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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103화-다시 엘븐하임으로 (103/239)



〈 103화 〉103화-다시 엘븐하임으로

신나게 바람을 쐬고 풍광이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 좋았지만 어딘가 싱거운 느낌이었다.
“뭔가 허전하고 심심하네.”
“정후군도 모험가 기질이 있구만.”

모험가 길드인 크로니클의 일원이었지만 실제 내가 경험한 모험이라고 해봤자 산길을 오가면서 산적을 만나거나 겨우 던전 발굴에 딱 한번 참여한 것이 전부였다.
“제게 그런 게 있을까요?”
“여행과 모험의 차이가 뭔지 아나?”
“흥미진진함?”
“아니 스릴일세.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갈 정도의 위험을 겪으며 심장이 뛰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의 흥분 상태에 빠지는 경험을 해보거나 남들은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지역에 자신이 맨 먼저 발을 딛기도 하고 시간에 묻혀 있던 과거의 흔적을 찾아 사람들에게 알리는 모험을 한번이라도 느끼고 나면 이미 이전의 삶으론 돌아가기가 쉽지 않네.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 있던 용병들이 전쟁터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경험을 하고 간절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지만 막상 돌아가고 나면 전쟁에 절여져 있는 자신이 일상을 지루하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
<일종의 아드레날린 중독같네요.>
‘러너스 하이같은 걸 경험한 마라토너들같은 건가?’

“아저씨도 그런 모험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많나요?”
“불행  다행히도 내 육체는 동년배 드워프들보다 건강한 편이지. 가고 싶을 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야. 점점 쇠락해지는 육체에 갇혀 이전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고 나면 그저 과거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삶을 살게 되는 모험가들이 많아. 그때가 되면 모험을 하고 싶어도  수가 없어진 자신의 몸뚱아리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동안  버텨줘서 고맙기도 하고 그런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하더군.”

아저씨의 말을듣고 있자니 언젠가 내게서 젊음이 떠나가고 노인이 되었을 때 지금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들지 상상해봤지만 막연했다.
“드워프들은 지들이 다루는 돌덩이들이랑 닮았는지 잘 다치지도 않아. 다쳐도 쉽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 쇠를 다루기 위해 태어난 종족답다고나 할까?”
“코엘, 너네 엘프도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죽는 종족답게 나무처럼 오래 살지만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은 갈망을 느끼는 종족은 아니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두 종족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해졌다.
“엘프나 드워프는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었나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하이엘프가 오래전에 남긴 기록들을 보면 엘븐 갓과 불카누스라는 종족신이 나타나  세상에 엘프와 드워프들을 만들었다고 하지.”
‘기록이 아니라 신화 아닌가?’

단군신화를 떠올리며 우리가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의 후예라고 믿는 이들이 없듯 신이 엘프와 드워프를 만들었다는 건 좀 괴이하게 들렸다.
“그냥 신화 아닌가요?”
“정후군, 그건 아닐세. 두 종족에게 똑같은 기록이 남아 있거든.”
“원래 이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의 땅이었다고 하지.”
‘그래서 이 행성 이름이 더스트였나?’
“그런데  종족신과 그 두 종족신을 낳은 어머니 신 ‘엘리스’가 이 세상에 나타나 황무지를 지금의 환경처럼 만들고 사람과 드워프, 엘프를 만들어 이 세상에 풀었다고 하지.”
“엘리스요?”
“그래, 자네가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것과 같은 이름을 가졌지.”
<신기하네요.>

이들의 말에서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가 신을 대할  바라보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신들에 대한 인식이 느껴졌다.
“신의 존재를 믿나요?”
“지후야, 우리들의 신은 실존하거나 실존했던 존재야. 눈 앞에 있는 나무나 풀들을 믿느냐고 하는 사람이 없듯 우리는 신을 경험했어. 당연히 믿을 수 밖에.”
“불과 몇  전만 해도 불카누스께서는 드워프들과 함께 했었네. 하지만 땅을 뒤흔드는 거대한 지진이 있고 나서 땅 속으로 사라지셨지.”
“땅을 뒤흔들어요?”
“그래, 드워프들의  불카누스는 드워프들을 미리 대피시켜놓고 그렇게 잠드셨다고 생각하네. 언젠가 다시 만날 때를 기대하며.”
“그럼 엘프 신인 엘븐 갓은 지금 실존하고 있나요?”
“엘븐하임에 계시지. 가끔 가다 무슨 전언을 내려주신다고 하는데 나같은 일반 엘프들은 100년에 한번 있는 성인식 때나 영접할 기회가 있을뿐이고 평상시엔 저번에 뵈었던 엘프 여왕이나 그 직계 왕족들만이 수시로 접견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코엘은 이 이야기를 꺼내며 자기도 모르게 옆에서 스쿠터에 앉아 달리고 있는 섀넌을 홀깃 쳐다봤다.
“일종의 특권이네요.”
“엘프 왕족은 단순히 왕족이 아니라 신의 말씀을 전하는 무녀들이기도 하거든.”
<제정일치 사회군요.>
‘단군왕검처럼 말이지? 엘프 여왕은 엘프들의 정치와 종교를 모두 책임지는 자리인가봐.’
“와, 그럼 엘븐하임에 가면 엘븐 갓을 만날  있는 건가?”
“지후야, 방금 못 들었어? 엘프 왕족이 아니면 일반 엘프도 100년에 한번 성인식 때나 접견할 기회가 있다잖아.”
“한번 보고 싶다. 엘븐하임에 사는 엘프들의 신이라 무척 아름답겠지? 보통 신은 자신의 형상을 빌려 생명체를 만들잖아. 인간이 자신을 닮은 이족보행의 로봇을 만들기를 꿈꾸듯.”

