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5화 〉115화.뼈와 살이 불타는 밤. (115/239)



〈 115화 〉115화.뼈와 살이 불타는 밤.

오러의 시연 이후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안드로이드들을 지켜보는 나와 엘리스는 지루해졌다. 손을 잡고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도 중간중간 엘레네가 우리들을 위해 뭐라뭐라 설명해줬지만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아이디어가 담겼던 영화에서 과학자가 떠드는 것을 듣는 것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아저씨, 나 슬슬 배고파.”
“배고파질 시간이 됐긴 했지.”
외부로의 창문이 존재하지 않아 밖의 시간을 가늠할 순 없었으나 인간이 가진 생체시계인 배꼽시계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때를 지킬 것을 강요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엘리스의 배고프단 말에 엘레네는 두 여왕과 맞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이런,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꽤 불편하군요. 시간마다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니.>

붉은 여왕이 우리 둘을 보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고 있으니 순간 벙찔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더 엘레네는 우리의 편이었다.
엘레네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붉은 여왕을 향해 단언했다.
<그건 붉은 여왕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붉은 여왕과 성향이 다른 하얀 여왕조차 붉은 여왕의 편을 들으며 엘레네를 설득하려 했다.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섭취해야 기동이 가능한 인간의 육체가 불편하단 건 마더 엘레네께서 더욱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얀 여왕도  모르고 있군요.>

너희들이 모르는 세상을 난 경험해봤다는 엘레네의 표정은 미식가의 것  자체였다.
<정후님 이들에게 보여주세요. 뼈와 살이 불에 닿아서 나올  있는 맛의 변주를>

무시당한 나도 그랬지만 본 때를 보여주길 바라는 엘리스와 엘레네의 응원을 받아 난 준비에 들어가기 전 두 여왕에게 물어봤다.
“여기 환기는 잘 되나요? 제가 준비하는 요리의 냄새가 이 공간에 베어 들어갈 수 있어서 그러는데 환기가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할 있다면 거기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본 성의 환기 시설은 최상급입니다. 외부의 오염된 물질이 반입되는 것을 막는 것과 동시에 내부의 탁해진 공기를 밖으로 배출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험프티가 누굴 닮았나 했는데 저 붉은 여왕을 닮은 거였군.’
턱을 치켜세우며 넌 그런 것도 모르니를 시전하는 붉은 여왕의 거만한 자태에 속으로 비웃었지만 겉으론 그랬구나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런 부분은  몰라서...”
엘레네가 도와주려는 것을 눈빛으로 막고  해줄까 고민하다 그걸로 정했다.
‘니들이 갈비맛을 알아?’

엘리스는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상대방을 골려줄 마음을 먹었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곤 했으니까.

붉은 색의 원형 테이블을 꺼내자 붉은 여왕은 강렬한 레드의 컬러에 빨려 들어왔는지 테이블을 쓰다듬으며 어디서 이런 걸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난  들은척하면서 숯을 꺼내고 토치를 꺼내 불로 달구기 시작했다.
“흠흠~”

이 공간을 고기의 향과 냄새로 가득 채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난 분명 기회를 줬단 말이지.’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은 저 인간이 뭘 하려고 하나 싶어 내가 뭘 꺼내려고 할 때마다 와서 꼬치꼬치 캐물어보려고 했지만 자신들이 했던 고대로 답변하는 인간의 얄미움에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엘레네는 준 대로 돌려받는 두 여왕들을 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침내 세팅이 완료되어 준비된 숯불이 테이블 가운데에 들어가고 그 위에 불판이 얹혀진 뒤 뼈가 붙어 있는 양념갈비를 굽기 시작했을  엘레네와 엘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에 착석해서 먹을 준비를 끝마쳤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도 거기 앉으세요.>

갈비가 구워지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두 여왕의 말대로 환기 시설이 나쁘진 않은지 약간의 연기만 있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었다.
“아저씨, 현기증 날  같아요. 이제 먹어도 되는 거죠?”
“기다려~”
자신의 밥그릇을 향해 달려드는 댕댕이를 제지하듯 손바닥으로 엘리스를 제지하자 자연 엘리스를 따라 흉내내듯 젓가락을 집어든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디움 정도로 잘 구워진 상태가 되자 먹어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움움, 아저씨.  맛이에요. 하아. 이러니 내가 고기를 못 끊지.”
고기를 먹는 게 그리도 좋은지 신이 나서 몸을 흔들며 갈비를 연신 가져다가 먹는 엘리스에게 난 야채와 김치도 같이 먹으라고 권했다.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하고 김치같은 것도 골고루 먹어야지. 쌈도 싸서 먹고.”
<맞습니다. 엘리스. 균형잡힌 식단의 중요성은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린  같습니다. 정후님이 오고 나서 너무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량이 늘었어요.>
엘레네는 살짝 살이 오른 엘리스의 볼을 살짝 잡으며 소아비만의 위험성에 대한 자료들을 떠들었다.

가족처럼 편안하게 식사를 하는 우리들과 다르게 두 여왕은 처음엔 고상한 척 차분하게 고기를 가져다 먹으려고 했지만 쉬지 않고 고기를 집어가는 엘레네와 엘리스덕분에 빠르게 줄어드는 불판 위의 고기를 지켜보며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다가 고상한 척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아귀다툼에선 고상을 떨 수가 없는 법이다. 요것들아.’

