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92화-두 개의 팬클럽 (92/239)



〈 92화 〉92화-두 개의 팬클럽

아저씨의 마이 웨이를 라디오로 들은 중년의 남성 귀족들은 이 곡을 듣는 동안 마치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위로받고 공감받는 것 같았다며 그때 그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없겠냐면서 시나브로의 문의팀에 수도 없이 많은 팬레터와 함께 앨범 발매 문의 편지를 보냈다.

“아저씨가 남자들 사이의 김나박이같은 존재가 되실려나?”
“뭔 박이요?”
“아니에요. 사람들이 많이 아저씨를 찾아요?”
“사람들이 멋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냐면서 그 사람이 부른 앨범을 구매하고 싶다고 보통 성화가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 정도였나요?”
“심지어 황제의 시종장이 직접 찾아와서 황제가 황궁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는 초대서를 가져왔어요.”

어쩌다 한번씩 본 황제조차 노래를 통해 목소리를 듣고서도 아저씨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심 웃기지 않을  없었다.
“아저씨한테 한번 황제한테 갔다 오시라고 해야겠네.”
“시종장 말로는 황제께서 노래를 듣고 자신의 인생길을 아는 이가 만든 노래같다고 감동하셨다네요. 이런 노래를 만든 이와는 진심을 서로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시종장을 통해 청했답니다.”
“거 참, 얼마 전에도 보신 양반을  찾으시네.”
“버크 님과 노래를 부른 사람이 같을 거라고 짐작하지 못하는 탓이겠죠.”

거리가 있어서 그렇지 세븐 시티의 중년 남성들도 라디오를 듣고선 수도에 위치해 있는 시나브로 엔터테인먼트 앞으로 감동을 받았다는 편지를 잔뜩 보내왔다.

“이 정도 반응일 줄이야.”
“아저씨 목소리엔 살아온 세월의 깊이가 새겨져 있었거든요.”
“로모는 그렇게 들었어?”
“굵직하면서도 깊은 목소리로 인생에 대해 말하는 노래를 아직 저희같이 어린 사람들이 부르면 맛이 제대로 안 나죠.”
“버크 선생님의 노래를 또 들을 기회를 얻을  없나요?”
“버크 선생님?”
“글쎄, 아저씨가 좋아하실지 모르겠는데?”

“뭐? 안 해.”
“왜요.”
“그거  스타일 아니라니까 그러네. 나쁘진 않은데 썩 끌리지도 않아.”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나 좋아한다니까요.”

아저씨 앞으로 수도 없이 날아온 팬레터를 박스에 한가득 담아서 가져다주자 대장장이 혹은 무력이 강한 대장군이 아닌 가수로서의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내용에 당황하면서도 기뻐했지만 아저씨는 한사코 마이웨이같은 노래가 트로트가 아닌 스탠다드 팝이라는 장르라는 사실에 거부감을 보였다.

“내가 부른 노래를 좋아해 준다는 건 정말 고마운데 말이지. 난 그 노래 부를 때 별로 감흥이 없었어.”
“지금 가져온 팬레터 박스 말고도 더 있어요.”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3일치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로로 시스터즈도 아저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노래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러던데요?”
“어허, 그 정도란 말인가?”

중년의 나이에 가수라는 재능을 발견한 아저씨의 입장도 당황스러웠겠지만 대장장이이자 그랜드 마스터로 알고만 있는 아저씨에게 앨범을 만들자고 권유하는 내 입장도 당황스러웠다.
‘댄스 가수였던 오모나를 부른 가수에게  처음 트로트를 권유했던 사람의 심정이 이랬을까?’
“일단 생각해보도록 하지. 사람들 반응이란 건 그저 바람처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걸 수도 있네.”
“과연 그럴까요?”

1회 대륙 노래자랑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있었던 뉴스를 방송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론 긴 방송시간을 채우기엔 컨텐츠가 아직은 부족해서 로로 시스터즈를 비롯해서 대륙 노래자랑에 나온 이들 중 테스같은 경우말고도 노래를 잘하는 이들의 노래를 녹음해서 틀어줬다.
“근데 왜 자꾸 아저씨 이름이 나오는 거지.”
“그러지 말고 그냥 한번 날 잡고 부르라고 해.”
“아저씨는 트로트가 좋다고 그러시는데요?”
“그럼  다 하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

코엘 누나의 심드렁한 대답에 나와 섀넌의 머리 위로 반짝하고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맞네. 둘 다 하라고 하면 되는 거였구나.”
“마이 웨이같은 노래를 담은 앨범이랑 버크가 좋아하는 트로트라는 장르를 담은 앨범이랑 서로 다른 가수가 부른 것처럼 다른 이름으로 앨범을 내면 되잖아.”
“그러네. 그걸 생각 못했어!”

