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98화-이세계의 신 (98/239)



〈 98화 〉98화-이세계의 신

매약상과 약종상을 먼저 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실제 약이 필요한 환자들을 많이 접한 뒤에 사람을 대하는 인성과 학습능력 등 여러 가지 능력들을 확인하여 경력자들을 양성해놓고 그들에 한해 최초의 의과대학 진학자들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의료진행에 대해 방안을 짜놓을 때쯤 우리들의 7개의 도시는 도시가 점점 팽창함에 따라 사람들 간에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각종 범죄들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중재하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줄 법적 질서가 필요해졌다.

기존의 제국의 법은 현대의 법에 비해 세밀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섣불리 현대의 법을 이식하기엔 일정 부분 무리가있었다.

<무턱대고  세상에 현대의 법을 받아들이기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한국의 법률만 해도 독일계의 대륙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법률을 차용하여 뼈대를 이뤘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세븐 시티의 시민들에게 주기적으로 기본적인 교육을 진행하고는 있으나 민주주의를 이식하기엔 왕정에 익숙한 이들에겐 아직은 생소한 개념일  있습니다. >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구한말의 조선을 생각해보십시오.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고 했던 독립협회조차 왕정을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적 질서를 내포하고 있는 법률을 이곳에 이식하려고 하는 경우 기본적인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에겐 세상을 뒤집으려는 혁명세력 내지 불순분자로 취급받거나 세븐시티의 시민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일단은 영주들이 영지민을 다스리는 수준으로 세븐시티에 들어온 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종류는 민법과 상법 그리고 형법을 베이스는 대륙법과 영미법을 혼합해서 만들어줘.”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나 종신형 그리고 사형제도에 대해선 어느 수준을 원하십니까?>

엘리스의 질문에 시민들을 돕기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사형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타인의 생명을 누군가 해쳐야 한다는 본질을 엘리스로부터 듣고 나서 사형집행인의 삶을 생각하고 나니 단순히 악질범죄자를 처벌한다는 것만으로는 사형제도의 존재에 대해 판단이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나 종신형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품고 비난받아 마땅한 무분별한 불법행위를 했다면 제정될 법률을 기반으로 엘리스가 판정을 내리기로 했다.

“사형제도는 일단 시행하지 않는 걸로 하자.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평생 노역형만 하는 거면 충분할 것 같아. 세상에 태어나 악행만 저지르고 보내는 것보단 그렇게라도 도움 되는 존재로 생을 마감했으면 싶네.”
<종신 노역형을 받는 죄수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여주는 걸 바랄 것 같네요.>
“범죄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더 소중해. 진정으로 구제받아야 할 이들은 피해자들이니까. 세상엔 성장과정에서 잘못된 교육을 받는다거나 성장환경이 나빠 범죄자의 길로 쉽게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 중에선 교화가 가능한 사람도 존재해. 반대로 타고난 자질 자체가 교화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고.”
<그건 그렇습니다.>
“교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을 일정기간 수감했다가 법적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세상에 다시 풀어놓는다는건 어쩌면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게 사회가 방조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었던 적이 있어.”
<사용자 이정후가 정한 방침에 따라 민주주의적 요소를 제외하고 법률을 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모를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검사와 변호인들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짜줘. 저번 매약상과 약종상을 교육했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해서.”
<판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엘리스의 정보처리능력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판단 가능하지 않아?”
<그렇긴 합니다. 사용자 이정후는 제가 판사의 역할을 대신해주길 바랍니까?>
“우리 세상도 언젠가는 인공지능 판사가 도입되는 세상이 올 거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법률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법률 알고리즘에 따라 인공지능이 판결을 내리는 때가.”

자신의 정치 성향 혹은 사적 이익을 바탕으로 법률의 일관성을 해치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존재는 사회적으로 법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결정적인 요소 중의 하나였기에 인간처럼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은 엘리스같은 인공지능이 전담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전관예우같은 건 없도록 처음부터 변호사가 되겠다는 경우를 제외하고 검사가 검사직을 그만뒀다고 해서 변호사로 개업하는 일은 없도록 법제화해줘.”
<법률적 지식이 해박한 검사를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게 하지 말라는 겁니까?>
“응, 어떤 완벽한 시스템도 인간이 운용하는 한 부패하고 타락하기가 쉬운데 우리가 최소한의 인성검사를 통해 거르고 나서 뽑은 이들이라고 해서 1년이라도 더 먼저 검사가 된 이들이 자신의 영역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제한할 수는 없을 거야. 분명 선배질을 하고 싶어지겠지. 검사가 변호사가 된다면 검사를 그만둔 이들이 자신들의 동기 혹은 선배들과 카르텔을 이루게 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그들은 아무리 알고리즘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엘리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감안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판결을 조작할 가능성이 존재하겠지.”
<카르텔을 깨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검사들의 변호사 개업 금지조항을 생각하신 거군요.>
“낙하산들이 돌아다니면 어느 조직이든 공정한 시스템이 존재해도 결국 부패하고 마는 거야. 시간이 흘러서 공고해진 카르텔을 깨는 건 기존 조직을 흩어내고 새롭게 다시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고.”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바를 바탕으로 모두 조율하여 법률을 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키워드는 ‘공정’하고 ‘합리’야. 선처는 오직 금액이 오가는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경우 이외에는 나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가석방이니 뭐니 하는 경우로 권력을 행사해서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들이 없도록 해줘.”

