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97화-매약상(賣藥商)과 약종상(藥種商)
복지팀의 팀장으로 일하는 안더스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애를 쓰는 직원으로 이름이 높았다.
안더스에게 그같은 사정이 있는지 몰랐던 내가 안더스의 아내를 초대한 뒤 엘리스의 조언에 따라 비상약으로 갖고 있던 약들 중 센 편에 속하는 진통제를 건네줘서 효과를 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안더스는 크게 안심하는 눈치였으나 안더스의 아내에게만 진통제의 특혜를 받는 것은 어딘가 공평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게 줬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마약성 진통제를 빼앗고 내 직원에게만 이런 약을 준다는 게 좀 그렇네.”
<누구든 팔은 안으로 굽는 법입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 크로니클의 직원들을 비롯해서 날 바라보고 있는 세븐시티의 시민들을 떠올려 보면 내 팔이 좀 크잖아.”
<15만을 품어 안기에는 팔이 좀 작아보입니다만.>
“무슨 소리야. 빅터 교관도 이제는 내 검술수준이 경지에 올라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같던데.”
보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혼자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에 힘을 주면서 포징을 취하고 있는데 섀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사장님?”
“아, 무슨 일이에요?”
‘자연스러웠겠지?’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섀넌은 정확히 내가 어떤 표정으로 무슨 포즈를 잡고 있는지 본 것 같았다.
“푸흡, 다름이 아니라 오늘 결재받아야 할 서류들이 있어서요.”
“책상 위에 올려두면 빨리 처리해줄게요.”
“예, 알겠습니다.”
책상 위에 결재판을 올려놓고 나가는 섀넌의 뒷모습이 흔들리는 것만 같아서 내 마음도 흔들렸다.
“본 건가?”
<섀넌의 동작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95%이상의 확률로>
“그만. 거기까지. 그런 건 분석해주지 않아도 나도 알아.”
<알겠습니다.>
“장난은 그만하고. 엘리스, 이곳에서 의약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우리 세상에서 약을 수입해서 이곳에 풀어버리는 쪽이 나을까?”
<둘 다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의약사업을 태동시키는 것은 장기간 인재들을 양성해야 하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약을 수입해서 그냥 풀어버리는 것은 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익히게 하여 해당 증상에 맞는 약품들 중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약들만 풀어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렇담 둘 다 하는 건?”
일전의 버크 아저씨의 경우를 떠올려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다.
“우선적으로 크게 부작용이 없는 진통제나 소염제같은 것들은 수입을 해서 이를 전담할 직원들을 뽑아 교육한 뒤 보급하면서 시간을 벌고 장기적으론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거지.”
<의사들을 이 세상에 보급하고 싶으신 건가요?>
“결국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약품과 의료시설 그리고 의사들일테지. 약품과 의료시설은 나와 함께하는 네 덕분에 해결이 가능하지만 의사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대량으로 양성하는 수밖에 없어.”
<인재들이 필요하겠네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필요 없어.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한 이들이 있으면 돼. 의사도 결국은 기술자야. 끊임없이 시험을 보고 세미나를 열어서 서로 지식을 공유하면 되는 일이지. 반복 숙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전의 오류들은 인공지능인 엘리스가 에고 아티팩트라는 이름으로 모든 수술과정을 통제하면 어느 정도 보조가 가능할 것 같은데?”
<제가 보조하면 사용자 이정후도 베테랑 의사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도울 수 있긴 하죠.>
“그래,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에게 필요한 건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최우선이야.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 시나브로에서 책임지면 될 일이지.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만큼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게 돈을 주는 인식을 만들 것이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안 지는 무책임한 의사들은 이 세상에 만들지 않을 거야. 다시 교정이 가능한 실수는 용납해도 나태해지거나 의사로서 자신의 초심을 잃은 자들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중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면허는 3년마다 관리를 해서 부주의한 경우가 발견될 경우 중범죄자는 즉각적으로 면허를 말소시키고 그 외의 경우에 한해선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바로 박탈하는 걸로 하자.”
<평소 사용자 이정후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한,두번은 실수할 수 있어도 세 번부터는 실수가 아니란 거군요.>
“권리와 의무는 함께 존재하는 거니까 생명을 가볍게 여긴 것에 대한 책임은 철저하게 질 각오를 하는 이들만이 의사로서 존경받게 만들어 줄거야.”
그날의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 역사적 사례들을 뒤적거린 다음에 시나브로에선 매약상賣藥商과 약종상(藥種商)이 될 직원들을 포스터와 애니메이션을 활용해서 홍보한 뒤 모집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매약상이 되어 가지고 다니는 약제가방속의 약을 활용하여 가벼운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해결해주고 그 과정에서 도와준 한 사람의 자식과 인연이 되어 결혼을 하면서 주변 이들을 도우며 인정받고 사는 트렌디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얀색의 제복을 입고 마치 항공기를 모는 파일럿이 쓴 모자같은 형상을 한 이들의 세련된 외형은 과거 나치가 멋드러진 독일군의 제복을 통해 젊은이들을 유혹한 것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허준의 스토리를 본 많은 이들이 한의사를 꿈꾼 덕분에 허준 방영 이후 한동안 한의대 커트라인이 올랐던 적도 있으니까.’
매약상과 약종상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등장한 시기는 매약상은 1968년에, 약종상은 1971년에 폐지되었던 제도였다. 지금처럼 약국과 약사가 등장하기 이전 1915년에 처음 등장한 이 직업은 지금의 약사들이 약을 제조해서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들을 이르는 것과 다르게 약방이라는 형태 혹은 방문판매의 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의약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직업이었다.
