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99화-나야 나 (99/239)



〈 99화 〉99화-나야 나

세 사람의 혼란과 다르게 요크, 에디나, 빅터 그리고 드마코는 엘리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푹 빠져 버렸다. 그동안 궁금했으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물어보는 족족 대답하는 엘리스의 존재가 그저 에고 아티팩트로만 인지하기엔 너무나 뛰어났던 탓이었다.

“그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어쩐지 이상하게 코엘 언니가 갑자기 발작하듯 흥분하고 가끔 안면홍조도 있고 어쩔 때는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두통이나 현기증이 난다고 그러면서 잠이  안 온다고 한 이유가 그런 거였어?”
“갱년기라는 거군요.”
“인간에겐 평균적으로 45세~55세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우리 더스트의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0세쯤 살면 오래 사는 거라 인간 입장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엘프들의 행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거였다니.”
“난 엘프들은 그냥 다들 까탈스러운 사람들인줄 알았는데 그냥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거였구나.”
“요크, 드워크들은 안 그래?”
“우리들은 원래  흥분하고 불이랑 같이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다들 땀도 많이 흘리고 얼굴도 발그레 해서 딱히 갱년기라고 하는 시기가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 머리 아프고 어지럽고 그러면 그냥 맥주나 실컷 마시고 잠드니까 불면증이라는 건 드워프들 사이에서 딱히 들어본  없는 이야기고.”

그들이 다루는 철과 그들이 사는 바위를 닮은 드워프들의 무던함과 내구력(?)에 대해선 다들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맥주나 실컷 마시면 모든 게 해결된다니 참으로 편리한 인종이구나라고 요크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생각했다.
“엘리스, 엘리스.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
<말씀하십시오. 에디나 씨.>
“정후가 자꾸 단  많이 먹으면 당뇨병에 걸린다는데 솔직히 당뇨병이 뭔지 잘 몰라서 말이야.”
“어, 나도 그거 궁금했어. 콜라랑 달달한 음료나 쵸콜릿같은 거 좋아해서 가끔 먹는데 정후가 걱정된다는 듯이 쳐다 보더라고.”
<당뇨병 말씀이십니까? 당뇨는 단순히 단 음식을 많이 섭취한다고 해서 생기는 질병이 아닙니다. 사용자 이정후가 다른 사람들처럼 착각하는 오해  하나입니다.>

엘리스를 통해 당뇨병의 원인과 증상을 비롯한 합병증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들은 4명은 결과적으로 오늘부터 단 음식은 조금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와, 정말 무섭네.”
“눈이 멀 거나 잘 안보일 수도 있고 상처가 회복이 잘 안되서 자칫 잘못하면 그로 인해서 사망할 수도 있다니.”
“정후가 입버릇처럼 당뇨병에 걸리지 않게 작작 먹으란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그래서였구나.”
<이전의 여러분들이라면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별로 없었을 겁니다. 사용자 이정후로 인해서 고열량과 고단백의 식사를 자주 접하는 여러분들의 경우 운동을 평균적인 수준보다 많이 하고 대사 능력도 뛰어난 편이라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긴 어려우나 이전보다 발병 가능성이 현저히 증가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빅터, 나 오늘부터 운동 열심히 할게.”
“에디나, 내가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최선의 운동 프로그램을 짜볼게.”
“또 시작이다 또.”

갑자기 분위기가 왜 또 거기로 튀나 지켜보던 요크와 드마코는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고 각자 개인적으로 궁금한 내용을 번갈아가며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와, 너무 좋다. 그때 그 금속실험이 실패한 이유를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군,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게 고기 맛을 더 좋게 하는 이유였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회의실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두고 온 난 엘리스가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도 엘리스와 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는 엘리스의 인공지능 중 다중의사소통능력이 가진 장점이었다.
“별걸  물어보네. 근데 당뇨병에 걸리는 이유가 단 음식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었구나.”
<단 음식을 많이 먹어서 고열량을 자주 많이 섭취하게 되면 그로 인해 비만이 되었을 때 그 이후에 당뇨병이 생길 소지는 있으나 단  많이 먹는 것만으로 당뇨병에 걸린다는 건 현대인들이 가진 착각 중의 하나입니다.>