코엘 누나의 명쾌한 해답을 들은 우리 둘은 아저씨 앞으로 찾아가 코엘 누나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트로트 앨범도 내줄테니 스탠다드 팝이라는 형식의 노래를 담은 앨범도 따로 불러달라?”
“예.”
아저씨를 설득하기 위해 잔뜩 온 팬레터를 또 세박스나 가져오자 아저씨는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보낸 팬레터가 많이 오는 것이 좋았는지 내심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못하시고 결국 승낙하셨다.
“이렇게까지 팬들이 원하는데 안 할 수가 없겠군. 크흠.”
“결정하신 겁니다.”
“알았대두.  개의 앨범을 제작하는 조건이면 나도 흔쾌히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아저씨의 결정 덕분에 두 개의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두개의 앨범을 하는 조건으로 승낙하셨다 이겁니까? 좀 이상하군요.”
“뭐가 이상하죠, 빅터?”
“부단장님은 이번에 찾아오면 성의를 봐서 승낙을 내리겠다고 하셨거든요. 트로트도 나름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 마이 웨이같은 노래는 자신이 불렀지만 자꾸 부르다 보니 귀에 착 감기는 게 나쁘지 않다고 좋아하기도 하셨고.”
“네?”

빅터 교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자 그때 아저씨의 흐뭇한 표정의 이유가 팬레터뿐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에디나 누나를 통해 듣게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에디나 누나 말은 코엘 누나가 버크 아저씨가 부른 마이웨이를 듣고 좋아서 앨범으로 갖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는데 버크 아저씨한텐 말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을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꺼내니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척하다가 냉큼 아이디어를 건네준 거다 이거지?”
“어, 맞아.”
“정후가 이번에 마이 웨이 앨범 만들기로 했다고 되게 좋아하더라고.”
“누나 취향이 그쪽이었나?”
“깊은 인생의 맛이 느껴진다더라. 애들은  모를 거래.”

 노인(?)의 음흉스런 마음을 몰랐던 내가 두 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삼고초려하듯 애원을 하고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에 언젠가  원한(?)을 반드시 갚을 것을 다짐했다.
“이 양반들이.”

아저씨의 중후한 음성을 살린  번째 앨범은 그야말로 남성들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는지 대박을 쳤고 라디오에선 아저씨의 노래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와 수차례 방송되었다.
다른 지원자들 중에서도 좋은 자질을 가진 이들을 골라 로로 시스터즈가 직접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이라 아저씨의 앨범은 추가적으로 노래를 녹음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어줬다.
“정후군, 이번 타이틀 곡은 정해졌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 어때요?”

아저씨의 깊고 굵은 보이스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다가 아저씨의 동굴 목소리로 부르면 좋은 노래를 생각하니 떠오른 노래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였다.
트로트지만 실제로 트로트의 느낌이 강하지 않아 아직 트로트를 접한 경험이 없는 이곳의 사람들에게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도 남자다움이 느껴지는 곡이라며 좋아하셔서 빠르게 싱글앨범을 만들었는데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활동명은 ‘리치'로 정했다.
싱글 앨범은 본 아저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트로트 가수명이 리치라는  알고 의아해 하셨다.
“근데 리치라는 이름이 무슨 의미인가?”
“아저씨 음색이 풍부한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리치라고 지었어요. 어때요?”
“리치. 리치. 의미가 좋군.”
‘사실은 느끼함이 한 가득이란 의미지만.’

유독 이 노래를 부를 때 아저씨 표정이나 목소리가 기름지게 느껴져서 듣자마자 느끼하단 감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감성은 나와는 많이 달랐던 것일까.