다섯 명이 전투적인 식사를 하고 있자니 크로니클 단원들 그리고 섀넌과 즐겁게 웃고 떠들며 마시고 먹던 즐거운 한 때가 떠올랐다.
‘언제쯤 돌아갈 수 있으려나.’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서서히 고기를 집어가는 속도가 늦어지고 남은 갈비가 숯불에 타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이상 굽는 걸 멈췄다.
“어떠십니까?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셨나요?”
두 여왕은 그동안 엘프나 드워프들에게 제공되는 프로틴 쉐이크나 곡물가루를 갈아서 만든 선식의 맛만 떠올렸다가 오래전 지구가 멸망하기 전의 기록에나 남아 있던 고기구이를 체험하는 순간 인간에게 있어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축복임을 깨달았다.
<드워프들이 얼마 전부터 프로틴 쉐이크가 지겹다면서 배양육을 키우겠다고 하길래 그런 에너지 낭비는 뭐하러 하냐고 했는데 저희들이 큰 실수를 저질렀군요.>
<인간에게 있어 먹는 것이 불편한 것이란 말은 철회하도록 하겠다. 내가 실수한 것 같군.>

순순히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여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해졌다.
“좋은 식사 시간이 되었다니 저도 만족스럽습니다.”

많이 먹은 엘리스가 슬슬 식곤증에 배불러 하는 것 같아 보이자 엘레네는 자신들이  수 있게 게스트 룸으로 이동하고 싶다고 했다.
<덤프티! 와서 손님들을 스위트 룸으로 안내해드리도록.>
붉은 여왕이 소리치자 밖에 서 있었는지 덤프티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휘유, 이게 무슨 냄새지요? 저절로 군침이 도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덤프티만 빼놓고 먹은 것 같아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러나 두 여왕의 생각은 달랐는지 어서 손님들이 쉴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을 재촉했다.
“죄송합니다. 절 따라 오시죠.”

덤프티의 안내를 받아 간 스위트 룸은 여왕들의 방보단 덜했지만 그럭저럭 좋은 공간이었다. 푹신한 침대가 놓여진 방들이 몇 개 있었고 현대식 화장실이 있어 마치 지구의 어딘가 호텔방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창이 없어 뷰를 느낄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갑갑한 점을 뺀다면 말이다.
“후우, 아저씨. 너무 배불러요.”
“그래도 이는 닦고 자야지?”
“히잉, 그냥 안 닦고 자면 안되나?”
“그래, 그래도 돼. 입에서 따뜻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 내뿜고 그러고 싶으면.”

한번은 트레일러 안에 비치해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두는 통이 꽉 찬 적이 있었는데 밖에 땅을 파서 묻고 오라는 심부름에 엘리스는 그냥 아무곳에나 두면 안되냐고 하길래 쓰레기통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고나 그런 소리를 하라고 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무슨 냄새긴. 제대로 이  닦으면 우리 엘리스 입에서도 나는 냄새지.”
“거짓말. 언제 내 입에서 이런 냄새가 났다고.”
“처음에 내가 준비해준 식사하고 나서 제대로 이  닦고 잔 다음날 아침?”
너무나 구체적인 답변에 엘리스는 더 이상 항변하지 못하고 시킨 대로 심부름을 마쳤다.
“버리고 왔으면 깨끗하게 물로 헹궈서 잘 마르게 뚜껑 열어 놔야 한다.”
“이런 것까지 꼭 내가 해야 되나?”
“안해도 돼. 다음부터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들 먹고 싶지 않으면.”
“치사해.”

툴툴거리던 엘리스의 귀여웠던 그때를 떠올리며 양치질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는 엘리스에게 칫솔과 치약을 챙겨줬다.
“뭐해요?”
내 옆에서 같이 흐뭇하게 지켜보는 엘레네에게 물어보자 엘레네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
“같이 따라가서 엘레네도 닦아야죠. 은근 슬쩍  닦으려고 그러네?”
<칫, 안통하네.>
엘리스가 터벅터벅 걸어갔듯 혼자 중얼거리며 엘레네도 칫솔을 받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나도 다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고기를 굽느라 온 몸뿐 아니라 머리에서도 갈비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기에 양치질만 하고 자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샤워를 하기 위해 들어가니 물을 아끼기 위함인지 수도꼭지가 찜질방의 샤워기처럼 누르면 잠깐동안 나오고 멈추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온수는 잘 나와서 간만에 좁은 트레일러 화장실이 아니라 넓은 화장실에서 편하게 샤워할 수 있기도 했고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요것들. 인간을 무시해? 환기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냄새가 잘 빠질 것 같으면 고깃집에 탈취제가 왜 있냐? 경험을 해 봐야 알지.”

많고 많은 음식들 중에서 굳이 그 냄새가 깊게 베이는  같은 양념갈비를 준비한 이유가 뭐였겠는가 다 생각이 있어 정한 메뉴였다.

<큼큼, 내 센서에 문제가 있는 걸까?>
<붉은 여왕?  그러지?>
<고기를 구운 것은 아까 전이었는데 지금도 자꾸 뼈와 살이 불에 타는 냄새가 어디에서 나는 것만 같아서 말이야. 후각에 이상이 생긴 건가 싶어서.>
<아니, 나도 그래.>

환기가 잘되는 공간에서 계속 어디선가 나는 양념갈비라는 것의 냄새는 두 사람이 각자의 침대에 누웠을 때도 계속 어디선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냄새의 정체에 대해 밤새 뒤척이던 둘은 요리를 시작하기 전 묘한 웃음을 짓고 있던 정후가 왜 그런 웃음을 짓고 있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피식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한방 먹었네. 고기가 불과 닿아서 반응한 결과 거기에서 나온 유증기가 이 공간에 잔뜩 스며든 것이었어.>
<환기 시설을 믿으라면서 괜찮다고 한 건 우리였지.>
<큭>

두 안드로이드의 공간에선 밤새 뼈와 살이 불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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