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119화-떡으로 치는 놈은 떡으로 쳐라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두 여왕과 덤프티 시종장을 제외하곤 몇몇 궁인들과만 접촉하고 지낼 뿐이라 외부의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줄만한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멜키오르님, 그게 사실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세 사람이 두 여왕의 현기를 현혹해서 타락시킨다는 이야기까지 별 말이 다 돌고 있어요.”
궁에 있는 시녀들 중에서도 오랫동안 두 여왕을 보필해온 궁중 시녀장 멜키오르는 우리의 식사에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몇 번 참여한 뒤 우리의 생활 전반을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덤프티 시종장의 측근 시종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멜키오르의 옆에서 우리에게 이 말을 전달해주는 사람은 발타사르라는 이름의 중년엘프였다.
시녀장 멜키오르는 두 여왕이 탄생시킨 초창기의 엘프로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엘프였는데 나이와 다르게 혈기왕성한 분이라 궁정 전반에 걸쳐 여성들의 영역을 모두 총괄하는 분이셨다. 간혹 덤프티 시종장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거나 그런 보고를 받으면 하던 대화를 잠시 멈추고 뛰쳐나갈 정도로 온화하고 조용한 엘프답지 않게 불같이 열을 내는 분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끔 힘에 부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대부분의 시간은 에너지를 보존하려고 하듯 한발 물러나 자신을 도와주고 자신의 모든 걸 전수받은 발타사르를 통해 보고만 받으면서 우리와 함께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덤프티 시종장하곤 크게 척질 이유가 없었는데 우리들에 대해서 왜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걸까요?”
“글쎄요. 여러분들이 아무래도 자신의 영향력을 침범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가요?”
현기어린 눈빛을 한 멜키오르가 우리가 준 커피향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덤프티 시종장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죠?”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발타사르가 우리에게 물어봤다.
“유머러스하고 사람 좋아 보인다고 할까. 형과는 정반대로 보였어요.”
“절대 아니에요!”
“카스파르. 손님들과 이야기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구나.”
멜키오르가 카스파르라는 작은 드워프 시녀의 거센 반대에도 손주 보듯 자애로운 미소로 지켜보는 것과 다르게 발타사르는 아이가 버릇 없어질까봐 걱정하는 어머니처럼 다그쳤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니까요.”
“카스파르가 고집이 좀 센 아이입니다. 이해해주세요.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선 드워프답다고나 할까. 전혀 물러서질 않아요.”
치마를 잡은 두 손을 바르르 떨고 있는 카스파르의 모습을 보면 뭔가 기분 나쁜 경험을 여러 차례 경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 같아 보였다.
“카스파르, 덤프티 시종장이 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에요. 손님들께선 진실된 모습을 경험할 일이 없으셔서 모르실 수 있겠지만 실제론 겉으로만 좋아보일뿐이죠. 오죽하면 우리 시녀들 사이에선 덤프티란 인간에 대해 평가하기를 ‘실크로 감싼 똥 막대기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죠.”
카스파르의 적나라한 평가에 나는 마시던 커피를 입으로 내뿜을 뻔했다. 겨우 초인적인 인내력과 순발력으로 뿜어나가는 커피를 틀어막을 수 있었다.
“푸흡...뭘로 뭘 감싸요?”
“여기 손수건이요.”
“고마워, 엘리스.”
엘리스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입 밖으로 살짝 흘러 나온 커피를 닦고 있는데 카스파르는 물어본 질문에 대해 친절하게 해석을 더했다.
“그 속은 더럽기가 추악하기 짝이 없어 악취가 진동하는데도 겉으로는 아닌 척한다는 거죠.”
‘두 분도 동의하시는 건가?’
특이하게도 발타사르와 멜키오르도 한마디 할 법한 표현이었는데 아무런 반대나 특별히 제재가 없는 걸 보면 카스파르의 표현에 공감하는 것이 분명했다. 특별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어느 순간에는 긍정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특이한 표현이긴 하네. 직관적으로확 와닿는 게 꼭 드워프다운 표현같기도 하고.’
“세 사람의 이야기는 잘 알겠어요. 뭐. 외부에서 어떤 말이 돌건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기는 한데.”
