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4화-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여관에서 출발하고 나서 엘븐하임으로 가는 동안 저녁시간이 되면 저녁을 먹기 전에 2시간에서 3시간동안 매일 동생은 코엘 누나로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그만.”
“힘들어? 힘들면 그만 둬. 이렇게 그만 두고 말 거면 뭐하러 시작한다고 했어?”
“할 수 있습니다. 교관님.”
“올빼미, 정신차려. 뭐해? 칼 쓰는 법 배우고 싶다며 칼 쓰는 게 폼인줄 알아! 니가 잘못 휘두른 검에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니가 다칠 수도 있다고.”
동생은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혹독하게 굴러야 했다.
“칼 쓰는 게 멋있다고? 칼 쓰는 건 전혀 멋있는 게 아니야. 니가 배우는 것은 전장에서 누군가와 생존을 두고 싸우고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무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묵직한 나무를 등에 업고 스쿼트를 하고 있는 동생의 옆에서 코엘 누나는 칼 쓰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기본적인 마음가짐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칼집에서 칼을 꺼내서 상대방을 향해 가리키는 순간부터 넌 상대방에게 죽어도 좋다고 선언을 하는 거야. 그러니 서로 간의 합의 하에 연무를 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전장에서 만나 서로 칼을 나눈다는 것은 죽고 죽이는 살육의 순간에 들어가는 걸 의미하지.”
그랬다. 맨 처음 나를 가르쳤던 빅터도 칼이란 것이 어떠한 것인지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부터 가르쳤다. 비록 군대에서 총도 쏴보고 군사훈련을 받아본 예비역이었음에도 실제 한국에서 군역을 마친 이들이 누군가를 해한다거나 총으로 살해를 하는 경험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 혹은 컨텐츠 등을 통해 내가 접한 검의 사용은 멋있는 것 혹은 남자다운 것의 표현이었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의사의 표현을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중2병같은 허세가 담긴 마음가짐을 빅터교관이 알아챘듯 코엘 누나도 동생에게서 그런 마음을 읽은 것 같다.
“넌 검술이 장난이야?”
“아닙니다.”
“그럼 배워서 누굴 죽이려고 하는 마음에 검술이 배우고 싶었던 거야!”
“그...그게 곡 누굴 죽이고 싶었다는 것이 아니라. 헉헉.”
“그럼 누굴 지키고 싶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맞습니다!”
점차 느려지는 스쿼트의 속도는 어느 순간부턴 훅 떨어져서 동생은 위로 올라가지도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게 되었다.
“쉬어.”
“쉬어!”
쉬라는 코엘 누나의 말과 함께 땅에 널브러진 동생을 보고 있자니 백사장에 널브러졌던 과거의 내가 오버랩된다.
“정후군,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지?”
“네, 저도 저랬었죠.”
“아니, 동생보다 심했었네.”
“그랬나요?”
“자네 동생은 어느 정도 단련된 육체의 흔적이 보였지만 자네가 처음 우리와 만났을 때 자네의 몸에는 단련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
취업을 준비하면서 따로 운동을 할 생각도 여유도 없던 내 몸은 정말 비루했다. 가진 바 능력의 각성과 효율적인 훈련과정을 알고 있는 빅터 교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 같다.
격한 호흡을 내쉬던 동생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코엘 누나는 다시 빨간 모자를 쓴 악마 교관으로 돌아갔다.
“누워 있으니 편하지? 니가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니가 배우고 싶은 검술도 멀리 떠나간다는 것만 알아둬라.”
멍 때리던 동생은 헉헉거리면서도 코엘 누나의 한마디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내가 말할 땐 저렇게 제깍제깍 움직이지도 않던 놈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코엘 누나 말은 잘도 듣네.”
빠릿빠릿한 동생의 동작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서 배신감이 솟아올랐다.
“정후야, 가족끼리 뭐 가르치고 그러는 게 쉬운 거 아니야.”
“그렇긴 하죠.”
부부끼리 운전을 가르치다 서로 대판 싸우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소재였다. 그걸 떠올리고 나니 한편으론 이해도 됐다.
“사장님은 동생이 저렇게 힘들게 굴러다니는 게 마음 아프시진 않나요?”
“왜요?”
