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95화-루머에 대항하는 법 (95/239)



〈 95화 〉95화-루머에 대항하는 법

“시중에 신의 약이라면서 이게 만병통치약으로 도는 모양이더라.”
코엘 누나는 뜬금없이 하얀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을 하나 내게 가져왔다.
“이건 우리 세븐시티에서 만든 유리병 아닌가?”

요크가 들고 흔드는 유리로 된 병은 세븐시티의 특산물 중 하나로  세계에는 아직 유리로 된 재질의 것이 만들어지지 않아 전량 세븐시티에서만 생산되는 물건이었다.
“기억났다. 저번에 제국 밖에 팔고 싶다면서 판매요청이 들어와서 허가 내려 줬던 거야.”
“진짜 만병통치약은 아니죠?”

아직은 내가 모르는 더스트의 신비가 있나 싶어서 마법적으로 가공된 것인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에이, 그런 게 있었으면 우리 엘프들이 먼저 만들었지. 엘프 비전의 약품들이 있긴 한데 이런 하얀  액체로 된 약은 없어.”
“그럼 약이 아닌데 사람들이 이걸 사는 건가?”
“드마코 오빠,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사지. 언니, 이거 한병 가격이 얼마야?”
“한병에 10실버 정도 하는 것 같더라고.”
“효과는?”
“통증완화에 강력하게 도움이 되는 모양이야. 관절염이 있다거나 복통이 있다거나 전반적으로 통증에 잘 듣는가봐.”
“그럼 10실버 정도면 집에 하나씩 구비할만도 하네. 근데 만병통치약은 아닌 거 아니야?”
“일반적인 사람들이 약만 먹고 나을 수 있는 병이 뭐 많은 줄 알아? 사람들이 엘프들한테 사가는 약들 중 대부분이 진통제고 진통 성분만 제대로 작동해도 사람들은 좋아해. 드워프들이야 다쳐도 그냥꾹 참고 버티고 넘기는 경우가 많으니 모르겠지.”
“아니거든?”
“너, 약 먹어본 적 있어?”
“어! 어! 그러니까...흐음....”

나를 비롯해 드마코 형과 에디나 누나 그리고 섀넌까지 넷이서 둘의 만담을 지켜보고 있던 찰나 빅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혹시 시중에 도는 만병통치약이란 물건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응”

6명이 모두 한입으로 똑같은 대답을 하자 평소와 다르게 빅터가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보셨다구요? 우리 와처에서도 최근에 입수한 최신정보입니다만?”
“이거 말하는 거 맞지?”
코엘 누나가 건네  하얀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들어 보이자 빅터의 표정이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맞긴 합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그럼?”

빅터는 대답이 아니라 행동으로 움직였다.  뒤에 숨기고 있던 길다란 막대를 들어 보이자 코엘 누나는 잘 알고 있는 물건인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파이프가 뭐?”
‘여기도 담배는 피는구나.“
“코엘 단장님께서 즐겨 피는 파이프랑 좀 다르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제서야 코엘 누나는 빅터의 손에 들린 파이프를 빼앗아 이리저리 둘러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거 담배가 아니네?”
“맞습니다.”
“그럼  피는 거야? 킁킁. 확실히 담배 종류는 아닌  같은데.”
“그 병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원료입니다.”
“뭐?”

둘이서 서로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5인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진행 중인지 알 수가 없어 애매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저기, 둘이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도 끼어주지?”
에디나 누나가 유독 빅터를 향해 눈을 째려보며 물어보자 빅터는 움찔한  설명을 시작했다.
“화려한 빛깔을 가진 꽃이 지고 나면 거기 삭과蒴果가 생기는데 이 삭과를 칼로 째면 하얀 액체가 나옵니다. 이를 굳혀서 약하게 가열하거나 건조시켜서 덩어리를 만들고 이를 물에 녹여 녹지 않는 성분을 제거한 뒤 농축, 증발시키는 등의 과정을 거쳐 추출한 것을 이용하여 이런 특별한 파이프를 통해 발연시켜 흡연한다고 합니다.”

모두들 빅터의 설명에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하고 심지어 식물에 대해서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코엘 누나조차도 그게 어쨌다고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엘리스가 무엇인지 설명해줬다.
<아편이군요.>

설명을 들은 엘리스의 단언에 우리가 한번씩 들고 넘겼던 물건이 마약이라는 말에 난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마약특별법에 걸리는  아니겠지?’
<유리병에 들어 있는 물건을 만졌다고 해서 마약에 중독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지, 아는데 그래도 좀 찜짐해서 그래.’

내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본 빅터는 이 물건이 뭔지 아냐고 물어봤다.
“신약이 아니라 마약痲藥이에요. 처음 한두번은 괜찮을지 모르는데 점차 중독되고 나면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계속 그 물건만 찾게 되어 인생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약물이라 사용에 많은 주의가 필요하죠.”