인공지능 스피커에 연동된 엘리스의 음성은 또 다른 파생효과를 낳았는데 그건 바로 크로니클 단원들과의 ‘전화’기능이었다.
“어, 그래서 정후야. 내 말은.”
“에디나 누나. 잠 좀 자자.”
“아니, 니가 생각해도 그게 빅터가 잘못한  맞지?”
“빅터 교관이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닌데, 너도 같은 남자라서 그런 것 같다.”
<에디나 씨의 통신이 종료되었습니다.>
“아, 완전 답정너야. 답정너. 이야기 들어보니까 빅터 교관이 잘못한 거  개도 없더구만!”

연인 간의 사이에 함부로 끼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 해준 누나와의 대화에 지쳐 이제 다시 잘 준비를 하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사용자 이정후와의 대화를 원하는 신청이 있습니다.>
“아, 또, 왜!”
잘만 하면 누가 말을 걸고 잘만 하면 누가 말을 거는 이 상황에 나처럼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던 찰나에 엘리스는 전화를 받을 것인지 물어봤다.
<거절하시겠습니까?>
“누군데?”
<비서실장 섀넌입니다.>

에디나 누나랑은 다르게 섀넌은 불필요한 일로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섀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수락.”
<대화 요청을 수락합니다.>
“혹시 잠들 시간인데 제가 연락을   아닌지 모르겠네요. 대화 가능할까요?”
“아니에요, 에디나 누나가 별것도 아닌 걸로 전화해선 한참을 전화를 끊지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하하.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섀넌은 코엘과 버크와의 대담 이후 커져만 가는 자신의 의문증을 어딘가에 털어놓고 해소하고 싶었다. 점차 자신의 속에서 부풀어만 가는 이정후란 사람에게 가진 호감과 신뢰는 좋은 발판이 되었지만 가끔 이렇게 자신과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있으면 구체적으로이유는 정확히  순 없지만 짜증이 나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같았다.

두 사람은 별것 아닌 소재를 시작으로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3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고서야 스르륵 잠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아함~”
“뭔 하품을 그렇게 자꾸 해?”
“내가?”
“어,  어제 잠 못 잤어?”
“아닌데?”
눈에 띄게 피곤해하는 정후의 모습을  요크가 실실 웃으며 정후의 옆구리를 자신의 어깨로  쳤다.
“일찍 일찍 자. 그러다  삭어.”
“뭔 소리야?”
“이해해. 젊은 남자들은 밤에 종종  못자고 그런다더라.”

갑작스럽게 드립에 당한 정후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걸 진지하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이상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옆에 서 있는 섀넌도 정후를 따라 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던 찰나에 나온 요크의 발언으로 분위기는 어딘가 어정쩡해졌다. 자신이 어제 있었던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순간 무슨 대화를 나누느라 그렇게 잠을  잤냐는 이야기로 이어질 여지가 있었다.

“어라? 분위기가 이상하네?”
“드마코 오빠, 이제 오네? 정후가 어제 아주 늦~잠을 잤나봐. 눈 밑이 거뭇거뭇한게.”
“하하핫, 요크, 그런 건 서로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게 매너야.”
“아, 그런 거야?”

코엘 누나와 에디나 누나의 옆에서 오래 있어서인지 점차 물들어가는 요크를 보고 있자니 주변에 만나는 사람이란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만나는 주변 사람이 중요하구나.”
“뭐?”

