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101화-다시 시작하는 여행. (101/239)



〈 101화 〉101화-다시 시작하는 여행.

좋은 조직과 좋지 않은 조직의 차이는 실수를 하는 것까지 감안해서 구성된 시스템이 결정한다는 말처럼 시나브로의 직원들은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연구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문제해결하는 능력이 발전하고 있었다.
“이젠 내가 없어도 알아서  돌아가네.”

번아웃이 올 때쯤 ‘주변을 돌아보고 당신이 뽑은 사람들을 믿으라’는 섀넌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보니 주변엔 나와 함께 혹은 나를 대신해서 일할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실수를 해도 다시 도전을 하면서 피드백이 되는 시스템의 틀을 만들어 놓고서도 어느 순간 나혼자만 일한다는 이상한 착각 속에서 혼자를 궁지에 몰아갔는데 막상 아등바등 부여잡고 있던 끈을 놓고 나자 딱히 큰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고 엘리스의 적절한 어드바이스로 사람들 사이에선 기술축적의 과정도 원활하게 되고 있었다.

그렇게 정작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를 보고 있자니 어디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또, 지도 보고 있네?”
“코엘 누나. 무슨 일이죠?”
“아니, 그냥 요즘은 알아서들 잘 하더라고.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진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지.”

둘이서 근황에 대해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꼰대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사장실의 문을 열고 버크 아저씨가 찾아왔다.
“정후군, 요즘은  새로운  없나?”
“네? 새로운 거요?”
“가수로 활동하는 것도 지겹고 딱히 내가 시장으로서 뭔가 일을 하지 않아도 빅터가 워낙 잘해주니까 심심해서 말이지.”
“넌,  만들면 되잖아.”

아저씨는 짜게 식은 눈으로 코엘 누나를 쳐다봤다.
“엘프는 맨날 식물만 키워?”
“어, 그래.”
당연히 식물을 키우는  아니냐고 반문하는 코엘 누나의 말에 아저씨는 벙찐 눈빛이었다.
“아니, 왜? 아무리 엘프여도 그렇지.”
“화분이나 나무를 가꾸고 말라붙은 잎이나 과도하게 웃자란 나뭇가지를 잘라주고 하면서 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우리에겐 일상이야.”
“드워프들도 쇠를 달구도 두드리면서 그런 감상에 빠지곤 하는데 너희들은 좀 심하네.”
아저씨는 코엘 누나와의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는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말인데, 정후군, 뭐 재밌는 거 없을까?”
“재밌는 거?”

아저씨의 제안에 코엘 누나의 눈이 반짝거리고 나도 어딘가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섀넌을 보자 이상하게도 우리 셋은 무의식적으로 눈치를 봤다.
“어, 섀넌 양. 무슨 일이지?”
“비서실장의 업무를 맞고 있는 제가 사장실을 찾아오는 것과 각 도시의 시장직을 맡고 계신 여러분이 업무를 보고 계셔야하   이곳에 계신 것과 어느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일까요?”
“그거야...흠...”

깔끔하게 둘을 제압한 섀넌은 내게 한가지를 물어왔다.
“사장님, 혹시 어딘가로 떠날 계획을 하고 계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들어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고 어딘가로 떠났으면 좋겠다고 자주 이야기하고 지금도 이렇게 지도를 펴놓고 계시니까요.”

어딘가 정곡을 찔린 사람마냥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면서 지도를 슬쩍 옆으로 접어 치웠다.
“그냥 시나브로 도로건설팀이 어디까지 도로를 정비했나 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하하.”
하지만 섀넌이 보기엔 되도 않는 변명으로 들렸나 보다.
“정후야, 눈치가 없는 내가 봐도 그건 좀.”
“정후군,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도로를 챙겼다고 그러나.”
“아니, 왜요? 처음에 제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도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담당 직원들을 교육하고 가르쳤는데.”
“그거야 그랬지. 그런데 사람들이 알아서 하기 시작하니까 『어, 이제는 알아서들 잘하네요. 앞으론 정해진 구역들을 모두 이어주길 잘 부탁할게요. 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럼 이만.』하기 전까진 말이야.”
‘내가 그랬다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엘리스가 말했다.
<사용자 이정후는 자신의 입으로 분명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엘리스가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내 목소리로 변조해서 방금 전 아저씨가 말한 대사를 재생했다.
“맞아, 딱 저랬다니까. 내가  눈으로 똑똑히 봤어.”
“목소리를 본다니 합리적이지 않군.”
“그냥, 척하면 착하고 알아 들어라.”

