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123화-수상한 아저씨
아저씨가 요즘 수상하다. 이상하게 나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는 것만 같고 간혹 내가 나타나면 허둥지둥대곤 한다.
“분명 뭔가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봤지만 학장님의 추종자인 자신의 친구들은 오직 인류의 발전을 위해 애 쓰시는 분들을 그렇게 모함해선 안된다는 소리만 들었다.
“모두 아저씨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이게 어떻게 해서 모함이야, 안 그래 마더?”
마더는 그적 씨익 웃기만 하고 특별히 답을 주진 않았다. 자기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슬슬 억울하다.
“어떻게서든 증거를 찾아내서 아저씨에게 분명 뭔가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하고 말 거야.”
다짐을 한 날부터 아저씨가 모르게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소드마스터라는 게 저렇게 기척을 잘 느낄 수 있게 되는 거였다니.
“아니, 슬금슬금 다가가는데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왜 주변을 스윽 둘러 보는 거야!”
아저씨가 예전에 자신에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해선 안된다.”라고 이야기한 것이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였을까.
근거리 추적은 자신의 기척 때문에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반복된 실수 속에 지쳐가다 노타를 꼬드겨 바람의 정령으로 장거리에서 추적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아, 이러면 안된다고, 엘리스. 학장님은 인격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분이야.”
“한번만, 한번만. 오늘 확실히 느낌이 왔단 말이야. 니가 예전에 나 좋다고 쫓아다녔던 거 니 마누라한테 말해버린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진짜.”
“그래서. 해줄 거야 말거야?”
“이번 한번만이다. 다음엔 협박해서 도와달라고 해도 안해 줘.”
“에이, 나 못 믿어? 부탁 좀 하자!”
장기간 추적관찰을 한 결과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아저씨가 우울해 보이거나 지쳐 보이는 날이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온 뒤엔 무척이나 표정이 밝아져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일이 많아 지쳐 보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분명 오늘이 적기임에 틀림이 없었다.
“지금이야, 노타.”
“하아, 나중에 학장님한테 들키면 난 죽은 목숨이다. 진짜.”
“내가 커버쳐줄게. 에헤이.”
한숨을 내쉰 노타가 바람의 정령을 불러들여 아저씨를 쫓아갈 것을 부탁한다. 바람의 정령은 재밌을 것 같다면서 호응하고 자신의 모습을 숨긴 뒤 아저씨를 따라갔다.
“바람의 정령이 이런 게 좋긴 좋네. 그냥 더운 날 찬바람 불러일으키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야.”
“학장님 수준이면 그래도 이상하단 낌새를 눈치챌 수도 있어. 어?”
“왜? 정령이 뭔가 발견했대?”
“흐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돌아온 바람의 정령이 노타에게 속닥거린다.
“야, 뭐야. 왜 나만 빼고 니들끼리만 말하는 거야. 나한테도 말해줘.”
바람의 정령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노타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는 것 같더니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학장님이 큰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뭔데, 뭔데?”
“이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럼 니 마누라한테 말해?”
“그냥 내가 지금 가서 말할래. 엘리스. 학장님, 아니 니 아저씨는 널 실망시킬 일을 하실 분이 아니야. 알았지? 난 그럼 마누라랑 밥 먹으러 간다.”
처음부터 말할 생각도 없었는데 결혼을 해서인지 어른스러워진 노타가 손을 흔들며 너무 아저씨 걱정 하지말라면서 자리를 떠나갔다.
“아오, 왜 나만 안 알려주는 거야.”
아저씨가 준 망원경이라는 물건으로 아저씨를 장거리에서 관찰한 결과 드디어 집념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다.
“저, 저, 저거 뭐야.”
아저씨가 어떤 불여시같은 것과 끌어안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아닌가.
“나한테만 해주는 건줄 알았는데...”
더구나 아저씨에겐 사랑하는 사람인 섀넌이 있다면서 앞과 뒤가 다른 모습에 배신감이 들었다. 노타 새끼도 이걸 알았으면서 같은 남자라고 묻어준 걸까.
“아저씨가 말했지만 하여간 남자 놈들은 다 똑같아. 노타 새끼, 나중에 바람피는 낌새만 보여봐. 내가 노타 마누라한테 당장 가서 말해준다.”
