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4화 〉124화-갈림길. (124/239)



〈 124화 〉124화-갈림길.

[딥러닝이란 기본적으로 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을 말하는 것으로 분별방식을 두고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과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으로 나뉜다.]

지도 학습은 인간이 어떤 사진을 두고 저 사진에 있는 형태는 ‘강아지’다 하고 주입을 해주는 것이고, 비지도 학습은 인간에 의한 기본적인 정보주입 없이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진을 보고 사진 속에 있는 형태를 통해 강아지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을 말한다. 물론 난이도로 비교하자면 수준은 후자가 월등히 높다. 그래서인지 구X을 제외하면 현대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사진,음성,동영상 정보를 분류하는 쪽에 치우쳐져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상품들의 수준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물어볼 만한 질문들의 예상 답변을 시스템에 미리 입력해놓고 그걸 바탕으로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물어본 것에 얼추 비슷하게 대답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게 극도로 발달하면 어떤 모습일까하고 상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눈 앞에 있었으니까.
<...해서 2년2개월에 한번씩 대기 상에 늘어나는 마력을 가지고 우리들이 마력의 작용 과정에서 발견한 작동원리들을 응용하여 몇단계의 중첩을 시키면 지금 이렇게 막대한 에너지를 추출해낼 수가 있습니다.>
“지금 그 말은 그러니까...”
<예, 저희들은 인간이 오랜 시간 꿈꿔왔던 마법을 창조해냈습니다.>

얼마전 보여줬던 라이트 볼과 형태는 유사한데 차원이 다른 수준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엘레네의 손에서 볼링공만한 구체에 응축되어 있었다.
“내가 보여준 오러의 운용방식을 응용하면 그런  가능해진다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정후님이 보여주신 무협지에선 이런  ‘만류귀종’이라고 표현하죠. 근본적인 원리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대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를 포집해서 압축하고 서로 간의 충돌했을 때 가장 에너지 발생이 큰 방향으로 성질을 변환시킨 뒤 폭발을 시키면 이렇게 고품질의 에너지를 추출해낼 수가 있죠.>

핵융합의 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부분서부터 정확히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흠, 정후님을 보니 인간이 이를 이해하고 즉각적으로 마력의 흐름에 맞춰서 추출식을 이용하여 이렇게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은 쉽지 않겠군요.>

자그마치 11년이 걸려서 이룩한 업적이었다.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퍼부어 인위적으로 삼투압처럼 이쪽으로 물을 이동시킨다는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기술이기도 했다.
<아마 이제  달 뒤에 다가오는 ‘충’이 되면 지금 제가 보여드리는 에너지 응축체와는 비교도 안될 에너지를 발생시킬  있을 겁니다.>
엘레네가 보여준 것과 동일한 능력을 재차 입증함으로써 각자 손에 에너지 구체를 들고서 신이 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우리가 이렇게 마도공학을 발전시키는 사이 공학을 발전시키면서 부가적으로 얻어진 것들을 통해 많은 부분에서 혁신이 이루어졌고, 피라미드를 개조하여 만든 현재 ‘위그드라실’이라는 커다란 나무 아래 모여사는 드워프와 엘프들 사이에선 드디어 어린 새 생명들이 태어나면서 총인구수는 4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 배경에는 ‘세프림니르’라는 이름의 배양육 기계를 통해 고기가 만들어져 나오고 있었고, ‘헤이드른’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통해 여왕들의 국민들을 먹일 식수가 만들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도 슬슬 막대한 인구 수를 감당하기엔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인지라 풍족했던 시기는 지나가고 1인당 배급량에 제한을 거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갈등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드워프들은 육체적인 업무를 많이 하고 있으니 자신들과 엘프들이 받아가는 1인당 배급량이 같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면서 자신들에게 더 많은 식량과 물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엘프들은 인구의 비례에 맞게 상대적으로 드워프들보다 많은 엘프들이 더 많은 식량과 물을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처음과 다르게 지금은 여왕들끼리도 알게 모르게 자신들이 만든 종족들의 주장을 따라 끈끈하던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로 간에 세운 공적을 칭찬하며 축하하는 분위기덕분에 잠시 이런 갈등이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이내 기뻐하는 우리들을 찾아온 2대 궁중 시녀장 발타사르에 의해 다시 점화될 분위기에 빠져버렸다.
“오늘은 서쪽에서 또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남쪽이었지?>
<점점 발생하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군요.>
<왜 자꾸 싸우는 거지. 그냥 엘프들이 조금 양보하면 되는 거 아니야?>
<레드, 그 의견엔 동의할  없는데. 이미 엘프들이 1인당 가져가는 식사량이 드워프들 것보다 조금 적어.>
<활동량에 차이가 있잖아. 엘프들이야 힘을 쓸 일이 적으니까 풀때기만 먹어도 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마력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매일  흘리면서 근육을 많이 써야 하는 우리 드워프들은 상황이 아예 다르다고. 화이트>
<그 말엔 동의할  없는데? 우리 엘프들도 드워프들을 뒤에서 보조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어. 그들은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두 여왕이 이렇게 싸워서야 되겠어요? 하얀 여왕, 붉은 여왕. 진정하는 게 어때요?>
엘레네의 말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토론을 이어가던 두 여왕이 진정상태로 바뀌었다.
<휴우,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지.>

