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93화-연예인의 인생 (93/239)



〈 93화 〉93화-연예인의 인생

황제는 공연장에서 시나브로 라디오에 출연했던 결선팀들의 축하 공연을 앞두고 버크 대장군이 찾아왔을 때가 떠올랐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상하군, 짐이 대장군을 찾은 기억이 없는  같은데? 시종장, 혹시 내가 대장군을 따로 보자고 청한 적이 있었던가?”
“대장군을 뵙자고 한 적은 없었습니다.”
“들었소?”
“예, 하지만 저를 찾으신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황제는 버크가 나이를 많이 먹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 아닌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황제의 눈빛이 살짝 변하는 걸 버크도 바로 알아채고 조금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분명히 시종장을 통해 절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는데?”
황제가 등을 돌려 시종장을 쳐다보자 시종장은 혹시 자신이 착각했나 싶어 자신과 함께 황제를 수발하는 호위장을 쳐다봤지만 호위장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황제도 이를 봤고 버크도 이를 봤다.

“크흠, 대장군 몸이 많이 허약해진 것 같소. 내 시종장에게 말해둘테니 돌아가는 길에 몸을 보호할 만한 것들을 좀 챙겨 가시오.”
“하하하.”

황제는 버크가 갑자기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소드 마스터로 유명한 남자가 미치면 제국에 위험이 다가올 수도 있었다.
‘뭐야, 무서워.’
하지만 황제의 체면이 있는데 그걸 내색하기가 뭐해 옆에 서 있던 호위장의 옷깃을 자기도 모르게 슬며시  움켜 쥐었다.

“황제폐하, 얼마 전 시나브로 엔터테인먼트에 시종장을 보낸 일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어허, 와처에선 황제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렇게 자세히 들여 보고 있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황제는 소름 돋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체면을 세우기 위해 목소리를 키웠다.
“아닙니다. 제가  사람입니다.”
“버크 대장군이  사람이라니?”
“마이 웨이를 부른 이를 찾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바로  사람입니다.”
“버크 대장군도 참. 농이 지나치시오.”

황제는 이제야 버크 대장군이 장난쳤다는 것을 알고 그때까지 쥐고 있던 호위장의 옷깃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버크 대장군도 그 노래를 들었구려.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를 깊게 새겨볼  있는 가사와 이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진정성 있게 들려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르오. 그렇지 않소 시종장? 시종장도 옆에서 눈물 꽤나 쏟았지.”
“제가 감동하긴 했지만...운 것은 제가 아니고...”
“쓰읍.”

황제의 공치사에 이젠 버크가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본인 앞에서 이렇게 찬사를 보내면...’
“그래, 내가 시종장을 그곳에 보냈다는  어찌 알았소? 빅터가 이야기해줬다고 해도 내 타박하지 않을 것이오.”
“제가 그 노래를 부른 본인입니다.”
“허어, 농이 길구려.”

이대론 안되겠다 싶은 버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더니 자신의 턱 밑에 가져다 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버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 양반이 뭘  먹었나 싶었던 황제도노래가 시작되고 계속됨에 따라 턱이 떡 벌어지지 않을  없었다.

〔...그래! 그게 내 삶의 방식이었네~〕
“여기까지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시종장도 호위장도 황제도 버크의 노래가 끝나자 모두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지 않을  없었다.

“그 말이 그 말이었구려!”
“몇번을 말해도 믿질 않으시더군요. 제가 본인이라고 이야기를 하기가 쑥스럽지만  입으로  번이나 말씀을 드렸는데.”
“하하하하하.”

이제야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파악이 끝난 황제는 내심 황제의 생활까지 넘보는 와처의 첩보활동에 대해 황실 감찰 기관에 언지를 줘야할 것을 다짐했다가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크가 바로 프랭크였구만! 시종장, 버크 대장군이 프랭크였어.”

황제와 만나는 버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였을까 정원을 향해 오고 있던 황후도 버크의 노래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가던 방향을 틀어 찾아왔다.
“폐하, 혹시 가수 프랭크가 찾아왔습니까? 아, 버크 대장군도 계셨군요.”
살짝 빨리 오느라 숨이 가빠진 황후를 보니 황제는 자신이 당한 것처럼 내심 황후를 놀리고 싶어졌다.
“황후는 프랭크보단 리치가 노래를 더  부르는  같다고 그러지 않았소?”
버크 대장군이 프랭크라는 사실을 알면 벌어질 상황이 기대되었던 황제가 리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자 버크도 속으로 움찔했다.
‘프랭크를 찾는다며?’
“리치가 부르는 노래보단 살짝 못하지만 프랭크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도 꽤나 듣기에 나쁜 노래는 아니지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프랭크는 어딜 갔습니까?”
“프랭크가 보고 싶소?”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궁금하긴 합니다.”

