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117화-사이드 이펙트. (117/239)



〈 117화 〉117화-사이드 이펙트.

기이한 열기를 품은 이들의 앞에 두 여왕이 자리 잡고 험프티-덤프티 형제에 의해 진행된 추첨행사는 당첨된 사람과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뒤섞인 채로 끝이 났다.
“이대로면 오히려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이 열받진 않을까요?”

엘리스의 질문은 충분히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구름떼처럼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한가지가 적어도 당첨되지 않는 자들의 일시적인 실망감을누그러뜨릴  있지 않을까 했다.
“엊그제 먹었던 라면 기억하지?”
“츄릅.”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은 엘리스를 위해 준비한 순한맛의 라면은 엘리스의 입맛에 기가 막히게 맞았는데 그때 이후로 줄곧 뭘 먹을까를 이야기하면 라면을 꺼내서 곤란할 정도였다. 지금도 라면이란 단어를 꺼내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침을 삼키는 엘레네의 모습만 봐도 라면이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지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들 전부에게 라면을 끓여주기로 두 여왕이 사람들을 보내 지원해주기로 했어요.>
“와와, 라면 맛있겠다.”
“엘리스, 그럼 저 사람들하고 라면 먹을래?”
“아니, 그건...”
너무 하다면서 선 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엘리스의 반응은 사실 당연했다. 누구라도 고기 먹을래 라면 먹을래하는 질문에 어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선 라면을 더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테니까.

100명의 당첨된 사람들을 시종장 덤프티가 호위대와 함께 데려가는 동안 궁에선 궁인들이 나와 커다란 솥에 물을 담고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뭔가 하는 건가?”
꾸겨진 티켓을 쥐고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은 커다란 솥을 꺼내들고 와서 불을 붙이는 게 뭘 위한 것인지 궁금해했다.

“에이,  보나마나 허여멀건한 죽같은 거 줄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 것치곤 뒤에 가져다 놓는 저 박스들은 처음 보는 건데?”
“아르보, 저기 봐봐. 박스 안에서 광택질의 무언가를 꺼내서 뜯는다.”

물이 끓는 동안 라면 봉지들을 하나둘씩 뜯자 꼬불꼬불한 노란색의 유탕면들이  모습을 보였다.
“뭐지, 저건?”
“저걸 뜨거운 물에서 끓여 먹는 것 같은데?”

거대한 솥에 담겨진 물이 끌어 오르기 시작하자 내가 가르쳐 준대로 대량의 라면과 스프가 서로 다른 솥들에 나눠져 투하되었고 그 모습은 마치 군대에서 대량의 라면을 끓이는 취사반의 모습같아 보였다.
“우와, 장관이다. 아저씨.”
“그르냐?”
“근데 왜 저 라면이란  노란색인 거야? 라면은 밀가루로 만든다면서? 저번에 칼국수 한다고 꺼냈던 밀가루는 하얬잖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상한데?”
“그건 말이지. 라면에는 라면에 리보플라빈(비타민 B2)이라는 노란색 비타민을 넣기 때문이야.
리보플라빈의 성분이 밀가루의 색감을 더욱 좋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평소 섭취가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의 섭취를 돕기 위한 거지.”
“그래서, 면이 저렇게 노란 색인 거구나. 확실히 노란  면이 저렇게 잔뜩 있으니까 더 맛있어 보인다.”
“라면은 저렇게 끓이면 니가 먹은 것보단 맛이 없어. 저건 어쩔  없이 한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라면을 먹이기 위해 만든 방법인거지. 최적의 방법은 아니야.”

적당량을 넣고 끓이는 라면과 다르게 대량으로 끓이는 라면은 맛이 살짝 덜했다. 엘리스에게 니가 먹었던 라면보다는 맛이 덜할 거라고 설명해주자 엘리스는 의아해했다.
“왜? 저번에 아저씨가 끓여준 곰탕이라는 건 큰 솥에 넣고 오래 많이 끓여야 진국이 우러난다며.”
“그거랑 다르게 기름에 넣어서 튀긴 라면의 면발과 스프를 저렇게 따로 끓이면 국물에 라면에 스며든 기름이 녹아 나오질 못하거든. 그러면 스프와 기름이 어우러져서 나는 특유의 맛이 덜할뿐더러 대량으로 면을 끓이면 일부는 적당히 익는데 일부는 너무 과하게 익어서 면이 다 풀어져버려서 맛이 별로야.”
“난, 다 풀어진 라면도 맛있던데.”
“쓰읍,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푹 다 퍼진 라면을 좋아하는 취향의 소유자들도 있겠지만 내 취향은 적당히 꼬들꼬들한 면발인지라 엘리스의 의견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들이 그렇게 멀리서 만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덧 끓은 라면이 사람들에게 나눠지고 있었다.
“이게 그 궁궐에서 났다는 그 냄새인가?”
“그런가?”
“냄새만 맡아도 침이 솟아 나오는  맞는 거 같지 않아?”

개인적으로 라면은 젓가락으로 먹어야 제 맛인데 이곳의 사람들은 숟가락으로만 식사를 해 왔기에 포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이렇게 떠먹으라고?”

오늘 이렇게 라면을 끓이기 전에 시식행사를 몇차례 가진 궁인들은 라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줬다.
누군가는 꼬들꼬들한 라면을, 누군가는 푹 퍼진 라면을 받아 후루룩거리며 먹는 소리가 광장에 가득해졌다.
“조금 혀가 얼얼한데 중독될 것만 같아. 후루룩”
‘MSG의 마력은 여기서도 통하는구나!’
“듣자하니 궁인들 말로는 앞으로 지금 우리가 먹는 라면이라는  주기적으로 각 가정에 보급될 예정이래.”
“두 여왕님이 역시 우리들을 버리진 않으셨나보군.”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이상한 놈들이 헛소리로 선동하는 거라고.”
“야, 헛소리들 하지 말고 빨리 먹어. 먹고 부족하면 더 준다잖아.”