매년 명절이 가까워지면 모범수라는 이름으로 죄를 지은 자들을 대통령의 권한에 의해 사면해준다는 뉴스를 보곤 한다. 감옥 안에서 나가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높은 모범적 행태를 보인 이들을모범수로 정하는 것도 어딘가이상해 보이는데 대통령이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의사표현과 관계없이 타인에게 피해를 가한 자들의 범죄의 경중을 선별한 담당자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사면을 해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나는 의문이 들었다.

엘리스가 법률 초안을 짠 것을 빅터를 비롯한 세븐시티의 시장이자 크로니클의 단원들에게 보여주니 반응이 다채로웠다. 초안임에도 많은 부분들에 대해 다루고 있어 두껍디 두꺼운 법전은 그저 읽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쉬운 단어를 사용했지만 반응을 듣기까지 일주일이 필요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가석방 없는 종신형입니다.”

빅터 교관은 사회의 저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범죄자들을 경험하면서 구제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자주 느꼈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구조에 대해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옳은지를 와처의 수장이었던 이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내가 가져온 법률 초안을 보고선 자신이 막연히 생각했던 이상적인 방향과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근데 이건 무섭네. 우리 크로니클 단원도 죄를 지으면 구제받을 수 없다니.”
“구제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권한이 높은 이들일수록 죄를 지을 때는 가중처벌을 한다고 되어 있잖아. 끝까지 읽어, 에디나.”
“난 그게 맞는 것 같아. 권한이 높을수록 책임도 커지는 법이니까.”
“요크, 너 조심해라. 내가 이거 열심히 읽고공부해서 너 문제 있다 싶으면 고...뭐였지? 아무튼 그거 할거야.”
“고소겠지. 그리고 제대로  읽어봤지?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다하지 않은 경우에도 고소, 고발조치 당할 수 있다는 말.”
“어? 그런 내용이 있었나?”
“시장으로서  똑바로 안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먼저 고소 당할까 아니면 언니가 먼저 고소당할까?”

어느 시트콤의 XX씨 무서운 사람이었네하는 표정을 짓는 에디나 누나는 평생 노역형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죄짓지 않겠다고 나를 보며 선서했다.
“저를 보고서 선서해도 아무 의미 없어요. 제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와 변호사의 법리적 과정을 바탕으로 제 세상의 에고 아티팩트가 판단할 거니까요.”
“에고 아티팩트?”

판사의 역할을 대신할 엘리스의 존재의 공개에 대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져온 신기하고 기묘한 물건들을 경험한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이제 내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엘리스와 같은 인공지능의 존재는 자칫 오해를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10년이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과연 언제까지 비밀로 하는 것이 옳은가를 마음의 짐으로 여겨오던 차에 이번 법률 초안 제정을 기회로 엘리스의 존재를 약간 다른 방식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엘리스입니다.>
“어?”

평소 음악을 듣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엘리스의 음성이 들려오자 단원들은 처음에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엘리스와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면서 단순히 노래처럼 녹음된 음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단원들은 영화를 처음 봤을 때처럼 놀랐다. 특히, 코엘누나,섀넌, 버크 아저씨가 유독 크게 놀라는 것 같았다.
“(뭐지?)”
“(코엘,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마치 엘븐 갓이 말씀하시는 것만 같은 느낌이네.)”
“(코엘, 엘븐 갓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해 주세요. 불경합니다.)”
“(과거 대지진이 있기 이전 우리 드워프들과 함께 하셨다는 불카누스에 관한 기록을 떠올리게 하는군.)”

갑자기 침묵하고 표정이 굳어진  사람으로 인해 나는뻘쭘해졌다. 혹시나 그동안 엘리스의 존재를 숨겨왔다는 것이 기분이 나쁜 것인지 아니면 법률 초안을 보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혹시 불편한 부분이 있나요?”
“정후군, 아무것도 아닐세. 사람처럼 대화가 가능하고 모르는 것이 없이 해답을 바로바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신기해서 그런 것일세.”

버크는 코엘과 섀넌 두 사람을 향해 메시지를 날리고 빨리 표정을수습할 것을 요구했다.
“정후군이 가져온 법률이 앞으로 세븐시티에 적용될 사항인지라 모두 열심히들 읽느라 다들 피곤했던 모양이야.”
“그래요?”

대충 분위기를 수습한  헤어진 셋은 따로 모였다.
“오늘 우리가 본  뭐지?”
“우리들이 믿고 있던 신의 목소리 같지 않았나?”

과거 신의 목소리를 듣고 살던 시기를 잊은 인간들과 다르게 드워프와 엘프들에게 신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 하이엘프들의 후예인 엘프 왕족들은 엘븐하임의 중앙에 위치한 구체를 통해 엘븐 갓을 접했기에 잘 알고 있었고 드워프들도 자신들의 기록에서 불카누스의 존재가 자신들의 기술발전을 이끌었던 것이 상세히 남아 있었기에 지금같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드워프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이 신이 아닌 에고 아티팩트였다? 더구나 엘리스라면 엘븐 갓과 불카누스를 만든 유일무이한 그 분의 이름 아닌가?”
“믿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전지전능한 우리 엘븐 갓께 그런 말은 용납할  없어요. 붉은 수염. 드워프들의 역사에서 불카누스는 이미 떠난 신일지 모르지만 엘븐 갓은 멸망해가던 하이엘프들을 이끌어 지금의 엘븐하임과 엘프들의 마을들을 만들 있도록 해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섀넌, 너도 우리와 함께 봤지 않은가? 약속의 때를 예지하고 누군가 찾아오리란 기록을 남긴 그들의 정체가 만약 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이지?”

섀넌은 버크의 지적에 그동안 자기가 마음속의 지침이자 믿고 따랐던 엘븐 갓이란 존재가 어쩌면 인공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말과 약속의 때와 함께 기록된 사장 이정후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새삼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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