“가만히 계실 건가요, 정후님?”
한모금 남은 커피를 들이켠 뒤 난 대답했다.
“우리 세상엔 이런 표현이 있어요. ‘떡으로 치는 놈은 떡으로 쳐라.’라고.”
“재밌는 표현이군요.”
우리의 다과회는 그렇게 끝을 맺고 난 멜키오르의 도움을 받아 난 좋은 사람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덤프티 시종장에 대한 과거의 일화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주작과 날조로 치면 우리 세상엔 따를 자가 없다는 괴벨스가 있었지.”
괴벨스의 선전 전략 중 몇가지는 지금 우리 세상에서도 선거를 치를 때면 사용되는데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쉬운 언어의 반복이었다. 세상의 사람들의 지식수준이 모두 다 균일한 것이 아니기에 선거의 전략을 전달받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명쾌한 표현의 반복이 어렵고 전문적인 용어보다 더 깊고 넓게 스며든다고나 할까. 이를 위해선 미디어를 독점할 필요가 있었다.
“인벤토리에 시중에 판매하려고 챙겨뒀던 라디오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네.”
라면을 보급하는 기관을 통해 나는 라디오를 각 가정에 나눠주고 우리 세상에서 ‘땡전 뉴스’가 존재했듯 여왕들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시작하는 뉴스에 그동안 궁 밖의 사람들이 잘 알 수 없었던 과거에 있었던 덤프티 시종장의 실수들이나 시녀들이나 아랫사람에 대해 갑질들과 험프티 수비대장의 악행들을 비롯한 것들을 중간중간 담아서 전파했다.
이 방송의 앵커로카스파르가 지대한 역할을 해줬는데 우리의 뉴스가 최대한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다르게 카스파르의 감정이 담긴 프로파간다는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적절한 수단이 되었다.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카스파르, 이렇게 해도 괜찮겠어요?”
“훗, 걱정할 거라면 시작도 안했어요. 그리고 어차피 전 발타사르 님의 뒤를 이을 차차기 궁중 시녀장으로 이미 내정되어 있어서 신경 안써줘도 돼요.”
“다행이네요.”
“다행이요? 아니요, 제 동기들과 제 후배들이 절 얼마나 응원하는지 아신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없을 거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방송을 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아세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흥분되고 신나는 순간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제가 한가지 아이디어가 있거든요.”
“어떤 아이디어죠?”
“단순히 험프티 덤프티 형제에 대한 과거 일화들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을 익명으로 출연시켜서 대담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해서요. 제 동기들도 나오고 싶다고 성화에요.”
“네?”
‘방송이 체질인가? 아직 말해주지 않은 인터뷰까지?’
PD로서 일하기엔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알아서 출연자를 섭외해오고 대본을 정리해주니 적당히 분량 편집만 해서 녹음된 방송을 틀어주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형, 형이 책임진다며!”
“나한테 지금 화내는 거냐?”
“사람들이 나만 보면 픽픽 비웃는다고.”
“나는 뭐 아닌 줄 알아?”
“형이 그 라디오인지 뭔지 방송이란 걸 못하게 좀 막아봐.”
“수비대를 통해서 알아보니까 너하고 척을 지고 있는 궁중 시녀들이 두 여왕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거라 우리가 개입할 수가 없어.”
“젠장, 빌어먹을. 이젠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까지 나와서 던지고 있다고.”
“나도 이거 때문에 골치가 아파.”
두 형제가 화풀이를 하듯 술을 마시고 있는 지금도 라디오에선 두 사람을 표현한 것같은 드라마라는 형식의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사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다시입니까?”
“감히 이 덤프 집사님 앞에서 그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어? 난 그따위 걸 인사로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야.”
“벌써 1시간이나 했는데 부족하십니까?”
“이 자식이 말로 해선 들어처먹질 않는군. 어이, 밖에 누구 없나?”
“부르셨습니까. 덤프 집사님.”
“이 자식을 형 험프에게 데려가서 교육대에 처 넣어. 죄목은 상관에 대한 불경죄다.”
“알겠습니다.”
“억울합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분명 인사를 드렸는데 험프 집사님께서 업무가 바쁘셔서 응이라고 대답하고 가셨다고.”
