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122화-앙팡테리블(2) (122/239)



〈 122화 〉122화-앙팡테리블(2)

몸만 큰 아이들을 모아놓고 처음부터 하나 하나 가르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게도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의외로 많았다.
“이게 빅터랑 버크 아저씨가 말한 기본의 중요성인 건가?”

아이들에게 힘을 축적하고 발산하는 걸 수도 없이 설명하면서 난 단순히 그걸 아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깨닫는 감각을 맞이했고 마침내 소드 마스터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깨달은 감각에 집중하며 소드 마스터에 오르는 순간 내 옆에 있던 엘리스와 엘리스의 친구들 5명도 나를 통해 뿜어지는 ‘마력의 폭풍’을 체험했다. 나를 중심으로 둘러싼 6명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호법을 서다가 자연스레 마력에 노출이 됐는데 이때부터 6명은 자연스레 각성하게 되었다.

“아저씨, 드워프 친구들은 불의 정령과 땅의 정령이 말을 걸었고, 엘프 친구들은 나무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이 말을 걸었대.”
“그래?”
놀라운 일이었다. 엘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이전에도 누군가 자신들에게 소곤거리는 듯한 감각이 있었던 친구들이긴 했지만 그 소리가 명확하지 않아 잘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서 내뿜어지는 에너지를 체험한 뒤 말소리가 이전과 다르게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정령들과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면서 결국 친구로서 정령과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었다.
“엘리스,   특별한 거 없어?”
“나? 히히, 나도 좀 신기한 능력이 생겼어.”
“무슨 능력인데?”
“아직은 비밀로 하고 싶어.”
“그게 뭐야. 말해봐.”
“비밀이라니까.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위에 살짝 올리고선 웃으며 도망치는 엘리스가 귀여웠다.
“저 나이  애들은 다 저런 건가?”
<인간의 연령별 정신발달 추이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보통  시기를 ‘사춘기’라고 표현하더군요.>
“벌써 사춘기인건가? 애들은 정말 빨리 크는구나.”

오랜만에 뵙는 친척 어른들이 나를 볼 때마다 부쩍 부쩍 자란다는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별로 큰 느낌이 없었는데 엘리스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이 과연 무슨 말인지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인가?”
<예, 2시간 뒤 실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2년 2개월마다 한번씩 발생하는 ‘충’마다 실험을 진행했다. 첫 실험을 진행했을 때 차원이동능력을 움직이려고 하면 느껴지는 감각이 자극되는 걸 느끼고 게이트를 열어봤지만 섣불리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만약 내가 이대로 들어갔다가 문이 닫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엘레네의 경고때문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순간부로 이 실험들이 중지될 뿐만 아니라 더스트에서의 내 동료들과 섀넌을 만날  있는 기회까지 전부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미래로 가게 된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다. 그래서 또 다시 2년 2개월이 지나고나서 두 번째 실험에 들어갈 땐 세 안드로이드들이 제작한 드론을 날려 보냈다. 아직은 증폭된 힘을 유도해서  능력을 유지하는 감각에 익숙하질 않아 그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드론에는 게이트 건너편의 멸망한 지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 일부가 녹화되어 있었다.

“인류의 미래가 저런 건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언젠가 지구에도 끝이 찾아올 것이라는 인류의 보고서나 영화를 통해 간간히 접하기도 하고 세 안드로이드들을 통해 미리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매체를 통한 상상물과 다르게 이건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었다. 녹화되어 있는 지구의 잔해물들을 지켜보고 나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허무함이 날 감싸 안았다.
그렇게 내가 한동안 가라앉아 있자 엘리스가 옆에 찾아왔다.
“아저씨, 많이 힘들어?”
“좀 그렇네. 하하.”
내 웃음이 너무 쓰게 보였을까. 엘리스가 내 등을 다독거리며 안아줬다.
“아저씨가 얼마나 힘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슬퍼하지마.”
엘리스 그때 이후로 한동안  옆에 자주 찾아와 조잘대곤 했는데 어쩔 때는 마치 동년배 친구에게서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이상하기도 했다.