코엘과 섀넌 그리고 버크는 자신들의 신이 자신들과 닮았는지 떠올려 봤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이 명확했기에 정후나 지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린지...?”
“어? 그러고 보니 이제 얼마 후면 엘프들 성인식 축제하지 않아?”
드마코의 발언에 세 사람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우와 우와, 우리도 가요, 그냥 이렇게 돌아다니는 여행도 재밌는데 목적지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엘븐하임까지 가려면 이 바이크라는 걸 타면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넉넉잡아 한 7일이면 되지 않을까? 말로는 못해도 한달도 넘게 걸릴건데 말이지.”
“형, 가자. 가자.”
“난 한번 가봤거든?”
“엘븐 갓은 못 만나봤잖아.”

지후가 신이 나서 엘븐하임에 가자고 하자 나도  엘프들의 신을 만나보고 싶긴 했다.
“우리가 가면 엘븐 갓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모르겠는데? 그건 엘프 여왕님이 결정해주실 사항이니까.”
“일단은 가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형. 엘프 여왕님이 그렇게 아름다우시다면서. 코엘 스승님이나 섀넌 누나를 봐도 분명 아름다우실 거야.”
“그건 맞지.”
코엘과 섀넌을 자연스럽게 꼬드겨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내 동생의 화법을 보고 있자니 저 녀석이 연애를 저런 식으로 하고 있구나 하고 납득하게 됐다.
“엘프 여왕님도 정후한테 언젠가 한번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시지 않았나? 저번에 보내준 다기 세트라든가 실크라는 옷감이라든가 하는 선물 받고 좋아하셨다면서.”
“드마코 형, 그냥 빈말로 하는 거 아닐까요?”
“정후야, 우리 엘프는 그런 걸로 빈말 안해.”
“사장님, 엘프의 말은 그 자체로 약속과 같습니다.”

섀넌은 살짝 두근거렸다. 이번에 가면 어머니께 넌지시 두 사람의 교제를 알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며칠간 여행을 하면서 머리를 비워 아무 생각이 없는 정후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예비 장모님과의 대담의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은.

“그래, 가즈아!”
“가즈아!!!!”

목적지 없이 떠돌던 관광이 그걸로 끝나고 엘븐하임으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바이크 타고 다니는 기분이다. 형.”
“가본 적은 없지만 꼭 그런 느낌이긴 하다.”
양쪽에 심어진 가로수들과 길게 뻗은 도로는 로마식으로 만들어졌기에 아스팔트도로의 느낌이 아니라 돌들로 채워져 있어 유럽의 오래된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바이크라는  우리가 타고 다니는 마차보다  편안하고 안락해. 마차 타고 가면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았을텐데.”
“그건 그래요.”

가끔 마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은 승차감이 참 구리다는 것이 원인이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프링을 넣어 완충장치를 넣은 마차를 얼마 전에 개발해낸 것이 떠올랐다.
“다음에 돌아가면 신형 마차나 한번 타봐요. 이 정도까진 아니어도 예전하고 승차감이 천지차이 일테니까.”
“그래, 나중에.”
“형, 오늘은 마을 여관에 가서 자는 거지? 트레일러에서 먹고 자는 것도 좋긴 한데 현지에서 음식도 먹고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예전보다 서로 오가는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세븐시티와 엘프마을들을 잇는 도로 중간에는 이따금씩 여관들이 생겨났다. 새로 생긴 여관들은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준비하는 음식보다 나을 것고 없고 인벤토리에 새롭게 장만한 트레일러보다 편안해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스쳐 지났갔는데 중간 중간 기름을 채워넣는 시간과 엔진을 식혀주는 시간을 빼고 계속 바이크를 타는 것이 생각보다 지후의 피로감을 가중시켰나보다.
트레일러가 아무리 편안하다고 해도 동생은 집같은 곳에서 제대로 잠자고 싶었는지 여관에 가서 잠을 자자고 청했다.
“니가 옛날 여관들을 못봐서 그래.”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자니 다른 크로니클 단원들이 픽픽대고 웃기 시작했다.
“지후야, 니 형은 말야. 냄새난다고 여관에 들어가면 시트고 뭐고  다 갈고 자거나 아니면 야전침대라는  가지고 거기에 이것저것 올려서 푹신하게 해놓고 잠을 잤단다.”
“형이 저랑은 다르게 그런 부분에서 쓸데없이 까탈스러워요. 군대는 어떻게 갔다 왔는지. 쯔쯔.”
“아쭈, 까분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몰라?”
“너도 하루 자보면 ‘역시 트레일러가 좋았어요.’할 거다.”
“과연 그럴까?”

