해. 우리까지 엮어버리기엔 우리를 따르는 엘프들의 수도 꽤 많거든.”
“정 안되면 들이박으면 그만이지..”
“저희들이 알려준 곳으로 가시면 소안과 노타가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드워프 친구들과 함께 빠져나가시죠.”
“너희들...”
“친구 좋은  뭐야. 그동안은 너와 학장님이 우리가 이렇게 힘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이젠 우리가 도와줄 차례인 것뿐이야.”
“학장님, 가끔 학장님이 만들어주셨던 삼겹살과 소주가 함께한 식사가 한동안 그리울  같습니다. 부디 보중(保重)하십시오.”
“우리야 이렇게 떠나면 끝이지만 오히려 너희들이 걱정이다.”
“학장님이 손수 가르쳐 주신 덕분에 저희들도 꽤나 센 편입니다.”
“너희들 정도면 뭐.  위험하면   몸 지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긴 하지.”

농담이 아니라 아카데미를 연 이래 나의 특별훈련을 수시로 받은 엘리스의 다섯 친구들은 재능도 뛰어났고 서로 간의 경쟁이 붙어서인지 엘프들은 검고 활에서 익스퍼트 상급에 들어섰고 드워프들은 할버드와 도끼같은 무기를 휘두르는  있어 익스퍼트 상급에 들어선 상태였다.

카스파르와 누손이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주고받는 사이 점점 덤프티와 군중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절 따라오시죠. 이쪽으로 가시면 비밀통로가 있어요. 일전에 두 여왕님이 나중에 혹시 모르는 상황이 되면 쓰라고 우리 세 시녀에게만 알려준 곳이 몇군데 있죠.”
카스파르의 인도를 받아 몇 개의 방을 지나친 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고양이 모양의 동상을 왼쪽으로 90도 돌리고 위를 향해 들려 있는 꼬리를 내려놓자 벽이 열리며 문이 나타났다.
“들어가세요.”
“항상 여길 지나갈 때면 뜬금없이 여기에 고양이 동상이 왜 있나 했었는데...”
엘리스가 뒤를 돌아보며 고양이 동상을 보고 잠시 멍해지길래 등을 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벽 안으로 들어오자 카스파르가 무슨 버튼을 눌렀고 이내 문이 닫혔다.
통로는 별로 어둡지 않았다. 은은하게 빛을 내며 곳곳에 달린 등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기에 도망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통로를 걷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가는 내내 곳곳에 있는 갈림길에서 카스파르는 용케도 그걸 다 외우고 있는 것인지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가운데를 갔다가 하면서 우리를 인도했다.
“꼭 개미굴같네.”
<잘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들어오면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미궁이군요.>
“맞습니다. 저희가 외우고 있는 번호코드 없이는 이 미궁에서 영원히 맴돌아야 합니다. 이제 출구에 거의 다 왔습니다.”

막다른 벽에 도착한 카스파르가 장치를 조작하자 문이 열렸고 문 밖은 창고건물 안이었다.
“소안과 노타라는 분이 계신다는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몰려가서인지 위그드라실 주변에서나 사람들이 고함이 들려 왔을뿐 이 주변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적해진 거리의 골목 골목을 걷다 보니 어떤 공장처럼 생긴 곳 앞에 섰다.
“여기야?”
“네, 아까 그 분들이 말씀해주셨던 곳이 맞다면 여기가 맞습니다. 문을   두드리면 한가지 질문을  거라고 했습니다.”
말을 마친 카스파르가 문을  번 두드리자 구멍이 열리고 캄캄한 구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험프티와 덤프티는?”
“개쓰레기.”
유독 힘주어 말하는 카스파르의 말에서 감정의 빛이 살짝 비쳤다. 카스파르의 답어를 듣자 삐걱소리가 나면서 철문이 열렸다. 그곳엔 두명의 드워프가 서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학장님, 엘리스, 엘레네님.”
서로를 끌어안고 다친 곳은 없는지 안부를 물어보고 있는데 카스파르가 이제 자신은 돌아가봐야 할  같다고 말했다.
“우리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마음 같아선 세분과 함께 저도 가고 싶지만 연로하신 멜키오르 님과 궁중시녀장인 발타사르 님을 보좌하려면 제가 있어야죠. 차기 궁중시녀장으로서 시녀들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해야할 몫이 남아 있으니까요.”
“카스파르...위험하지 않겠어?”
엘리스는 떠나려고 준비를 하는 카스파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카스파르도 살짝 눈물을 비쳐 보였지만 이내 뒤로 돌아 눈물을 닦더니 굳건한 모습으로 우리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저희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여왕님들이 서로 다투시고 계시긴 하지만 우리 시녀들의 안전을 위한 ‘미궁’과 대피공간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안녕히.”
고개를 숙여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선 떠나는 카스파르의 뒷모습은 흔들림 없이 올곧아 보였다.