“사장님, 리치 님의  번째 곡의 인기가 가히 상상초월입니다. 로로 시스터즈를 이어 두 번째 팬클럽이 만들어졌습니다.”
“뭐라구요?”
“라디오에서 가수 리치의 신규앨범이라고 홍보차원에서 틀어줬더니 수시로  재생요청이 들어오고  노래를 들은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남자답고 멋있는 사람일 것 같다면서 인기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앨범 초판은 아직 집에 턴테이블을 가진 이들이 귀족들말고는 많지 않을 거라고 해서 우선적으로 300장만 찍었는데 한정판으로 소문이 와전되어서 웃돈을 주고 구하려고 해도 시중에 남아 있는 물건이 없어 현재 부르는 게 값이랍니다.”
“그 정도에요?”
“남성들은 반대로 프랭크란 이름으로 나온 첫 앨범 마이웨이를 좋아해서 팬클럽을 결성하려고 한다고합니다.”

직원 드레드는 시나브로 엔터테인먼트에서 아저씨가 동일인임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직원이었는데 아저씨의 두 앨범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다른 느낌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했다. 경쟁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팬덤의 불길은 더욱 커진다는 것을.


“어때? 역시 리치님의 목소리는 포근하게 날 감싸 안아준다고나 할까?”
“제시, 니가 울림통이 큰 목소리에 반한 건 알겠는데 남자들 사이에선 마이웨이를 부른 프랭크 님의 인기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딱 들으면 알잖아. 프랭크 님의목소리가 훨씬 고급지다니까.”
“테즈, 넌 진짜 막귀구나. 어떻게 리치 님의 노래를 듣고서도 프랭크의 목소리가 고급지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어? 당연히 리치  목소리가  풍부하고 깊잖아.”
“너야말로 귀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내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소꿉친구이자 약혼을 맺은 제시카와 테즈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커플로 유명했지만 앨범이라는 걸 구매하고서부터 생겨난 서로의 다른 음악 취향만큼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팬클럽에 속한 둘은 얼마 전부터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더 뛰어나다는 믿음에 휩싸여 있었다. 이제 결혼을 앞둔 이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따로 결혼 상대를 구할 필요가 없는 둘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언성이 높아졌다.
“얘들아, 한참 사이좋던 니들이 왜 싸워.”
“아니, 그게 아니라.  말 좀 들어 보면 너도 이해할 걸? 테즈가 리치 님보다 프랭크가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더 잘한다고 그러는 거야.”
“테즈가 선 넘었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누가 들어도 답은 뻔한데.”
“뭐? 테즈 말이 맞지. 베니.”
“바리우스, 뭐라고 했어?”

둘의 언쟁은 연회장에 온 비슷한 연배의 남녀 사이에 확대되었고 살롱에  귀족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참 시끄러운 것 같더군요.”
“왜 시끄럽답니까?”
“뭐라더라? 리치가 더 낫다. 프랭크 님이 더 낫다.  그런 게 화제가 되었던  같습니다.”
“아이들이 뭘 알겠습니까. 당연 프랭크 님이 한수 위인 것을. 노래에 담긴 깊이가 다르지 않습니까? 인생에 대해 말하는 현기 어린 가사와 겨우 사랑 사랑하는 애송이같은 가사랑 어디 비교가 됩니까?”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게지요.”

호텔 건너편 커피숍에 있는 여성 귀족들의 말은 또 달랐다.
“자작 부인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요?”
“젊은 애들끼리 싸움이 붙었다더라구요.”
“뭐 때문에 싸웠던 거죠?”
“남자들이 노래라는 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프랭크가 리치 님보다 노래를  잘 부르고 목소리도 더 좋다고 그랬대요.”
“네? 어이가 없네요. 말도 안되는 소리!”

“어이가 없네. 어차피 같은 사람인데.”
커피숍과 살롱에서 퍼지는 소문들과 연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들은 나는 웃기지도 않았다.
“정체성을 구분하는 차원에서 트로트 활동명이랑 팝 활동명을 다르게 한 건데 이게 일이 이렇게 되다니.”
“정후, 넌 어떻게 생각해?”
“뭐가?”
드마코 형은 이야기를 듣고서도 엄한 곳에 관심이 꽂힌  같았다.
“내가 듣기에는 마이 웨이가  남자답거든.”
“아, 형! 형은 아저씨가  다 부른 거 알잖아.”
“알지. 알지. 크크큭. 이거 빨리 해명 안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는데, 괜찮으려나?”
“에이 설마.”

난 알았어야 했다. 편이 갈리고 나면  이후엔 사람들에겐 옳고 그름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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