‘뭐지?’
엘리스를 닮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빨리 큰다고는 하는데 이렇게 빨리 변하나?’
아카데미에서의 교육은 단순히 이능력의 개화뿐 아니라 지성의 발달을 도모하고 있기에 철학적 사고를 증가시킬 수 있도록 고전들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과 함께 기본적인 과학지식도 가르치고 있었다.

2차 실험을 진행할 때쯤 육체적 성장이 끝난 엘리스는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상태였는데 어느 날은 잘 차려입은 커리어 우먼같은 느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고등학생같은 느낌이 나서 여자아이의 성장이 보여주는 변화가 이토록 다채로운 건가 싶어 의아해지기도 했다.
 점에 대해 엘레네에게 질문을 했지만 엘레네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여성의 신비 아니겠어요?>
‘아니, 내가 아무리 여자를 모른다고 해도 그 정도로 모를까.’

며칠  이제 괴로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 일을 마치고 난 뒤 잠깐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엘리스가 찾아왔다.
“아저씨.”
지치고 힘든 느낌의 엘리스는 나에게 다가와 오랫동안 포옹을 했는데 어제  엘리스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어깨를 잡고 떼서 엘리스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봤다.
“엘리스? 맞아?”
엘리스는 엘리스인데 엘리스가 아닌 존재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18살의 엘리스가 한 15년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 저런 느낌일까.
“아저씨가 아는 ‘지금’의 엘리스는 아닌데 아저씨가 아는  엘리스라는 건 맞아.”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의 나 몇 살같아?”
“어? 너 설마?”

내 눈앞에 나타난 엘리스는 자신이 35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미래의 엘리스라는 거지?”
“응, 아저씨.”
“그럼 그동안 엘리스가 아닌 것 같은 위화감이 들 때의 엘리스도 다 너였던 거야?”
이제야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제만 해도 어린 아이같은 엘리스가 오늘이 되면 20대의 대학생같았다가 내일이 되면 직장인 느낌이 나기도 하고 아무리 여자의 변화가 무죄라고는 애도 이렇게까지 변화무쌍한가 싶어 이상했는데 그게 엘리스의 능력 덕분일줄이야.
“맞아, 그때 내가 비밀이라고 말 안해줬지? 내 능력은 미래로도 과거로도 건너갈 수 있다는 거야. 아저씨의 공간을 넘어다니는 능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지  시간을 넘어갈 수 있게 됐어.”
“그렇구나. 그나저나 많이 힘들어 보인다.”
“아저씨는 역시 한눈에 알아 봐주네. 가족이란 걸까.”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엘리스가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엘리스가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안고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괜찮아. 괜찮아.”
엘리스는 이내 내 품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ㅃ, 아니 아저씨. 보고 싶었어.”
“그게 무슨?”
“아, 이건 엘레네가 말하지 말랬는데.못 들은 걸로 해줘.”

 손을 꼭 부여잡은 엘리스는 이때쯤 내가 힘들어했던 것이 떠올라 찾아왔다고 했다. 지나고 나니 좀 더 날 위로해줬어야 한다는 후회가 생겨서.
“내가 아저씨랑 비슷한 나이가 되고 나니까 아저씨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더라. 그때 아저씨가  힘들었는지 그때는 막연하게 이해는 됐지만 마음으로 진정 납득할 수는 없었거든.”
“그랬어?”

다 큰 딸과 이야기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30대의 엘리스는 날 이해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와 함께 한동안의 일을 그땐 그랬지 하면서 떠들던 엘리스는 자신이 차고  시계를 잠깐 보더니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가 봐야겠다.”
“왜, 더 있다 가지 않고서?”
“아직은 그 정도로 능력을 키우진 못해서 말이야. 한계가 있어...”