카스파르가 떠나자 소안과 드워프는 드워프 무리와 함께 이곳을 떠나자고 했다.
‘아, 그래서 엘프와 드워프가 따로 살게 되었던 건가?’
“드워프들은 떠나면 먹을 것은 어떻게 구하려고 그러지?”
“크크크크, 저희들이 그냥 떠날 리가 있겠습니까?”
“너희들, 뭔 짓을 저지른 거야.”
엘리스가 묻자 소안과 노타가 코를 쓱하고 문지르며 대답했다.
“별건 아니야. 세프림니르 핵심장치하고 프로토타입 헤이드른만 가져왔을뿐.”
“뭐?”
“우리가 만든 물건이니 우리가 가져가야지.”
“세프림니르 핵심장치에 들어간 부품 중에는 다시는 생산이 어려운 부품도 있을텐데?”
“뭐, 저희가 엘프들이 고기 못 먹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나요? 드워프들을 내쫓으려고 하는 판에 이 정도는 퇴직금으로 챙겨가야죠.”
“그렇지. 퇴직금은 받아야지.”
“노타, 이제 가자. 슬슬, 그쪽도 눈치챘을 거야.”
“우리 어디 가?”
“이미 붉은 여왕님은 먼저 이동하셨어.”
<붉은 여왕이 말입니까? 본체는 쉽게 이동하기 어려울텐데요?>
“저희 드워프들이 만든 지하 기차를 통해 이미 도착하셨을 겁니다. 저희들을 이끄는 지도자를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죠.”
“지하 기차?”
“저희들을 따라 오시죠.”

지하를 파고드는 드워프들의 특성은 이때부터 발현되었던 것이었을까. 소안과 노타가 데려간 곳에는 정말 기차역이 지하에 있었다.
“흙의 정령들 덕분에 땅에 길을 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우리들은 땅에서 많은 자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세프림니르에 들어간 핵심부품들 중에 그렇게 조달한 자원으로 만든 특수부품이 있다고 했었지.”
“맞습니다, 학장님. 엘프들은 다시 만들  없겠지만 저희들은 시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재생산이 가능합니다. 땅에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요.”

지하에 세워진 역사에 잠시 서 있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기차에 소안이 타고 들어왔다.
“은하철도?”
“저희가 어렸을  학장님이 언젠가 먼 미래가 되면 저 우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보여주셨던 애니메이션이 저희 드워프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당장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기차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지하를 오가는 기차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니들이 무슨 양덕이야?’
드워프들에겐 뭔가를 함부로 보여주면 안되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모두 탑승하셨습니까?”

소안은 어느새 만화에 나왔던 ‘차장’처럼 옷을 입고 다가와 이제 곧 출발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떠나고 나면 험프티 덤프티 형제들이 여길 발견할 가능성은 없겠어?”
“학장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학장님께선 항상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들이 출발하고 나면 이곳은 폭파되어 매몰될 것입니다.”

한번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공간이었다.
“그러지 말고 혹시 모르니까 놔두고 가자. 가는 길 일부 구간만 매립하는 걸로 하고, 이런 공간은 그렇게 쉽게 파괴하기엔 너무 아까운걸.”
엘리스의 말에 난색을 표하던 두 드워프는 사실 자기들도 드워프들이 품을 들인 이곳을 이렇게 파괴하기엔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오는 곳은 비밀리에 만들어 놓았기도 하고 나중에 혹시라도 쓸 수 있을지 모르니 엘리스 말대로 할까?”
서로 고개를 마주보던 드워프는 뒤통수를 버벅이며 폭파하는  자기들이 조금 과했던  같다고 했다.
“다른 드워프들은 우리가 떠나면서 여길 폭파한다니까 다들 신나서 그러자고 했는데...”
“소안, 출발준비하자.”
“우리는 뭐 도와줄  없어?”

이게 기관차라고 생각해서 석탄을 퍼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물어봤는데  드워프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학장님, 저희들이 아무리 고증에 철저하려고 해도 굳이 기관차를 석탄으로 가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여태까지 준비하셨던 에너지 발생장치를 만든 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크크크크”
“아까 들어올 때 기차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건 그냥 외부 장식같은 겁니다. 수증기로 연출만 한 거죠. 이거 엄밀하게 말하면 기차는 아닙니다. 전기자동차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위해선 딱히 복잡한 기관장치를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다. 디스플레이로 표시된 패드를 이용해서 소안이 작동시키자 이내 기차의 형태를 한 덕후들의 작품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BGM과 함께.
‘여기서 김국환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를 이런 식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네.’

어두운 공간을 가로지르고 나아가는 기차 안에선 도착하는 순간까지 같은 노래가 작게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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