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화-호사다마(好事多魔)
아저씨의 공연 이후 아저씨의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제국의 귀족들은 처음 정장을 봤던 코엘 누나나 버크 아저씨가 보였던 반응처럼 열렬히 좋아하며 아저씨가 입었던 것 같은 옷을 만들어 달라고 평소 옷을 주문하던 제단사들과 구두장인들을 불러 봤지만 다루는 옷감의 수준도 높지 않을뿐더러 아저씨가 입었던 정장이나 구두를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귀족들의 설명만으로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설프게 만든 옷에 실망하거나 우리식 표현대로 조잡한 ‘짝퉁’을 경험한 귀족들은 우리가 만든 상점에서 파는 상품들에 크게 환호했다.
기념행사에 맞춰서 오픈한 양장점 ‘신사’는 3층짜리 건물에 구두와 정장을 판매하기 위해 1,2층을 매장으로 모델링했고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낼 준비를 모두 마쳤다고 생각해서 오픈을 했지만 그것은 제국의 귀족들이 가지는 패션에 대한 열망을 받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옷감이란 길기만 하면 귀족의 자태를 뽐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귀족들의 관념은 몸의 라인을 살리면서도 멋짐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장우산이란 아이템을 매치하여 남자 귀족들로 하여금 귀족의 복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재정의를 하는 쪽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귀족남자들이 그렇게 정장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세븐시티에선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해서 직물사업을 병행하였다. 세븐시티에서 쏟아내는 옷감의 양이 세븐시티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두 판매하고도 한참 남는 상태였기에 제국을 향해 팔아치울 대량생산품을 각 사이즈별로 규격화하여 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성품을 판매하는 아웃렛을 새로 세워 저렴하면서도 누구나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사람들은 그동안 몸에 맞는 사이즈의 맞춤 옷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 아이들은 어른들의 헤진 옷을 입느라 한없이 긴 옷을 접어 입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귀족들도 그저 길기만 하고 옷감을 많이 쓴 옷을 입으면 멋있는 것이다라는 내 기준에는 아주 이상한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나브로의 계열사 시나브로 모직의 등장은 이 세상의 사람들의 ‘의衣문화’를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이젠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 세븐시티랑 많이 비슷해졌네.”
시나브로 호텔의 루프탑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들을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일으킨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시나브로 호텔을 시작으로 제국의 수도 센트럴의 모습은 이전과 다르게 18세기 유럽에서나 볼 법한 양식을 갖춘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또, 행사가 끝나고 시나브로 호텔에 방문을 한 황제는 수세식 변기를 경험하고 편리함과 쾌적함을 느끼고선 이를 황궁에 지어달라고 아저씨에게 요청했고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이를 처리하기 위해선 처리시설이 따로 필요하다면서 수도에서 나오는 하수도 시설을 건설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비용을 황제로부터 뜯어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수도 센트럴에 투자되었는데 덕분에 상하수도 시설이 도입되면서 제국의 수도임에도 나는 ‘오물’의 냄새는 사라졌다.
화장실의 변화로 인해 길거리에선 여기저기 오물을 투척하는 경우가 사라지고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변은 마차를 오가는 말들의 변들뿐이었다.
‘저것도 좀 없애버렸으면 좋겠는데 내연기관 자동차는 장기적으로 공기 오염이 너무 심하고 그렇다고 바로 전기자동차로 들어가기엔 아직은 세븐시티에 배터리를 보급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길도 제대로 정비가 안되어 있어서 전기자동차를 수도에 들이는 것은 시기상조야.’
길을 오가는 마차를 보면서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섀넌은 하던 보고를 계속했다.
“마트에 새로 들인 화장지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도시 코엘에서 생산 중인 펄프는 세븐시티에서 쓸 화장지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니까 이쪽으로 돌리도록 하죠.”
엘프들과 연계하여 유지되고 있는 조림사업덕분에 장기적으로 펄프를 공급하기에 충분한 여건이 조성될 수 있었다.
“화장지와 변기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매우 큽니다.”
“좋은 현상이네요. 섀넌, 새로 만들어서 파는 라디오는 어떻죠?”
“보고에 따르면 휴대용 라디오는 길거리를 많이 오가야 하는 상단들과 용병들이나 모험가들로부터 큰 인기라고 합니다.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하네요.”
“그래요?”
문화적 즐거움을 즐길 거리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이곳에 라디오를 통해 어디서든 노래를 들을 수 있고 성우들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지루함을 달래주기에 좋은 도구였다.
작고 가벼우며 해가 떠 있는 동안 밖에 걸어 놓으면 충전이 되는 휴대용 라디오는 버튼만 누르면 소리가 나왔기에 저렴한 가격에 파는 고퀄리티 마법 아티팩트로 인식이 형성되고 있었다.
“정후 사장,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변화들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단주인들에겐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또, ‘광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알아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돈을 지불하면서 저희 라디오를 이용하고 싶어 할 정도였습니다.”