2020년의 대한민국에도 아직 2곳의 약방의 남아 있으나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잊혀진지 오래된 직업이었지만 이곳에서 새롭게 부활했다.
“인성 문제가 있는 이들은 모두 걸러서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정후 사장.”
와처에는 범죄자들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 이들에 대해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지원자들의 인적사항을 토대로 우선적으로 인성문제가 있는 이들을 걸러줄 것을 요구했다.
“근데 이런 사람들도 뽑을 거야?”
드마코 형은 지원자들 중 나이가 많은 걸로 기재되어 있는 어느 여성분의 입사지원서를 들어 보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형, 어느 마을이든 신전이 존재하듯 사람들이 많은 마을에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파견하면 돼.”
“아, 그러네?”
“그 정도는 배려해 줄 수 있어.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나이나 성별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와처의 도움으로 거르고 걸렀지만 그럼에도 시나브로에 들어가면 인생이 핀다는 소문이 이제는 제국 전역에 퍼진 터라 1기 지원자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저 많은 사람들을 언제 다 가르치냐?”
“아니, 우리가 다 저들을 가르칠 필요는 없지.”
“무슨 소리야? 기껏 저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니까. 의지는 말로는 확인할 수 없어. 행동으로만 입증할 수 있는 법이지.”
“그거야 맞지.”
스피어 마스터인 드마코는 정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스미스란 학자는 말했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되도록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뽑겠다면서.”
“스미스란 학자에 따르면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선한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거든.”
“맞는 말같기는 한데 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는 더 모르겠다.”
“어차피 거를 사람은 와처가 다 걸렀어. 우리는 사람들이 내면에 숨긴 그들의 욕망을 부채질해서 그들을 움직이게 할 거야.”
스미스가 말했던 자유경쟁시장 제도는 개인이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공적이익에도 부합하고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여 시장을 알아서 움직이도록 작동하게 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주장이었는데 지금에 와선 사적이익의 극대화가 공적이익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입증되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현재는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이론이 되었지만 시장주의의 측면으로 봤을 때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가지는 확실했다. 인센티브의 단맛은 사람을 채찍질하기에 충분하다는 것.
‘게으른 예비군들도 조금만 일찍 집에 보내준다고 하면서 경쟁을 시키면 이등병보다 열심히 잘 하는 법이지.’
“여러분들이 이곳을 졸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여러분이 우리가 팔고자 하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알고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약을 줘야할 지를 구분할 능력이 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죠.”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첫 번째 애니메이션 중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약물의 오남용이 어떤 피해를 가져오는지 잘 알게 되었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5번의 시험과정을 통해 우리가 제시한 기준점을 통과한 이들은 바로 합격입니다.”
내 말에 과거 많은 사람들을 세븐시티로 이주시킬 때 사용했던 도시 빅터의 관문교육장이 오랜만에 시끄러워졌다.
“조용해 주십시오.”
곳곳에 위치한 마이크는 내 목소리를 전달하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처음 이야기했던 3년을 꼭 안 채워도 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2년도 안 걸려서 저 문을 나갈 것이고 능력이 부족하다면 6년도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칠 것이고 여러분들은 1년에 6번 시험을 볼 것입니다. 단, 기준점을 통과한 이들 중 상위 30등 이내에 들어가는 이들에 한해서 통과횟수를 5회에서 3회로 줄여주겠습니다. 학습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3시까지 그 이후는 여러분들이 배운 것을 알아서 정리하십시오. 이상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30등 이내로 통과한다는 것은 능력이 되었든 의지가 되었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절대적인 기준점의 평가점수를 통과한 이후에 상대평가가 진행되는 것이었기에 조기졸업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상위 30등만으로 자격요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준점수를 통과한다고 해도 자격요건을 채울 수는 없다.
“정후야, 저 사람들 중에 조기졸업자가 나올까?”
“곳곳에 숨은 우리의 직원들이 분위기를 이끌거야.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서로 설명을 하고 학습을 하는 게 더 효율이 빠르다는 걸 알게 되면 혼자만 잘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잘 알게 되겠지.”
“혼자만 공부해야 더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혼자만 잘나서 혼자 튀어나가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야. 단순히 약만 많이 팔 사람들이 필요했던 거라면 굳이 이런 시험은 필요하지도 않았어. 상인들한테 넘기면 굳이 이런 복잡한 과정도 필요 없이 곧바로 상단들에게 풀어버리는 걸로 충분했다구.”
우리 둘의 대화를 사람들이 들은 것처럼 서로를 가르쳐주면서 공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자기 혼자만 빨리 졸업할 욕심에 혼자 파고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책에 적힌 내용만으론 수업을 전부 듣지 않고선 시험을 봐도 고득점을 얻기 어려웠고 이를 위해선 여러 사람이 서로 필기한 것들을 주고받으며 자료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수업구조를 만들어 놨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약한 이들은 고득점을 절대 받을 수 없었다.
"혼자서 기억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아티팩트라는 설명으로 엘리스를 통해 커다란 모니터를 활용하여 영상으로 강의가 50명씩 들어찬 모든 교실에서 일괄적으로 진행되었고 우리 세상의 인강 강사들의 장점들만 빼서 딥러닝을 한 엘리스의 강의능력은 1타강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강의력을 보였다.
각각의 교실에 있는 대형 디스플레이에서 출력된 엘리스는 뛰어난 인공지능으로 멀티태스킹 능력을 보이며 어느 교실에서 누가 질문을 해도 그에 맞게 즉각적으로 대답을 해주었기에 사이버 강의였지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사이버 강의와는 다른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이상적인 미래적 교육이 뭔지를 눈으로 보여줬다.
"엘리스가 없었으면 절대 이렇게는 진행 못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