프랭크의 노래도 좋아하는 편인 황후는 황제가 오늘따라  이러나 싶어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손님도 있고 다른 이들도 있는지라 눈빛으로 황제를 째려봤다. 황제도 더 나아갔다간 후환이 두려워 솔직히 털어놨다.
“크흠, 그게 아니라 버크 대장군이바로 가수 프랭크요.”
“폐하?”
평소같으면 1절만 하고 끝날 장난이 계속되자 황후는 생각했다.
‘어지간하면 이제 그만 하지. 재미도 없는데.’
“크하하하하, 프랭크, 노래를 들려주게. 이러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겠소.”

버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엔 얼마  녹음하면서 불렀던 노래를 불러줬다,
〔...그게 인생이야~〕

한번 더 아까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버크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프랭크의 앨범에 들어간 곡이지요? 제목이 ‘그게 인생이야(that's life)’라고 했던가요?”
황후는 눈앞에서 버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나자 LP판으로 구매한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듣기 좋았습니다. 정말 좋았어요.”
황후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자 황제는 둘이서 나눴던 대화의 결론을 내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거 보시오. 내가 말했지 않소. 프랭크가 부르는 노래가 더 듣기 좋다고 하지 않았소. 황후도 이젠 인정할 거라 생각하오.”
“흠흠.”

지금까지 좋아했던 표정을  가라앉힌 황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프랭크의 노래도 정말 듣기는 좋았습니다만. 우리 리치가 부르는 노래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더구나 리치의 노래는 프랭크 아니, 대장군이 부른 것과 다르게 직접 듣지는 못했으니 이를 비교하기엔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비교하려면 리치도 궁으로 불러 직접 듣고나서 판단을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버크 대장군, 제 말이 섭섭지 않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버크는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어 황제를 쳐다봤으나 황제는 황후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하하, 황후가 마음 속으론 좋아하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구려.”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요.”
졸지에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 버크는 자리가 굉장히 불편해졌고 시종장과 호위장은 이 양반들이  시작이구나 싶어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쳐다봤다.
한참을 말다툼하던 황제가 버크에게 대화의 키를 넘겼다.

“그래, 버크 대장군이 프랭크 본인이니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소? 마치 자신의 경지를 아는 검사가 다른 검사의 경지를 잘 느끼는 것처럼 말이오. 버크 대장군은 리치가 직접 노래 부르는 걸 들어볼 기회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직접 들었다면 어서 황후에게 말해주시구려.”
“3자의 입장에서 버크 대장군이라면 믿을 수 있죠. 버크 대장군이 객관적으로 누가 더 실력이 뛰어난지 말해주세요.”

황제와 황후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버크를 향해 대답을 요구하자 버크는 뻘쭘해졌다.
“저기...그게.”
“우리끼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맞소, 어디가서 우리가 버크 대장군의 말을 여기저기 옮길 사람들도 아니잖소.”
“그게 아니라...”
“설마 시종장과 호위장이 신경 쓰여서 그러오? 호위장과 시종장은 어디 가서 이 일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테지?”
“폐하, 황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저희들이 전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하옵니다.”

둘의 대답을 들은 황제는 황후의 앞에서 버크 대장군이 프랭크인 자신의 노래 실력이 더 좋다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황후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동안 옳은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버크 대장군의 인품이라면 객관적으로 대답해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버크는 둘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똑같습니다.”
“허허, 대장군, 여기 우리밖에 없소. 그렇게 겸손 떨지 않아도 되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대답해주시오.”
“맞습니다.”
황후도 내심 프랭크의 노래가 더 뛰어나단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절반의 승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자신이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버크는 두 부부가 여전히 승부욕이 강한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리치도 똑같은 실력을 가졌습니다.”
“아니, 글쎄. 사람이 거 왜 그러시오? 내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소.”

황제는 어지간하면 본인이 더 잘났다고 할 사람이 자꾸 똑같다 똑같다고 그러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버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둘 다 접니다. 같은 사람이니 노래 실력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자리에 있던 네명의 표정이 비슷해지자 버크는 그제서야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프랭크도 리치도 모두 제가 사용하는 활동명이니 서로의 실력의 우위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저 취향의 차이일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하”
“뭐라?”
“그 말이 참말입니까?”
“샤이어 가문의 망치를 걸고 두 말하지 않겠습니다. 짧게 리치의 노래도 들려드리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버크의 입에서 리치의 노래를 짤막하게 듣고서야 두 사람은 프랭크와 리치가 동일인물이자 버크 대장군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랭크와 리치가 사실은 같은 사람이라니...”
“그럼 우리는 그동안 무얼 위해서...”

