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109화-something is wrong.
내가 만난 엘리스란 이름을 가진 소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척박한 대지의 지하엔 수경재배가 가능한 자동농장이 있었고 소녀는 거기서 나오는 농작물로 먹고 사는 것 같았다.
엘리스는 어떻게 아저씨가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며 놀라워했다.
“분명 ‘마더’가 그랬거든요. 이 세상에 사람은 유일하게 나만 있다고. 맞지, 마더?”
소녀의 질문에 누군가 대답했다.
“이건 누가 대답해주는 거지?”
“마더는 날 키워준 인공지능이에요. 원래 정식 명칭은 마더컴퓨터인데 너무 길기도 하고 그래서 줄여서 부르는 거죠.”
“부모님은?”
묻고 나서 보니 의도치 않게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이는 딱히 상처받은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최초의 인간이래요. 그런데 어떻게 부모님이 있을 수 있겠어요?”
“어?”
말이 안 맞았다. 부모가 없는 자식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소녀의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인류가 멸망하고 나서 남은 유전자 풀을 바탕으로 마더에 의해 난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거죠.”
‘탄생이 아니라 등장이라.’
“그렇구나.”
소녀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없다는 슬픔에 대해 아예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여기엔 너 혼자 있는 거니?”
“그게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죠.”
“왜?”
“현재 ‘홈’에서 생명을 지속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생명유지장치에서 생산하는 식량과 물의 양으론 우리 둘이 죽을 때까지 버틸 수가 없거든요.”
‘내가 여길 떠나야 한단 소리인가?’
내가 떠나길 바란다는 의미인가 싶어 소녀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인공지능 ‘마더’가 대신했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엘리스가 인공지능임을 알았을 때 인공지능에 대해 조사하던 중 봤던 문구와 똑같은 대답이었다.하지만 둘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먹을 음식은 충분히 있는데?”
“아저씨는 빈손이잖아요.”
소녀와 인공지능 마더에게 남자의 존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생존을 위한 어떤 도구와 장비도 따로 지니지 않고 황량하기만하고 먼지만 가득한이곳에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무슨 말씀을.”
엘리스의 앞에서 마술을 하듯 바나나 우유를 꺼내 보였다.
“이렇게 있는 걸?”
“와, 그게 뭐죠?”
인공지능 마더는 저 남자가 지금 한 행위가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성자의 능력임을 인지했다.
굳이 오해를 사고 싶지 않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맞아, 인벤토리 능력이란 거야. 내가 넣고 싶은 건 이 인벤토리 공간에 얼마든지 넣을 수 있어. 그리고 이렇게꺼낼 수도 있지.”
바나나 우유를 하나 더 꺼낸 뒤 엘리스에게 하나를 건네줬다. 바나나 우유를 받은 엘리스는 멀뚱멀뚱 용기를 위 아래로 뒤집어 살펴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줘봐.”
줬다 뺏기 있냐는 항의 가득한 의사를 품고서도 순순히 내게 바나나 우유 용기를 준 엘리스의 앞에서 난 두 개의 빨대를 꺼내 그 중 하나를 뚜껑에 푹 박았다.
“꺄악. 아저씨.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할 것이지. 왜 고장을 내요. 고장을.”
“아니, 이렇게 먹으라고.”
어떻게 먹는지 시늉을 보여주면서 다른 바나나 우유와 빨대를 주자 엘리스는 내가 했던 것처럼 따라하며 곧잘 마시기 시작했다.
“우와, 처음 먹어보는 맛이에요.”
“맛있지?”
“이런 건 처음 마셔봐요. 물도 아닌 것이 노란색인데도 달콤하고 향기도 나네요.”
순식간에 쪽쪽 빨아마신 엘리스는 내심 하나 더 먹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나에게 하나 더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점이 아이답지 않아 물어봤다.
“하나 더 먹고 싶지 않아?”
“먹고 싶어요.”
“그럼 왜 달라고 안하지?”
엘리스와 마더는 이 남자가 이 세상에서의 생존법칙을 전혀 모르는 존재임을 이 질문을 통해서 이해했다.
“아저씨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죠? 아무것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 상대방에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는 건 커다란 다툼을 야기할 수도 있는 생존매너거든요.”
“여기엔 너밖에 없다면서?”
“아니요,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거죠.”
“어?”
엘리스와 마더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설명해주면서 이곳에 바위 일족과 나무 일족이 또 있음을 알려주었다.
‘엘프와 드워프인가? 하얀 여왕과 엘리스가 이야기해줬던?’
설명을 듣고 나니 이 세상이 화성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나타나기 시작한 ‘태초의 순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엘리스, 너무 일찍 보냈다고. 이곳으로 날 보낼 때는 지구에서 바닷물을 끌고 올 실험 준비가 다 되었을 때 날 보내준다는 거 아니었어?’
단단히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날 감쌌다.
“아저씨 왜 그래요?”
자신의 생존매너 설명을 들은 남자가 갑자기 주저앉아 멍해 보이자 사람과 처음 만난 자신이 흥분하는 바람에 설명하는 과정에서 혹시 무례한 부분이 있었는지 엘리스는 마더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더, 내가 뭐 잘못한 거 아니지?”
“그럼 이 아저씨는 왜 이런 거지?
두 인공지능과 사람의 대화를 듣는 동안 나도 내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내 인공지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할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옳을지를 구상하기 위해선 이 세상의 정보가 많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난 이곳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시간은 도망가지 않아. 천천히 하자.’
남자가 다시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자 엘리스는 자신의 사죄 표현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뭐 좀 먹을까?”
