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91화-대륙 노래자랑
“그래서 어떻게 된 거래?”
“너무 궁금해.”
센트럴에서 판다는 라디오가 세븐시티에서도 판매되기 시작하고 ‘대륙 노래자랑’이란 프로그램이 시나브로의 상점들에서 일제히 홍보되었던 덕분에 다소 판매가 주춤하던 보급형 라디오도 순조롭게 판매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던 세븐시티의 시민들 중 보급형 라디오를 집에 소유한 이들이 꽤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라디오에 대해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들은 10실버라는 가격으로 책정된 라디오의 가격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 집에 라디오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다들 조용히 좀 해 봐.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리네.”
근처에 사는 아이들 중 집에 라디오가 없는 집 아이들과 그의 부모들이 라디오라는 기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바람에 도슨네 집은 자연 잔치라도 하듯 사람들이 붐비게 되었다. 도슨이 주변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조용히 시키며 볼륨을 키우자 라디오에선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나브로 방송국에서 최초로 진행하는 대륙 노래자랑은 시나브로 사와 트리니티 상단 그리고 와처의 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이번 1회 대륙노래자랑의 1등 상금은 무려 10 플래니텀! 무려 10플래티넘입니다.」
라디오에서 사람의 음성이 들려 나오자 신기함을 느낀 사람들로 집이 시끌벅적해졌다.
“이게 뭐시여! 사람 목소리가 들려!”
“어머나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일도 경험해보는구만.”
“10 플래티넘이면 치킨이도대체 몇 마리지?”
“바보야, 그 돈이면 치킨집을 차려야지. 왜 치킨을 사먹을 생각을 하냐?”
“그런가?”
“치킨집을 차리면 맨날 맨날 치킨을 먹을 수 있잖아.”
“아버지 월급날에나 먹는 치킨을 맨날 맨날 먹을 수 있다고?”
“몰랐어? 처음 치킨집 만든 리무스네는 치킨이 질려서 안 먹는대!”
“와, 치킨이 질린다고? 치킨이 어떻게 질릴 수가 있지.”
“나도 상상이 안된다. 어떻게 치킨이 질려! 너 우리가 모른다고 뻥치는 거 아니야?”
“맞다니까!”
라디오 앞의 옹기종기 앉은 꼬맹이들은 자기들만의 논쟁을 시작하고 어른들은 또렷하게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적지 않은 상금을 들은 사람의 표정이 신기해지고 있을 때 난 라디오 방송국에 있었다.
“진행 깔끔하게 잘하네. 저런 사람을 어디서 구했어요?”
“보키라는 남자인데 검은 올빼미에서 거둬서 무전병으로 활동하다 올빼미들하고 연계해서 각 지역에 봉사활동을 가면 곧잘 노래도 부르고 사람들을 모아서 악단들과 같이 위문하는 활동을 할 때 진행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이번 기회에 시나브로 직원으로 스카우트 한 겁니다.”
그의 진행을 지켜보다 물어보고 나서 빅터의 설명을 듣고 나자 키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입담 좋게 진행하는 솜씨가 송씨 성을 가진 유명한 MC를 떠올리게 했다.
“앞으로 저 사람에게 노래자랑 전담MC를 시키면 좋겠네요.”
“MC가 뭡니까?”
“우리가 하게 될 방송에서 진행을 맡아서 출연자들이 편하게 말을 하도록 돕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요. 의식이나 행사를 주관하는 식의 진행자라는 의미를 담아 Master of Ceremonies를 줄여서 MC라고 부르면 됩니다.”
"그게 MC군요.“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MC 보키도 방송실 안으로 들어온 출연자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다.
“어디서 온 누구십니까?”
“아, 전...그러니까...”
소녀가 너무 떠는 것 같자 보키는 소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노하우를 활용하여 긴장을 풀어줬다.
“자, 우리의 첫 출연자께서 너무 긴장하신 것 같아서 잠시 대화를 나눠 봤습니다. 소개를 다시 한번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제 이름은 테스라고 하고 로로 시스터즈의 열렬한 팬이라 이렇게 한번 나와 봤습니다.”
“유명한 로로 시스터즈의 팬이시군요. 어떤 곡을 좋아하시나요?”