둘을 지켜보다 개입한 엘레네에 의해 일시적으로 불길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고 서로의 주장을 바꿀 리도 없었기에 커다란 불씨를 근처에 둔 마른 지푸라기 뭉치와 다를 바가 없이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오랜 시간 인격체 옆에서 영향을 받은 탓일까 냉정하기만할 것 같은 두 여왕들에게선 감정의 빛이 엿보였다.
그렇게 다투는 둘을 보면서도 최근 한두번 저렇게 부딪힌 것이 아니라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장  안에 피어오른 생각을 떨쳐내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야 하는 게 맞는데 하는 게 옳은 걸까?’
나는 이 일이 불러올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최대한 남겨졌던 역사와 다른 결과를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일로 인해 화성에는 날아온 소행성과 부딪힌 달이 추락하면서 갑자기 불어닥친 엄청냔 양의 바닷물과 어우러져 대홍수를 일으킬 것이 예견되어 있었다.

“아저씨, 무슨 고민있어?”
평소처럼 투닥거리면서 자신들의 처소로 가는 두 여왕과 이를 중재하기 위해 따라가는 엘레네의 옆에서 떨어져 엘리스가 내 옆으로 찾아왔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아저씨랑 나랑 같이 밥 먹고 지낸 시간이 1,2년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아저씨랑 처음 보고서도 10년이 훌쩍 지났어. 그러니까 나한테 털어놔 봐.”

이상하게도 엘리스에게는 선뜻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몇  전부터 엘레네가 이젠 때가 된 것 같다며 결정한 뒤로 유전자 풀을 통해 인간들이 태어나면서 그들의 어머니이자 지도자로 자리매김을 준비하고 있는 엘리스였지만 내 눈엔 아직도 어릴 적 모습이 선했다. 우리가 저지른 일로 인해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책임을 이 아이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어.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야.”
“어렵다. 아저씨. 분명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맞긴 한데. 아저씨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지는 않네.”
“그래?”