떠나겠다고 일어서는 엘리스를 보고 있으니 명절에 찾아왔다 떠나는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었다.
“한가지만 물어보자.”
“에덴 프로젝트가 성공했냐는 거지?”
“어, 그래. 아저씨는 잘 해낼 거야.”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엘리스는 빙긋 웃어 보이며 성공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내가  많이 바쁘네. 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그렇겠지. 화성에도 바다가 생기고 생명체가 살아갈  있도록 환경을 바꾼다는 것이 쉽진 않을 거야.”
“다음에 또 기회가 오면 찾아올게. 아,  친구들 능력 대단하지?”
“그래,  친구들 쩔더라.”
“크큭, 아저씨답네. 그래도 아저씨랑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좀 풀리네. 이래서 사람들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그러나봐.”

한 번 더 날 끌어안고 나서 엘리스가 웃으며 눈앞에서 빛과 함께 사라지자 묻고 싶었지만 선뜻 물어볼  없었던 질문을 혼자 나직히 내뱉었다.
“나는 어디 있는데 너와 엘레네만 그렇게 바쁜 거니?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옆에 있었다면 그냥 말하면 될텐데.”

 큰 엘리스가 떠나고 생기 넘치는 엘리스가 찾아와 옆에서 조잘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비교가 돼서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아저씨, 지금 내 말이 웃겨? 글쎄, 누손이랑 노타가 벌써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어? 어?”
“내 말 안 듣고 있었지.”
“아니야, 듣고 있었어.”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어.”
“누손이랑 노타가 너 좋다고 쫓아다닐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이랑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결혼할테니까 축하해달라고 했다면서.”
“흠, 그래. 그렇다고 내가 딱히 그걸 질투하는  아닌데 이건 뭔가 아니다 이거지.”

엘리스가 찍어둔 친구들은 그때의 각성 이후로 발군의 능력발전을 보여 나뿐만 아니라 두 여왕과 엘레네가  여겨 보고 있는 차세대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활용하여 마력활용에도 눈을 떴는데 자신의 능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자연스레 모여드는 동족들과의 활동에 바빠져 있었다. 그로 인해 다른 이들도 점차 조금씩 능력을 개화하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인지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질투하는 게 아니면 그냥 축하해주면 되잖아.”
“축하는 해줬는데 그래도 꼭 내 새끼들 장가보내는 거 마냥 섭섭하고 그래서 그러지.”
“니가 키웠냐?”

엘리스의 표현이 없어 한마디 했더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네란 눈빛으로 엘리스가 쳐다보며 말했다.
“뭐래.”
‘나한테나 잘해, 인마. 이런 아이가 커서 그렇게 되는 건가?’
“방금 눈빛 이상했어. 아저씨. 꼭 철부지같은 소리 좀 그만 해라하면서 눈으로 욕하면 그런 느낌?”
“알긴 아네.”
“이씨, 아저씨는  이해해줘야지.”
“친구가 너한테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쉽지 않았겠어. 진심으로 축하해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자 엘리스는 알긴 아는데 쉽지 않다고 답했다.
“넌 언제 결혼하냐.”
“아저씨도 결혼 안 했는데 내가 먼저 하면 쓰겠어?”
“야, 난 상황이  특수하잖니. 나 먼저 결혼하길 기대했다간  혼자 늙어 죽을지도 몰라.”
“그게 걱정이라 내가 결혼을 못하잖아. 늙은 아저씨를 누가 보살펴 주겠어. 에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짝 있으면 후딱 가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엘레네가 예정한 엘리스의 운명은 인간들의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먼저 다하는 것이었고 인간족의 순혈을 어느 정도 지키기 위해서라도 타 종족과의 결혼은 엘리스에겐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다. 타 종족과의 연애는 딱히 반대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엘리스는 선뜻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다.
“말이 쉽지. 아저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