이곳의 현실에 대한 자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동생은 구를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하고 받아들일 의지가 있을 것이었다.
“나중에 칼 맞고 어디 크게 다치는 것보다 지금 누나한테 제대로 배우면 좋죠.”
“그건 그렇습니다.”
기초체력훈련을 마친 동생은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왔다.
“자, 피로 회복에 좋은 거니까 마셔.”
눈에 초점이 없던 동생은 레몬과 꿀을 비롯해 근육의 회복을 돕는 성분이 들어간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아.”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아니, 꿈꾸는 것 같네.”
“그래도 저렇게 좋은 교관 밑에서 훈련받는 것도 복이다.”
“알아. 아는 데도 어렵네.”
동생은 준비해둔 음료수를 다 마시고 편하게 앉으라고 놔둔 조립식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자식, 많이 힘들었나보네.”
“이대로 여기서 잠도 잘 수 있을 것 같아, 형.”
“나도 다 했던 거야.”
“형도?”
“넌 그래도 나랑 기초체력 훈련을 어느 정도 미리 해놔서 나보단 편한 거지. 예습을 한 셈이니까.”
“그건 그렇네. 형은 확실히 운동이라곤 하나도 안한 물렁하고 기름진 몸이었으니까.”
“헛소리할 기운은 있나보네. 쉬고 있어.”
좀 쉬라고 동생을 내버려두고 드마코 형을 도와 저녁을 준비했다.
“그래도 동생이 먹을 거라고 이것 저것 챙긴다?”
“운동이 끝나고 먹는 것까지가 훈련이니까요.”
“그렇지. 제대로 잘 먹어줘야 훈련한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이지.”
저녁이 준비가 되자 동생 보고 일어나라고 했지만 짧은 시간동안 행해진 격렬한 훈련에 지쳤는지 동생은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뭐야, 지후는 안와?”
“되게 피곤한가봐요.”
“이거 봐라?”
코엘 누나는 스테이크를 크게 썰고 입에 넣더니 요리가 준비된 테이블로부터 약간 떨어진 지후가 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올빼미, 자나? 기상.”
그렇게 크지도 않은 누나의 목소리에 기절해있던 동생은 빠르게 일어났다.
“널 위해 드마코와 니 형이 열심히 준비한 저녁 식사다. 먹고 소화시키고 자도록.”
“알, 알겠습니다.”
비몽사몽 헤매던 동생은 누나의 말에 후다닥 뛰어와 자리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야, 그러다 체한다. 물부터 마셔.”
“어? 어. 우적우적.”
“지후는 포도주 마시지 마라. 알콜 성분이 들어가면 기껏 훈련한 효과가 반감되니까.”
“아...”
스테이크와 함께 먹는 세븐시티 산 포도주의 맛은 정말 맛있었는데 그 맛을 본 적 있는 동생은 포도주를 음미하면서 마음껏 마시는 우리들을 보면서 입만 쩍쩍 다셨다.
“맛있겠다.”
“마시고 싶으면 마셔.”
“그래도 됩니까?”
“어, 훈련 2번 받을 거 4번 받고 6번 받고 싶으면 마셔도 돼. 아니면 때려쳐. 누구도 너한테 배우라고 강요 안했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코엘 누나는 포도주를 홀짝였다.
“악마다. 악마야.”
“그럼 안 마실래요.”
“그래도 되고. 정후야. 한잔 더 따라 봐. 오늘따라 술이 달구나.”
“신 났구만. 신이 났어.”
“그럼 신이 나지.”
배부르게 먹은 동생은 소화를 위해 가볍게 산책을 하러 드마코 형의 호위 아닌 호위를 받으며 함께 떠났다.
“제자가 생겨서 좋은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
“왜?”
“좋은 건 나에게도 누구처럼 빅터같은 놈이 생겨서 나의 검술을 전할 녀석이 생겨서 좋아.”
“하하, 내가 부러웠나 보군.”
“부럽지. 넌 너의 모든 것을 이어줄 아들이자 제자같은 빅터가 있잖아. 난 없고.”
“그럼 싫은 건 어떤 게 싫은 건가?”
“저 놈도 나에게서 검술을 배워 누군가를 죽이는 경험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아...”