사람은 배가 부르고 입이 행복하면 부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배부른 돼지가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우민일지언정 그 삶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저들을 보고 있자니 떠올랐다.
폭동의 기미가 급격히 사그라드는 분위기를 보고나서 우리는 당첨된 100인들이 정해진 공간에 이동해 내가 가져온 정장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옷들을 차려입고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걸 먹으니까 이상하게 몸에서 기운이 넘치는 걸?”
“그쪽도 그래요? 나두 그런데. 이걸 먹으니까  늘어진 몸에 힘이 도는 게 느껴져요.”

처음엔 오랜시간 비건으로만 살던 이들이 경험했던 채식으로 인한 일종의 단점이 해소되는 모습인가 싶었다. 장기간 채식을 진행하면서 제대로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지 못하는 이들은 종종 무기력한 상태가 되곤 한다는 실증사례들인가 싶었다.
물론 고기를 자주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그런 현상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걸 위해서 특별히 그걸 따로 준비해달라고 했지.”
<두 여왕들과 덤프티 시종장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죠.>
“경험해본 사람들만 아는 거지, 후후.”

옆에서 웃고 있는 엘리스도 처음 삼겹살을 먹었을  혓바닥에 깊게 스며드는 지방의 맛에 푹 빠졌지만 다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고기를 처음 먹었음을 여지없이 증명해냈다.
“그날 엘리스가 화장실을 몇 번 갔더라?”
“아저씨, 그건 우리 서로 과거에 묻어 두기로 했잖아.”
“근데 뭘  안 그런 것처럼 그러고 있어? 개구리 올챙이  생각 못한다더니 니가 딱 그짝이네.”
“개구리랑 올챙이가 뭐야?”
“하아.”
척박한 자연환경도 문제였지만 엘리스에겐 이런 부분에서 나와 통하지 않는 부분들이 종종 나타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엘레네의 데이터베이스에 생물 관련 데이터가 제대로 남아 있어 추후에 교육이 가능하단 거였지만.
<자기 전에 러닝 시스템에 개구리와 올챙이를 비롯해서 해당 양서류에 관한 자료를 업로드하여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흐에엥. 그게 왜 거기로 이어져? 아저씨 개구린지 올챙인지 그딴거 꼭 알아야 하는 거야? 아저씨가 그런 거 알 필요 없다고 마더한테 이야기해줘.”
“세상에 해선 안되는 일 빼고 경험해서 나쁠 건 없단다. 푸흡.”
“아저씨, 웃었지?”
“아니~”
“웃은 것 같은데?”

잠시전만 해도 웃고 있다 울상으로 바뀐 엘리스와 투닥거리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올  같았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 앞에서 두 여왕은 울상을 짓고 있는 엘리스를 사람들 앞으로 불러 새롭게 탄생한 인류의 지도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퍼진 소문과 다르게 여왕들은 자신들의 사람들 앞에 속이는 것은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의 지도자와 자신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마더의 존재와 접촉하여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접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와전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엘프도 드워프도 아닌 이의 등장과 약간의 거짓이 살짝 섞인 프리젠테이션 덕분에 100인은 그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기를 어느 정도 먹은 이들은 우리의 예상대로 준비된 임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여왕님들의 삶도 쉽지는 않은 것 같아. 먹을 땐 그리도 행복했는데 이렇게 배가 아픈 줄이야.”
“우리들을 위해 이토록 애를 쓰고 계셨다니 몹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이 나오면 혼쭐을 내줘야지. 으윽. 또 배가 살살 아픈 것 같아.”
한참을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덕분에 행사가 지연되기는 했지만 그날 이후로 여론의 행방은 가볍게 뒤집을 수 있었다.

여론을 뒤바꾼 것에 성공한 이후로 사람들은 라면을 배급받는 날을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이전처럼 조리를 해서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가족의 숫자에 맞춰서 주기적으로 집에서 해먹도록 나눠주자 사람들 사이에선 라면이 화폐를 대신하는 사이드 이펙트가 발생했다.
이곳의 기술력으로도 라면 정도는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는 두 여왕의 조언에 따라 내가 준 라면을 역설계하여 공장에선 연일 라면을 찍어내고 있었다.

“아저씨,요즘 사람들이 라면으로 아저씨가 보여준 황금처럼 교환의 수단으로 쓴다던데. 이것까지 생각한 거야?”
‘나도 이건 생각 못했다.’
“크흠, 당연하지.  정도쯤.”

상대적으로 많다고 하기는 어려운 인구가 모여 있어 화폐라고 할 만한 것이 없던 이 세상에 상품 교환 가치의 척도가 되며 그것의 교환을 매개하는 일반화된 수단으로 작용했던 최초의 화폐인 조개를 대신해 라면이 이곳에선화폐가  것이었다.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선 폐쇄경제인지라 라면이 화폐처럼 쓰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같은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교환하고 싶을 때면 라면의 개수로 그 가치를 정하곤 했다.
“라면 1개! 1 개 주도록 하지.”
“1개는 너무 적네. 4개. 4개로 하지.”
“맙소사. 어떻게 1개를 4배나 올려달라고 하는 거지? 1.5개로 하는 걸로 하지.”
“4개!”

라면으로 간편해진 물물거래 속에서 김두한  거래를 진행하는 옷감장인 길드장과 옷감 판매인과의 실랑이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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