엘레네에게도 내가 본 사실을 전달했지만 엘레네는 이상할 정도로 딱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뒤쫓지 말고 각성한 능력을 열심히 단련할 생각부터 하라고 꾸중만 들었다.
“나만 이상한 거야? 이게?”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이씨, 짜증나!”
기껏해야 몇초 전이나 몇초 후에 이동하는 능력으론 아저씨의 ‘바람’ 하나 제대로 못 잡는 수준이었는데 훈련은 무슨 훈련이란 말인가.
발을 돌려 터벅터벅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뒤틀린 이 배신감과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하소연할 곳 없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했다.
“다 일기에 적어 놓을 거야.”
엘리스는 몇 번 더 추적을 해봤지만 번번이 안타깝게도 여자의 뒷모습만 쳐다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떤 년인지 얼굴만 보여 봐. 뒤졌어. 진짜. 감히 순진한 아저씨를 꼬드긴 게 분명해. 여시같은 년.”
“야, 진짜 어지간하다. 저 집요함으로 열심히 훈련이나 할 것이지.”
“그게 다 아저씨 걱정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지금 그 모습으로 나한테 아저씨라고 하면 내가 좀 이상한데?”
오늘도 날 찾아온 엘리스는 예전에 찾아왔을 때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머리엔 하얀 새치가 여기저기 보이는 게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엘리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아저씨는 평생 나한테 아저씨인 걸요.”
“어릴 땐 반말하더니 그런 모습으로 이젠 존댓말도 꼬박꼬박하고.”
“그땐 어렸으니까요.”
세월을 겪은 엘리스의 모습에 괜히 속상해서 한번 투정을 부려봤지만 엘리스는 그저 살짝 미소만 지었다.
“근데 언제가지 비밀로 해야 하지? 엘레네랑도 이야기해 봤잖아. 엘레네는 뭐래?”
“마더는 준비되지 않은 걸 굳이 미리 말해줘서 시공간 연속체를 뒤흔들 필요가 없대요.”
“지가 질투하고 오해하고 있는 게 자신이라는 걸 한번 말해줘서 그 얼굴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아저씬 여전하시네요.”
“변하지 않는 게 내 장점 아니겠어?”
내 손을 꼭 잡은 엘리스는 오늘도 자신의 시계처럼 손목에 찬 장치에서 나는 알람소리를 듣고 이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냥 여기서 이렇게 지내면 안돼? 거기에 있으면 힘들잖아.”
엘리스가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엘리스의 눈빛과 표정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부모가 자식이 숨긴다고 완전히 모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제가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건 어려워요. 그나마도 2년 2개월에 한번씩만 증폭된 능력을 통해서 올 수 있으니까.”
“다음에 오는 건 니쪽에선 또 2년 2개월 뒤인거야?”
내 질문에 고개를 살레살레 젓는 엘리스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다.
“왜? 무슨 일인데?”
“사실은 오늘이 마지막 만남일 것같아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거니?”
“마더와 두 여왕이 말하길 절대 말해선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더군요. 안돼요, 아저씨.”
습기가 찬 엘리스의 눈빛을 보고 나니 이유를 말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아저씨, 건강해요. 뭐. 과거의 나는 내일도 모레도 매일매일 볼 수 있겠지만.”
“너도 위험한 곳 근처는 가지도 말고. 뭘 하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되는 건 누구도 아니고 너 자신이야. 알았지?”
“아저씨도 참. 내가 애도 아니고.”
“내 눈엔 니가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애거든?”
“아저씨답네.”
“이리 와, 한번 안아 보게. 마지막 인사로 그 정돈 괜찮지?”
알람소리를 강렬하게 내뱉는 손목시계의소리를 들으며 엘리스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 해주니 엘리스는 나직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랑해요, 아빠.”
“그래, 사랑한다. 내 딸.”
품에 안은 엘리스가 사라지려고 하는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젊은 엘리스가 들어왔다.
“이거 봐. 이거 봐. 딱 걸렸어. 아저씨.”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미소 짓는 순간 나이든 엘리스가 떠나갔다.
“어? 어? 방금 전까지 분명히 내가 여기 있는 거 두 눈으로 봤는데?”
“사쿠라네.”
“뭐라는 거야. 아저씨. 어디다 숨겼어.”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고개를 살짝 돌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웃으며 엘리스를 쳐다봤다.