누나의 말에 새삼 동생이 배우는 것이 단순한 호신술이나 체력단련 훈련이 아님이 떠올랐다.
“정후군도 아직 누군가를 향해 칼을 찔러본 적은 없지?”
“아직은요.”
“그게 좋은 걸세.”
“걱정도 되고 겁도 나고 그래. 이런 게 자식이 생기면 느끼는 감정인가?”
과거의 이야기를 얼핏 들어보니 누나에겐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자식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식이 있었으면 싶은가요?”
“어쩌면 태어난 모든 존재가 자라고 나서 바라는 것이 자신의 분신이고 자신의 가정일거야. 나라고 그런 게 없었겠어? 그저 그럴 기회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때가 흘러갔으니 그랬을 뿐이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은 누나는 잘 준비나 해야겠다며 트레일러로 들어갔다.
“외로웠나보군.”
“아저씨는 누나처럼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 없나요?”
“있었지. 근데 나에겐 빅터가 있지 않나. 어린 빅터가 자라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내게 축복이었고 기쁨이었네. 그 아이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마음이 참 아팠지. 빅터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했거든.”
같이 있을 때면 부자같은 느낌을 주는 빅터와 버크는 서로가 서로를 아버지와 아들로 여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빅터 교관에게 ‘아들아!’라고 부르며 이야기하고 싶진 않아요?”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우리는 부자관계로서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나눴네. 굳이 단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때론 말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는 거니까.”
옆에서 잠자코 아이스크림을 떠먹던 섀넌이 말을 꺼냈다.
“그래도 말하면 더 좋지 않나요? 불명확했던 것들이 좀 더 명확해지고 그러니까.”
“하하, 우리 섀넌 비서실장은 명확해졌으면 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야.”
“네?”
아저씨의 말에 어지간해선 놀라지 않는 섀넌은 깜짝 놀라면서 먹던 아이스크림 스푼을 입에 넣으려다 멈칫했다.
“나도 슬슬 잘 준비를 해야겠어. 나이가 먹으니까 일찍 자고 싶어지는군.”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이 자는 트레일러 옆에 있는 남자들용 트레일러로 자리를 옮겼다.
아저씨가 떠나고 나자 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섀넌이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소리 그리고 밤의 자연에서 들리는 벌레소리와 동물들의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정후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거요?”
“말해야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
“음...”
섀넌이 묻는 의도가 무엇인지 느껴졌다. 매일 밤이 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낮이 되면 서로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공적인 대화만 나누는 우리들의 관계란 연인이라기엔 너무 건조했고 친구나 동료라기엔 너무 뜨거웠다.
“뭐야? 다 어디 갔어?”
“스승님이랑 마스터 버크는 어디 가셨어, 형?”
섀넌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생각하다 조심스레 용기를 내려고 할 때 드마코 형이 동생과 함께 나타났다.
“어? 어? 자러 들어갔는데.”
“아, 이 인간들 실컷 처먹고 내뺐네. 뒷정리도 안하고 말야.”
“그건 아니지 않을까?”
“야, 내가 두 인간 하루 이틀 보냐?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밥 먹고 치우기 귀찮으니까 니들한테 떠넘긴 거지.”
두 사람이 들어가는 타이밍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혀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거야?”
“정후야, 아직도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하냐. 버크! 코엘! 단장, 부단장이라는 인간들이 틈만 나면 빠질 생각뿐이야.”
“됐어, 형. 이미 자러 들어갔는데.”
“자긴 개코! 그 인간들이 뭐 벌써 자.”
“아니 나이가 먹어서 이제 잠이 일찍 온다고.”
“코엘 단장은 가족이 그립다면서 외로워 보였어요.
“버크 부단장이 물건 하나 만들 때 며칠이고 안 자고 뚜들기고 있는 거 몰라? 코엘이 무슨 외롭긴 외로워 해. 그것도 한참 전이나 그랬지. 지후가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고 해서 가장 좋아했던 게 코엘인데.”
“크크크, 형이 속았네.”
“코엘 단장 안 봐도 지금 드라마 보고 있을 걸?”
드마코의 말대로 둘은 각자 트레일러에 들어가 하나는 드라마를 보며 집중하고 있었고 하나는 트로트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