정보를 관리하는 입장인 빅터에겐 문화적 상품보다 정보를 통해 창출될 경제적 효과가 더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와처와 협의 끝에 정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제외하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와처로부터 제공받는 조건으로 와처가 후원하는 약자들에 대한 지원금을 시나브로 방송국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섀넌의 보고가 모두 끝이 났을 땐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가운데 시나브로 호텔은 환한 불빛으로 오늘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등불로 켠 불이 아니라 LED 등으로 켜진 시나브로 호텔의 불빛은 제국의 수도에서도 가장 빛나는 수준이었는데 이를 내심 마음에 두고 있던 황제는 황궁에 ‘변기’를 들이면서 시나브로의 ‘마법등’을 같이 들일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내 버크와 빅터와의 정을 생각해 시나브로 호텔의 불빛을 끄거나 빛을 줄이라곤 하지 않겠네. 하지만 황궁의 밤도 시나브로의 마법등불을 이용해서 환했으면 좋겠군.”
제국의 수도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에 지방으로 번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보낸 5년간의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요?”
“정후 사장님 덕분에 세븐시티의 시민들은 오늘도 배불리 밥을 먹고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잠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센트럴만 봐도 정후 사장님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느껴지죠.”
“그렇게 생각해요, 섀넌?
시나브로 호텔의 루프탑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섀넌과 와인을 마시면서 쏟아질 것처럼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갑자기 센치해진 감성에 섀넌에게 물어봤지만 섀넌은 이전과 다르게 살풋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찬사의 말을 들려줬다.
섀넌은 엘프들이나 드워프들의 표정이 왜 단조로운지 그동안은 잘 몰랐었다. 오랫동안 살면서 새로움에 대한 경험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엘프나 드워프들의 삶도 그들의 표정처럼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코엘이라든가 버크의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로 사람들의 사이에서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삶을 살아왔기에 일반적인 엘프들이나 드워프들과는 표정도 말투도 달랐고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단조로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잘 모르던 섀넌도 이정후와 크로니클의 단원들과 만나서 변화를 경험하고 있자니 그에 맞춰 조금씩 무덤덤했던 표현방식도 변화가 일어났고 마음속으로만 지었던 미소를 얼굴로 드러내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장님이 없었다면 크로니클의 단원들만으로는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었을 겁니다.”
굶주리고 있던 대륙인들의 식탁이 쌀과 밀로 풍성해지고 푹 끓여서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재료들을 넣어 푹푹 끓여서 배를 채우던 이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제공해준 이정후가 이끌어온 변화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들을 이용해 섀넌이 설명하자 나는 어딘가 낯 부끄러웠졌다.
이어 섀넌이 내가 가져다준 식문화의 변화에 대해서 한참을 찬양하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묘한 감상이 떠올랐다.
‘으으으, 꼭 독재자가 오른팔한테 내가 잘하고 있나 물어본 것 같네.’
“알았어요.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우리 세상에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긍정적으로 부는 제국의 변화가 모두에게 긍정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어쩐 일인지 후추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밀의 수출량도 줄었고 옷감의 수출량도 줄었어요.”
제국의 상인들은 많은 재료들을 적국인 연합국이나 기타 소국들에서 충당해온 편이었는데 세븐시티에서 뽑아져 나오는 산출량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때마침 공교롭게 신성왕국 스마르도 등장하면서 기존의 연합국의 상인들이 빠져 나가고 그 빈자리를 그 밑을 차지하고 있던 소규모 상단들의 주인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시장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앞으로 부자가 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처음엔 좋아했지만 어째서인지 기존의 물량이 소비되지 않고 재고가 쌓여가는 현실에 납득할 수가 없었다.
“제국에서 오는 상단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오히려 연합국에 있던 상단들이 제국으로 이주해선 제국의 물건을 이곳에 풀어 놓고 있어요.”
“우리 물건은 도무지 사람들이 사질 않아요.”
“그렇다고 이들을 내쫓아버릴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을 배불릴 먹을 수 있게 해준다면서 제국에서 온 상인들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같은 것들과 쌀을 팔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굶주림을 해소한 기존의 연합국민이자 이제는 신성왕국의 국민이 된 이들은 여기에 환호하는 상황이라 섣불리 제국의 상인들의 물건 판매를 막았다간 그 화를 자신들이 뒤집어 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요?”
“‘그거’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니?”
“우리 신성왕국의 만병통치약 말입니다.”
무릎통증, 설사같은 증세로 인한 복통 등을 비롯한 각종 통증을 없애주다 못해 죽음의 고통으로부터도 구제해준다는 신성왕국의 하얀 신약(神藥) ‘페일’은 신성왕국의 사람들 사이에선 하나씩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비상약으로 구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 페일을 너무 많이 복용하거나 ‘흡입’하면 밤이고 낮이고 이를 찾다가 바보된다는 속설이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국민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적당히만 쓰면 좋은 약 아닙니까? 크카이님.”
“적당히~만 쓴다면 말이지.”
신성왕국에서 새롭게 자리 잡은 상인들의 모임 ‘헥사그램’은 이전의 상단들보다 더 악독한 이들로 사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다 파는 집단이었다.
현재 상인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인 이들 중에 하나인 크카이 로쉬는 주교의 직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이제네브의 관리감독으로 1년간 활동하고 다시 상인의 자리로 돌아온 자였는데 이제는 헥사그램이란 단체를 이끄는 수장이기도 했다.
크카이가 파이프를 꺼내서 피우자 나머지 5명의 상단주인들도 자신의 파이프를 꺼내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자축하며 흰 연기를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