많은 생략으로 뭉뚱그려진 나의 이야기에도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주는 엘리스를 보고 있자니 대견해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 이렇게 컸냐.”
“뭐래, 이제 아저씨랑 내 키랑 별반 차이 안 나거든?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주고 있는데.”
“고맙네. 벌써 이렇게 커서 같이 고민도 해주고.”
“나도 아저씨랑 비슷한 고민이 있어서 더 공감이 되네.”
“너도?”
“모르겠어. 엘레네가 난 인간들의 지도자로 태어난 운명이라는데 그렇게 거창한 짐같은 거 떠맡고 살고 싶은 생각같은 것도 없고, 그저 좋은  만나서 귀여운 아이 낳고 사는 것도 괜찮아 보이거든. 요즘 애 낳는 친구들 보니까  그래. 근데 지도자로 살면 앞으로 최소 몇십년은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고 그래.”
“니 인생도 쉽진 않겠구나.”
“쉬운 인생이 어디 있겠어. 노타도 일찍 장가가선 얼마 전에 애 낳고 애가 밤이고 낮이고 울어대서 잠을 못 자 죽겠다고  밑이 거뭇거뭇해져 있는 거 보면 애 낳고 키우는 것도 쉽진 않아 보였는걸.”
“그래, 쉬운 인생은 없지. 그래서  해야 하는 일하고, 하고 싶은 일이 양립하기 어렵다면  선택할래?”
“나?”

한참을 대답이 없던 엘리스는 뜸을 들이더니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어.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니까.”
“나도 그래야겠다. 내 고민도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거든.”

아니었다. 그때 고민했어야 했다. 왜 후회는 항상 늦는 법일까. 일이 이렇게 번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제기랄, 험프티-덤프티  개자식들을 미리 쳐냈어야 했는데.”
 여왕에 의해 그저 시종장이자 수비대장으로의 업무만 해야 했던 두 형제가 결국 일을 저질렀다.
“것보다 두 여왕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서로 논쟁이 벌어진 뒤로 살짝 소원해진 틈을 두 형제가 제대로 치고 들어갔더군요. 상대방이 알아서 처리하겠지하면서 미루다가 일이 터진 거에요.>

이제 며칠 뒤에는 ‘충’이 다가오는 상황이라 1차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한꺼번에 열어서 대량의 바닷물을 끌어오려고 했었지만  결국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나로 인해 누군가 쓸려나갈 수도 있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홍수에 맞서 사람들이 죽지 않게 모두가 탈 방주를 건설하기에는 우리에겐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에 제약이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준비가 길어질수록 가용자원은 급격히 소진되고 시간만 잡아먹을 거란 결론이 나왔다. 해서 내려진 결정은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한꺼번에 대량의 바닷물을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투입하면 얼마만큼 바닷물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고 다음 2차 오픈을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간보기조차 이젠 불확실해졌다. 내전이 일어났으니까.

“언제까지 우리들만 양보해야 하는 거냐!”
“엘프들의 권리를 보장해달라. 소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수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형제는 이와 같은 구호로 엘프들을 선동했고 엘프들은 기꺼이 동참했다. 드워프들은 바보같이 저 선동에 대응한답시고 응대했고 그 결과 분쟁의 불을 키워버리고 말았다.
“우린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보다 더 큰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너희들부터 우리보다 의무를 다하라.”
“참을만큼 참았다.”
“참지마. 누가 참으랬어?”


이런 저런 눈가림용으로 여론을 뒤집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불이 붙어버린 분위기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고, 마법공학이 고도화되면서 흘러나간 여러 이론들로 인해 엘프와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실력자들이 나타난 상황에서 일이 터진 것이었다.

“젠장, 하나로 힘을 모아도 일이 될까 말까한 판에.”
“여러분들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발타사르로부터 언지를 받은 카스파르가 우리의 대피를 돕겠다면서 찾아왔다. 마법공학의 수혜를 받은 나도 꽤 무력(武力)엔 자신감이 높아진 상태였지만 어느 쪽의 정의도 나의 정의가 아닌 상황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저씨, 발타사르 말이 맞아. 우리는 일단 피하자.”
<그게 좋겠습니다. 두 여왕까지 저기에 휘말려 버렸습니다. 도저히 제 말을 들을 상황이 아니더군요.>

엘레네까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우린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도망쳐야 하다니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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