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90화-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유
각종 TV 채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시청률이 오르게 되면 이를 통해 PPL이나 기업의 후원으로 제작비를 보전할 수 있고 높은 광고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돈이 되기 때문이고 출연자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고자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이들에게도 어느정도의 상금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가수’의 길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을 주체하는 측에게도 출연자에게도 서로 이득인 쪽으로 진행된다.
더스트의 세상에서는 공연을 하고 싶은 이들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음악가라든가 공연자들은 귀족 가의 자녀들에게 음악 교육하는 일을 하거나 귀족들의 연회에 반주자로 초대되어 귀족들이 즐기는 연회 음악을 연주하는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이들이 많았다. 그나마도 귀족가와 연이 없는 이들은 로로 시스터즈의 경우처럼 음악적 재능이 있는지조차도 평생 알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 세상의 오디션 프로그램같은 것을 진행하는 것에는 3가지 제약조건이 있었다.
첫 번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주체하는 이들이 가져갈 실익이고 두 번째가 공연자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의 창출,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접하고 자신들이 뽑을 공연자에 대해 접할 수 있는 도구의 존재.
“세가지 제약조건을 해결해줄 도구가 ‘라디오’라는 거다 이건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비용이 필요하잖아요? 라디오를 팔면 됩니다. 아니면 라디오에서 진행될 프로그램 사이에 상단의 광고를 집어넣어 주면 돼요.”
“라디오로 하루 종일 노래를 틀어주면 공연공간의 창출도 되겠네요.”
“단순히 노래만 틀어 주겠다는 게 아니라 제국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있죠.”
[오디션 프로그램을 위한 제반시설 확충 방안과 그 비용]이란 기획서 일부를 읽게 된 섀넌과 빅터는 전부 읽지도 않고 기획을 진행하는데 큰 비용에 놀라서 이만한 돈을 들이면 굶어 죽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서 돈낭비라고 따지듯이 찾아왔다.
섀넌이 나의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진정하는 가운데 빅터는 뒷부분에 ‘비밀 취급에 주의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파트를 보고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이거, 그때 그 무전기라는 것과 같은 기술을 이용한 겁니까?”
예전에 검은 올빼미들에게 구해다 준 무전기를 사용해본 빅터는 그걸 떠올렸던 것 같다.
“구체적으론 조금 다르긴 한데 근본적으론 ‘전파’라는 걸 활용하는 거라 같죠. 다만 라디오는 수신하는 쪽은 수신만 할 수 있어요. 무전기처럼 양방향 통신이 가능하진 않아요.”
세븐시티 내에도 아직 라디오가 도입되지 않았으니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사람들에게 라디오라는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전보’ 시설을 도입하여 제국 전역의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깔 목적을 겸사겸사해서 숨겨두었는데 빅터는 그쪽에 더 관심이 큰 것 같았다.
“이미 우리가 사용하는 무전기의 경우는 무전기 간에 거리가 정해져 있어 제약이 존재했는데 전보라는 건 선만 깔려 있으면 멀리서도 어디든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거군요?”
“라디오랑 다른 점이 그거에요. 라디오는 전파를 이용하는 거라서 골짜기라든가 산의 뒤쪽의 경우 전파가 수신되지 않는 지역은 난청지역이 되어 버리거든요. 근데 전보는 선만 깔면 그런 제약이 없어지죠.”
두 사람은 나의 설명을 모두 듣고 새롭게 계열사로 만들려고 하는 ‘시나브로 전기전자회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설명 잘 들었습니다. 제국 전역에 퍼진 와처들의 정보를 수집하는데도 효율적인 장비인 것 같습니다.”
“빅터 이사님과 다르게 제게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네요.”
“중간중간 광고도 할 수 있어요.”
이상하게 상업성보다 다른 목적에 관심을 두면서 둘 다 듣고 싶은 것만 듣더니 찬성을 표시하고 사업의 진행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라디오의 조달은 대한민국에서 트랜지스터같은 핵심부품만 한국에서 가져오고 나머지 대부분은 세븐시티의 제조단지에서 제조를 전담하기로 정리가 되었다.