어디서 약을 파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코엘 누나는 엘리스에게 고맙다며 앞으로도 자주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가 그랬군요.”
“사장님은 다른 일은 몰라도 도로건설팀의 일은 ‘알아서들 잘 하니까 믿을게요.’라는 말을 하시면서 결재서류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사인을 하시곤 넘어가시곤 하셨습니다.”
“네, 그랬죠.”
변명을 하자면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다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의 일에 굳이 참견해봐야 열심히 군생활하는 장병들 구경을 하겠다면서 부대를 방문하는 미필 국회의원같은 꼴이 날까봐 따로 신경쓰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요? 시장이고 사장인 제가 왜 여길 떠나요.”
“의사전달에 오해가 약간 있군요. 정정하겠습니다. 여행 가고 싶으십니까?”

섀넌의 질문에 처음 내가 이곳에 와서 아저씨와 코엘 누나를 만나고 이 세상의 풍광을 즐기며 여행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지역이 대부분인 이곳의 자연은 한국의 자연과 다르게 이국적으로 아름다웠다.
“한번 돌아보고 싶긴 해요.”
“너, 똥냄새 지겹다고 여행 그만 가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어떻게 알았어요?”

코엘 누나는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코를 틀어막거나 마스크를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정후군 덕분에 이제는 화장실이란 공간이 일상으로 바뀌었고 외진 곳이 아닌 이상 예전처럼 분뇨 냄새는 안 나니까 여행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지 않나?”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보다 주변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예,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아저씨랑 누나랑 같이 처음 이곳을 여행하던 그때가 그립고 너무 먼 과거처럼 느껴져요.”
“그럼 가면 되지 않나. 누구도 정후군이 못 가게 붙잡지 않았어.”
날 붙잡고 있는 것은 나였다.
“맞아요, 누구도  가게 붙잡은 적은 없었어요.”
“사장님, 여행 가실 겁니까?”
섀넌의 질문에 잠시 생각한 나는 섀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가고 싶어요. 아니 갈래요.”
“그럼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네?”
“사장님이 가는데 비서인 제가 당연히 따라가야지요.”

섀넌의 말을 시작으로 아저씨와 누나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나도 갈래.”
“정후군, 나도 가겠네.”

그날부터 하나 둘 기존의 담당자를 책임자로 만들고 권한과 책임을 더 분산했다. 이미 그들은 나에게 최종결재를 받고 있을뿐 자신들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후 단원, 잠시 여행을 간다고 들었습니다.”
“빅터 교관도 갈래요?”
나의 첫 교관이자 스승님인 빅터는 지금의 무력을 내가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준 최고의 트레이너였다.
“전 다른 분들과 다르게 해야할 일이 있어서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혹시라도 가고 싶어지면 나중에라도 따라와요.”
“절대란 것은 없으니 아니라곤 말하지 않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길 바라겠습니다.”
연애사업이 요즘 활발해진 빅터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다 나이가 있는 터라 에디나 누나와 보낼 시간이 더 급한  같았다.

“정후야, 나도 데려가.”
에디나 누나는 아니었나 보다.
“빅터 교관은 안 간다는데?”
“가자니까 뭐 할 일이 많아서 안된대!”
“누나는 할 일 없어?”
“많아.”
“그럼 그거 해야지.”
“넌 가잖아.”
“난 미리 준비라는  했거든.”
“몰라, 나도 갈래.”

