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116화.개츠비스크(Gatsbyesque)
개츠비스크란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가 출판된 이후 유행한 말로 뭔가 요란하면서 과장된 스타일을 가리키거나 환상적인 힘으로 인생을 긍정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대체로는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보기엔 두 여왕의 공간이 그러했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오기 전 거리는 내가 기억하는 엘븐하임과 다르게 너무나 삭막한 공간이었는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생기가 넘치던 성인식을 준비하던 그 날의 사람들과 너무나 대비되어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어딘가 무채색으로 느껴지는 이 지역에서 티타늄의 재질로 되어 있는 이 피라미드 내부만이 컬러로 느껴져서 더 대비된다고나 할까.
“아저씨, 여긴 참 심심해. 사람들이 많으면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러게. 먹고 사는 게 팍팍해서 그런 걸까?”
<슬슬 나갈 준비를 할까요?>
두 여왕과의 만남 이후 우리는 이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덤프티가 나와 엘리스 그리고 엘레네의 안전을 위해 험프티를 붙여주겠다고 했지만 거만한 인간을 달고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짜증이 날 것만 같아 완곡한 표현으로 극구 사양했다.
두 여인을 에스코트하면서 돌아보는 거리는 너무나 심심했는데 왜 그런 걸까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때문일까 했으나 고민을 계속하다보니 답이 나왔다.
“거리에 아이들이 없어.”
“맞아. 내 또래 친구들이 없는 것 같아.”
“왜 그런 거지?”
우리가 의문을 품고 거리에 아이 한명 찾아보기 힘든 이유를 서로 주고받는 동안 엘레네가 멈칫멈칫했다.
<그건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 자연적으로 태어난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더, 그건 나도 마찬가지잖아.”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기로 태어나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 엘리스와 다르게 이곳에 있는 엘프와 드워프들은 처음부터 성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충격적이었다. 성인으로 태어난 이들의 도시라 아이들이 없는 것이었다니.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에 의해 만들어진 이들 사이에선 아직까지 아기가 탄생한 적이 없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그것도 좀 이상한 거 아니야? 부부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그래서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이 최근 골머리를 앓는 한가지가 아기의 탄생이라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봤으나 좀처럼 아이를 가지는 부부가 없었다고 해요.>
꼭 노인들만 가득한 시골에 찾아간 것처럼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자 꼭 유령들의 도시에 찾아온 것처럼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피라미드 안도 여왕들을 시중드는 궁인들 사이에선 기이한 소문이 돌았다. 여왕들이 외부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자신들끼리 뭔가를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지 못했으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왕들의 공간에서 풍겨나온 냄새가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그 냄새를 맡아본 이들은 냄새가 흘러나올 때마다 여왕들의 공간 앞 응접실에 온 이들은 코를 킁킁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스읍, 이 냄새는 도대체 뭘까?”
“덤프티 님께서 킁킁거리지 말라고 하셨잖아.”
“핀, 너도 궁금하잖아. 이 냄새만 맡으면 입 안에 침이 고이고 나도 모르게 배가 고파져.”
“그건 그래.”
고깃집을 지나가면 나는 그 냄새에 홀린 것은 궁인들뿐만은 아니었다. 여왕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먹고 싶어. 우리의 공간에 깊게 스며든 이 향기가 너무 그리워.>
<그럼 그 정후란 남자를 또 부르자.>
<덤프티는 우리가 너무 특정한 이들을 자주 부르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했어. 좀 더 기간을 두고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잖아.>
<화이트, 넌 며칠 전 먹은 그 음식 맛이 생각 안나?>
<레드, 진정해. 근본적으로 마더에 의해 동일한 인공지능과 동일한 스펙을 갖고 태어난 내가 니가 느끼는 감각을 못 느끼겠어?>
<그러니까 또 불러서 고기파티라는 걸 하자고!>
<하아, 레드. 넌 그 불같이 감정에 취하는 그 알고리즘을 고쳐야 해.>
<화이트, 너야말로 본심과 다르게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알고리즘부터 고치시지.>
<그만하자. 우리가 이 이야기로 한두번 논쟁한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정확히 71210번이었지.>
<동일한 행동을 계속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행위야.>
<먼 과거 물리학자가 했다는 이야기는 집어치워.>
두 여왕이 애들처럼 별거 아닌 걸로 투닥거리는 사이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엘리스를 보고난 뒤 드워프와 엘프들 사이에서 점차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키가 작았어.”
“드워프야?”
“드워프도 엘프도 아니었어.”
“‘아이’라고 불렀어. 그 옆에 서 있는 엘프와 한 남자가.”
“‘아이’라고?”
“누구의 아이지? 엘프? 드워프?”
“키가 작으면 드워프 아니야?”
“아냐, 드워프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이윽고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진 엘리스에 대한 소문은 드디어이 도시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음에도 두 여왕이 이를 숨겨왔다는 걸로 왜곡되기 시작했다. 기이한 소문에 취한 부부들 사이에선 막연하게 자신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일부는 여왕들이 특별한 비법을 숨기고 있다는 것으로 이어졌다.
“왜 두 여왕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숨긴 걸까?”