“뭘 숨겼다고 그래?”
“내가 분명 봤다니까?”
“요즘 우리 엘리스가 피곤한가보다. 헛것을 다 보고.”
엘리스가 펄쩍 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와아, 어이가 없네. 멀쩡한 사람을 헛것을 보는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아저씨?”
“아니, 니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걸?”
“또또또, 그 표정. 아우 약 올라. 뭐지? 진짜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닌데.”
“피곤하면 가서 푹 자. 엘리스. 힘들 땐 잘 먹고 잘 자는 게 보약이야.”
엘리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였는지 엘레네도 방으로 들어왔다.
<왜 이리 목소리가 크죠, 엘리스?>
“내 말 좀 들어 봐봐.”
한참을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엘리스를 지켜보던 엘레네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날 옹호해줬다.
<정후님은 그럴 분이 아닌 거 본인이 더 잘 알잖아요. 바빠서 누굴 만나고 그럴 여유도 없는데.>
“엘레네, 내 말 못 믿어?”
<오늘 훈련은 모두 취소 시켜놓을테니까 푹 쉬도록 해요.>
엘리스의 등을 돌려 천천히 방 밖으로 밀자 엘리스는 나와 엘레네를 살펴보다 콧방귀를 끼고 자리를 떠나갔다.
<엘리스는 잘 떠났나요?>
“그래,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고 하더라고. 엘레네도 잘 인사했지?”
<그럼요. 그리고 그곳에서도 전 함께라니까 별로 걱정할 것도 없어요.>
“그렇구나.”
내가 같이 있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해주는 엘리스와 엘레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 보이자 엘레네가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엘리스의 화를 어떻게 풀죠?>
“아니, 굳이 풀어주지 않을래.”
<왜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엘레네의 모습은 안드로이드답지 않게 귀여웠다.
“아직 어릴 때는 어른들만의 이야기를 이해 못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더구나 본인이 강력하게 원한 거였는데 내가 그걸 무너뜨릴 순 없지. 엘레네도 정작 말해줄 생각 없잖아. 너무 나한테만 짐을 떠넘기지 말라고. 나한테 해주지 않는 이야기도 서로 나눈 것 같던데.”
<예, 말할 수 없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엘리스가 발을 쿵쿵거리며 찾아왔다.
“왔어?”
“왔어? 와아, 이 아저씨 봐. 진짜 나한테 할 말 없어요?”
씩씩거리면서 내 말투를 따라하는 엘리스가 귀엽다.
“그때 이야기라면 노 코멘트.”
“그때 그 여자 내가 꼭 찾아낼 거야. 어떻게 숨긴 건지 몰라도.”
“엘리스, 니가 생각하는 그런 그림. 절대 아니니까 너무 열 내지는 마라. 그리고 그건 어려울 걸.”
그 뒤로도 한참을 주변을 멤돌던 엘리스는 미래의 엘리스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자 결국 포기했다.
“자승자박이 따로 없네. 본인이 본인을 속이고 본인이 속아서 열 받고.”
*에필로그
“이게 ‘과거의 눈물’이라는 건가요?”
<맞아요, 엘리스. 그 보석에 당신의 힘을 최대한 밀어 넣으면 돼요.>
<그렇게 하면 보석에 담긴 당신의 시간이동 능력으로 나중에 이정후를 과거로 돌려보내서 당신을 만나게 할 수 있어요.>
“하아, 이게 아저씨, 아니 아빠가 말했던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이겠죠?”
<그래서 2년 2개월 전에 이정후를 만나고 왔던 거잖아요.>
“알아요. 아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네요.”
<오늘은 수백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입니다. 완벽하게 태양과 지구 화성의 달 화성이 일직선을 이루는 날이죠. 이렇게 증폭된 마력을 통해 강해진 당신의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기회는 오늘뿐이에요.>
“그리고 나면 다신 이 능력으로 아빠를 만나러 갈 수도 없기도 하죠.”
<먼 미래에 반드시 우리가 그를 당신에게 보내줄게요.>
“미래의 내가 아빠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과거의 어린 나에게 양보해야 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일시적으로 행성들이 정렬하는 그 순간 커다란 마법진의 정 가운데에 놓인 ‘과거의 눈물’이라는 파란 빛의 사파이어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