갑자기 시장실에 쳐들어와 떼를 쓰는 에디나 누나의 반응에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데 요크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에디나 누나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쓰읍. 언니는 안 돼.”
“왜! 나도 갈래. 가게 해줘!”
“언니네 시에서 발생하는 민원 처리율이 제일 떨어지는 거 알아, 몰라?”
“알아.”
“근데 언니 시민들 버려? 언니 시민 버려?”
“히잉”
시무룩해진 엠제이 누나의 귓가에 요크가 막타를 갈겼다.
“에디나 언니는 자기만 아는 개인주의야? 빅터도 그런 여자 좋아하나? 와처의 단장이던 빅터가 과연 자기만 알고 그런 개인주의 성향의 여자 좋아할까?”
“나만 아는 개인주의 아니거든?”
“그럼 정후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일해.”

요크가 에디나 누나를 끌고 시장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귀찮은 혹은 내가 처리해놨으니 잘 갔다 오라구. 대신 나중에 내가 휴가가고 싶을 땐  차례야.”
“어, 고맙다. 요크.”

하지만 크로니클의 단원에는 한명이 더 있었다.
“요리사는  필요하냐?”
“어, 드마코 형?”
“야, 너랑 섀넌이랑 코엘이랑 버크랑 가봐. 너 그 3명이서 먹는 거 너 혼자 어떻게 다 만들래?”
‘그건 일리가 있어.’

식량이야 인벤토리에 가득 넣어서 떠나면 남아돌 일이지만 매 끼니 한 분대의 남성들이 먹을 양을 먹어치울 것이 분명한 3인의 식량을 나 혼자 매번 준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혼자 가는  나으려나.’
형의 말에 납득하는  같다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눈치 빠른 형은 알아챈 것 같았다.
“정후야, 난  떠난다는 소식 듣고 그날 고민하고 바로 결정 내렸다. 내가 맡고 있던 시장직은 빅터에게 겸직으로 넘기기로 했어.”
“빅터 교관도 동의했어?”
“걘 나한테 빚 진거 하나 있어. 그걸로 퉁치기로 했어.”
“형이 맡고 있는 일들 확실히 인수인계 확인되면 받아줄게.”
“받아주는  아니고 모셔가야지, 인마. 나만한 요리사가  있는 줄 아나.”
‘그건 맞는 말이긴 해. 내 입맛에 딱 맞게 음식하는 건 엄마말고 형밖에 없으니까.’
“그럼 그렇게 알고 간다.”

7명과의 면담이 그렇게 끝이 나고 도시민들에겐 따로 알리지 않고 5인의 여행이 결정되었다.
“정후군 근데 우리 뭘 타고 갈건가?”
“뭘 타고 갈까요? 말?”
“말? 지금 말이라고 했나?”

한번 보여준 오토바이가 화근이었다. 길이 정비되고 난  시험 삼아 타보려고 꺼낸 할리의 강렬함에 아저씨는 푹 빠져버렸다.
“왜 그거 있잖나.”
양 손을 하늘을 향해 45각도로 쳐들고 양 손을 쥐고 앞뒤로 감으며 입으론 부릉부릉하면서 자세를 취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누가 봐도 바이커였다.
“그러고 보니 가죽장갑에 가죽바지까지 단단히 준비했네요.”
“그럼, 이게 바로 바이커의 근본이지.”

머리에 두건을 감고 터미네이터처럼 옷을 갖춰 입은 아저씨의 모습은 남자가 봐도 멋있어 보였다.
“정후야, 내껀 엎드려 타는 걸로, 알지?
“그건 안돼. 통일성이 있어야지. 우린  아닌가?”
“팀? 팀?  의견만 강조하면서 팀?”

과연 이 둘을 데려가는 것이 맞나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때 드마코 형과 섀넌이 여행갈 짐을 챙겨 왔다.
“왜  저래?”
“오토바이를 어떤 스타일로  건지 가지고 저래요.”
“그거야 당연히 이거 아닌가?”
드마코 형의 자세는 코엘 누나가 취했던 엎드려서 타는 자세였다. 아저씨는 그걸 보고 그동안 자기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면서 배신감을 느꼈다.
“드마코! 자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나?”
“부단장, 말은 똑바로 해야지. 언제 부단장이 날 키웠어. 죽은 우리 형이 들으면 무덤을 파고 나오겠다.”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나 이 사람아.”
“조용, 정후야. 니가 말해. 이거야, 저거야.”
코엘 누나는 버크 아저씨와 드마코 형을 턱으로 가리키며 어느  바이크를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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