장담했던 내 말과 다르게 우리가 방문한 여관은 아주 깔끔했다.
“어라? 왜 빈대가 없지?”
“거봐. 사람이 직접 경험해보고 가서 느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있다니까.”
“사장님, 여기 있는 침구류나 이런 것들 전부 세븐시티 산이네요.”
“그러네요.”

여관은 우리가 만든 세븐시티와 혹은 엘프 마을과 합작해서 만드는 상품들로 채워져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더스트 스타일 여관의 이미지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위생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고.”
우리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자 푸근한 외모의 사장님 오셔서 말을 하셨다.
“아휴, 왠 걸. 세븐시티 출신 손님들은 더러우면 여관에 오지도 않아요. 우리도 세븐시티 출신이기도 하고.”
“그래요?”
“대화재로 피난길에 올라서  좋게 세븐시티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공장일을 한동안 하다가 맨날 똑같은 물건만 만들기가 지겹다면서 공장일도 싫다고 그러고 그렇다고 나이가 있어서 경비대나 도시군에 들어갈 수도 없고 뭘하고 먹고 살면 좋을까 하다가 몇 년 전부터 엘프마을과 교역량이 늘어나고 있다길래 이곳에 이렇게 터전을 잡았죠.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요즘은 오는 손님들이 많아요~”
“그러시구나.”

사람과의 친화력이 뛰어난 사장님은 숙박만 할 것인지 식사도 할 것인지 물어봤다.
“어지간하면 우리집 음식 한번 먹어봐요. 환상의 스튜를 먹고 나면 어디 안 가고 우리 행복한 여관에 다들 찾아오신다니까.”
“환상의 스튜?”
“남편이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배운 음식 솜씨라는데 남편 음식 솜씨가 나보다 나아요.”
“그럼 식사도 같이 하는 걸로 부탁드릴게요.”
“쉬고 있어요. 이따 저녁시간되면 딸내미 올려보내서 알려줄게요.”

3층으로 지어진 여관은 뒤에는 마구간도 있었고 우물도 있어 오가는 상단이 쉬고 가기 좋아 보였다. 괜찮은 여관 말고도 가볍게 한잔  수 있는 술집도 옆에 있었고 음식만 파는 식당도 있어 저녁식사가 정 맛이 없으면 주변 식당에 가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같았다.

“우리 펍에 가서 간단하게 한잔할까?”
“그럴까?”
“츄릅”

먼지를 마시며 달린 목을 깔끔하게 씻어 내려줄 맥주 한잔의 즐거움이 우리를 흥분시켰다. 얼마 안되는 짐 외에는 모두 내 인벤토리에 들어 있었으므로 대충 정리하고 여관 밖으로 나와 옆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손님들, 술 한잔 하시게?”
“어라?”
“뭘로 드실래요? 맥주? 막걸리? 우리집은 꼬냑도 있어요.”
“그게 아니라 왜 여관 주인이 여기에?”
“여기가 내 딸내미가 하는 곳인데 여관 일을 하다가 여기 일손이 부족하고 그러면 내가 와서 도와주고 그래요.”
“그러시구나.”
“저녁 전에 가볍게 한잔하실 모양인데 맥주에 치킨으로 드릴까?”
“예,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가게 안을 둘러보자니 나무로  테이블과 의자는 기름지거나 먼지 날리는 구석 없이 깔끔해 보였다. 펍에는 여관에  손님들이 각자 한잔씩 걸치고 있었는데 여관주인 아주머니는 작지 않은 덩치임에도 날렵하게 손님들을 향해 한손에 맥주 10잔씩 양손으로 들고 나르는 스킬의 소유자셨다.
“형, 저기 봐.”
“응?”

동생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여관 주인 아주머니보다 약간 젊어보이는 똑같은 사람이 주문을 받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저 아주머니 딸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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