엘리스가 전해준 설명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사람들의 표정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정후 사장의 설명이 맞습니다. 이 물건을 대량으로 혹은 장기 복용하거나 장기 흡입한 이들은 모두 폐인廢人이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하지 못하게 막으면 부작용을 보이는 이들이 와처에 의해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약이었던 아편이 마약으로 지정되기까지 인류사에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과 진통이 있었다. 난 이곳에서 아편이 등장하는 처음을 지켜보게  셈이었다.
“시중에 얼마나 풀렸죠?”
“팔리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설사나 복통에도 잘 듣는다는 말에 간혹 상한 음식을 먹고 살기도 하는 중층 이하의 제국민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퍼지는 모양입니다. 귀족들 사이에선 ‘페일’이라고 하는 이 물건을 흡입하면서 라디오의 음악을 듣는 것이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잡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빅터는 우리들을 데리고 잠시 가봐야할 곳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곳엔 대화재 때 이미 아편에 심각하게 중독된 이들이 모여 있었다.
폐인이  이들의 참상을 두 눈으로 지켜본 우리는 인간적으로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약의 확산은 우리 세븐시티의 입장에서 정상적인 고객이 되어줄 시장의 축소와도 연관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도의적으로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이 약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요. 한번 중독되고 나면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하게 될테니까.”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사람들에게 ‘페일’의 위험성에 대해서 라디오나 신문을 이용하여 수시로 전파하는 걸로 하자.”
급한 대로 당일 저녁부터 라디오에선 시중에 돌아다니는하얀 약 ‘페일’에 대해 강한 경고가 시작되었다.

「긴급속보입니다. 최근에 시중에 풀린 하얀 약, 일명 신의 약으로 불리는 ‘페일’의 정체가 사실은 사람들을 중독시켜 폐인으로 만드는 마약임이 밝혀졌습니다. 가정 내에 가지고 계신 물건을 시나브로의  매장에 가져 오시면 구매하신 가격으로 교환해드릴 예정이니 내일부터 이 물건을 소지하고 계신 분들은 저희 매장에 가져와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호외를 사람들이 많은 곳에 배포하고 라디오를 통해 수차례 방송한 보람이 있었는지 사람들은 다음날부터 가지고 있는 병을 들고 와 구매한 돈으로 바꿔가는 이들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아직은 배포 초기라서 그렇게 심각한 중독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마음을 놓았던 탓이었을까 처음에 빠르게 수거되던 아편 ‘페일’은 점차 걷혀지는 속도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왜지? 시중에 풀린 물건이 아직은 초기라서 적었던 걸까?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어느 정도 복용된 이후라서 그러는 걸까?”

우리가 좀처럼 잘 걷혀지지 않는 페일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빅터 교관도 나름대로 와처 요원들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스마르교의 필그림pilgrim들에 의해 시중에서 우리가 수거하는 이유로 자기들만 이익을 보려고 그런다는 소문이 퍼진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시나브로가 사람들이 값싸게 약을 구매하는 것을 막고 나중에 비싸게 팔고 황제와 귀족들같은 이들만  혜택을 누리려는 모략이라는 루머가 퍼지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자신들을 돕기 위해 굳이 사비를 들여가며 돈으로 바꿔 주겠다고 하는 것임에도 말도 안되는 소리에 현혹된 사람들에겐 오히려 악의 축으로 보이는  했다.
조사 결과 충격을 받은 빅터는 우리들에게도 왜 수거되는 물량이 급속도로 줄게 되었는지 설명해줬다.

“그랬구나. 그래서.”
“하지만 우리는 한번도 사람들에게 악독할 정도로 돈을 벌려고 물건을 비싸게 팔거나 착취하듯 한 적이 없는데.”
“스마르 교의 필그림들은 또 뭐지?”
“스마르 교의 교리를 세상에 전파하는 순례자들을 부르는 단어랍니다. 스마르 교의 교리에 담긴 걸 살펴봤더니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라는 내용이 있더군요.”
“좋은 일을 하고 싶으면 고아들이나 거둬서 먹여 살릴 일이지. 젠장.”

드마코 형이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해봤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었다.
“우선은 교역루트에 있는 변방의 귀족들에게 페일이 국내에 반입되는 일이 없도록 황제의 협조를 구하여 와처 요원들이 긴급 파견되긴 했습니다.”
“글쎄, 사람들에게 이 약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걸로 문제가 해결이 될까?”
코엘 누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탐욕과 무지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옳은 일을 행한다는  참 어려운 일이야.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으며 돈까지 들여야 한다니 참.”
요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만히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문제네. 당장 이게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우리말고는 아예 없다시피하니까.”
“그래, 그게 문제야. 우리 말고는 없다는 거.”
“젠장!”

좋은 일을 하고도 욕먹는 이 상황이 납득 안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난리를 피우고 있는 거지.’

나의 분노를 이해한 엘리스는 나에게 격려의 말을 보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일겁니다. 본인은 알지 않습니까? 애초에 몰랐다면 모를까 아는 일을 모르는 척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닥쳐올 결과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각오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 나는 알지.’

엘리스의 말을 곱씹고 있자니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
“무슨 소리야. 라디오랑 신문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어떤 부작용이있는지 알리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가 본 걸 본 적이 없잖아. 그냥 말과 글로만 접하는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가능하다면?”
“설마 그 동영상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지금도 크로니클의 단원들끼리 모일 때면 보곤 하는 빔프로젝터를 모두들 떠올렸는지 나의 아이디어에 손뼉을 마주쳤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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