“특히넬라 판타지아라는 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저도 그 곡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아마 로로 시스터즈가 부르는 넬라 판타지아를 들어본 분들이라면 지금 우리의 말에 모두들 공감하실 겁니다.”
소녀 테스는 아버지 몰래 방송국에 출연신청을 했고 치열한 예선심의의 과정을 거친 끝에 본선 진출을 결정받고 첫 출연자로 자신이 이렇게 나온 것에 가슴이 떨려 전날 한숨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아무것도 귀에 안 들리는 멍한 상태가 되었다가 다행히 보키라는 남자가 긴장을 풀어준 덕분에 평소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순히 팬인 것치곤 노래를 꽤 잘 부르셨던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평이 굉장히 좋군요.”
“좋게 봐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네요.”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는 것 같아 늘어진다 싶어 손으로 빨리 진행시킬 것을 요구하자 진행을 맡은 보키도 눈치껏 그에 맞춰 노래를 슬슬 시작해보자고 요구했다.
“오늘 부르실 노래는 무엇입니까?”
“로로 시스터즈가 부른 노래 중의 하나인 ‘꿈을 꿀 때(when I dream)’를 부르겠습니다.”
“로로 시스터즈의 팬 답군요. 좋은 노래를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 함께 들어보시죠. 테스가 부릅니다. ‘꿈을 꿀 때!’”
좋은 노래를 알고 싶다는 말에 물고기 이름을 한 한국 첫블록버스터 영화에 삽입되어 널리 알려진 캐롤 키드의 곡을 이곳에 맞게 개사를 하여 로로 시스터즈에게 알려줬을 때 이 노래를 연주한 둘은 참 마음에 들어했다.
잔잔한 반주의 곡이라 두 자매 말고도 이곳의 사람들도 좋아할지 의문이었는데 살롱을 방문했던 이들은 로즈 모스가 기타를 연주하면서 혼자 이 노래를 연주할 때면 눈을 감고 로즈 모스의 잔잔한 목소리를 듣곤 해서 명곡은 어딜 가나 명곡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당신이 현실이 되어 나타겠지요.〕
테스라는 소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한 것이 원곡자인 캐롤 키드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느껴져서 내심 놀랐다.
‘로모는 목소리가 맑고 청아한 편이라서 원곡과는 느낌이 달랐는데 정작 다른 사람에게서 이렇게 원곡과 비슷한 느낌의 곡을 듣게 되네.’
<거의 95% 수준으로 비슷하네요. 5%도 나이의 차이가 있어서 성대의 노화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젊을 때의 캐롤 키드가 부른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곡이 끝나자 노래를 부르는 동안 보키가 조용히 옆에서 서 있다가 다가가서 박수를 크게 치며 혼자 높은 텐션으로 리액션을 보이길래 이 부분은 좀 보완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라디오 방송 초기라서 방청객을 부르기가 뭣한데 노래를 듣고 반응해줄 사람들이 없으니 어딘가 허전하네요.”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현대의 방청객 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섀넌과 빅터는 테스의 노래에 감동한 것만으로 충분해 보였다.
“사장님, 처음에 이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하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사장님이 하는 일엔 다 계획이 있었던 거군요.”
“정후 사장, 저 분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했죠?”
“왜요?”
“개인적으로라도 후원을 해서 로로 시스터즈처럼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해서 말입니다. 한번만 듣고 말기에는 너무 아쉽습니다.”
빅터는 이때 알아야 했다. 이 자리엔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섀넌이 다른 일로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에디나에게 지금 우리가 나눈 대화를 전달할 수도 있었다는 걸.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로로 시스터즈는 테스라는 소녀의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들만이 이세상에서 제일 노래를 잘 부르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자신 못지않은 재능을 가진 이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자신들의 팬이라면서 노래를 마치자마자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심사위원들의 말을 좀 들어볼까요?”
“로로 시스터즈의 막내 로즈 모스입니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부른 것과는 다르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시는 테스 님의 ‘꿈을 꿀 때’를 듣고 나니 세상엔 재능 있는 분들이 정말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해서 활동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될 정도였습니다.”
테스는 자신이 선망하는 이들로부터 과찬에 가까운 말을 듣게 되자 정신이 혼미해져서 이곳이 현실인지 꿈속인지 노래 가사 속의 주인공처럼 멍해졌다.
“테스님? 테스님?”