“난 기억에 없다고 분명 말했을텐데. 지겹군. 데려가라.”
“덤프님 덤프님!”」
라디오를 듣던 덤프티는 누가 봐도 자신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같은 드라마를 듣다가 뻗치는 열을 참지 못하고 라디오를 꺼버렸다. 험프티는 씩씩거리고 있는 덤프티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이거 몇 년 전에 그거냐?”
“기억 안나.”
“뭘 내 앞에서 숨기고 그래. 그때 그거 맞지?”
“진짜 기억 안난다고.”
“맞는 것 같은데.”
“형,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않아? 빨리 이거 못하게 막지 않으면 더욱 골치아파질 거야.”
“알았어. 조만간 방송은 못하게 틀어 막아볼게.”
“라디오 방송국에 불이 났다는 말입니까?”
“네, 어젯밤 괴한들이 침입해서 불을 내는 바람에 그곳에 있던 게 전부 탔다고 하더군요.”
“괴한들의 정체는 알아냈습니까?”
“너무 어두운 밤인데다 누가 그렇게 침범할지 예상을 못해서 따로 경비를 세우지도 않았거든요.”
카스파르와 함께 찾아온 발타사르의 말은 뜻밖이었다. 어떤 반응이 올거라곤 생각했지만 아예 라디오 방송국을 불태워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 누가 그런 일을 저지를지는 뻔하지만 말이죠.”
“그렇겠죠?”
“아저씨, 무슨 말이에요?”
“누군가 이 일로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이 범인이란 말이지.”
<흥미롭게 흘러가는데? 크큭.>
<험프티 덤프티 형제가 발악을 하네.>
<불을 질러버릴 줄은 몰랐다. 진짜.>
<그래도 아쉽긴 하다. 매일 ‘형제의 낮과 밤’을 듣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말이야.>
<그러게. 막장 드라마라고 했나?>
두 여왕은 라디오 드라마 ‘형제의 낮과 밤’이란 막장 스토리에 열광하는 애청자이기도 했다.
<시종으로 일하다가 교육대에 끌려간 뒤 모진 훈련과 학대로 기억상실증에 빠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준 여자 주인공이 알고 보니 어릴 적 잃어버린 주인공의 동생이었지?>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을 지독하게 못살게 군 두 형제 중 큰 형이 암이란 병에 걸린 것이 확인되어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자신의 자식 앞에서 사실대로 이야기하는걸 몰래 엿듣는 순간까지 봐서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했는데.>
<하아, 이제 또 어디서 낙을 찾아야 되나>
<그러게 말이야.>
<이정후는 어떻게 대응할지도 궁금하긴 하다.>
<그치? 분명 기발한 수로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해줄 거야.>
<기대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라디오 방송국을 다시 만들어 달라는 건가요?>
“네, 제가 준비해온 장비는 불타버렸거든요. 근데 두 안드로이드분의 기술력이라면 라디오 방송국 하나 정도 재건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아서요.”
<우리도 요즘 할 일이 많아서 말이죠.>
화이트와 레드는 갑자기 자신에게 일감을 가지고 온 정후가 반갑지 않았다. 하려면 금방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꽤나 귀찮은 것이 솔직한 두 안드로이드의 심정이기도했다.
“못하는건가요? 두분이라면 금방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특히나 두 분이 저희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형제의 낮과 밤’의 애청자라고 들었거든요.”
‘일해라 일. 나도 하는데’
미소를 짓고 자신의 앞에서 말을 꺼내는 정후가 얄미웠지만 드라마의 다음 내용이 뻔할 것 같으면서도 기대되는 두 여왕은 정후의 제안을 듣고 고민이 되었다.
<(귀찮은데)>
<주인공이 몰래 엿듣고 나서 발각되었잖아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죠?>
“궁금하시면 빨리 장비부터 복구해서 보내주세요.”
<얄밉군. 당신.>
“그럼 그냥 이대로 방송을 멈출까요?”
<험험,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듣자하니 국민들의 성화가 여간이 아니라는데.>
피식 웃고서 인사를 마치고 나가는 정후의 뒤통수에 두 여왕은 정후에게서 배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