로로 시스터즈의 관심이 점차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쯤 제국의 수도에선 제2의 로로 시스터즈가 될 사람을 뽑겠다며 시나브로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각종 시나브로 상품을 파는 매장들의 입구에 전단지가 붙었다.
“제2의 로로 시스터즈가 될 사람을 뽑겠다고?”
“저번에 그 천사님들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여기 봐, 상금이 어마어마한데?”
“무려 10플래티넘이라.”
“연령 제한 없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누구라도 참여 가능하고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시나브로의 각 매장에 준비되어 있는 신청서를 10브론즈를 내고 구매하면 된다라고 쓰여 있네.”
“10브론즈로 10플래티넘을 벌 수 있는 기회인가?”
“앞으로 시나브로 호텔에 있는 살롱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고용해준다고 하니 평생 먹고 사는 걱정은 안해도 되겠군.”
“아, 아. 내 목소리로도 가능하려나? 어때?”
“돼지 멱 따는 줄.”
많은 사람들이 전단지를 관심 있게 지켜본다는 시나브로 직원들의 보고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흥행시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상금을 내건 보람이 있네요.”
“돈 싫어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죠. 돈에 관심이 많은데 관심이 없는 척하는 것이든가 아니면 돈에 질릴만한 일을 경험했던가”
시나브로 마켓에선 전단지를 통한 광고 개시와 더불어 한가지 특이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이게 뭐래요?”
어딘가 작은 가구처럼 생긴 라디오라는 건 고급가구처럼 고풍스러운 외장을 하고 있었기에 귀족들의 관심을 끄는데 주효했다.
“드워프들과 엘프들이 합작으로 만든 최초의 상품 라디오! 현재 준비된 이 앤티크 라디오는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나중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한정판입니다.”
“그래요?”
“시나브로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상품이니만큼 혹시나 고장이 있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에는 2년 이내엔 무상수리가 가능합니다. 만약 2주 이내에 고객의 변심에 의해 상품을 환불 혹은 반품하고 싶으시다면 구매한 매장에 찾아오셔서 구매할 때 저희가 드리는 상품보증서와 물건을 같이 주시면 됩니다.”
환불도 해준다는 물건인데다 2년 이내에 무상 수리 서비스라는 걸 처음 들은 귀족부인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보답했다.
“나부터 줘요!”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줄 선 거 안보여요?”
“내 남편이 황궁에서 일하는데 거 어지간하면 알아서 비키지?”
“내 남편도 황궁에서 일하는데?”
“손님들, 아직 상품이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받아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웃는 얼굴로 친절을 베푸는 직원의 앞에서까지 화를 낼 수 없었던 고객은 나중에 둘이 따로 보자면서 물건을 사갈 정도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해당 제품은 단 3일만에 한정판이 모두 판매가 완료되었다.
“제대로 상품 설명도 안 듣고 사람들이 막 사갔다구요?”
“그냥 집에다 가져다 두기에 괜찮아 보이니까 사치스러워 보였는지 줄 서서 사간 것 같아요.”
“아니지. 우리 드워프가 만든 물건이니까 그런 거야.”
“글쎄요. 엘프들의 목공 솜씨야 워낙 유명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달달한 핫초코를 입가에 묻히고서 냉철한 기업인들처럼 이야기하는 섀넌과 요크를 보고 있자니 엘프와 드워프 사이란 정말 견원지간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다른 이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새삼 다시 느껴야 했다.
서로 내 덕분을 외치던 둘은 핫초코랑 같이 먹으면 맛있는 스콘 한무더기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접시에 쌓아놓고 하나씩 입에 물려주고서야 막을 내렸다.
“제국민들을 위해서 판매하는 라디오도 잘 팔리고 있나요?”
“그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스콘을 오물오물 먹는 섀넌은 엘프들의 손이 타지 않고 드워프들의 손만 탄 소형 라디오는 판매가 잘 되지 않는다면서 요크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큰일입니다. 저희가 참여한 앤티크 라디오는 잘만 팔렸는데.”
“뭐?”
‘요크, 먹던 스콘은 다 먹고 말해...’