각자 상대방 몰래 프랭크와 리치의 팬클럽 멤버로 가입해 있던 황제와 황후는 그동안 침실에서 다퉜던 자신들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궁금증은 모두 해결이 되셨습니까?”
“진작 말해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잖소.”
“오늘 모두 말해드리려고 왔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황제도 황후도 버크가 계속 웃자 웃지 않을 수 없어 정원은 웃음 소리로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오늘 축하공연을 맡은 것이 프랭크와 로로 시스터즈 그리고 우승자라...”
정원에서의 한때를 기억하던 황제는 어느새 버크가 나와 노래를 부르려는 무대 위에 시선이 꽂혔다.
“저 옷은 좀 특이하군.”
“시나브로에서 만드는 신상품이라고 합니다.”
황제의 뒷자리에 앉은 시종장이 비밀리에 입수한 자신만의 정보를 말해줬다.
“호오, 짙은 파란색으로 된 옷감이 범상치 않군. 저렇게 짙은 푸른색이라니.”
“옷감도 옷감이지만 처음 보는 스타일이네요.”

MC 보키가 프랭크 아저씨를 소개하고 내려가자 아저씨는 축하무대 공연에서 자신이 얼마전 읽었던 가스통 루르의 ‘오페라의 유령’에서 모티브를 얻어 입이 드러난 가면을 쓰고 파란색 정장을 입고선 우산을 소품으로 가지고 등장했다.
“마이 웨이를 부른 프랭크가 부릅니다. ‘비를 맞으며 노래하네.’”
아저씨가 무대 위에서 ‘비를 맞으며 노래하네(singing in the rain)’을 탭댄스를 추며 공연하자 공연장은 적막한 가운데 아저씨의 탭댄스 소리와 목소리만이 가득해졌다.

탭댄스라는 장르를 처음 목격하는 것도 신기한데 우산이라는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폈다 접었다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의 모습은 영화 속의 한 장면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였다.
“저 막대같이 생긴 것이 펴졌다 접어졌다 하는 것은 뭔가?”

세븐시티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이는 육각형의 도형 위에 시나브로 사의 로고가 박힌 장우산의 모습은 황제와 황후를 비롯하여 공연장을 찾아 앞좌석의 자리를 구매한 귀족들에게도 잘 보였다.

“우산 홍보랑 정장 홍보까지 같이 하게 되었네.”
“세븐시티의 테일러들도 이젠 저런 느낌의 정장을 만들 기술력을 확보했으니까.”

아저씨의 공연 하나하나에 시나브로에서 만들어지는 매력적인 상품들에 대한 마케팅을 숨겨놓은 것을 이 곳 어느 누구도 몰랐으리라.
“저 구두부터 머리 위의 모자까지 모두 세븐시티에서 만들어지는 시나브로의 상품인걸 알면 사고 싶어서안달이 날거야. 내가 말해둔 책자는 잘 만들어 뒀겠지?”

로로 시스터즈와 가면을 쓴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한 화보에는 시나브로에서 만들어지는 가방부터 시작해서 많은 소품들이 담겨 있었는데 아저씨는처음에 뭣 모르고 해보겠다고 했다가 기나긴 촬영 시간에 지쳐 다신 안할 거라면서 학을 뗐다.
“이번 공연만 하고 나면 이젠 다신 안 해. 해달라는 녹음도 다 해줬으니 이걸로 끝이네.”

아저씨의 공연이 끝나고 난  귀족들에게 상품화보가 담긴 책자를 전달해서인지 한동안 시나브로 백화점을 비롯한 매장의 매출이 수직상승했다.
다만 버크가 이번 공연을 하기 전에 황궁을 찾아가서 부른 프랭크의 노래소리를 들은 다른 시종들이 정작 리치의 노래는 짧게 지나가서 제대로 듣지 못했고 이로 인해 프랭크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바람에 공평하게 무대에 올랐어야 할 리치가 무대를 빼앗겼다는 말도 안되는 음모론이 한동안 퍼졌다.
시나브로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은 덕분에 이 음모론을 해명하기 위해 아저씨가  다 본인임을 증명하려고 라디오에 출연하기 전까진 꽤나 고생해야 했다. 아저씨의 해명방송을 라디오로 들은 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연예인의 인생이란 게 저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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