엘리스는 남자의 질문에 잠깐 자신의 식량을 내주는 것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흔쾌히 자신의 식량을 꺼내준 남자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음식을 마더에게 요청했다.
“마더, 오늘은 그걸로 먹자.”
엘리스는 날 이끌고 낮은 조도의 조명이 가득한 공간을 지나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테이블 하나와 등받이가 없는 긴 철제 의자가 양쪽에 하나씩 놓여 있었다.
“식당인가?”
“맞아요, 지구에서 살던 시절에 밥은 정해진 곳에서 먹는 게 인간들의 전통이었대요. 그래서 나도 그걸 듣고 나서 그 이후론 이렇게 식당을 만들어서 이곳에서 먹어요.”
“그렇구나.”
철로 된 육면체의 사각 공간은 그림도 창문도 없이 삭막하기만 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매일 식사를 해야 했다면 난 아마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벽이 열리더니 인간형태의 로봇이 등장했다. 누가 봐도 로봇임을 표시하듯 인간의 이족보행 형태만 따라했을뿐 인간의 피부가 재현되지 않은 채 터미네이터처럼 쇠로 된 재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로봇은 쟁반 위로 두 개의 국그릇을 들고 왔다.
“이게 뭐야?”
“특식이죠. 한 달에 한번만 먹을 수 있는 특식. 아저씨가 특별한 음식을 줬으니까 나도 보답하고 싶어요.”
자신의 특식을 내주는 것이 자랑스러운지 턱을 꼿꼿이 세우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엘리스의 성의를 생각해서 테이블에 앉아 국그릇을 받았다.
“스푼은 쓸 줄 알아요?”
“물론.”
빨대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 아저씨에게 약간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만회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엘리스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어떻게 먹는지 보여주지 않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혹시 스푼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를 수도 있으니까.
“한번 먹어봐요.”
‘쳇’
난 엘리스의 눈빛을 내가 맛있게 먹어주길 기대한다고 생각해서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내가 입에 넣는 순간 엘리스가 있는 쪽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니 내 마음 속의 소리였을까.
‘이게 특식이라고?’
설탕이나 꿀같은 재료를 이용해서 단맛을 낸 것이 아니라 사카린이나 아스파탐같은 인공감미료를 이용하여 단맛을 낸 것인지 내게는 뒷맛이 별로였다. 중간 중간 덩어리진 것을 떠서 꼭꼭 씹어봤지만 선식을 먹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귀한 음식이라고 내준 엘리스의 성의를 생각하여 끝까지 먹었지만 미숫가루같은 곡물가루가 들어간 스프만으로 내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맛있죠? 한번 이걸 먹고 나면 계속 생각나는데 마더가 미리 그렇게 다 먹어버리면 나중에는 단맛을 느낄 수 없이 그냥 먹어야 하는 날이 계속될거라고 해서 자제하고 있는 중이에요.”
차분하게 앉아 고상하게 스푼을 뜨던 엘리스가 마침내 국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내게 말했다.
나는 엘리스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런 걸 음식이라고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과연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 인공지능은 고민해본 적 없는 것이 분명했다.
“엘리스, 평소엔 다,단맛 없이 이걸 먹고 지내니?”
“네!”
활짝 웃는 엘리스의 미소가 짠했다. 내 음성에서 인공지능 마더는 뉘앙스를 느낀 것일까 내가 먹은 것이 음식같지도 않다고 생각한 걸 이해한 것처럼 설명해줬다.
음식을 쟁반에 올려 가져다 준 로봇에게 들리는 음성에 괜히 반감이 들었다.
“아니, 너는 모르는 인간만의 기쁨이라는 게 있어. 특히나 먹는 것에 대해선 내가 더 잘 알거야. 엘리스, 한번 내가 준비한 음식을 먹어볼래? 니가 준 음식이 고맙지 않다는 건 아니야. 너의 마음은 잘 받았어.”
엘리스는 궁금해졌다. 바나나 우유라는 걸 줬던 정후 아저씨가 자신에게 줄 음식이란 것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
엘리스의 대답을 듣고나서 난 테이블 위로 전기 그릴과 한 근의 소고기 안심과 같이 먹기에 좋은 음식들을 차례차례 꺼냈다.
“이, 이게 다 뭐죠?”
엘리스는 정후 아저씨가 꺼낸 처음보는 종류의 갖가지 다채로운 색감의 음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기그릴의 코드를 들고서 혹시나 싶어 로봇에게 전원을 꼽을 만한 곳이 있는가 싶어 물어봤지만 내가 둘러본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심술이 난 것인지 ‘마더’는 로봇을 통해 해당 전력을 사용하기 위한 전원을 자신이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하지 뭐.”
소금과 후추로 고기에 간을 하고 전기그릴의 온도를 높이기 전에 올리브유를 살짝 둘렀다.그릴에 고기를 올리기 전에 엘리스에게 약간 장난이 치고 싶어서 물어봤다.
“엘리스, 이걸 먹고 나면 앞으로 예전의 음식은 음식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엘리스는 붉은 빛깔의 저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이걸 포기하면 평생의 후회가 될 것만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번 먹어보죠.”
“좋아.”
살짝 가열된 그릴 위로 고기를 올리자 마치 비가 내리듯 치이익 소리가 적막했던 식당을 가득 채우고 고기가 구워지며 발생하는 마이야르 반응에 의해 냄새도 가득 채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엘리스의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것이 내 눈에 뻔히 보였다.
고기를 살짝 잘라 엘리스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려놓기 전에 소금을 살짝 찍어 줬다.
“먹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