입에서 먹던 스콘이 다 튀는줄도 모르고 그게 어떻게 드워프 탓이냐면서 애초에 드워프가 설계에 참여했을 뿐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에 드워프제라고 홍보할 수 있겠냐며 요크가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버크 아저씨가 찾아왔다.
“요크, 목소리가 너무 시끄럽구나.”
“아니, 오빠. 그게 아니라요.”
“크로니클 단원들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내가 말했지 않느냐. 서로 오해가 있으면 조용히 대화로 풀어야지. 그렇게 큰소리로 내지르면 설령듣는 사람이 잘못했어도 인정하기가 어렵단다.”
“그치만.”
“으흠.”
“알았어요. 하지만 드워프제라서 물건이 잘 팔린다는 섀넌의 말은 인정하기가 어렵네요.”
부처의 얼굴같은 아저씨의 표정이 요크가 잘못을 인정할 때까진 유지되다가 마지막 말에 금이 가버렸다.
“섀넌 비서실장님, 요크 이사의 말이 사실입니까?”
버크의 뒤에서 혼나는 요크를 보며 고소해하던 섀넌은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듯 당황스러워했다.
“저기, 그게...”
섀넌이 우물쭈물하다가 내게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듯 날 쳐다봤지만 나로썬 드워프와 엘프 사이의 일에 별로 끼고 싶지 않았다. 섀넌이 말한 것이 사실이기도 했지만 코엘 누나와 버크 아저씨 사이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사람에겐 이성으로 서로 이해를 하고 넘어갈 일들과 감성의 영역에서 도저히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깊이 깨달았으니까. 특히나 드워프와 엘프 사이는 애증이 깊어 내가 선뜻 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냥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엘리스, 너도 드워프와 엘프 사이에서 끼어 봐. 처음에나 재밌지. 귀찮아.’
문제는 버크 아저씨의 일장연설이 중반부에 들어설 때쯤 발생했다.
“어허, 거 어린 녀석 목소리가 너무 크다. 언제까지 하나 듣고 있으려니 끝이 없네.”
“코엘 언니...”
어딘가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섀넌의 목소리를 들은 코엘 누나의 표정이 변했다.
“누구야? 누가 우리 섀넌을 괴롭혔어? 정후, 너야?”
코엘 누나의 말에 필사적으로 난 관계가 없음을 의미하듯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었고 코엘 누나의 쌍심지 켠 눈빛은 이내 샤이어 남매에게로 향했다.
“니들이지? 안 봐도 뻔해. 혼자 있는 엘프를 샤이어 남매가 쥐잡듯이 잡았구나? 어쩐지 저기 밖에서도 버크 목소리가 귀에 팍팍 꽂히더라.”
“아니, 그건 엘프들 귀가...”
“그래서 우리 섀넌, 너희 둘이서 편먹고 잡았어. 안 잡았어?”
말 빠르기로 유명한 래퍼의 래핑보다 빠른 코엘 누나의 말에 버크 아저씨가 이내 참지 못할 때쯤 누나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읊조리며 조용히 눈을 감고 커피를 음미하는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정후, 너는 사장이 돼서 옆에서 둘이 자기 비서를 쥐 잡듯이 잡으면 도와줘야지.”
“쥐 잡듯이 잡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거 봐 이거 봐. 이런 무신경한 사장 밑에서 섀넌이 비서 일을 하면서 얼마나 힘이 들까?”
섀넌 누나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샤이어 남매는 사라지고 두 엘프와 나만 남았다.
“다음에도 또 이러면 내가 진짜 가만히 안 있어. 섀넌은 정후가 힘들게 하면 나한테 와서 말해. 근데 이것들은 어디 갔어!”
코엘 누나가 테이블 위에 있던 남은 스콘을 하나 빼고 모두 집어서 자리를 떠나자 섀넌은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여자의 표정을 하고 말없이 쳐다봤다.
“배신자. 편들어 달라고 내가 그렇게 쳐다봤는데.”
“아니, 그게...”
내가 뭐라고 해명할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아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사이 남은 스콘 하나를 챙겨서 섀넌도 자리를 비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이래서 엘프랑 드워프 사이에 끼는 게 싫어.”