“여왕들의 공간에서 흘러나온 ‘그 냄새’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그게 분명해.”
이런 왜곡된 소문은 금방 험프티에 의해 덤프티에게 전달되었고 덤프티는 두 여왕에게 찾아와 도시에 어떤 소문이 퍼지고 있는지를 전달했다.
<냄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결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믿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확인시켜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냄새가 과연 무슨 냄새인지 확인시켜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건 우리의 힘으론 불가능하다.>
붉은 여왕은 하얀 여왕을 보며 사실대로 전부 설명을 해야 하나 메시지를 보냈지만 하얀 여왕은 반대의 의사표시를 전했다.
<덤프티 시종장이 전해준 소문은 잘 알겠다.>
<우리들의 손님으로 찾아온 분들을 긴히 청하니 뵙고 싶다고 전해라.>
“외부에서 온 이들과 너무 자주 만나면 외부에 좋지 않은 시선이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토달지 말고!>
붉은 여왕이 소리치자 덤프티는 두 여왕의 의사가 확실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를 찾았다고 그러던데요?”
중이 고기맛을 보면 절의 담을 넘는다는 말이 맞구나를 속으로 외치는 나의 생각과 다르게 일이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두 여왕으로부터 우리가 외출하고 난 뒤 며칠동안 어떤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는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배양육 시스템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당신이 국민들에게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런 냄새가 퍼졌는지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과한 요구였다. 이곳에 오기 전 엘븐 갓과의 조우 이후 마더 엘리스가 내 능력에 걸려 있는 락을 풀어주면서 인벤토리 능력의 확장도 진행되었지만 인벤토리 가득 이것 저것 챙겨오고 그 밖에 남은 공간에 준비해온 식량으로 몇천명이 되는 드워프들과 엘프들의 입에 넣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까지 내가 이곳에 머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함부로 풀어버릴 수는 없어.’
“모두에게 맛보이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우리도 모두에게 맛보이길 원하는 건 아닙니다. 이곳에선 감히 구할 수 없는 음식이니까요.>
<보호자 이정후는 대가로 우리에게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대가를 치르도록 할게.>
‘아니, 내가 무슨 용팔이도 아니고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바닷물을 끌어들일 게이트에 대해서 진행시켜볼 걸 기대하고 왔는데 엉뚱한 요구를 받고 있자니 스트레스 수치가 팍팍 오르는 것만 같았다.
“배양육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다렸다가 배양육을 제공하면 되지 않아요?”
<엘리스, 이건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나봐요?”
<시설이 완비되고 생산되어 나오는 배양육의 섭취 가능성에 대해서 최종점검까지 마치려면 못해도 2주는 걸리는데 이대로 흘러가면 그동안 우리에게 생긴 불만이 폭동으로 이어질지도 몰라요. 예상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그래요.>
두 여왕의 설명을 듣고 나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난 게이트 설치를 위한 연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조건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100인을 선정해서 그들에게 고기를 맛보이는 걸로 하죠?”
<왜 100인가요?>
“모두에게 안된다고 하는 것보단 누군가를 선정할 경우 사람들의 시선이 ‘선정되는가 아닌가’로 시선이 바뀌게 되니까요. 100인이면 소문을 잠재우고 새로운 소문을 퍼뜨리기에 충분한 숫자일 것 같습니다만?”
‘100인분 준비는 니들이 해주냐? 결국 다 내가 해야 할텐데.’
사람들의 심리란 아무것도 없이 막연한 요구를 하는 상황에서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순간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들면서 다른 생각을 잘 안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이를 두 여왕에게 설명하자 괜찮은 대안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아저씨가 저번에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심부름 할래 아니면 훈련할래 하는 것도 그런 거군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엘리스가 딱 걸렸다 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그건 말이지. 엘리스.”
“나도 바보 아니거든요?”
엘레네를 비롯해서 도움의 눈빛을 보내 봤지만 엘리스에게 쩔쩔매는 나를 지켜보는 세 안드로이드는 굳이 말릴 생각 없이 한참을 지켜봤다.
‘어째 내 편은 없는 것 같지?’
그날의 조언 이후 피라미드에 100인을 초대해 여왕이 특별한 경험을 시켜주겠다는 공고가 붙었다. 이 경험은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근거 없는 소문을 일축하기 위함이며 여왕들은 결코 생명의 탄생을 숨기거나 다른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는 내용이 담긴 공고였다.
공고가 붙은 이후로 도시에선 로또의 당첨을 기대하듯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부부들의 경우 더욱 그러했는데 사랑의 결실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은 100인에 선정되어 여왕들의 피라미드에 들어가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 이들이 늘어났다.
“듣자하니 추첨방식을 통해서 100인을 선정한대. 여보.”
“부부가 아닌 이들에게서 최대한 추첨용지들을 받아야겠어요.”
신혼부부들을 비롯해서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청약주택의 당첨을 기대하는 우리네 부부들처럼 불법이든 편법이든 가리지 않고 피라미드에서 각 개인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준 용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보, 사람들에게 일을 대신해준다고 하는 조건으로 이 용지들을 모았소."
"잘했어요. 나도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이만큼 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