“아, 예. 예”
“테스 님께서 기쁘신 나머지 정신을 잠깐 잃으셨던 것 같습니다. 테스님은 심사위원들 모두의 만장일치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셨습니다.”
“제가요?”
“축하드립니다.”
라디오를 통해 테스라는 소녀의 노래를 듣게 된 이들은 현장보다는 떨어지는 음질이었음에도 감동받았다.
“이런 것이 음악이라는 거지? 내가 그동안 들어온 음악은 음악도 아니었네.”
“너무 좋다.”
“로로 시스터즈가 부른 노래라는데 원래 노래는 어떤 느낌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가 존경한다는 로로 시스터즈의 노래 실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로 나온 본선 진출자들 몇몇은 처음에 충격적인 노래를 불렀던 소녀 테스와 비교되어서인지 그럭저럭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게 1회 대륙노래자랑이 약간 루즈해질 때쯤 보키가 예정되었던 계획을 진행했다.
「이쯤에서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께선 궁금해지셨을 겁니다. 본선 진출자들이 하나같이 찬사를 바치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살롱의 대표 가수 로로 시스터즈는 어떤 노래를 부를지.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로로 시스터즈가 부릅니다. 로로 시스터즈의 대표곡 ‘넬라 판타지아’. 잠시 광고 후에 계속되니 듣고 계신 분들 라디오를 끄지 마시고 모두 로로 시스터즈의 넬라 판타지아를 기대해 주십시오.」
길게 말한 보키가 시나브로에서 판매하는 라디오 그리고 버크 소금과 코엘 후추 그리고 에디나 참기름과 들기름 광고가 이어지는 동안 방송실에서 나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광고라는 것 없었으면 제대로 물도 마실 여유도 없을 뻔했는데 광고라는 것을 생각해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물을 마신 보키가 나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고 나선 생방송 중이라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던 것인지 화장실로 뛰어갔다.
“중간 중간 광고가 꼭 필요하군요.”
‘내가 왜 라디오를 만들었는데...’
“앞으로 많은 상단들의 문의 연락이 들어올 겁니다.”
“그래요?”
“앞으로 우리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우리 라디오에서 광고하는 상품들에 먼저 관심이 갈테니까요. 무언가를 파는 이들이라면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에 먼저 자신들의 상품을 각인시키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닐지 아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광고에 함께 삽입된 배경음악을 통한 홍보가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알고 있는 난 각종 시나브로 계열사의 광고에 내가 알고 있는 라디오 CM송을 활용하여 집어넣었다.
많은 출연자가 나오고 방송이 끝날 때쯤 마지막을 장식해주기로 약속한 버크 아저씨가 요크와 함께 찾아왔다.
“내가 꼭 노래를 불러야 하겠나?”
“왜요? 전 아저씨가 노래 부르는 목소리도 좋아하는데요. 그리고 약속하셨잖아요.”
“그거야 술 먹고 한 약속인데...더구나 이 노래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도 잘 부르시긴 하잖아요.”
“난 ‘둥지’라는 노래를 더 좋아하는데...”
아저씨의 말이 길어지는 게 거슬렸는지 요크가 평소와 다르게 오빠를 윽박질렀다.
“아, 쫌! 오빠!”
“아, 알았다. 알았어. 처음 정한 대로 부르면 되지 않느냐.”
마지막 순서를 앞두고 광고가 진행되는 동안 툴툴거리는 아저씨를 요크가 밀어 넣고 내게 다가왔다.
“오늘 오빠가 부른 노래는 꼭 따로 녹음해서 줘야 돼. 약속한 거다.”
“그럼 그럼.”
트로트 취향과는 다르게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아저씨는 원래 이 노래를 불렀던 남자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만큼 멋있었다.
〔...손에 넣은 것이 무슨 소용이 된다는 건가? 자기의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네. 그렇지 않으면 없는 거나 다름 없으니. 세상에 나타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느끼는 것을 말하는 거라네. 이런 이유로 제법 손해도 보았지만,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네.〕
“역시 아저씬 이런 노래가 어울린다니까.”
“본인은 싫어하지만 말이야.”
중후하고 굵은 목소리로 부르는 아저씨의 ‘my way'는 너무나 듣기 좋았다. 원곡을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와 별반 차이가 없을만큼.
아저씨의 노래를 끝으로 1회 노래자랑의 본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