귀신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눈치챈 요크가 드마코 형과 19금토크를 이어 나가다가 살짝 표정이 이상해지며 되물어보는 순간 뭐라고 답해야 하는지 머리에는 몇가지 대응반응이 떠올랐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때마침 구원투수로 등장한 섀넌의 발언에 요크의 관심의 방향을  틀 수 있었다.
“요크 이사님, 이번에 세븐 시티의 시민들을 위해 새롭게 창설되는 스포츠 팀들을 위한 관련 시설들과 용품의 개발은 모두 끝났는지 알  있을까요?”
‘섀넌, 나이스!’
“아, 그거요? 야구랑 축구 그리고 농구장의 건설은 끝이 났어요. 골프장은 마무리 단계구요. 정후야, 요즘 드워프 연구원들 사이에서 골프라는 거 인기가 장난이 아니야.”
“그래? 야구, 축구, 농구가 아니고?”
“정후야, 우리 드워프들을 봐.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러는 게 재밌겠어?”
요크는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며 뻔한 걸  물어보냐고 했다.
“그럼 골프는?”
“골프는 딱 드워프들을 위한 스포츠랄까? 코스를 만든 뒤에 자신의 드라이버나 우드 그리고 퍼터를 직접 만들어 똑같은 공을 가지고 18번의 홀에 집어넣는 과정 속에서 바람의 방향, 샷을 치는 각도 그리고 샷을 날리는 선수 자체의 힘의 역량 등등이 얼마나 흥미진진한데.”
‘코스를 만들고 드라이버랑 우드,퍼터를 각자 만들어서 시합을 한다고?’

머릿속으로 단신의 드워프들이 옹기종기 모여 PGA나 LPGA처럼 프로 골퍼들처럼 차려입고 홀을 돌아다니고 퍼팅을 연습하는 상황을 떠올리자니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일종의 인종차별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았다.
“그래?”
“17번 홀까지는 제작이 끝났으니까 한번 테스트 삼아 같이 돌아볼래?”
“오늘은 됐고 다음에.”
“그래, 오늘은 힘이 좀 들지? 이해해.”
또 다시 묘한 미소를 짓는 요크에게 어이가 없었지만 피장파장의 논리로 퉁치기로 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낮에는 서로 간의 공적 업무를 위한 대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사람은 밤에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는 이중적인 생활을 이어 나갔다.
피곤한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낮에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며 업무를 처리해 나가고 퇴근 이후 잠시 눈을 부치고 밤만 되면 말똥말똥해지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본인들은 숨기려 했지만 매일같이 부딪히며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확연히 보였다.
‘연애하네. 쟤들.’
‘이것들 봐라?’
‘아쭈? 왜 커피는 정후 것만 타줘? 나도 입 있는데?’
‘티난다. 티 나.’
‘정후 단원,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정후군, 좋을 때구만.’

야구리그의 출범을 준비 중이라 바쁜 와중 야구리그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 당장 내일로 다가왔다.
“정후야, 이번에 세븐 시티배 야구 오픈에서 시구는 누가 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 이 몸이 하셔야지.”
“코엘이 하는 거  반대.”
“그럼 난 에디나가 하는  반대.”
“할 생각도 없었거든? 나보단 우리 빅터가 던지는  멋있겠지.”
“빅터가 던지는 것도 반대.”
“뭐?”
투닥거리는 둘을 뜯어 말리며  대답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야구의첫 시구자는요.”


세븐 시티의 시민들이 대거 모인 야구 경기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스포츠 중계를 맡은 MC보키가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오늘 해설은 드마코 시장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드마코 시장님 지금  방송을 라디오로 듣고 있을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세븐 시티 시민 여러분. 그리고 역사적인 야구리그의 첫 라디오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 세븐 시티의 일원이자 한 도시 드마코의 시장직을 맡고 있는 드마코 인사드립니다.〕
〔드마코 시장님께서는 야구리그가 출범하게 된 이후로 야구경기에  빠져서 개막경기를 하기 이전 7개의 팀들의 연습경기 과정을 모두 지켜보셨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듣자하니 야구리그의 첫 출범을 앞두고 시구자를 두고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 시구자로 나오실 분은 누구시죠?〕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말씀드리는 순간 시구를 하시기 위해 다른 시장님께서 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나오시고 계십니다.〕

야구경기장의 마운드에 글러브를 착용하고 야구 모자를 쓰고서 손을 흔들면서 나오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야구 경기를 이 세상에 알린 사람은 난데  자기들이 하겠다고 난리야. 반가워요, 시민 여러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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